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왕춘추-309화 (309/410)

제78장 음식양쇠(陰蝕陽衰) (1)

아득한 남쪽, 옛 월(越) 땅의 깊은 밀림은 온갖 맹수와 독충의 보금자리.

그런 곳에서 사는 사람들도 포악하기 이를 데 없어서, 부족 간의 싸움이 그치지 않았단다.

서로 죽이고 빼앗고. 사내는 전사가 되어 싸움으로 날을 지새우고, 여자는 물건처럼 취급되어 짓밟히고 버려지고.

그 속에서 여자가 제대로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힘센 남자를 자기 곁에 두고 마음대로 다루는 것뿐.

강한 남자를 수중에 넣어 자식을 낳으면 더욱 안전해진다.

그렇게 주술과 독충에 해박한 이가 있어 한 가지 방법을 만들어냈다.

정성을 다해 손수 빚은 작은 단지에 갖가지 독충을 넣고 굶긴다. 아무 먹이도 주지 않고 그저 아침에 해 뜰 때 한 번, 저녁에 달이 들 때 한 번 단지의 뚜껑을 열어줄 뿐.

굶주림에 몰린 독충들은 서로 잡아먹기 시작하고,

마침내 단지에는 단 두 마리만 남게 된다. 하나는 햇빛에 사는 놈, 또 하나는 달빛에 사는 놈.

그렇게 두 마리만 남으면 그때부터는 맑은 물과 좋은 먹이를 주고,

사랑을 담아 아끼고 길러서.

마음에 둔 남자에게 달빛에 사는 놈을 먹이고, 자신은 햇빛에 사는 놈을 먹은 후.

만 하루가 지나기 전에 합방하면 두 마리 벌레가 각기 체내에 온전히 자리 잡게 되니.

일정월화(日精月華)가 음양교접(陰陽交接)하는 이치.

부부의 연이 생명과 이어져서 서로서로 떠날 수 없게 된다.

둘 중의 누구든지 다른 이성과 접하면 체내의 벌레가 그 즉시 발동하여 흡취한 모든 독을 일거에 배출하는데 누가 감히 딴마음을 품겠는가.

이걸 상사고(相思蠱)라 부르고,

천하 모든 고독(蠱毒)은 여기서 비롯되었다.

독술이나 의약에 문외한이라도 대부분 한 번쯤 들어본 이야기다.

전해지는 이야기의 실체야 어떻든, 고(蠱)라고 하는 것은 독을 다루는 이들조차 상당히 꺼리는 물건.

상당한 경지에 이른 독문(毒門)의 고수라도 방비하기 어렵고, 고에 당했는지 스스로 자각하지 못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며, 설사 깨달았다고 해도 이를 해독하기가 극히 어려우니.

절세의 무공을 지녔다고 마음을 놓을 수가 있을까.

그나마 이 고를 기르는 방법이 세상에는 거의 남지 않은 비전 중의 비전이요, 방법을 안다고 해서 누구나 행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하니.

당장 어떤 독충이 몇 가지 종류나 필요한지, 일정월화를 어떻게 배분해야 하는지, 사랑을 담아 아끼고 기른다는 게 무엇인지.

필요한 주술과 걸리는 시간을 아무도 알지 못한다.

기껏 상사고 하나 만드는데 억만금의 비용과 평생의 시간이 걸린다면 누가 손을 대겠는가.

그런 이유로 남송 말기에서 원대에 이르는 한때 꽤 강호에 이름을 알렸던 고술(蠱術)이란 것이 이제는 전해지는 이야기로만 남았고.

당세에 와서는 그저 남을 속이는 거짓 허풍에 불과하다고 여겨질 정도.

그러나,

이십여 년 전에 분명히 실재했다는 사실을,

해원기는 알고 있다.

‘절대심인고(絶對心印蠱).’

육체가 아니라 마음에 기생하는 고술. 사람의 심성을 뒤바꾸고, 심지어 육신을 빼앗아 똑같은 정신을 복제할 수도 있었다.

흔히 이가 썩어가면 벌레가 먹었다고 표현하듯이 이 절대심인고는 사람의 마음을 좀먹는 벌레랄까. 더구나 ‘절대’라는 이름처럼 세상에 드문 고수들조차 그 마수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사부에 의해 절대심인고의 근본이 되는 모충(母蟲)이 제거되었지만,

육신지궁에서 다시금 그 불길한 이름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엄청난 크기의 지하 공간. 신화에 나오는 육악을 인위적으로 기르는 장소.

이걸 구성한 특이한 형태의 진도를 처음에는 그저 내부의 육악을 가두기 위한 울타리라 여겼는데.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정록의 말을 들으면서 등골이 섬뜩해졌다.

이 광대한 지하가 실은 상사고를 기른 작은 단지일 줄이야.

“으, 교배라고, 순 헛소리라 여겼더니. 그래도 이게 말이 돼?”

통로로 접어들자마자 정록이 억눌린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기관 중추에 있으면서 음양쌍반진도를 대강 파악했기에 수사를 밖으로 내보낼 수 있었던 정록이다.

그래도 워낙 넓은 지역에 펼쳐진 진도, 직접 구조를 살펴 취약한 지점을 찾은 후에 한꺼번에 무너뜨릴 셈이었는데.

해원기가 위치를 세밀하게 따져 묻지 않았다면 허튼짓이 될 뻔했고,

알게 된 진상이 믿기지 않을 만큼 당혹해야 했다.

배워서 아는 것과 직접 사용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일.

삼음삼양의 음양쌍반진도가 아니라 육양개태에 극음폐비가 올라붙은 구전화합술인 걸 알아보긴 했으나.

이 흉측한 괴물들을 진짜 교배할 수 있단 말인가.

절대심인고를 떠올린 해원기도 바로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네. 정말로 구전화합술이 이렇게 쓰일 수 있는지조차. 그렇지만, 그 연독관이.”

“음, 저기서 왼쪽 통로로 가야 해.”

문제의 근원은 바로 연독관.

정록이 속도를 늦추지 않고 왼쪽을 가리켰다. 오른쪽의 커다란 구멍은 아마도 새로 뚫리면서 수사가 탈출했다는 곳일 터.

방향을 알자 해원기가 벼락같이 튀어나갔다.

연독관이 어떤 곳일지, 이름처럼 독기가 더 심할지 모르지만,

정록도 아직 보지 못했다고 했으니 자신이 먼저 나서는 게 낫다.

순간적으로 멀어지는 해원기의 등을 보며,

정록도 온 힘을 다해 뒤를 따랐다.

오소민이 살짝 머리를 들었다.

좌우도수가 스무 명, 후위창수가 스무 명. 미리 이런 사태를 준비했는지 여덟 명씩 조를 짜서 흩어진다.

해원기가 설명해준 바에 따르면 회랑은 삼각형 두 개를 겹친 모양, 꼭짓점이 되는 망루는 여섯 개니,

가마꾼 넷이 남은 이곳을 빼고 나머지 다섯 군데 망루로 향한 듯.

‘진법에 따른 구조라고 했으니까 망루만 지키면 충분하다는 건가?’

탁청대인을 맞는다고 환술이 해제되긴 했으나, 음양쌍반진도가 뭔지 전혀 알 수가 없다.

섣불리 건드렸다가 엉뚱한 결과가 나오면 곤란한 상황.

시선이 탁청대인이 들어간 망루로 향한다.

사인교를 내려놓고 망루 앞에 일렬로 늘어선 가마꾼 넷. 다른 망루의 절반인 인원으로 입구를 지키고 있으니 그냥 우락부락 힘만 센 자들은 아닐 터.

오소민이 잠시 생각을 굴렸다.

‘처음 왔을 때 저들도 위치를 찾지 못했었지. 정해진 장소에 다가가고 나서야 대롱 같은 게 나와서 신분을 확인했어. 그리고 지금 탁청대인이 들어간 후에도 환술이 복구되지 않았고.’

가마꾼뿐 아니라 좌우도수나 후위창수도 환술이 펼쳐진 상태에서는 어디에 망루가 있는지 모르는 모양.

엎드린 채로 품을 뒤지며 주위를 빠르게 살피는 인상이 신통치 않다.

차림새와 어울리지 않지만, 그녀는 개방의 순행장로.

평소에는 먹을 걸 챙기는 데 사용하지만, 그녀의 옷에는 숨겨진 주머니가 몇 개나 있고.

그 주머니 안에는 오소민 자신도 언제 집어넣었는지 잊은 잡동사니들이 굴러다닌다.

웅황탄 두 알은 자산에서 뱀 떼를 만났을 때 다 썼으니.

조그만 폭죽 하나를 겨우 찾은 오소민의 입맛이 쓸 수밖에.

‘이것보다 묘품적화지(妙品摘花指)를 쓰는 게…….’

별로 자신 없는 표정이다.

팔선이라 여덟이나 되는 사부를 모신 오소민이지만, 그렇다고 여덟 명의 절학을 전부 십분 능숙하게 익힌 건 아니어서.

특히 떡 벌어진 체격에 소녀처럼 꾸미고 온 얼굴에 허연 분칠을 잔뜩 올린 남채화(藍采和)가 여자보다 더한 교태를 부리며 가르쳤던 건 그야말로 고역 중의 고역.

남채화의 무공은 그 후로도 조금 멀리한 편이라 지금 묘품적화지가 적절히 시전될까 싶다.

그렇다고 몰래 연습할 처지도 아니고.

‘놀래주기만 하면 되니까.’

마음을 단단히 먹고 폭죽을 조심스레 튕겼다.

퍽.

지하에서 대롱이 나왔던 곳에 떨어진 폭죽이 터지는 순간에 맞추어,

오소민의 열 손가락이 춤추듯 좌우를 휩쓸었다.

부드러운 지풍이 흔적도 없이 지면을 타고 밀려 나간다.

오소민이 개인적인 이유로 멀리했지만,

팔선 개개인의 절학이 평범할 리 없다.

묘품적화지는 본래 원근요공(遠近搖控)을 자유로이 구사하는 신통한 지법. 먼 것을 가까이 당기고 가까운 것을 멀리 밀어낼 수 있다.

숙련되지 않았다고 해도 눈앞의 망루와 양쪽에 이어진 회랑, 그리고 그 안의 연못까지는 충분히 힘이 미친다.

건조한 가을이 끝나고 겨울에 접어들 때이니 연못의 물은 줄고 주위에 널린 풀밭도 바짝 마른 상태.

솨아아아아아.

폭죽이 터지자마자 망루 주위에 끊긴 풀잎이 미친 듯이 솟구쳐올랐다. 더구나 그 방향이 밖에서 안으로가 아니라 연못에서 회랑을 타고 망루 쪽.

늘어섰던 가마꾼 넷이 깜짝 놀란다.

바람 한 점 없었는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과연 평범한 자들이 아니어서 단번에 방위를 나누어 자세를 잡고, 네 명의 시선이 거의 동시에 폭죽이 터진 곳을 훑는다.

그러나 미친 듯이 솟구친 풀잎 때문에 순간 시야가 가려졌고,

그리 멀지 않은 땅바닥에 바짝 붙은 오소민이 양손으로 번갈아 바닥을 두드리는 걸 알아볼 수 없었다.

남채화의 묘품적화지를 뿌린 즉시 손 모양을 바꾼 오소민.

한 손은 한상자(韓湘子)의 철적오음(鐵笛五音)이니 소취천파(簫吹千波)요,

또 한 손은 조국구(曹國舅)의 옥판장(玉板掌)이니 화성만뢰(和聲萬籟)다.

천 개의 물결을 일으키는 피리 소리와 온갖 자연이 어울리는 음조. 묘품적화지를 따라 망루와 회랑을 거쳐 연못을 북 삼아 두드린다.

더더더더덩.

경각심을 높이던 가마꾼 넷이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고,

그중에 한 명이 급히 목소리를 높였다.

“둘째와 셋째는 도수와 창수 쪽으로! 막내는 나를 따라 대인을 찾는다.”

슬그머니 머리를 쳐든 오소민의 눈에 우두머리인 듯한 가마꾼이 황급히 지하로 통하는 입구를 열어젖히는 광경이 들어왔다.

예상한 대로.

지하와 대화하는 대롱이 있던 곳에서 뭔가 터지는 소리가 나더니 풀잎이 마구 치솟고,

회랑과 회랑 안쪽의 연못이 요란하게 울어댔으니.

환술이 걷힌 지하에서 변고가 생겼다고 여길 수밖에 없다.

그러지 않아도 대인께서 육신지궁의 상황이 불안하다고 급히 들어가시지 않았나.

필경 이자들은 예전부터 육신지궁을 지키던 자들이 아니라서 정확히 상황을 판단할 근거가 없었다.

가마꾼 넷이 졸지에 선불 맞은 멧돼지처럼 흩어지는 꼴을 확인하고서,

오소민이 몸을 일으켰다.

‘확실히 사부들의 무학은 선도(仙道)의 묘용이 뛰어나구나. 그런데…….’

팔선이란 이름이 괜히 붙은 게 아니다. 적과 맞붙어 싸우는 것만이 아니라 이렇게 다양하게 응용할 수 있다는 걸 새삼 깨달았고.

아울러 기대하지 않았던 소득에 오소민이 주위를 경계하며 오른쪽으로 미끄러져 나갔다.

원근요공의 묘품적화지, 소취천파와 화성만뢰의 철적오음과 옥판장.

연달아 사용한 세 사부의 절학은 마침 전부 공간을 격하고 힘을 전하는 기예라서 펼치고 거두는 사이에 지면 아래의 형태를 저절로 느끼게 되었기에,

망루에서 오른쪽으로 회랑을 따라 십여 장 되는 지하에 커다란 공동(空洞)이 있다는 걸 발견했다.

영민한 오소민은 직감적으로 수사를 떠올렸고, 여차하면 해원기에게 도주할 공간이 되리라고 여겼다.

지하에 들어와서 가장 향연이 짙은 곳.

통로의 끝에 반쯤 열린 석실 문 안에 뭉클거리는 연기를 토하는 커다란 향로가 보이자,

한발 늦게 도착한 정록이 소매로 얼굴 아래를 가렸다.

“여기가 연독관이야. 나도 여기까지만 와봤고. 이상해, 이 위로 환기와 수로의 구조가 함께 지나가네.”

기관 중추에 처박혀있었던 덕에 실제로 볼 때는 구조를 더 확실히 파악할 수 있었을 터.

서둘러 해원기를 따르면서도 통로를 유심히 살폈던 모양이다.

지하건축은 흔히 지주(支柱)를 세우는 것만 생각하지만, 실상 가장 중요한 것은 환기와 물이다.

사람이 살려면 공기가 통해야 하고 마실 물이 있어야만 한다. 이전에 고력사의 지하 무덤에서 해원기가 빠져나왔던 곳이 그런 역할을 하던 구조였듯이.

그러나 여기는 습지가 많아 계택이라는 지명을 지닌 지역이요, 또한 큰 연못의 바로 아래. 환기와 수로의 구조를 한데 모으는 건 올바른 구조가 아니다. 자칫하면 수몰이 될 것이니.

해원기가 동감을 표하려다가 급히 정록 앞으로 팔을 뻗었다.

석실 문 안에서 대답처럼 흘러나오는 목소리.

“흐으, 그래야 삼음(三陰)을 도울 양수(羊水)가 될 것 아니냐? 쇄(曬)가 쇄(灑)여야 식(息)이 식(蝕)으로, 성(成)이 쇠(衰)로 간다고. 흡수화운(吸收化運)의 비결을 대체 몇 번이나 일러주어야 하나. 무식한 것들 같으니라고. 그래, 수사는 어찌 되었는고?”

뭐라고 형언할 수 없이 거북한 음성이고, 말이 흘러나오자 제탁지검이 저절로 일어서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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