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왕춘추-409화 (409/410)

제101장 종장(終章) (9)

해원기가 백화의 일월지안을 똑바로 응시하다가,

“허어.”

탄식이 입술 사이로 새어 나오면서 굳었던 얼굴도 풀려나갔다.

그다지 가슴에 와닿지는 않아도, 백화가 어째서 이렇게 변했는지 알 수는 있었다.

원인한천(怨人恨天).

사람을 원망하고 운명을 한스럽게 여긴다.

사가삼미, 삼색지보, 고죽천손의 군림천하 등등. 온갖 얘기를 핑계로 삼지만, 결국은 원한.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더니.

이 모든 일이 백화 자신의 원한 때문이었다.

어처구니가 없어 따질 마음도 들지 않는다.

그래서 조정과 대내를 어지럽히고, 마침내 강호까지 혼란스럽게 만들었으며,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이들이 무고하게 해를 입었던가.

해원기의 머릿속에 구란와자에 홀렸던 수백의 남녀가, 수차제에 휩쓸렸던 많은 백성이,

그리고,

황장촌에서 독살당한 스물네 명의 남녀노소가 스쳐 지나갔다.

미쳤구나.

그녀가 지껄였던 동정과 연민은 바로 그녀 자신이 갈구하던 것이었다.

가련하기 짝이 없구나.

비로소 입이 떨어지지만,

“망집(妄執)의 굴레는 참으로 두렵도다. 그러나…….”

영탄조의 말을 끌면서 고검이 선뜻 백화를 겨누고,

단호한 음성으로 바뀌었다.

“너는 틀렸다!”

선녀와 같던 백화가 처음으로 흠칫하는 기색.

그녀의 눈앞에 문득 과거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고검협 묵세휘가 찾아와 자부가 잃어버린 제십이경을 꺼내면서 노야를 꾸짖던 일.

절대로 내심을 드러내지 않던 노야가 그 앞에서 머리를 찧으며 스스로 틀렸다고 후회했던 그 장면.

그때의 묵세휘가 해원기로, 자신이 노야인 듯한 착각.

긴 머리칼이 물결처럼 출렁인다.

“뭐가 맞고 뭐가 틀린 지 누가 알겠어? 흐흥. 똑같이 역겨운 소리를. 꼴에 사내라고, 꼴에 고죽의 후예라고.”

입술을 비틀고 나오는 혼잣말은 그녀 자신에게도 제대로 들리지 않았고,

대신에 냉혹한 음성이 맞서듯 터져 나왔다.

“십이호, 기우사만계로 동혈(東穴)을 수호하고 구자옥결을 차례로 염송(念誦)해라!”

조공공이 대뜸 궁신하며,

“존명!”

힘차게 답하는 건 쳐다보지도 않은 채 왼손이 해원기를 흉내 내듯 올라갔다.

“숨이 끊겨도 그따위 소릴 떠들 수 있는지 보죠. 소공자!”

감로보병을 가루로 만든 오른손이 시위를 당기자,

키이이이잉.

밤하늘을 온통 뒤집는 거창한 빛.

해원기조차 순간적으로 시야가 흐려졌고, 무지막지한 힘이 이미 정면으로 날아든다.

비록 기우사만계라는 결계를 뚫지는 못했어도,

신령검역에 천형검계가 펼쳐진 공간이 그대로 무너졌다.

해원기의 고검이 반사적으로 나아갔지만,

꽝!

폭음과 함께 해원기 주위에 흙덩이가 분수처럼 솟구쳤다.

전신을 뒤흔드는 충격.

이전에 운해신조경에서 이공자라는 자가 쏘아낸 것보다 몇 배나 되는 위력이다.

‘봉황화신결이 아니다?’

이 무슨 공력인가.

들끓는 기혈을 다스리며 해원기의 발이 춤추듯 움직였다.

수정지력이 샘솟듯 일어나고, 풍뢰지결이 제천신궁의 강전(罡箭)을 살피면서,

천손검법에 맞추어 운보가 시작된다.

아무리 동시안에 힘을 주어도 제대로 보이질 않는다.

백화의 손에 들린 제천신궁은 이름 그대로 하늘조차 제어하는지. 하얗게 탈색된 시야 속에서 무지막지한 기세만 닥쳐들 뿐.

간헐적으로 음형사들이 외워대는 소리만이 귀에 전해진다.

“조율(調律), 화려(和呂)!”

콰쾅!

장생십경이 배면으로 뒤집히지도 못하고 검왕갑주로 전신에 붙고,

“수, 화, 운, 발.”

꽝, 꽝.

세사망망이 난분시비로 나아가기도 전에 봉쇄되었다.

“궁(窮), 극(極), 진(盡)!”

강전이 이제는 하늘 위에서 쏟아지고, 지면을 뚫고 솟구치기까지.

해원기가 양손을 빠르게 엇갈리자 고검이 나사관천으로 팽이처럼 휘돌며 날아오르고, 검왕오형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다시 한번 난분시비.

공간이 휘젓는 대로 마구 뒤엉켜 강전까지 비틀지만,

서로 부딪친 강전이 또 곧장 터져나간다.

꽈앙!

절장보단으로 나아갈 새도 없이.

해원기가 기어이 신음을 토하며 뒤로 미끄러졌다.

“으음.”

묶었던 끈이 끊겨 더벅머리가 마구 헝클어지고, 검왕갑주로 덮인 전신에 구멍이 숭숭 뚫렸다.

덜덜 떨리는 두 손.

퍽.

제때 잡히지 못한 고검이 해원기 앞에 거꾸로 꽂힌다.

어마어마한 압력이 여전히 회오리쳐서 중심을 잡기도 어려운데.

창백해진 안색의 해원기는 여전히 두 눈으로 정면을 응시한 채.

시야를 가리던 거창한 빛이 사라진 가운데 제천신궁을 높이 겨누는 백화의 모습이 드러났다.

“정사마(正邪魔)의 힘이 구분할 수 없게 합쳐졌다고?”

검을 잡을 엄두도 내지 못하면서 입에서 씹어뱉는 의혹.

백화의 얼굴이 만족한 표정을 짓는다.

“용케 알아보네요. 이게 바로 천하만류(天下萬流)의 근원이요, 인세만기(人世萬氣)의 총합인 자부신공(紫府神功)이죠. 노야도 완성하지 못한. 신왕공의 천손검법은 생각보다 별 볼 일 없군요, 혹 소공자의 실력이 부족해서일까? 영신삼성(迎神三成)에서 이 꼴이면 곤란한데. 흐흥.”

한심스럽다는 코웃음.

해원기가 억지로 두 손을 당기며 숨을 가다듬었다.

“후우, 이런 힘을 지니고서, 아니, 이런 힘을 얻으려고 그 지하에 웅크리고 있었던 거로군. 자부신공을 완성하는 동혈이라.”

파파파팍.

숨을 고르는 와중에도 구멍이 숭숭 뚫린 옷자락이 저절로 찢겨나간다.

제천신궁의 강전이 일으킨 여파가 여전히 해원기를 할퀴는 중.

그 힘겨운 모습이 백화를 기쁘게 했나 보다.

백화가 제천신궁의 시위를 놓고 한 손으로 긴 머리를 쓸어 넘기며 턱을 치켜들었다.

“이전에 한 번 와봤었죠. 좁디좁은 지하실에 열주 같은 기둥들이 무슨 이유로 빽빽하게 박혔는지 따져볼 생각은 들지 않던가요? 동(東)은 해(日)가 나무(木)에 걸린 모양, 이제 뛰쳐나갈 양기요, 혈(穴)은 벌어진 구멍이니 땅속에서 받아들일 음문(陰門). 한껏 발기한 양물이 자궁을 가득 채운 곳이잖아요. 하긴, 고지식하게 검 하나 파고드는 굳은 머리로는 알아볼 수가 없나.”

선녀와 같은 용모로 민망한 소리를 거침없이 읊어대고,

그러는 동안에는 태상의 말씀을 경청하기에 바쁜지 음형사들의 염송도 중지되었다.

전신에 몰려드는 여파를 견디느라 입을 닫는 해원기.

파파파팍.

찢긴 옷자락이 미친 듯이 날리는 꼬락서니에,

백화가 다시 오른손을 시위에 얹었다.

“그래도 영신육성(迎神六成)까지는 견뎌줘야지. 너무 일찍 끝나면 속이 풀리질 않아.”

이 말이 신호인 듯.

조공공을 제외한 음형사 아홉이 다시 입을 열어 함께 외치기 시작했다.

“조율, 화려, 수, 화, 운…….”

화아아아아.

재차 하늘을 덮는 거대한 빛.

그러나,

기가 살아서 턱을 치켜들고 위를 보느라 백화는 해원기가 뭐라고 중얼거리는지 눈치채지 못했다.

“자부신공은 무슨. 허튼소리가 입에 붙었구나.”

찢긴 옷자락을 날리는 건 이미 강전의 여파가 아니라 팔풍(八風)의 현현.

그것조차 알아보지 못하고 백화가 잘난 체에 열중하는 사이, 해원기는 드디어 이 무지막지한 힘의 정체를 해석해냈다.

만상조화를 재현하고자 애썼다는 홍작. 그녀의 심마령이던 조화부인은 일일쟁희라는 원반을 들었다.

사황령을 제어한답시고 정종의 신공만 익혔던 녹명. 그녀와 심심상인으로 묶인 제갈봉은 월월절문이란 선기옥형을 지녔다.

모든 기운을 합쳐서 새로운 길을 찾는 홍환은 해요, 뿔뿔이 흩어져 어둠에 갇힌 사황령은 녹판을 가리는 달이다.

일일쟁희는 날마다 더욱 빛난다는 뜻, 월월절문은 달이 갈수록 모양도 달라진다는 의미.

일월은 음양이고 양의이며, 양의가 삼재의 초석임은 오독진살에서 이미 증명되었다.

백화가 손에 든 제천신궁, 음형사 아홉이 염송하는 구자옥결.

구양금오를 그저 육악지력을 봉인한 물건으로 여기지 않고 사일신력을 찾는다고 했다.

음양의 양의를 일신에 어우르곤,

아홉 개의 구양금오를 하나의 음곡(音曲)으로 푼다.

천신(天神)을 영접한다는 영신곡(迎神曲)은 아홉 번 울려야 하니, 이를 구성(九成)이라 하고.

오독진살을 약으로 삼아 양의삼재로 만류만기를 쓴다면.

이것이야말로 하늘에 뜬 열 개의 태양조차 꿰뚫는 예(羿)의 신력이리라.

백화는 이렇게 원하던 신력을 얻었구나.

감로보병을 감연욕일(甘淵浴日)로 삼아 그 물로 구양금오를 씻어가면서.

대단한 지혜요, 엄청난 공력이라고 감탄해 마지않으나.

해원기가 세운 목표인 박대정심은 그 오류를 금세 찾아낼 수밖에 없었다.

예는 후예(后羿)가 아니고,

제천신궁은 그 활이 아니다.

콰아아아아아아.

천지가 하얗게 탈색하고 엄청난 압력이 공간을 갈가리 찢는데,

육합을 가득 채운 강전 속에서 해원기가 가만히 두 손을 놀렸다.

바닥에 거꾸로 꽂힌 고검을 어르듯 부드러운 손길.

위에는 바람이 불고 우레가 멀리서 울리며,

아래에는 물이 대지를 적시어 하염없이 흘러간다.

그 가운데 둥실 떠오른 구름.

따가운 볕도 가려주고, 바람과 어울려 비도 때맞춰 내려주며, 가끔은 벼락을 쳐서 불도 건네주더니.

땅으로 스며들어 다시 물이 되어 바다에 이른다.

문득 천손의 자리에서 스스로 물러난 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힘써 가꾼 체력과 애써 익힌 지혜를 합하여 환란을 평정하니, 이를 신공(神功)이라 하더라.

가소롭구나!

신의 공적이 무엇이기에!

지혜에 빠지면 욕심이 지나칠 것이요, 힘에만 기울면 남을 짓밟으려 할 터.」

신기총혜의 지혜도 욕심이고, 만상조화의 힘은 기어이 남을 짓밟으리니.

신공이 무슨 소용 있나.

오른손에 오행제림, 왼손에 오귀전륜도 굳이 구분할 일이 아니요. 지면에 거꾸로 꽂힌 한 자루 검도 단지 편하려고 쓰는 도구에 불과하다.

하나로 시작해서 열로 나아가도 끝내 다시 하나로 돌아가는 법.

바람이 구름을 일으키고, 구름이 다시 비가 되고.

물처럼 흘러 그침이 없을진대,

대체 무엇이 바람이고, 무엇이 구름이며, 무엇이 물이런가. 셋이 다 형상(形相)이 없어 하나같이 그려낼 수가 없도다.

양손이 어떻게 움직였는지 해원기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고검 또한 언제 사라졌는지, 또 어떤 검상이었는지.

전혀 궁금하지 않았다.

검역도, 검계도, 신이검도 까맣게 잊었는데.

육합을 채운 찬란한 강전이 한 조각 구름으로 화하고, 공간을 갈가리 찢던 압력이 한 줄기 바람으로 바뀌었으며,

모든 것이 한 가닥 물처럼 쉼 없이 흘렀다.

영신육성이 끝나길 기다렸던 것처럼 물이 축대에 이른다.

철썩.

가벼운 물소리 한 번.

그러나 음형사 아홉이 벼락을 맞은 듯 동시에 폭삭 주저앉고,

콰직, 콰지직.

축대가 제멋대로 허물어지는 위에서 백화가 전신을 부들부들 떨더니, 손에 쥔 제천신궁이 저절로 뚝 분질러지는 순간,

콰콰콰콰쾅!

축대가 일시에 무너져 지하로 꺼져 들었다.

“끼아아아악!”

단말마의 비명을 삼킨 채로.

해원기가 내밀었던 고검을 등 뒤로 돌리고선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후.”

사부에게 들었던 것과는 미묘하게 다르지만, 이번에 처음으로 시전한 이 검이 아마도 무상검(無相劍)일 터.

그러나 기쁨보다 어쩐지 허무한 느낌만 든다.

한숨 끝에 떠올리는 말은,

“그저 아끼고 그리워하고 사랑하면 될 뿐인데. 무(武)가 승함이 안타깝구나.”

언젠가 들었던 그 유훈(遺訓).

혼잣말과 함께 악송령과 정록의 얼굴이 보고 싶었고,

형인 단목정도, 탁 소숙과 숙모, 녹림노조도 그리웠으며,

여동생 묵소유가 어떤지 궁금해졌다.

그러나 누구보다 더 마음을 채우는 이는.

저절로 얼굴이 붉어지고 가슴이 두근거려서 얼른 몸을 돌리려는데.

“좋은 말이로고.”

불현듯 귀를 울리는 음성.

대경실색할 노릇이건만, 해원기는 마치 이럴 줄 알았다는 듯이 돌리려던 몸을 바로 세워 두 손을 모았다.

함몰된 축대 위, 어지럽게 쌓인 돌 더미 꼭대기에 오도카니 앉은 한 사람.

놀랍게도 조공공이었고,

전신이 으깨져 피 칠갑을 하고서도 그윽한 눈길을 보내온다.

해원기가 고개를 숙여 예를 표하면서 무거운 목소리를 내었다.

“이러셔야만 했습니까?”

조공공의 피로 물든 입이 슬쩍 달싹이며,

“그러려니 해라. 너도 커가면서 네 사부를 닮는구나. 노부가 비록 이 자리에 있지는 않다만, 스승과 제자 둘에게 똑같은 꾸지람을 듣기는 싫다. 노부의 마지막 자존심, 아니, 마지막 비원(悲願) 정도는 들어줄 만하지 않으냐. 뭐, 내 바람과는 또 어그러졌어도.”

시체.

조공공에겐 이미 한 점의 생기도 남아 있지 않건만, 시체가 말을 하다니.

해원기가 고개를 숙인 채 반문했다.

“비원이요?”

“그래. 천하만민(天下萬民)은 어려워도 강호에서 내로라하는 작자들이 죄다 모여서 절세검왕의 위엄을 똑똑히 눈에 새겨두는 거 말이다. 그래야 자손만대에 걸쳐 다시는 까부는 놈들이 나타나지 않을 것을. 에잉, 쯧쯧.”

“태사야!”

해원기의 음성에 힘이 들어가고.

태사야라는 호칭에 혀를 차던 목소리가 조금 밝아진다.

“됐다, 됐어. 이 늙은이의 고집은 너도 잘 알고. 뭐, 사실은 명조운류가 순리로 돌아가면서 조금 차착(差錯)이 남더구나. 그게 영광종이니 지부니 하는 놈들에게 넘어갈 수도 있어서, 에, 노부가 시비 셋과 함께 싸안고 떠날 셈이었다. 그런데 이 못난 것들이…… 평온히 지낼 기회를 주었는데도 기어이 둔갑삼가의 원혼에 빠져들어, 쳇. 이것도 변명이지, 변명.”

고개를 들면서 똑바로 쳐다보는 해원기의 시선을 느꼈나.

말투가 바로 바뀌었다.

“노부에게 주어진 마지막 호기(好機)라고 생각했다. 천손의 무위(武威)를 제대로 드러낼. 그래도 어쭙잖은 것들이 예상외로 설치는 바람에. 노부가 이런 짓까지 하면서 끝까지 만일의 사태를 방비해야 했구나. 내 죄는 이미 만회할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으니 너도 아무 소리 말아라.”

스스로 잘못을 자인하며 해원기의 입을 막는 목소리.

태사야라 불리는 교도인, 천교진인이었다.

“그나저나 원기야, 너 삼가(三家)의 진체를 어떻게? 풍백, 우사, 운사의 가르침을 하나로 묶는 깨달음은 세상에서 사라졌거늘. 어디서 누굴 만난 게야?”

역시 자부선생.

화제를 바꾸어 해원기의 성취를 단박에 알아보는데.

해원기가 두 손을 포권으로 바꾸어 들어 올렸다.

“사람이 사람 아닌 것을 내칠 줄 알아야 하지만, 사람이 사람을 지키고 또 사람을 사랑해야 올바른 덕이랍니다. 이제 그만 물러가야 하니 다시는 뵙지 않았으면 합니다.”

“엉?”

교도인이 얼떨떨한 소리를 내지만,

해원기는 포권을 한 차례 흔들고는 그대로 몸을 돌렸다.

그 입가에 살짝 걸린 미소.

지나간 세월의 망령과 더 어울리고 싶지 않았다.

멀리서 빠르게 다가오는 기척 중에 하화의 향기가 담겨있어서.

그녀가 땀을 뻘뻘 흘리며 달려오는구나.

“야, 원기, 이놈아. 자세히 얘길 해줘야지. 그 무슨 뜬구름 잡는. 그리고 여기 동혈에 떨어진 백화란 년이 감로보병에 담은 육악지력의 정수를 서왕모의 불사약(不死藥)이라고 삼키는 바람에 앞으로 삼십 년은 노부가 직접 봉인해야 한단 말이다. 넌 그게 걱정도 되지 않느냐아아…….”

교도인이 떠드는 소리도 하찮은 칭얼거림으로 들리고,

해원기는 오직 한 사람의 이름만 되뇔 뿐이었다.

‘소민.’

번쩍.

해원기의 모습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全書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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