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8장 음식양쇠(陰蝕陽衰) (3)
‘역시 사황령이란 건가.’
지금까지 그 실체를 정확히 아는 이가 없을 만큼 괴이한 힘.
제탁지검이 풍뢰지력을 담고 천손검법으로 떨쳤는데도 아무 소득이 없었을뿐더러,
마치 헛손질이라도 한 것처럼 중심을 잃을 뻔했다.
분명히 음양유명독강을 격파했고, 오독존이 제탁지검의 힘을 알아보았으니 맞부딪친 것도 틀림없는데.
해원기가 검을 쥔 손목을 튕겼다.
위이잉.
고검이 머리 위로 떠오르며 찬란한 빛을 머금는다.
군림검으로 바꾸어 단숨에 결판을 낼 셈.
상식적으로 독의 극성은 불이다. 두 손이 빠르게 검결을 맺자 석실 안이 후끈한 열기로 채워졌고,
화아악.
오행어검 중의 폭령진화가 석벽을 향해 불기둥을 뿜었다.
향로에서 나온 몽롱한 연기든, 진흙처럼 달라붙는 끈적한 어둠이든 모조리 태워버릴 불의 검.
거미처럼 석벽을 거꾸로 타고 올라가던 오독존도 거칠게 어깨를 흔들었다.
키잉, 키이잉.
몸에 걸친 몇 겹의 짐승 가죽이 흔들리면서 새카만 광채가 몇 개나 튀어나왔다.
진짜 쟁반을 내던진 것처럼 날카롭게 회전하는 음양유명독강.
퍼퍼퍼퍽.
폭령진화의 장대한 불길을 잘라낼 듯이 날아들었지만, 크기나 위력은 마치 불꽃에 날아드는 하루살이 같달까.
그러나.
푸쉬시시시시.
폭령진화에 닿자마자 녹아내리면서 엄청난 연기를 내뿜고,
동시에 기이한 향기가 코끝을 스친다.
해원기가 순간적으로 어찔함을 느끼고선 얼른 손을 뒤집었다.
“으윽, 독연(毒煙)? 해 형!”
석실 밖의 정록이 놀라 외치는 소리.
어떻게든 상황을 파악하려고 석실 안을 살피다가 불시에 터지는 독연에 황망히 물러나는 기색이 뚜렷하고,
해원기가 검결을 즉각 대괴무극으로 바꾸었다.
우릉.
석실이 크게 울리면서 검풍이 회오리친다.
“불을 쓰면 더 좋지. 물을 뿌려도 고맙고. 크히히히, 이 좁아터진 곳에서 바람이 불어봤자 어차피 소천지(小天地)를 왕래하는 정도니까. 에, 유광명멸(幽光明滅)이…….”
독연을 휘감으려는 검풍도 아랑곳하지 않는 오독존.
어느새 석실 천장에 매달려서 해원기를 내려다보는데.
그러면서도 그 입은 쉬지 않고 떠들어댄다.
새 발톱처럼 변한 두 발은 반구형의 천장도 평지처럼 걷고, 전신에서 다시 어둠이 물결치며 퍼져나갔다.
폭령진화의 불도, 대괴무극을 머금은 바람도 그 산발한 머리카락 한 올 끊지 못하다니.
독종지인의 특이한 능력 때문인가.
고수는 이상함을 느끼면 자신을 지키며 관찰에 공을 들인다.
그러나 지금은 상대를 관찰할 여유가 없는 상황.
해원기가 고검을 쥐면서 왼손으로 검신을 주욱 훑었다.
어검대법이 별 효과를 보이지 못하는 이상 군림검을 고집할 이유가 없다.
폭령진화에 물을 뿌린 것처럼 연기가 치솟고, 그 독연은 백독불침에 가까운 해원기까지 어찔할 정도.
대괴무극으로 공간을 차단하고 검풍으로 휘감아도 오독존에게는 하등의 영향을 주지 못한다.
콱.
오른손이 고검을 거꾸로 지면에 꽂으면서 왼손이 힘차게 천장으로 뻗었다.
먹물이 번지듯 천장 전체를 어둠으로 물들이는 오독존을 향해,
검왕오형의 재단경위가 솟구쳤다.
파아아악.
거꾸로 쏟아지는 소나기. 석실을 가득 채운 검기가 불끈 일어서자 어둠 가운데가 기다렸다는 듯이 출렁인다.
오독존의 거창한 머리칼이 수초처럼 흐늘거리면서 그 속에서 새카만 원 하나가 급격히 확장되고,
달무리 같은 흐릿한 빛이 천장을 메워 검기의 소나기를 덮어씌웠다.
퍼엉!
“헤헹, 산정취탁은 기본 중의 기본. 아직도 모르겠느냐? 어검이든 검강이든 아무 소용없는데 기껏 검기로, 음?”
산정취탁은 실혼인들에게서 정기를 뽑아내는 데만 쓰이는 게 아닌 듯.
솟구치는 검기의 소나기가 맥없이 터져 떨어져 내리는데,
해원기가 뻗었던 왼손을 당기면서 지면에 꽂았던 검을 슬쩍 쳐든다.
지금까지와 다르게 은근하면서 미묘한 검세.
천장에 매달린 오독존이 얼핏 뻣뻣해지는 감각에 의문을 표하는 사이,
수주개와로 갇힌 공간 속으로 해원기의 검이 한 줄기 선향(禪香)을 풍겼다.
수미전단검법의 조사검결, 오조전법(五祖傳法).
적멸검이 어둠 가운데를 꿰뚫었다.
소천지라고 떠들었던가. 이 좁은 석실의 천장을 결계로 가둔 무량대적(無量大寂)의 일검이다.
군림검을 거두면서 다시 제탁지기를 운용했기에,
재단경위가 수주개와로 왕복한 석실 안의 독연이 말끔히 걷혀서,
천장을 올려다보는 해원기의 눈에 어둠이 불안한 전율을 거듭하며 가운데로 모여드는 모습이 똑똑히 보였다.
그리고,
“컥!”
오독존의 산발한 머리칼 속에서 고통스러운 신음이 터지더니 뚝 떨어지는 한 덩이 피.
푸쉬익.
지면이 연기를 내뿜으면서 구멍이 뻥 뚫리는 소리에 해원기의 미간이 깊이 파였다.
과연 독종지인. 그 피 한 덩이에도 바위를 녹일 독이 담겼다.
그러나 경계를 늦추지 않은 해원기의 시선은 잠시도 오독존을 놓칠 수가 없었다.
어둠이 모여 다시 형체를 드러낸 오독존. 여전히 거창한 머리칼로 얼굴을 다 가리고서, 전신을 부들부들 떨면서도 천장 가운데에 달라붙은 채.
적멸검에 의해 내상을 입었으면서도 가슴을 부여잡거나 입을 가리려는 본능적인 동작조차 하지 않다니.
‘양쪽 팔이 없다?’
비로소 오독존의 체형이 정상이 아니란 걸 깨달았다. 보통사람보다 짧은 상체, 가슴 아래에 배가 아니라 바로 다리가 달렸고, 그 다리가 엄청나게 긴 걸 몇 겹의 짐승 가죽으로 숨겼었다.
엄청나게 긴 다리와 비늘로 덮인 새 발톱 같은 발, 그리고 거창하게 산발한 머리칼이 손을 대신해 거미처럼 움직일 수 있게 했었다.
그럼 지금까지 음양유명독강을 무엇으로 내쳤단 말인가.
“제, 제길, 이건 빨아들일 수가 없는…… 으윽, 설사 황천유혼(黃泉幽魂)이나 고루혈광(骷髏血光)이라도. 오독진살(五毒眞煞)이 무너질 리 없, 크륵, 뭐, 어째서 내 팔이? 으으윽.”
모습을 훤히 드러냈으니 해원기의 다음 공격을 막던가 피하던가.
뭔가 준비를 해야 하건만.
웬일인지 입만 놀리는 오독존.
그런데 자기 팔이 없다는 걸 이제야 알았나. 말에 두서가 없고.
그 내용에 해원기 또한 선뜻 검이 나가지 않았다.
황천유혼, 고루혈광. 그리고 오독진살.
아까부터 오독존이 계속 떠들어대는 게 수상했다. 어쩐지 제정신이 아닌 듯하다.
이지를 상실해 미치광이가 된다는 독종지인이 말을 하는 것부터 이상하더니,
백여 년 전의 마공을 들먹이기까지.
지부가 창궐하면서 가장 먼저 강호를 도륙한 자들은 검을 썼었다.
오대마왕이 길러낸 가공할 검마들. 널리 알려진 것은 상대의 검기를 무력하게 만드는 황천유혼검력이고, 고루왕과 혈왕 밑에서 많이 배출되었다고.
기형의 몸을 지닌 오독존이 여기서 왜 아득한 과거의 일을 거론하는지.
더구나 오독진살이 그것을 이기기 위한 수단인 것처럼.
산발한 머리칼이 미친 듯이 춤추고, 고통스러운 신음이 거듭되면서 천장에 붙은 몸도 불안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금방이라도 뚝 떨어질 것처럼 위태로운 모습.
해원기가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라서 검을 겨눈 채 입을 열었다.
“정 형, 괜찮아?”
독연은 일단 정리한 셈이고,
들어온 문 반대쪽으로 또 하나의 문이 보이니 구영의 울이 있는 곳일 터.
자신이 오독존을 경계하면서 정록이 서둘러 하던 일을 마치게 해야 한다. 음양쌍반진도를 통째로 무너뜨릴 토목기관의 약점을 찾는 것.
삼음삼양이 아니라 구전화합술이라면 이 연독관이 중추일 가능성이 크고, 그걸 정록이 확인할 필요가 있다.
당장 정록의 대답이 가까워지는데,
“어, 나보다 해 형, 자네가…… 윽.”
삐익!
돌연히 고막을 후벼 파는 소리.
해원기가 움찔할 정도의 고음이 연독관과 통로를 뒤흔들었다.
“호, 호각(胡角)?”
석문 옆으로 오만상을 찡그린 정록의 얼굴이 나와 눈을 껌뻑인다. 북방 대초원에서 먼 곳에 신호를 보내거나 매를 부릴 때 쓰는 물건이 이런 소리를 낸다던데.
해원기의 신형이 번개같이 정록 곁으로 움직였다.
“끄륵.”
주시했던 오독존이 희한한 소리를 울리면서 머리를 확 젖히는 모습.
피부는 녹아버린 엿처럼 엉겨 붙었고, 코도 입술도 없이 뼈가 훤히 드러났으며, 동굴처럼 뚫린 눈구멍에 시퍼런 귀화가 둥둥 뜬 끔찍한 용모.
그러나 그것보다 뼈만 남은 입이 떡 벌어지면서,
“유명교계(幽明交界)!”
한 소리 고함과 함께 사지를 활짝 펼친다.
사지. 두 팔과 두 다리. 기다란 기형의 두 다리가 민망하게 벌어지는 것이야 그렇다 쳐도,
푸아아아악.
오독존의 양쪽 어깨로부터 시커먼 기운이 분수처럼 좌우로 뻗으니.
새카맣게 윤이 나면서 또 달무리처럼 흐릿하게 보이는 기운. 바로 음양유명독강이 거대한 기둥처럼 천장의 양쪽 끝까지 뻗는다. 기형의 두 다리를 잡아끌고서.
아무리 작은 석실이라도 반구형의 천장을 한 사람이 다 덮을 수는 없다.
찌지직.
오독존의 기다란 다리가 그대로 찢겨 음양유명독강에 삼켜지고,
핏물이 왈칵 쏟아지는데.
화르르르, 우르르르.
왼쪽에선 핏물이 불길을 이루어 천장을 가로지르고, 오른쪽의 핏물은 광풍에 흩날려 마구 뿌려지면서.
석실 전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쩌적.
더구나 구영의 울로 통하는 반대쪽 문에 뜬금없이 거미줄 같은 균열이 일어나자,
상상도 하지 못했던 참혹한 광경에 순간적으로 얼이 빠졌던,
해원기와 정록이 자신도 모르게 서로 마주 보았다.
책형(磔刑)이나 거열형(車裂刑)을 당하는 것 같은 오독존이 문제가 아니다.
“기관이 발동했네.”
“빠져나가야 해. 아직 기관진도에 들어가지 않은.”
빠르게 나누는 말도 이어지는 오독존의 고함에 묻힌다.
“우연무저(虞淵無底), 귀무귀허(歸無歸虛), 흡정수화(吸精收華), 내화내운(乃化乃運)…….”
와르릉, 콰쾅!
석벽이 울어대고 통로가 무너지고.
해원기와 정록이 황급히 석문을 박차고 몸을 날렸다.
더는 석실 천장의 참혹한 광경도, 반대쪽 석문이 가루가 되어 터지는 것도 살필 새가 없다.
육신지궁 전체가 꺼질 것처럼 흔들리고 있으니.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아직 구조의 약점을 다 찾지 못해서 아무것도 건드리지 않았건만.
귀청을 찌르는 호각 소리 한 번에 연독관의 노독물이 자결이라도 하는 것처럼 천장에서 피를 뿜자마자 일어난 변고.
정록이 정신없이 통로를 돌아 방향을 잡았다.
연독관 근처에 새로 생긴 땅굴. 자신이 수사를 내보내는 데 썼던 그 공간만이 기존의 토목기관에 연결되지 않았다.
삼음삼양의 음양쌍반진도든, 육양개태에 극음폐비를 가한 구전화합술이든.
이곳에 머물렀다간 꼼짝없이 휘말려 들어 어떻게 될지 예측도 할 수 없다.
파팟.
정록 위로 떨어지던 바위가 두부처럼 잘려 날아갔다.
바짝 뒤를 따르는 해원기의 전신에서 솟구친 검기가 마치 정록을 지키는 수호신이라도 된 듯.
그런 와중에도 해원기는 연독관에서 계속 울리는 오독존의 외침을 듣고 있었다.
스스로 찢어버린 두 다리에서 쏟아진 각기 다른 핏물,
그리고 의미를 쉬 알기 어려운 구결.
“양의포란(兩儀抱卵), 육분구성(六分九成), 독성탄재(毒聖嘆哉), 크하하…….”
쾅쾅.
통로가 박살이 나는데도 오독존의 목소리가 뚜렷하게 들리더니.
“와하하하하, 오독멸마(五毒滅魔)!”
광소와 고함이 끝나기 전에.
콰콰콰콰!
거대한 물살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