# 2
서序-그놈 막추룡! (2)
조부 막진운漠眞雲.
지금은 고인이 되었지만 당시 그의 부친 역시 같은 이야기를 했었다. 부질없는 짓이니 자신의 뒤를 이어 차 농장을 경영하라고. 부러울 것이 무엇이 있느냐고.
하지만 자신 역시 듣지 않았었다.
그리하여 천하로 나갔었고, 또한 천하의 유수한 인물들과 실력을 겨루었다. 얼마나 즐거운 나날들이었던지.
비록 눈물을 흘리며 돌아오긴 했지만 분명히 지금도 호쾌했던 젊은 날을 추억하고 있었다.
젊어 꿈을 지니고 넓은 천하를 본다는 것이 분명 나쁘지만은 않은 것이었다.
추룡에게 쓸데없는 기술을 가르쳐 준 게 자신이기도 했다.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정히 그렇다면 뜻대로 하거라. 하지만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어려움이 느껴지면 지체하지 말고 돌아오도록 해라. 아비도 젊어 천하를 두루 주유했으나 이곳보다 좋은 곳이 없었으니. 노자께서도 이르셨으되 인생이 달고도 쓴 것임을 알고 보면 중간이 가장 영리한 것이다.”
자리에서 일어나 벽장 쪽으로 가 넉 자 반의 길쭉한 상자 하나를 꺼내 추룡에게 건네주었다.
“반드시 성공하겠습니다!”
추룡은 자리에서 일어나 깊숙이 막여사에게 큰절을 올렸다.
존경하는 부친은 자신의 뜻을 헤아려 주지 않은 적이 없었다.
장완옥은 다소곳이 한쪽에 앉아 이런 부자父子를 바라보며 미소 짓고 있었다.
아들이 장도長途를 떠난다니 마찬가지로 우려가 안 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그는 막여사와 자신의 아들이기 때문이었다.
떠나는 범선.
“추룡, 잘 다녀오게!”
“반드시 성공하기 바라네. 명성이 여기까지 들려오길 기대하겠네!”
“몸조심해!”
“어, 고마워! 다녀올 때까지 잘들 지내게.”
그가 떠나던 날 남평성 하도夏道의 선착장은 많은 젊은이들로 메워졌다.
오랫동안 친분을 가져왔던 벗들이 송별을 나온 것이었다.
복건 남평의 사람들은 중앙으로 갈 때 거의 육로陸路를 이용하지 않았다.
앞서 차 밭 이야기가 나왔지만 원래 이곳 남평은 절경으로 이름 높은 무이산武夷山의 남쪽에 위치한 고장으로 여기에서 나는 우롱차吳龍茶는 중원에서 가장 훌륭한 명품으로 명성이 높았다.
대다수 산악 지대로 이루어진 복건성의 기후는 중원 남부에 위치해 한겨울에도 얼음이 얼지 않을 정도로 따스하고 동남해東南海를 끼고 있어 해풍이 부는 여름에는 시원하여 사계절이 봄과 같았다. 질 좋은 차를 재배하기에 그만인 곳으로서 실제 중원에서 거래되는 차의 팔 할이 복건성에서 생산되기도 했다.
건구현의 봉황산에서 나는 차는 황실에도 진상될 정도.
삼국시대의 유현덕이 모친을 위해 황하강의 유역에서 차를 실은 배를 기다렸듯이 이곳의 차는 언제나 무역상들의 배에 실려 중원 복판으로 옮겨졌으며 중원에 용무가 있는 사람들은 이 배를 타고 이동을 하곤 했던 것이다.
복건의 중심을 가로지르는 민강?江을 따라 복주福州, 대만해협으로 빠져나가 해로를 거슬러 황하 및 절강 항주의 양자강으로 가는 것.
돛이 올랐다.
마침내 배는 민강의 창창한 강폭을 가르며 움직이기 시작했으며 추룡은 바람을 맞으며 고물 앞에 섰다.
짙은 남색 문삼文衫에 문사건을 쓴 날렵해 보이는 모습.
“헛헛…… 송별 나온 분들이 많더군요. 건구현 막 대인의 아드님이 맞으시죠?”
나이 지긋한 선원 하나가 추룡에게 물었다.
“예, 아버님이십니다.”
늘 그렇듯 추룡은 씩씩하게 대답했고, 선원은 이 호감 가는 젊은이에게 계속 질문했다.
“막 대인의 농장에서 생산되는 차는 극품極品으로 명성이 높습죠. 얼핏 듣자니 출사하고자 가신다는 것 같던데 금릉의 식년시를 치르러 가시는 것인갑쇼?”
추룡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무과武科입니다. 개봉으로 갑니다.”
무과.
선원의 시선이 비로소 추룡의 허리로 옮겨졌다.
남평 최고의 나무꾼이었던 그의 허리에는 어느 틈에 넉 자 반의 고색창연한 고검古劍 한 자루가 둘러져 있었다.
“이야! 알고 보니 무예에 조예가 있으신가 보군요? 개봉으로 가신다면 혹시 대리사大理司의 무관 시험인가요?”
“예.”
“햐! 막 대인께서 금의위錦衣衛의 대한장군大漢將軍 출신이라는 소문이 있던데 그럼 혹시 그게 사실이었던가요?”
“넵!”
동남해의 바람이 시원하게 느껴졌다.
눈 뜬 채 코 베이는 세상 (1)
항주杭州.
중원인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치 유명한 곳이었다.
서호西湖가 있고 전당강錢塘江이 있고, 월국越國이 들어서고 당, 송의 도읍이 되는 등 하화문명夏華文明을 꽃피워 온 곳.
서호풍월로 더 유명하며 하늘 위에는 극락이 있고上有天堂, 땅에는 항주가 있다고下有蘇杭 불릴 정도로 중원 제일의 수려한 경관을 자랑하는 도시기도 하다.
“이야! 역시 굉장하다!”
추룡이 항주 포구에 내린 것은 남평을 출발한 지 한 달이 지나서였다.
드넓은 중원에 성省에서 성을 건너가기 쉬운 일이 아니거니와 강하게 부는 봄의 해풍에, 타 계절에 비해 상당히 빠르고 순조로운 뱃길이었음에도 한 달이 걸려 항주에 도착한 것이었다.
출발은 삼월, 도착한 것은 사월.
도착하자 봄을 맞은 항주는 온통 꽃 천지였다. 성도 전체를 덮은 푸름과 만개한 꽃과 고색창연한 탑실, 화려한 분벽의 장원, 궁실 등 자연과 인공의 건축물들이 조화를 이뤄 그야말로 빛깔이 번쩍하다.
거리마다 구경도 못 해 본 온갖 상품들이 쌓인 점포들이 즐비하고 봄을 맞은 사람들이 구름처럼 떠밀려 다니다시피 할 정도로서, 비교하자면 남평은 표현하기 좀 뭣하지만 아주 촌이라 할 수 있었다.
당연히 남평의 나무꾼인 추룡은 촌놈인 셈이었다.
하지만 아주 촌놈이진 않았다.
앞서 막여사의 신분이 얼핏 비쳤듯이 본本은 남평이었지만 원래 추룡은 개봉開封 출생이었다. 결코 항주에 못지않은 도시.
젊은 시절 막여사는 개봉에 있었고, 그곳에서 아내인 장완옥을 만나 혼인하여 추룡을 출산한 것이다.
사연이 있어 남평으로 돌아가게 되었던 것으로 당시 추룡의 나이가 여덟 살이었다.
오랫동안 떠나 살았지만 번화한 도시의 기억은 아직도 뇌리에 각인되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오래된 기억이라 아주 선명하진 않았다. 어렸던 만큼 모친이나 부친을 따라다닌 게 고작이었기 때문이다.
“햐! 기억은 나지만 이렇게 굉장했던 거야? 어마어마하다!”
어쩔 수 없이 눈이 휘둥그레져 이곳저곳을 기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가슴이 벅차오르기도 했다.
누구나 유년기의 기억은 가장 크게 남는 것이었지만 이제 자신은 이 큰 도시에서 명성을 쌓으며 자리를 굳힐 것이었으니.
“가자, 적낭자!”
히히히힝!
포구는 동문 쪽에 있었고, 일단 번화한 항주 시진 거리를 지난 추룡은 서문을 찾아 바로 말에 올라탔다.
적낭자는 말의 이름이었다. 산 직후 지은 것으로, 암말이다 보니 그렇게 이름을 지은 것이었다.
칠 년간 쉬지 않고 나무를 해서 소를 사고, 은자를 모으고 송아지까지 팔아서 구입한 준마.
쉰 냥에서 한 푼도 깎아 주지 못한다고 했듯 적낭자는 실제로 보기 드물다 할 정도로 빼어난 준마였다.
크고 늘씬한 체형도 그렇고, 곧바로 주인을 알아보고 얼굴을 비벼 애정을 표시할 정도로 영리하기도 했으며, 추룡을 태우고도 치달리는 모습이 바람같이 가볍다.
넉 자 반의 대장검을 두른 남색 문삼의 청년을 태우고 치달리는 타는 듯한 붉은 갈기를 지닌 적갈색의 말, 모습이 사뭇 아름답기까지 했다.
“가장 좋은 먹이를 주십시오. 싱싱한 야채를 듬뿍 곁들여서.”
“야! 정말 훌륭한 말이로군요! 그대로 준마입니다. 상당수 말들을 타고 오시는 손님이 많은 편이지만 이렇게 좋은 말은 거의 못 봤는데……! 가격이 어느 정도 하던가요?”
“쉰 냥 주고 샀습니다.”
“하하, 농담이시겠죠! 그건 일반 수컷 가격 아닙니까? 나이도 어린 것 같은데요. 그 가격으로는 이런 말, 고삐도 못 잡습니다!”
시진을 벗어난 추룡이 찾아간 곳은 악왕묘岳王廟였다.
천하 절경으로 이름 높은 서호의 선착장 측근에 위치해 있는 남송의 천하 명장 악비岳飛 장군이 잠든 진묘(眞墓―현재는 관운장과 함께 무묘武墓에 합사)가 있는 곳.
삼국시대의 관우운장과 더불어 중원의 무인들이 가장 흠모하는 장수로서 천하 도처에 사당을 세우고 사람들이 숭상했지만 여기에 있는 묘소가 진짜였다.
이로 인해 천하의 무인들은 누구나 이곳에 들르고 싶어 했는데, 추룡 역시 악비를 존경하는 청년 중 하나였다.
힝!
도착하자 떨어지기 싫어하는 눈치를 보이는 적낭자를 주루에 맡기고, 악왕묘로 향했다. 말을 대동하고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었다.
들어서자 악왕묘 내에도 발 디딜 틈 없이 사람들이 붐비고 있었다.
천하인들의 존경을 받는 명장의 묘소인 데다 절경으로 이름 높은 서호를 끼고 있고 설상가상 꽃이 흐드러진 시절 봄.
도처에서 몰려온 여행자들, 시인 묵객들, 무인들 등으로 인해 그야말로 입추의 여지도 없이 넓은 안이 꽉 메워지고 있었던 것이다.
악왕묘는 사당과 묘원, 둘로 나눠지는데, 문루, 충렬사, 계충사, 남지소, 정의간, 정충백사 등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었고, 묘는 비랑의 복도 끝에 있었다.
오른편에는 맏아들 악운岳雲의 무덤이 나란히 있고, 그를 모함해 독살한 진회秦檜와 그의 아내 왕씨, 만사설, 장준 등 네 명이 두 손을 등 뒤로 묶인 채 꿇어앉혀진 실물 크기의 석상이 있었다.
이곳에 오는 사람들은 장군의 묘소에 참배한 후 이 네 명의 간신들의 석상에 침을 뱉는 것을 관례로 하고 있었다(지금은 금지).
‘복건 남평의 추룡, 영전을 뵙나이다! 대명을 듣는 날부터 장군의 생을 흠모하여 왔사옵거니와 부디 이 나라와 백성들을 위하여 후진이 설 자리를 정해 주소서!’
차례를 기다려 추룡 역시 힘 있게 묘소에 허리를 숙이며 참배했다.
환아하산還我河山! 구름처럼 밀려오는 금金의 백만 대군을 휘몰아치는 악비의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 자신이 곧 악비가 된 듯한 느낌과 함께 정신이 명경지수처럼 맑아지는 것 같았다.
“추악한 놈!”
“가마솥에서 끓여지고 있느냐?”
몸에 새 힘이 솟는 듯 지그시 허리춤의 칼자루를 움켜쥐고 허리를 쫙 편 채 묘소 앞에서 물러섰는데, 보니 저만치 담 아래에 진회, 만사설, 장준, 왕씨 등 네 사람이 무릎이 꿇린 채 무수한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수백 년이 지난 지금도 욕을 먹으며 가래침 세례를 받고 있는 게 보였다.
살아 구국의 영웅을 죽이고 부귀를 누렸을지 몰라도 죽어 만대에 침을 받으며 욕을 먹으니 자손들인들 얼굴을 들 수 없을 것이었다.
‘응보應報.’
추룡은 먼발치에서 싸늘히 정경을 바라본 후 비랑 쪽으로 어깨를 돌렸다.
이때였다.
“거기, 대형! 대형은 왜 진회 놈에게 침을 뱉지 않소?”
걸음을 옮기던 추룡의 등 뒤에서 문득 누군가의 음성이 들려왔다.
뜻밖의 일에 추룡은 멈칫하는 기분이 되어 시선을 돌렸다.
“귀하께서는?”
보자 너덧 걸음 밖에는 어느 틈에 가까이 다가온 것인지 약관의, 백의 경장을 입은 웅풍의 한 청년이 자신을 보며 미소 짓고 있었다.
비슷한 또래, 키조차 비슷한 육 척가량에 칼날같이 솟은 검미와 곧게 솟은 콧날, 정광이 흐르는 용목龍目, 이마에 두른 영웅건, 어깨 위에는 또한 한 자루의 칼자루가 삐죽 올라와 있었다.
한눈에 봐도 예사로운 청년이 아닌 느낌으로 대단히 호감이 가는 준수한 청년이었다.
청년은 보일락 말락 미소를 머금고 추룡의 허리에 둘러진 대장검에 눈길을 던지며 포권을 취했다.
“호북 황석성黃石城에서 온 임백호臨白虎라 하오. 들어오실 때부터 모습을 뵈었는데, 참배를 하고도 그냥 가시기에 어쩐 까닭인가 싶어서.”
호북 황석의 임백호.
추룡은 한눈에 그가 보통 비범한 나무꾼(?)이 아님을 알아보았다.
얼결에 마주 포권을 취하며 대답했다.
“아, 저는 남평서 온 막추룡. 특별한 까닭은 없고 그냥 너무 더러워서 가까이 가기도 싫더군요.”
너무 더럽다.
“핫핫핫핫! 하긴!”
순간 백의 청년 임백호는 자신도 모르게 사방이 쩌렁쩌렁 울리는 폭소를 터뜨렸다.
사실 그럴 수밖에도 없는 게 진회, 만사설 등의 석상은 정말 너무 더러웠다. 수만 사람들이 드나들며 밟고 걷어차고 침을 뱉고 하다 보니 진회의 석상은 금까지 가 있을 뿐 아니라 전신에 가래침이 들어붙은 꼴하며 너무 많은 침이 깔려 질펀하게 사방으로 흐르고 있을 지경.
“이크! 그럼 소제는 이만!”
내기까지 실린 듯 임백호가 너무 크게 웃어 사람들이 다들 쳐다봤으므로 추룡은 후다닥 자리를 피했다.
무수한 사람들이 참배하러 온 묘소 앞에서 큰 소리로 웃는 것은 사실 좀 결례였다.
하지만 아랑곳없다는 듯 임백호는 계속 배를 잡고 웃고 있었고.
일각여 후, 악왕묘에서 물러 나온 추룡의 걸음이 바빠졌다.
교통이 발달하지 못했던 시대, 일생에 한 번, 넓은 천하에 단단히 마음먹지 않으면 다시 올 수 없을지도 모르는 항주에는 실로 들를 곳이 많았다.
서시가 빨래를 할 때 그 아름다움에 너무 놀라 물고기가 빠져 죽었다고(?) 해 침어侵魚라 불리는 서호 하나만 해도 죽기 전에 한 번이라도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을 정도로 유명하지만, 멀지 않은 곳에 전당강, 황룡동, 호포천, 영은사 등 명승지가 즐비했으므로 온 만큼 잠깐이라도 한 번씩은 들러 보고 가야 하는 것이었다.
천하에 이름 높은 명산인 옥황산에 비래봉, 북고봉, 남고봉까지 합치면 일 개월이 족히 걸릴 것으로, 거기까지는 사양할 수밖에 없었다.
추룡이 목적지로 한 개봉은 분주히 가도 이십 일이 걸릴 거리였고 그가 대리사가 관장하는 무과를 치르고자 온 것이 사실이라면 시간이 별로 없었다.
시험이 오월에 있으므로 남은 기간은 한 달, 머뭇거릴 여가가 없었고, 도중에 남경南京에도 들러야 했다.
특별한 용무가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명의 도읍으로서 황성皇城 응천부應天府가 자리한 곳!
중원의 젊은이로서 마땅히 가 봐야 할 곳이 아닌가.
실제 이 시대, 죽기까지 출생한 성조차 벗어나는 사람이 드물었고, 말로만 이야기를 들을 뿐, 황성이 어떻게 생겼는지조차 모르고 죽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셈이었다.
따라서 무조건 분주할 수밖에 없었는데, 나오자마자 쏜살같이 식사를 하고, 후다닥 눈썹이 휘날리도록 전당강 측근에 자리한 월륜산月輪山으로 향했다.
여기에는 유명한 육화탑六和塔이 있었다. 북송北宋의 지각선사가 홍수를 진정시키기 위해 세웠으나, 북송 휘종 때 전란으로 소실되고, 남송 때에 이르러 새로 중건한 거대한 탑실塔室이었다.
외형은 십삼 층, 내부는 칠 층으로 이루어진 높이 이십 장의 탑으로, 육화六和의 전설이 있는 곳이었다.
북송에 육화라는 효성이 지극한 소년이 있었는데 부모는 고기를 잡아 연명하는 전당강의 어부였으며 고기잡이를 나갔다가 거친 파도를 만나 배가 뒤집혀 실종되었다고 했다.
비탄에 잠긴 육화는 매일 강가로 나와 강을 원망하며 돌을 집어 던졌는데 이 한 서린 돌멩이가 전당강을 관장하는 용왕이 사는 용궁의 지붕까지 깨었다고 한다.
견디다 못한 용왕이 다시는 전당강에 파도가 일어나지 않게 하겠다고 약속했다는 전설이었다.
이 효성을 기리기 위해 육화가 돌을 던진 그 언덕 위에 세운 탑이 바로 육화탑이었다.
그러나 전설보다 무인武人들에게는 더 각별한 의미가 있었다. 이 육화탑은 북송, 양산박의 대호걸이었던 화화상花和尙 노지심이 입적한 곳으로서, 또한 백팔영웅 중 하나이자 친구인 무송, 이 두 영웅의 막역한 우정을 기리는 곳이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