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6장 폐침망식(廢寢忘食) (4)
솨아아아.
오늘따라 거친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흐르는 이수(伊水). 낙양의 남쪽 교외에 이 이수를 끼고 동서 양쪽으로 길게 늘어선 두 개의 산이 바로 용문석굴이다.
동쪽이 향산(香山), 서쪽이 용문산(龍門山)이고 그 모양이 마치 궁궐의 정문 같다고 해서 이궐(伊闕)이라는 명칭도 생겼다.
이 두 산에 뚫린 동굴의 숫자만 수천 개요, 새겨진 불상도 십만이 넘어 참으로 저명한 고적이기에.
평소에도 무수한 유람객이 몰리고, 이렇게 더운 여름날엔 물가를 찾는 낙양 사람들도 많은데.
오늘은 아침나절부터 아예 통행이 금지되었다.
해가 뜨기도 전에 급하게 뛰어나온 관병들이, 북쪽은 우왕지(禹王池)에서 관란정(觀瀾亭)까지, 남쪽은 이궐교(伊闕橋)와 뇌고대(擂鼓臺)까지 깔려 아예 출입을 막는 통에.
좁은 남쪽 물길이야 이궐교만 막아도 되겠지만, 확 넓어진 북쪽은 오가는 나룻배까지 모조리 징발해버려서 그야말로 용문석굴 전체를 봉쇄한 형태.
용문석굴 주변을 터전으로 삼는 백성들까지 전부 쫓겨나 ‘당금 황상의 행차’가 아닌가 하는 추측이 돌았으나.
동원된 관병의 규모가 삼사백은 족히 될 터. 워낙 서슬 퍼렇게 몰아대니 감히 불만을 입에 올릴 자가 없었다.
그렇게 인적이 없어진 용문석굴,
관병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모인 십여 명이 가파르게 놓인 봉선사(奉先寺) 계단 앞에서 주위를 둘러본다.
불적(佛蹟)이 많은 곳이니 당연히 큰 절이 자리 잡아서, 이쪽 용문산에는 봉선사가, 저쪽 향산에는 향산사가 서로 자랑하듯 규모를 자랑하지만.
아무래도 용문석굴에서 처음 손꼽는 곳은 이 봉선사다.
그도 그럴 것이 북위(北魏) 때부터 당대에 이르기까지 만들어지는 석굴이지만, 그 수량과 명성에서 향산 쪽의 동산석굴(東山石窟)은 용문산 쪽의 서산석굴(西山石窟)에 견줄 수가 없으니. 용문석굴이라는 이름도 바로 용문산의 석굴이 대표적이기 때문에 붙은 것이다.
산허리를 도려내고 그 안에 거대한 노사나불(盧舍那佛)을 안치한 이 봉선사는 바로 서산석굴의 시작이고. 당나라 측천무후가 지었다고 전해지는 명소.
남북을 봉쇄한 건 이십여 명의 관람을 위한 특별 조치였나.
과연 이 유람을 안내하는 이가 손을 들어 설명을 시작했다.
“여기서 곧장 일 리쯤 북상하면 바로 빈양삼동(賓陽三洞)일세. 그간 황궁서고(皇宮書庫)까지 뒤져가면서 그나마 조건에 부합하는 곳은 빈양삼동이라고 결론을 내렸지.”
질 좋은 황삼을 걸친 노인. 머리엔 소요건을 썼고 세 가닥 가는 수염을 늘어뜨려 꽤 이름난 선비로 보인다.
그리고 이 노인의 말에 헛기침을 하는 이.
“어험. 빈양삼동이면 석굴이 세 개. 그럼 그중에 어디인지는 아직, 황(黃) 학사?”
황 학사라는 노인을 의식해서인지 상당히 말을 돌리는 요술사다.
그러나 요술사와 달리 오온존자는 당장 불쾌한 인상을 내밀고,
“아니, 그럼 지금부터 우리보고 찾아내라는 거요? 사람을 이렇게 심하게 부려서야.”
말수가 적은 편인 진여신승도 미간을 찡그린다.
“지극히 급한 명이라 말을 다섯 번이나 갈아탔거늘.”
와서 제대로 쉬지도 못했다는 뒷말은 요술사의 눈짓에 삼켰으나.
황 학사라는 노인은 오온존자와 진여신승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뭐, 일단 가서 보면 감이 오지 않을까. 이게 다 자네들이 고력사의 무덤에서 중요한 발굴에 성공한 덕분이니까. 그나저나 여 대부가 끼지 못한 게 조금 아쉽구먼.”
대화 상대는 요술사뿐이라는 듯.
말투나 자세에서 현신장보다 윗사람이란 티를 낸다.
그런 대화를 흥미롭게 보는 시선. 현신장 셋과 황 학사 외에도 아직 일곱이 더 있다.
연한 청삼을 걸치고 혼원관을 쓴 중년인이 넷. 도사인지 유생인지 분간이 가지 않으면서 허리에는 장검과 장도를 나누어 찼고.
나머지 셋은 검은 무복에 붉은 허리띠를 찬 장한. 당당한 체구가 예사롭지 않은데, 그중에서 가장 키가 큰 사내가 슬쩍 끼어들었다.
“여 대부가 누구기에 황 학사가 아쉬워할까? 그러고 보니 밀각에선 이번에 황 학사 혼자서 나왔소?”
빈양삼동이든 고력사의 무덤이든 아무 관심이 없는 눈치.
황 학사의 주름진 얼굴이 돌아가면서 혀를 찬다.
“쯧, 기관진도에 꽤 성취가 있어서 기대했던 재목이지. 일이 생각보다 복잡해져서 일단 대부 지위를 주어 내보낸 거야. 본래 음형사로 삼으려고 했던. 자넨 매일 놀기만 하느라 최근에 갑자기 바빠진 것도 몰랐는가?”
혼원관을 쓴 중년인 중에 장검을 찬 자가 수염을 쓰다듬었다.
“들은 적이 있군. 이번은 우리 쪽으로 올 순서여서. 무명천(無明天)은 이제 밖에만 정신이 팔려 각의 소식엔 귀를 닫아놓았소?”
훤한 이마에 단정한 이목구비만큼 차분한 음성이어도 키 큰 사내를 은근히 조롱하는 내용.
무명천의 키 큰 사내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보다가 픽 웃었다.
“허, 이거 우리가 뭐 밉보인 게 있나. 회합 때마다 주관하던 대부들이 보이지 않기에 물어봤을 뿐인데. 어이, 조양(朝陽)은 지나치게 역할에 몰두한 거 아닌감? 이번에 용문석굴로 소집된 이유를 잘 모르는 건 거기나 우리나 마찬가지잖아.”
검은 무복에 붉은 허리띠. 당당한 체구에 어울리는 거친 성격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확실히 연한 청삼에 혼원관을 쓴 넷과 검은 무복의 장한 셋은 전혀 상반되는 기풍. 한쪽이 환한 백색이라면 다른 한쪽은 어두운 흑색이랄까.
키 큰 사내의 말이 끝나자 조양이라 불린 넷이 날카롭게 노려보고, 무명천의 셋이 눈을 부릅뜨는 반응도 색깔처럼 다른데.
짝짝.
황 학사가 얼른 손뼉을 쳐 시선을 끌어 모은다.
“그만, 그만. 오랜만에 만난 사이가 왜 이 모양이야? 그만 떠들고 움직이세. 사정은 빈양동까지 가면서 내가 간단히 설명하지.”
주름이 가득한 얼굴엔 이렇다 할 표정도 없고, 황삼 자락을 털면서 몸을 돌리는 동작은 매몰찰 정도.
현신장 셋, 조양의 넷, 무명천의 셋. 열 명이 꼼짝없이 자신이 시키는 대로 움직일 것을 뻔히 알기에.
그 허리춤에 단단히 묶인 작은 상자가 눈길을 끈다.
고력사의 무덤에서 구한 신기한 보병. 미리 황 학사에게 건넸던 요술사가 씁쓸하게 입맛을 다시곤 손을 흔들었다.
“자, 함께 가세나.”
각각 성격도, 속한 단체나 맡은 일도 다르지만. 그래도 요술사의 체면은 봐주는지.
열 명이 입을 닫고 황 학사의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간단히 설명한다던 황 학사의 입에선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는다.
빈양동까지는 금방.
그 전에 만불동(萬佛洞)이니 마애삼불(摩崖三佛)이니 경선사(敬善寺) 등의 이름난 경관이 이어졌지만,
황 학사의 입이 떨어진 건 빈양동에 거의 다 와서였다.
“육신지력(六神之力)이 아직 완전히 풀려나지 않은 건 다들 알지? 현신장의 숫자도 다 채우지 못해서 음형사를 운용하잖는가. 골치를 썩이던 밀각으로선 일단 신화나 전설에 등장하는 신물이나 기보에서 실마리를 찾는 수밖에 없었네. 그간의 회합에서 중점으로 다루었던 문제고.”
다들 경공이 아닌 조금 빠르게 걷는 건 앞장선 황 학사의 속도 때문.
빈양동을 향하면서도 노인의 짓무른 눈은 쉬지 않고 주변을 살폈다.
“그러다가 이번에 서쪽 현신장 셋이 큰 공을 세운 셈이지. 감로보병, 혹은 항아월백이라는 이름의 물건. 흐흥, 이게 고력사의 무덤에서 나왔다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거든.”
이미 아는 얘기들이지만.
황 학사의 뒤를 따른 열 명이 신중하게 귀를 기울인다.
필요한 말 외에는 그다지 입을 열지 않는 황 학사는 보통 사람이 아니고, 그의 설명은 반드시 알아야 할 부분을 일러주기 때문.
“기록에 의하면 고력사가 처음 두각을 나타낸 건 측천무후의 눈에 들면서부터. 그리고 당 현종의 총신이 되어 용문석굴에 무량수불(無量壽佛)을 만들었다고 해. 물론 황제의 비위를 맞추기 위함이지만, 여기서 주목할 점은 고력사가 누구를 시켜 어디에 무량수불을 만들었냐는 거지.”
바로 뒤의 요술사가 심각한 표정으로 머리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고력사의 무덤, 지하 종유굴의 특이한 기관. 용문석굴에 무량수불을 만든 자와 동일인의 솜씨겠지요.”
조양에서 온 인물이 미간을 찡그리고,
“당나라 때 용문석굴에 불상을 만들고, 지하 종유굴에 기관을 설치할 수준이면. 둔갑삼가가 아니고선.”
무명천의 키 큰 장한 역시 한마디 거든다.
“그거 와룡제갈, 천공사가(天工謝家), 대조주가 이렇게 셋이든가? 와룡제갈이 가장 뛰어나고 나머진, 아, 지금은 남은 집안이 없다고 했는데?”
키 큰 장한이 갸웃거리지만, 여전히 앞만 보고 걸음을 옮기는 황 학사.
“대조주가일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본다. 그런데 대조주가든 천공사가든 당최 남은 기록이 없어. 오직 무량수불을 단서로 찾아야 고력사의 무덤에서 발굴한 감로보병의 쓰임을 확인할 수 있을 테지. 만약 감로보병이 하백(河伯)과 관계가 있다면 육신지력을 완전히 해방할 열쇠로 기대할 만하네. 흠. 이 정도면 대강 이해하겠지.”
이런 간단한 설명조차 귀찮았던가. 말을 마치며 걸음을 재촉하더니.
우뚝 멈추어 섰다.
가파르게 올라가는 산길. 좁았다가 넓었다가, 옆으로 빙 돌았다가 계단처럼 곧장 뻗었다가. 그 산길을 헤아릴 필요도 없이 연이은 동굴이 눈에 확 들어온다.
빈양동.
가운데 중동(中洞)은 안에 모신 불상이 보일 정도로 크고, 가까운 남동(南洞)은 중동의 절반 정도 크기일까. 저 뒤쪽의 북동(北洞)은 더 작은데다가 허물어진 형태라 잘 보이지도 않는데. 일행이 다가가는 남동과 중동 앞은 그 유명세를 말해주듯이 전면에 넓은 공터까지 닦여있었다.
때는 사시(巳時) 끝 무렵. 구름이 많아졌으나 날이 엄청 뜨겁다.
빈양삼동을 발견한 감격에 발을 멈추었을 리 없다.
끊임없이 주위를 살피던 황 학사의 시선이 홱 치솟더니 혀를 끌끌 찬다.
“쯧쯧, 이래서 뭐든지 서두르면 안 된다고. 관병을 수백이나 동원하면 뭐하나? 곳곳에 구멍이 뚫렸는데.”
안타까움이 담긴 내용이지만, 음성은 여전히 냉랭하고.
뒤를 따르던 열 명이 거의 동시에 고개를 쳐들었다. 시선이 향하는 곳은 똑같이 방금 지나온 경선사 쪽.
그래도 비교적 잘 다듬어진 빈양동 산길과 달리 바위와 거목이 어지럽게 겹쳐진 험한 지형의 한 점을 노려보자.
삐죽 솟은 바위 위로 머리 하나가 슬그머니 올라온다.
“어, 들통이 났나? 웬만하면 모른 척 그냥 지나가 주지 뭘 그리 빡빡하게. 한참 재미있게 경청하던 중이었는데. 남몰아미타부르.”
머리카락 하나 없는 대머리에 곱게 박힌 계인(戒印), 처진 눈매와 늘어진 볼살 덕에 자연스레 이루어진 울상. 그리고 해괴하기 짝이 없는 불호.
황 학사의 시선이 대뜸 차갑게 번들거렸다.
“소림의 치승(痴僧)이로군.”
어리석은 중. 그건 바로 풍진삼우 중의 무공화상을 가리키는 말이다.
머리만 내민 무공화상이 처진 눈을 억지로 뜨는 시늉을 하면서,
“에? 빈승을 아시오? 근래에 박학다식한 선비를 뵌 적이 없어서. 아니지, 훌륭한 학사분이 강호의 속진에서 구르는 이 미련한 중을 한눈에 알아보실 리가. 아하, 그러면 이름만 학사지 본디 무림에 속하는 분일까?”
대머리를 벅벅 긁으며 영 의아한 표정.
척척 늘어지는 말투가 의문을 표하자마자 바로 옆에서 불퉁한 고함이 튀어나온다.
“어이구, 멍텅구리! 동창이랬잖아, 동창. 저것들 겉으로는 그럴듯해도 불알도 없는 놈들일 거라고. 오죽하면 남들 보기 민망해서 저희끼리만 몰려왔겠어.”
당장 쥐어박을 듯 성질을 내는 목소리에도 무공화상은 처진 눈만 껌뻑껌뻑.
“너무 그러지 마시오, 도우(道友). 그래도 이렇게 부처님 뵈러 온 기특한 시주분들에게. 자, 우리도 얼른 내려가 영접합시다. 아미타부르.”
우스꽝스러운 불호와 함께 머리통이 뭉그적거리며 옆으로 움직이기 시작하자,
올려다보던 황 학사가 자신의 뒤쪽으로 눈짓을 보냈다.
“숭산과 무당산을 틀어막아도 본래 밖에서 돌아다니는 풍진삼우에겐 소용이 없었겠지. 조양신문(朝陽神門)에서 맡게나.”
조양이라 불렸던 중년인 넷은 과연 조양신문의 인물들.
장검을 찬 중년인이 고개를 끄덕이자 장도를 찬 셋이 먼저 뒤로 빠지는데.
이번엔 북쪽에서 아련하게 목소리가 전해진다.
“우라질, 빈양삼동 옆에 어느 쪽 절인지 말해줘야 할 것 아냐? 경선사인지 잠계사(潛溪寺)인지. 멍텅구리는 그렇다 쳐도 심술쟁이까지 보이질 않으니…….”
빈양동 남쪽은 경선사, 북쪽은 잠계사. 신경질 내는 목소리는 당연히 잠계사 쪽에서 나온 것이다.
치승 무공화상을 멍텅구리라고, 노도 부덕도인을 심술쟁이라고 부를 이는 하나뿐.
빈양북동으로 휘어져 들어가는 길목에 취개 단삼육이 술 취한 모습으로 불쑥 튀어나오고.
황 학사가 한숨을 내쉬며 머리를 저었다.
“후우, 결국 근처의 개방 총단도. 뭐, 어차피 관병을 동원한 건 어중이떠중이를 거르기 위해서니까. 풍진삼우만이라면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겠네. 무명천!”
부르는 대로 당당한 체구의 장한 셋이 빙글거리며 앞으로 나섰고.
“거지 한 마리면 너무 쉬운데.”
키 큰 장한의 불평은 아예 무시한 황 학사가 바로 고개를 돌렸다.
“가세.”
남은 이는 현신장 셋. 세 명도 딱히 신경이 쓰이지 않는 표정으로 두말없이 황 학사를 따라 빈양동으로 걸음을 옮길 셈.
아무리 풍진삼우가 강호에 이름난 고수라 해도 조양신문과 무명천에서 온 음형사들의 상대는 아니다.
풍운방에서 당세의 고수 백 명을 상중하로 나누었고, 상급 삼십 명에 맞먹는 수준이 되어야 음형사로 외부에 나설 수 있다. 이곳에 온 일곱은 음형사 중에서도 뛰어난 능력을 지닌 자들.
소림의 방장, 무당의 장교, 개방의 방주가 와도 별문제가 없을 테니,
치승과 노도에게 조양신문의 넷, 취개에게 무명천의 셋이면 지나칠 정도다.
오랜만에 동쪽으로 온 현신장 셋으로선 재미난 싸움을 구경하지 못하는 게 오히려 아쉬울 지경.
그렇게 풍진삼우를 놔두고 빈양동으로 향하는데.
삐잇.
불현듯 귓가를 울리는 조그만 새 울음.
워낙 아득해서 방향을 분간하기도 어렵고, 용문석굴이 이수를 끼고 있으니 딱히 이상할 일도 아니건만.
왠지 모르게 다시 움직이던 황 학사의 발이 멈췄다.
그리고,
뒤로 빠지던 조양신문의 넷, 앞으로 나서던 무명천의 셋. 심지어 가파른 경선사에서 뛰어내리려던 무공화상과 부덕도인, 잠계사에서 뛰쳐나온 단삼육까지 눈을 휘둥그레 떠야만 했다.
파아악.
빈양동 꼭대기, 아니, 용문산 줄기를 아예 날아 넘어 빈양동 앞에 떨어진 형체.
멀리서 투석기(投石機)로 날린 것처럼 엄청난 속도로 떨어졌고, 바닥과 부딪치면서 부서졌는지 흙먼지가 폭발하듯 이는데.
그 속에서 지친 목소리가 나오고서야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다.
“멀긴 멀구나.”
자지도 않고 먹지도 않고(廢寢忘食). 장안에서 낙양의 용문석굴까지 치달렸으니 스스로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겠지.
절령제십사(節令第十四) 처서(處暑)
처서는 바로 출서(出暑), 즉 더위에서 빠져나온다는 의미이다.
이때가 되면 태양은 점차 남쪽으로 기울어 더위도 따라서 남쪽으로 물러나니, 온도가 점차 내려가고 열기도 차츰 줄어든다.
숨이 턱턱 막혀 견디기 어렵던 혹독한 더위도 마침내 마무리에 접어들 때라. 그러나 마지막 발악이라도 하듯 생각지도 않은 열기가 갑자기 행패를 부리는 일도 있으니, 이를 일러 ‘가을 호랑이(秋老虎)’라고 부른다. 자칫 마음을 놓았다간 느지막이 더위를 먹기에 십상이요, 농작물도 여름에 연이은 한재(旱災)에 바싹 타죽어 버린다.
사람은 특히 급격히 건조해지는 삿된 기운에 걸리는 걸 조심해야 한다. 코와 입이 마르면서 마른기침이 자주 나고, 피부도 쉬 트고 갈라지는 ‘추조(秋燥)’가 또한 이 시기의 질병이니까.
진정으로 가을을 느끼기에는 아직 이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