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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왕춘추-227화 (227/410)

제57장 어약용문(魚躍龍門) (3)

싸움이 시작되면 풍진삼우가 가만히 있을 리 없다.

남북으로 나뉘어 상대하려던 일곱이 이미 황 학사에게 모여들었으니, 어떻게든 해원기에게 도움이 되려고 바로 전권으로 뛰어들려고 하겠지.

기행(奇行)으로 알려진 풍진삼우지만, 그 우스꽝스러운 모습은 그저 세상을 희롱하는 기질일 뿐.

세 사람 모두 과거의 난세를 버티고 살아남은, 더구나 구주정문에서 손꼽힐 만한 능력을 지닌 이들이니 천군만마를 얻은 것과 뭐가 다르리.

그러나.

해원기에게는 어린 시절의 인연. 세 사람이 해원기를 걱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해원기 역시 세 사람을 염려했기에.

시작하자마자 천손검법으로 현신장을 옭아매었다.

요술사의 낙혼금종은 듣는 상대의 능력을 깎아버린다. 해원기도 이전에 자신의 검기핍인을 깨닫지 못했다면 이유도 모르고서 허망하게 당했을 터.

제라섭풍에 양의상전을 덧붙여 맨 먼저 요술사를 쳐내고,

검을 쥔 손목을 바로 당겼다.

위이이잉.

거꾸로 돌던 공간이 반대 방향으로 급격하게 바뀌었다. 아니, 밀어내던 척력이 끌어당기는 인력으로 바뀐 걸까.

막 단주를 흔들려던 오온존자, 화염을 일으키던 진여신승이 덜컥 흔들리는 중심에 깜짝 놀랐다.

오른쪽 공중에 있던 오온존자의 몸이 왼쪽 바닥으로, 왼쪽 바닥을 달리던 진여신승은 오른쪽으로 쏠려 해원기의 정면으로 모여든다.

오온존자가 급하게 왼손으로 자신의 오른쪽 팔뚝을 훑으며 몸을 흔들고,

“차앗!”

기합 일성에 새까맣게 물드는 단주. 그 기합에 정신을 차렸는지 진여신승 역시 두 발을 엇갈리며 화염을 하나로 뭉쳐 움켜쥐었다.

요술사를 쳐낸 척력이 어째서 둘에겐 인력으로 작용하는지 따지기 전에,

마치 몽둥이처럼 둘을 후려치는 연검대초.

새까만 단주와 공처럼 뭉친 화염이 동시에 뻗는다.

퍼펑!

“으음.”

묵직한 신음과 함께 동시에 주르르 밀려나는 오온존자와 진여신승.

단주의 검은색도 공처럼 뭉쳤던 화염도 전부 어디로 갔는지.

그래도 요술사의 앞까지 물러나서 다시 자세를 잡는 게 어떻게든 버텨낸 듯. 검집을 서서히 내려 바닥을 가리킨 채 눈을 빛내는 해원기를 똑바로 노려보는데.

짝짝짝.

그 뒤에서 박수 소리가 불쑥 터지자,

승려랍시고 오온존자와 진여신승이 합장하며 눈길을 내리고,

나가떨어졌던 요술사가 잠에서 깬 것처럼 부스스 일어난다.

“좋군, 좋아. 아주 좋아! 현신장 셋을 이렇게 격퇴하는 실력이라, 그야말로 검왕이라는 이름에 어울리지 않는가!”

손뼉을 치며 감탄의 목소리를 높이는 황 학사.

바라보는 눈빛이 기괴하게 번뜩이지만.

해원기는 현신장에게 시선을 떼지 않으면서 미간을 좁혔다.

오온존자의 단주를 물들였던 검은색과 진여신승이 공처럼 뭉친 화염. 둘 다 강기를 더욱 다듬은 형태다. 거의 연강성상(練罡成像)에 이른 경지요, 그만큼 강대한 위력을 지녔을 텐데.

둘 다 오로지 방어에 치중했다.

양의상전을 버티려고.

처음 요술사를 날려버린 직후에 검을 당긴 건 수발여의의 응용.

검왕오형에서 깨달은 오의는 어떤 검법에도 통하는 이치였고, 발검제형의 오의인 수발여의는 거듭될수록 위력이 배가한다.

요술사를 날려버린 척력 다음의 인력. 양의상전을 도로 홍몽무변으로 되돌리는 변화까지 담겼거늘.

마치 거북이가 등껍질에 들어가듯 독특한 강기로 버티며 어떻게든 검역을 벗어났다.

그리고,

비명을 지르며 나가떨어졌던 요술사.

분명히 상당한 충격을 받았을 그가 어떻게 이 짧은 시간에 멀쩡하게 일어날 수 있는지.

더구나 오온존자의 장기라고 여겼던 독기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해원기조차 감지하기 어려웠던 잔재를 남겼던 그 독기가.

‘무슨 속셈인가.’

해원기의 시선이 천천히 황 학사에게 돌아갔다.

그새 기괴하게 번뜩이던 눈빛을 거둔 황 학사가 손을 가볍게 마주 잡았다.

“공동파와 아미파를 관장하는 세 분을 혼자서 상대하는 대단한 무위일세. 역시 강호는 넓고 기인이사는 많다는 말 그대로야. 자, 이 이상의 소란은 쓸데없는 짓이요, 괜스레 유구한 역사를 지닌 유적을 손상할 마음도 없으니. 흐음, 무림의 법도대로 다음을 기대하며 이만 물러나기로 할까?”

손을 마주 잡은 건 예를 취하기 위함.

황 학사의 뜻밖의 말에 해원기가 눈썹을 찡그렸다.

이제 막 싸움을 시작한 셈. 그런데 여기서 패배를 자인하고 물러난다고?

싸움을 조속히 매듭지을 생각으로 도발을 거듭하고 처음부터 전력을 기울이긴 했으나.

황 학사의 대응은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다.

무슨 의도로 이러는가.

타탁.

해원기의 바로 앞에 내려서는 세 사람. 취개 단삼육이 껄껄 웃으며 얼굴을 내밀었다.

“으헤헤헤, 학사라더니 역시 배운 양반은 다르구먼. 그렇지, 뭐든지 배워야, 에, 아랫사람에게 묻는 걸 부끄러워하지 말라는. 뭐, 그런 말도 있으니까. 그러면 괜히 고생만 하는 관병 나리들도 죄 돌아가시려나?”

손가락으로 어지럽게 남북을 가리키자, 부덕도인이 벌컥 화를 내고.

“아랫사람? 누가 아랫사람이냐? 술귀신, 네 눈엔 저것들이 윗사람으로 보이나? 그래서 우리를 봐준다고?”

가운데 선 무공화상이 얼른 고개를 흔든다.

“아니. 술귀신은 거지니까 웬만하면 다 윗사람 취급이 몸에 밴 거라고. 그래야 구걸이 되잖나. 하여간 여길 다 풀어주고 물러가 준다는 게 그저 고마울 따름. 아미타부르.”

예의 희한한 불호를 외우며 웃는 표정이 울상 위에 겹쳐서 더 이상하다.

취개는 정신이 없고, 노도는 바로 화를 내며, 치승은 혼자서만 의젓한 척.

과연 풍진삼우답달까.

그래도 해원기가 긴장이 풀리는 걸 느꼈다.

엉뚱한 언행 속에 황 학사 무리가 물러나는 걸 기정사실로 만들고, 동시에 주위에 은근히 단단한 기운이 장벽처럼 일어서기 때문.

무공화상의 반야선공(般若禪功)은 끈질기고, 부덕도인의 삼청현공(三淸玄功)은 오묘하며, 단삼육의 탁청취옥공(濯淸翠玉功)은 기발하다.

그 세 가지 기공이 또 이렇게 한 줄기로 이어지는 게 신기하다.

“그거야, 낙양의 지부 대인이 처리할 일이지만. 자, 그럼.”

황 학사의 눈은 여전히 해원기를 향한 채.

가볍게 모았던 두 손을 풀더니 바로 몸을 돌리고,

그 뒤를 따르는 나머지 열 명도 그저 인상을 굳혔을 뿐.

더는 입을 여는 자가 없었다.

몸을 날리지 않고 걸으면서. 그렇게 등을 보이며 물러가는 무리를 보며, 풍진삼우 역시 말을 더하지 않았다.

우스꽝스럽던 얼굴이 다 심각하게 바뀌었다.

용문산에서 북쪽으로 조금 떨어진 작은 촌락.

조그만 동산 어귀에 퇴락한 사당 한 채가 산그늘에 누운 듯 숨어있고,

그 사당 뒤뜰에 굴러다니는 돌덩이를 의자 삼아 앉은 단삼육이 비로소 허리춤의 호리병을 끌렀다.

“후, 숨이 다 차네. 일단 목을 좀 축이고…….”

“어따, 겨우 일 각 남짓 달렸다고 숨이 차냐?”

툴툴대는 부덕도인이 옆에 해원기의 자리를 마련해주고,

마주 보는 자리에 앉는 무공화상이 머리를 저었다.

“자, 고만 떠들고. 이쯤이면 마음 놓고 쉴 만하니까. 보아하니 해 소협도 대단히 지친 듯.”

단삼육이 호리병을 바로 해원기에게 내밀며 히죽 웃는다.

“장안에서부터 날아온 셈이니까. 자, 한 모금.”

장난스러워도 다 사정을 짐작하고 하는 행동이다.

해원기가 사양하지 않고 호리병을 받았다.

그러지 않아도 목이 마르다 못해 갈라질 지경. 한 모금이 아니라 꿀꺽꿀꺽 목젖을 적시지 않을 수가 없었고.

안타깝게 쳐다보던 단삼육이 입맛을 다시며 고개를 돌렸다.

“그나저나 두 사람은 어찌 알고 나타난 거야? 우린 총단이 기습을 당했, 아니지, 얼뜨기들한테 기습은 과한 표현이지만.”

부덕도인 역시 언제 성질을 냈냐는 듯 수염을 쓰다듬는다.

“그렇군. 과연 용문세가의 지낭이라는 말대로. 여기 멍청이는 원래 낙양에 있었고, 나는 막 올라오던 중이었지. 그러다가 급한 전갈을 받았다. 용문세가로부터.”

용문세가의 지낭이라.

누군지 뻔히 아는 단삼육이 이어지는 말에 귀를 기울이자 무공화상이 바로 뒤를 받았다.

“숭산과 무당산에 금의위로 보이는 무리가 몰려들었다는 소식이었네.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질까 봐 심술쟁이와 내가 즉각 돌아가려 했는데. 오 소저가 말리더구먼. 어쩐지 계략의 냄새가 난다면서. 그러지 않아도 며칠 전에 회남(淮南) 쪽 전장(錢莊)에 일이 생겨 용문세가에서도 정예들이 빠져나갔다나. 그리곤 재빠르게 낙양 내부의 변화를 확인하더니.”

“새벽부터 관병 수백이 이동하는데 모를 수가 없지. 그런데 용문세가조차 이게 어찌 된 일인지 내막을 쉬 알 수 없더란 말이야. 딱 감이 오는 상황이라.”

늘어지는 무공화상의 말을 자르며 부덕도인이 간단히 정리하자,

단삼육이 혀를 가볍게 찼다.

“쯧. 그렇구먼. 용문세가의 정예는 빼돌리고, 소림과 무당은 본산에 신경을 쓰도록. 흠, 둘이 돌아가 봤자 맥이 빠졌을 거야. 우리 총단을 기습한 것들은 금의위 중에서도 말단이었을걸? 죄다 하찮은 것들이 용케 총단 위치를 알고선. 그래도 기습은 기습, 일단 일이 벌어졌으니 방주가 총단을 가벼이 떠날 수가 없게 되었지. 그래서 용문석굴로 나 혼자 달려온 건데.”

물론 약속도 없이 빈양동 앞에서 만났으니 경과가 서로 궁금했지만,

이런 대화는 다 해원기에게 들려주려는 마음.

상황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해원기가 호로병을 단삼육에게 돌려주면서 고마움을 표했다.

“고맙습니다. 동창이 이번에도 미리 수작을 부렸던 거로군요. 그걸 용문의 오 소저가 잘 간파한 모양이고.”

단삼육이 호로병을 받아 아쉬운 듯 흔들었다.

“에. 그런데 해 소협은 어떻게 이리 일찍 도착했소?”

풍진삼우의 대화로 낙양의 상황은 대강 들은 셈.

해원기가 겨우 축인 목을 가다듬었다.

간단히 설명하기 어려운 장안의 일을 얘기하려고.

꽤 긴 이야기가 얼추 끝나가자.

무공화산이 목에 건 염주를 돌리던 손을 멈추었다.

“역시 그 둘이 아미산을 점거한 가짜 중이었구려. 아미타불, 아미타불.”

언제나 장난스럽던 불호를 똑똑히 외우고,

부덕도인의 이마에도 깊은 주름이 몇 개나 새겨졌다.

“종을 울리던 녀석이 공동의 요술사. 인광과 수진을 무당산에 맡긴 게 얼마 전이거늘. 흐음, 양도양경을 비롯한 고성(古城)에서 회합했다는 건 전혀 몰랐던 얘기외다.”

소림과 무당이 번갈아 인광과 수진을 맡고 있기에 아무래도 무공화상과 부덕도인은 현신장 셋에 더 관심이 가는 듯.

단삼육이 가벼워진 호로병을 아껴 마시며 끼어들었다.

“대강의 얘기는 우리 막내에게 들었지요. 장풍보를 끌어들여 화산을 바쁘게 만든 것이 바로 이번 같은 경우겠고. 그래도 다행히 종남의 노진인께서 나오셔서. 이런, 나중에 뵈면 한소리 듣겠는걸. 쩝.”

장풍보의 화산 침략. 지나간 후에 돌이켜보면 그 이유가 자연히 밝혀진다.

밀각과 현신장이 화청궁에서 회합하고, 고력사의 무덤을 발굴하며, 장안성 안에서 괴상한 짓거리를 벌이려고 미리 손을 쓴 것이다.

이번 용문석굴도 마찬가지일 터. 숭산과 무당산, 그리고 개방의 총단에 인마를 보내 다른 데 눈길을 돌리지 못하도록 하려는 게 목적.

당장 용문세가는 정예가 외부에 있고, 개방의 방주도 총단에 좌진(坐鎭)한 채이잖나.

사람은 자신의 발등에 떨어진 불을 처리하고 나서야 옆집에 붙은 불을 끄기 마련. 단순하지만 정확히 사람의 본성을 꿰뚫어 본 계략이었다.

종남산에서 직접 은한삼자를 거느리고 장안으로 나온 영락검선이야말로 그런 상례를 벗어난 경우이니.

더욱이 풍진삼우를 죄다 야단칠 만한 어르신이잖나.

무공화상과 부덕도인도 씁쓸하게 고소를 머금었으나.

바로 표정을 고쳤다.

아직 얘기할 게 남았고, 그 부분은 상당히 심각하고 민감한 내용이기에.

“흠, 지부의 오대마도가. 허.”

“흠, 벽세의 삿된 술법이. 쯧.”

거의 동시에 말을 꺼낸 무공화상과 부덕도인이 어처구니가 없어 혀를 차고, 그런 둘을 보며 단삼육이 킬킬거렸다.

그러느라 풍진삼우는 해원기가 몰래 한숨을 내쉬는 걸 눈치 채지 못했다.

아까부터 단삼육에게 묻고 싶은 걸 참는 중. 오소민은 총단에 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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