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3장 사부대중(四部大衆) (1)
장안에서 처음 현신장과 맞부딪쳤을 때는 상대하기 쉽지 않았다. 중독된 오소민을 살피는 게 우선이었기도 했으나.
신화에 단편적으로만 언급된 육악지력의 실체를 짐작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약수지괴인 알유는 요술사의 낙혼금종에서, 바람과 독의 괴물인 대풍은 오온존자의 독강에서, 수화지괴인 구영은 진여신승의 음양장에서 그 힘의 일단을 드러냈지만.
공동파와 아미파의 비결에 바탕을 둔 것도 방비를 어렵게 했었다.
그런 경험 덕분인지.
경옥신공을 뿌리로 조양선사가 대라금선장과 현은수를 엮어 구현한 착치의 힘, 영사태화를 극대화하려고 암혼번으로 전신을 뒤덮은 암야무명이 구현한 수사의 힘.
신령검역 안에서 능히 뒤집어 서로를 치게 만들 수 있었다.
물론 삼전태의 깨달음이 마침내 자재검도를 끌어낸 결과긴 해도.
‘호치낭아나 암혼사동의 현현은 지나치게 갖다 붙인 듯하다.’
전에 겪었던 요술사 등보다 조양선사와 암야무명의 근기(根基)가 부족한 느낌.
근기가 약해서야 아무리 응강성상의 경지라도 구현한 공체(功體)의 힘이 달릴 수밖에 없다.
이치.
무도의 경지란 본디 이치.
해원기가 출도한 이래, 고검을 등에 멘 후에도 함부로 천손검법을 펼치지 않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백 년, 이백 년의 공력을 몸에 쌓아둔다고 무한한 위력을 발하는 게 아니다. 어차피 사람이란 기껏 삼갑자(三甲子) 정도의 내공밖에는 담아둘 수 없으니. 그냥 삼갑자의 수명도 극히 어려운 일 아닌가.
부단히 닦고 끝없이 익혀서 이룬 순정한 바탕에 깊은 이해와 감동의 깨달음이 더해졌을 때만, 천지자연의 무한한 힘을 쓸 수 있는 법이다.
의도와 다르게 휘둘려진다면 육악지력의 응강성상이 무슨 소용인가.
제대로 격돌하면서 조양선사와 암야무명의 무공에 있던 허망한 결점이 드러난 셈.
이 기세를 몰아 백 명의 전의를 꺾어버릴 참이었다.
이들 중에 조양선사와 암야무명보다 더 강한 자가 없었으니까.
그런데.
밀각의 대부가 절반, 연갑의 무장이 절반. 한 걸음 앞서거니 뒤서거니 들쭉날쭉해 보여도 골고루 뒤섞여 이룬 반원이고.
그 반원 뒤를 주 학사, 남 학사, 현 학사, 상선태군, 직전고사가 일정한 거리를 두고 늘어섰다.
그런 진형을 감독하듯 왼편 멀찍이 자리를 잡은 수보의 곁에는 호장 둘을 내보낸 첨유진과 한쪽 팔로 오절신도를 내던진 팽조린의 굳은 얼굴이 보이고,
오른편에서 진도금환이라는 호화로운 팔찌를 쳐든 사마대가 주위에는 붕대를 칭칭 감은 침공, 사원, 병장의 국감 셋과 제독사대수비라고 했던 흑벽, 홍장, 백보의 셋.
미리 연습이라도 했던 것처럼 능숙하게 위치를 차지한 광경이니.
의심할 여지없이 진세를 구성한 것일 터.
휘이이이.
골짜기 안에 바람 한 줄기가 뜬금없이 지면을 훑는다.
해원기의 미간이 슬쩍 꿈틀거렸다.
시선이 미치는 곳, 의지가 정하는 목표라면 신령검역에서 벗어나지 못할 텐데.
이 진세의 영향인 듯 강한 저항이 느껴진다.
상당한 경지에 이르지 않고서는 신령검역의 영향으로 그 동작이 굼떠지기 마련. 백 명 중에 그런 경지에 다다른 자는 소수일 뿐이다.
조양선사와 암야무명을 상대하는 동안, 눈치 채지 못하게 이런 진세를 구성했다는 것도 평범치 않은 일.
어떤 진세인지 모르겠다.
오절신도를 막아낸 고검을 두 손으로 받친 채 입을 열었다.
“번갈아 차륜전(車輪戰)을 할 건가, 아니면 한꺼번에 덤벼들 건가?”
그다지 궁금하지 않은 질문을 툭 던져보지만,
딱히 시선을 보내는 곳도 없으니 누구에게 묻는지.
가늘게 뜬 눈은 슬금슬금 자세를 갖추는 조양선사와 암야무명조차 보지 않는다.
조양선사의 좌우에는 첨유진을 지키던 호장 둘이, 암야무명에게는 오구지신이라고 새 탈을 뒤집어썼던 금궁오괴가 모여드는데.
어쩐지 호장 둘은 금궁오괴와 비슷한 분위기인 듯. 함께 섞어놓아도 얼핏 구분되지 않을 만큼 똑같은 기운을 풍긴다.
해원기는 이미 그 기운이 무엇인지 짐작하기에 이 진세가 더욱 의심스러웠다.
장안에서 먼저 나타났던 첨유진은 체신. 오련칠혼의 사법을 거친 활시인이었다.
땅바닥을 나뒹굴어도 짧은 신음 한 번 내지 않는 금궁오괴와 호장 둘. 역시 오련칠혼으로 연제된 희한한 물건이겠지만.
물만두 빚듯이 마구 만들어낼 수 있는 게 아니다.
게다가 이런 활시인 따위로 구성하는 진법은 더욱 괴이한 사도대법(邪道大法)에 연결되기에 절정의 고수라도 애를 먹는다.
해원기의 혼잣말 같은 질문에 사마대가가 코웃음을 쳤다.
“흥, 그따위 헛소리는 현신장과 호궁역사(護宮力士)들을 상대한 다음에 해라.”
그러면서 진도금환을 더듬는 손길.
스스스스.
골짜기 전체에 개미 떼가 몰려드는 듯한 소음이 일며,
조양선사의 쌍장과 암야무명의 검은 천이 불쑥 날아들었다.
신음과 피를 토하며 무너졌던 둘이.
고심한 무공은 내력뿐 아니라 심상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장력이 깨지면 근골이 상하고, 검기가 파괴되면 경맥이 흔들리며,
강기류의 신공이 무너지면 내부가 심한 충격을 받는 걸 넘어 심신이 황폐해진다.
응강성상으로 구현한 호치낭아와 암혼사동이 양의상전에 휘둘려 내상을 입은 둘이었거늘,
이렇게 빨리 회복하다니.
게다가 호치낭아의 흉측한 이빨은 아까보다 더욱 진한 광채를 머금었고, 암혼사동은 선명한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배나 빠른 속도로 덮쳐든다.
어떻게 된 노릇인지 착치와 수사의 힘이 세졌다.
금궁오괴와 호장 둘은 본래 같은 대열에 속했나. 일곱을 통틀어 호궁역사라 부른 사마대가의 말에 유의하던 해원기가,
왼손으로 원을 그리며 오른손을 급히 뒤로 뺐다.
두 손 위에 횡으로 누웠던 고검이 순간적으로 사라지면서,
홍몽무변의 흐름이 서슴없이 호치낭아와 암혼사동을 휘감아간다.
예상했던가.
조양선사가 땅을 박차고 공중으로 뛰어오르고, 암야무명의 신형이 물을 쏟은 것처럼 그 자리에서 가라앉았다.
그와 동시에 해원기의 정면으로 몸을 날리는 일곱. 호궁역사라는 해괴한 자들은 호치낭아나 암혼사동을 뒤집어쓰는 것도 돌보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호치낭아와 암혼사동을 뒤집어쓰려고 서두르는 듯.
뭔가 야료를 부리려 한다는 걸 예감했으나,
해원기는 그대로 뒤로 뺐던 오른손을 힘차게 내질렀다.
홍몽무변이 그린 원의 중심을 꿰뚫은 일격.
천손검법 제오초 인점기중(人占其中)이었고, 해원기는 의식하지 못했지만, 그 형태는 놀랍게도 사부가 창안한 신왕검형을 닮았다.
더구나.
꽈릉!
축적된 뇌정이 일시에 터지니.
정면으로 달려들던 호궁역사 일곱이 가랑잎처럼 날아가 버렸다.
그러나 이 짧은 순간,
“타앗!”
조양선사가 미친 듯이 두 손을 떨치자 공간을 격하고 무수한 경기가 송곳처럼 파고든다.
대라금선장과 은현수는 본래 격공무형(隔空無形)의 신공. 홍몽무변에 휘감겼어야 할 호치낭아의 흉측한 이빨들이 전부 송곳으로 화해 해원기의 머리 위에 이르렀다.
암야무명도 이 기회를 놓칠 리 없다. 물고기가 솟구쳐 오르는 것처럼 해원기 바로 뒤에서 몸을 일으켜 꿈틀거리는 두 팔로 직접 다리를 감아버린다. 먹이를 졸라 죽이는 구렁이처럼.
하나는 거리를 두고 공중에 떠서 격공무형의 송곳을 상체에 다발로 꽂아 넣고,
또 하나는 하체를 직접 껴안아 조르면서 기어오르니.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하지만, 조양선사나 암야무명 모두 호궁역사 일곱을 날려 보낸 뇌정만 보았을 뿐.
검을 확인하지 못했다.
인점기중에는 발검제형이 담겼다.
발검제형의 오의는 수발여의. 뽑힌 검은 당연히 거두게 된다. 하물며 자재검도까지 깨우쳤음에야.
뇌정으로 무찌른 신왕검을 다시 쥐었을 때는 이미 두 자루.
순백으로 빛나던 신왕검이 투명한 유리검으로 바뀌어 치솟고, 또 서슬 퍼런 추상검으로 변해 내리꽂힌다.
키이이이잉.
돌풍이 비명을 지르면서 해원기의 전신이 팽이처럼 돌았다.
이 맹렬한 회전으로 두 자루 검상을 단숨에 하나로 이어 상하를 가르는 형태.
머리와 어깨에 구멍을 내려던 흉측한 이빨들이 돌풍에 휘말리고, 하체를 감아 조르던 두 마리 구렁이가 거꾸로 뒤틀리면서.
천손검법 제삼초 판분천지(判分天地)에 쪼개진다.
펑! 펑!
“컥.”
암혼번의 검은 천이 갈기갈기 찢겨나간 암야무명이 기겁해서 땅바닥을 굴렀다.
그나마 거리를 두었던 조양선사야 피할 틈이라도 찾겠지만, 워낙 근접했던 암야무명은 그야말로 목이 달아날 위기.
그런데.
해원기는 어쩐 일인지 암야무명에겐 눈길도 돌리지 않고 회전하던 신형 그대로 정면으로 미끄러졌다.
상하로 세워졌던 검이 좌우로 눕는다.
판분천지에 담긴 재단경위. 오의는 저사직금이니 돌풍이 장막으로 활짝 펼쳐지고,
수백 개의 뾰족한 검극이 화살처럼 튀어나왔다.
인점기중을 수백 번이나 내지른 것처럼.
조양선사가 격공무형으로 쳐냈던 무수한 송곳은 비할 수도 없이 예리한 검극.
그건 해원기가 전신으로 구사한 나사관천에, 저사직금을 더욱 치밀하게 엮은 다비농창을 곁들여 이룬 탄환관천이었다.
이른바 신창삼절예(神槍三絶藝).
하나만 성취해도 창법의 고수로 인정받는다는 희귀한 세 가지 절예를 아무렇지도 않게 검에 원용하는 건 참으로 대단한 일이지만.
어째서 아무것도 없는 빈 공간을 공격하는가.
경공으로 멀찍이 피한 조양선사, 땅을 구르며 살길을 찾는 암야무명, 일곱의 호궁역사. 다 뿔뿔이 흩어졌거늘.
한데.
따다다다다당.
멀쩡한 공간에서 귀를 찌르는 쇳소리가 연달아 터지더니.
반원을 이룬 백 명 중의 절반 가까이가 허물어지듯 제자리에 주저앉고, 남 학사와 상선태군이 술 취한 것처럼 비틀거린다.
주 학사, 현 학사, 직전고사도 허옇게 질려 땀이라도 흐를 듯한 얼굴.
누구보다 가장 놀란 이는 사마대가와 수보였다.
“저놈이 어떻게 애애반환진(藹藹盤桓陣)을…….”
“뭣들 하느냐? 일제히 쳐랏!”
입을 딱 벌리고 진도금환을 보는 사마대가보다 수보의 반응이 빠르다. 급히 좌우를 둘러보며 외치는 고함에 팽조린이나 국감들 같이 다친 자들뿐 아니라 제독시위 셋도, 학사와 태감들도 머뭇거릴 새가 없었다.
공들여 구축한 진세가 벌써 절반이나 무너졌기에.
와아!
반원을 이루었던 대부와 무장들이 황망히 지르는 기합은 어쩐지 비명처럼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