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0장 신기능묘(神奇陵墓) (4)
복면을 뒤집어쓴 덕에 표정이 보이지 않는 이 대부.
눈을 몇 번 껌뻑이다가 일부러 헛기침을 한다.
“어흐음! 그걸 벌써 말하면, 허, 감 대부 말대로 느긋하게 나눌 얘기 아니었소? 자, 자, 뭣들 하느냐.”
새로 온 감 대부와 여 대부는 자신의 아래. 현신장과 똑같이 처음 듣는 티를 낼 수야 없지.
이번 발굴의 책임을 맡은 자로서 권위를 세우려는 속셈이 뻔히 보이지만,
다들 표정을 고치고 시선을 돌렸다.
색다른 얘기가 궁금증을 자극하고, 이 대부의 꼴사나운 허세가 가소롭긴 해도.
무료할 때에나 느긋하게 나눌 화제란 건 틀림없다.
이백이든 두보든. 한유(韓愈)나 백거이(白居易)면 또 무슨 상관인가.
지금은 비고를 찾아 내부를 확인하는 게 먼저.
막 입구가 열렸을 뿐이다.
요술사가 앞뒤에 선 황의 경장 몇을 가리켰다.
“먼저 내려가면서 불을 밝히고 길을 정리해라. 계단이 끝나는 곳까지는 괜찮아. 조심하고.”
“넷.”
대답과 함께 넷이 미리 준비해놓은 물건들을 챙겨 앞으로 나서고,
그 뒤를 요술사와 여 대부, 오온존자와 진여신승, 이 대부와 감 대부가 짝을 지어 늘어섰다.
시커멓게 입을 벌린 듯 열린 입구. 밑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얼마나 이어지는지 전혀 보이질 않는다.
더구나 넓이도 확 줄어서 겨우 두 사람이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 본래 넓었던 묘실이 무너지면서 거대한 돌무더기로 가득 메워졌다.
오래되어 헤진 도면만으로는 구체적인 내부 구조를 다 알 수 없기에, 일단 해독을 담당했던 요술사와 기관 건축에 능한 여 대부가 앞장설 수밖에 없다.
황의 경장 넷이 신중하게 계단을 내려가며 불을 밝히기 시작하자,
여 대부가 돌무더기에서 아래로 시선을 내렸다.
“상당히 교묘한 설계인데, 뭐 때문에 무덤으로 덮개를 만들었을지…….”
밖에서 보면 산줄기 끝의 언덕배기에 우뚝 선 집채만 한 크기의 바위. 그런 모양으로 위장했어도 무수하게 도굴을 당한 고력사의 무덤이다.
그 무덤 또한 지하에 숨긴 공간을 덮는 뚜껑의 역할. 그렇게 귀중하게 지킬 공간이라면 묘실이 무너질 때 아예 바위가 통째로 내려앉을 법도 하건만,
입구가 열리고 계단이 마련된 구조. 거대한 바위는 고스란히 형태를 유지하도록 만들었다.
마치 찾아올 이를 기다렸던 것처럼.
목적을 갖고, 용도에 부합하게 짓는 게 건축의 원칙. 그런 기초를 아는 여 대부로선 의아하게 여길 수밖에 없는 부분이었고,
그 중얼거림을 들은 요술사도 입매를 씰룩였다.
“일단 비고를 찾으면 답이 나올 걸세. 여 대부는 도해의 부족한 점에 유의해주게나.”
비고.
뭔가 비밀리에 간직된 곳이란 뜻. 그러나 여기의 누구도, 책임자라고 어떻게든 잘난 체를 하려는 이 대부조차 무엇이 있는지 알지 못한다.
그저 곳곳에 흩어졌던 실마리를 겨우겨우 이어 붙여 찾았을 뿐.
온갖 잡학에 뛰어난 요술사가 씁쓸하게 입맛을 다시면서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횃불을 두 개씩 든 황의 경장 여섯이 둥글게 늘어서서 이 대부의 나직한 지시에 귀를 기울이는 모습.
금의위와 관병의 지휘권은 이 대부에게 있으니 외부와의 연락이며 경계에 관해 잔소리를 덧붙이는 모양인데.
요술사의 시선은 그런 이 대부보다 그 곁의 감 대부를 찾는다.
얼핏 ‘시선 이백’의 이야기를 조금 더 들어볼까 하는 생각이 스쳤기에.
아무래도 뭔가를 놓친 것 같은 기분이다.
석판을 다듬어 깔아놓은 바닥. 통째로 무너지는 바람에 꼼짝없이 떨어지긴 했어도 일신의 능력이 그리 허술하지 않다.
해원기의 전신이 대뜸 기이한 바람에 휩싸여 둥실 떠오르고, 정록 역시 표홀한 신법으로 중심을 잡았다.
그렇지만 묘실의 반구형 천장과 석곽 따위가 모조리 쏟아져 내리는 바에야. 손발을 휘둘러 튕기고 피하느라 힘을 받을 곳이 없으니 다시 뛰어오를 엄두도 내지 못한 채.
그대로 어둠 속으로 추락해버렸다.
휘잉, 휘잉.
지독한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건 석곽이겠지.
대체 얼마나 떨어져 내렸을까.
폭포수처럼 쏟아지던 바위와 흙덩이가 멈췄다고 느끼자마자,
쿵.
“어이쿠!”
정록의 목소리가 먼저 들리고 해원기가 곧장 몸을 틀며 두 발에 힘을 주었다.
철퍽.
질퍽한 곳을 디딘 느낌. 서둘러 둘러보는 동시안에 옆에서 나뒹구는 정록의 모습이 들어왔다.
“정 형, 괜찮나?”
얼른 몸을 굽혀 살피려는데 발딱 상체를 세우는 정록. 하마터면 이마를 맞부딪칠 뻔했고,
또 정록이 황망히 자신의 정수리를 쓰다듬으면서,
“아야야야, 아파 죽겄네!”
촤륵.
차가운 물방울이 튄다.
머리에 돌멩이라도 맞았는지, 주저앉은 채 머리를 더듬는 정록은 다행히 큰 상처는 없는 듯.
해원기가 안도의 숨을 내쉬며 주변을 살폈다.
동시안을 운용하는 데도 사물이 흐릿할 정도로 완벽한 어둠. 좌우로 비스듬히 엇갈려 세워진 석곽 덕분에 겨우 좁은 틈이 생겼고, 그 틈 안에 두 사람이 있다는 걸 비로소 깨달았다.
“아, 이렇게 큰 혹이. 하마터면 머리통이 깨질뻔했. 응? 읏, 차가워.”
그 와중에도 바쁜 입을 놀리던 정록, 펄쩍 뛰듯이 일어나는 걸 해원기가 간신히 잡았다.
“정 형, 조심해야.”
그대로 놔뒀으면 정록의 머리는 곧장 석곽을 들이받았을 터. 그런데 해원기도 걱정의 말을 맺지 못했다.
정록이 펄쩍 날뛴 이유. 바지가 흠뻑 젖어서다.
그제야 해원기의 손을 맞잡은 정록이 커다란 눈을 잔뜩 찡그렸다.
“아, 해 형은, 아주, 괜찮구먼. 에, 여기가 어디…… 흐음.”
내공을 끌어올렸는데도 바로 앞에 있는 해원기가 제대로 보이질 않는다. 묘실이 무너져 떨어졌고, 쏟아지는 파편을 피하다 정수리에 큰 거 한 방을 맞았으며, 지금은 아랫도리가 젖은 난감한 처지. 오줌을 싼 것도 아닌데.
상황을 파악하자 코 대신에 목이 울렸다.
해원기가 바닥을 보던 시선을 되돌렸다.
“꽤 떨어져 내린 듯하군. 바닥엔 물기가 있고, 석곽 두 개가 먼저 기둥이 돼준 덕에 살았네.”
정록의 눈으로는 주변이 잘 보이지 않을 터.
침착하게 일러주자, 그 음성에 정록 또한 마음이 가라앉는지 찡그렸던 눈을 풀고 가만히 감았다가 뜨면서.
해원기를 잡았던 손을 풀어 주위를 신중하게 더듬더니.
“물기 정도가 아니라 얕은 개울이라고 해도 되겠고. 에헤, 석곽 두 개가 우연히 요렇게 서로 기댄다? 크흥.”
예의 코 울림을 되찾은 혼잣말에 의심이 잔뜩 담겼다.
해원기의 동시안이 살짝 가늘어졌다.
비록 기관 건축을 익힌 적은 없지만, 진법을 공부하면서 나름 그 이론을 접한 적이 있기에. 정록의 말처럼 우연히 덕을 본다는 게 극히 희박한 확률임을 알 수 있었다.
묻듯이 향하는 동시안의 비췻빛을 향해 정록이 머리를 갸웃거린다.
“둘로 나누어 후실을 감춰둔 묘실, 똑같은 모양으로 전실과 후실에 석곽이 하나씩. 그게 떨어져서 요로코롬 우리가 멀쩡할 틈을 만들기가 얼마나 어렵겄어? 게다가, 여기 어디 수맥이 흐르나 본데, 황제의 묘역에 배장 되는 대단한 양반이 설마 수맥 위에 무덤 자리를 보았을까? 마치 무너질 때 날릴 돌가루와 흙먼지를 미리 고려한 것처럼 말이지. 요상하다구.”
마주친 상황이 정말 기묘해서인지 사투리까지 섞인 설명.
해원기의 시선이 빛을 더했다.
굳이 풍수를 따지지 않아도 수맥 위에 무덤을 팔 리 없다. 그리고 확실히 무너진 규모에 비해 지나치게 맑은 공기. 지하에서 또 한참 떨어졌건만 숨 쉬는 데 아무 지장이 없다.
묘실이 통째로 무너진 건 분명히 기관. 그것도 극히 치밀하게 계산된 기관이다.
“정 형, 찾던 게 묘실이 아니라 이 기관에 의해 숨겨진 무엇이로군. 묘실이 무너진 건 누군가 기관을 움직여서이고.”
족제비 구멍으로 묘실에 먼저 숨어들었던 이유를 되새기자.
정록의 커다란 눈도 반짝거린다.
“그러네. 무엇은 아직 모르겠지만, 무너진 건 그놈들 짓일 게야. 요술사란 놈이 헤진 도해를 열심히 풀었으니까.”
“묘실이 무너지면서 새로운 통로가 드러났을 터.”
“그래도 우리가 한발 빠를걸. 이런 식으로 무식하게 머리를 들이박는 경우는 없잖아. 가만, 여기가 혹시 통기구(通氣口) 역할이라면.”
지하에서 또 지하. 공기가 통하지 않고서야 땅속 깊은 곳에 어떻게 기관을 설치하겠는가.
정록이 선사라 부르는 주장선은 과거의 강호사괴(江湖四怪) 중에서도 가장 괴이하여 진짜 얼굴을 본 사람도, 평소에 어디서 무얼 하는지 아는 이도 없었다고 했다.
변장 화신뿐 아니라 은신과 잠행의 대가이기도 했던 주장선. 자연히 방잡(庬雜)한 지식과 기예를 갖추었고 그중에는 기관토목도 포함된다.
정록이 말을 마치곤 씩 웃었다.
“해 형, 그 훤한 눈으로 길 좀 밝혀보게. 잘 찾아보면 탁 트인 곳으로 나가는 구멍이 나오지 않을까?”
아까부터 비췻빛을 띤 해원기의 눈이 신기했나 보다.
아예 등롱으로 삼으려는 심산이 어처구니없지만.
해원기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처지에서 전혀 당황하지 않는 정록의 대담함이 되레 믿음직하긴 했으나,
그보다 자신은 왜 이렇게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았을까.
족제비 구멍으로 묘실에 들어왔다가 바닥이 뻥 뚫려서 더욱 지하로 추락했거늘.
위험하다는 경계심은커녕 친근한 기분까지 든다.
석곽 두 개가 비스듬히 기대어 만든 틈에 얕은 개울처럼 흐르는 물. 사방이 무너진 돌로 꽉 막힌 것 같았지만, 물이 흐르는 걸 가만히 살피면서 뜻밖에 발견한 좁은 통로.
해원기와 정록이 엉금엉금 기다시피 한참을 움직였다.
아무리 무공이 뛰어나도 허리를 펼 수 없는 낮고 좁은 통로를 기었으니. 푹 젖은 전신은 더럽기 짝이 없고, 정록의 거침없던 입도 지친 듯 거친 숨만 내쉰다.
해원기가 정록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고 앞을 가리켰다.
희미한 빛 한 줄기.
바로 앞의 얼굴조차 보이지 않을 만큼 어두웠던 터라, 그 희미한 빛도 눈에 확 뜨인다.
“위로 올라가지 않았는데 빛이라. 제대로 찾은 것 같네.”
어디서 어떻게 빛이 드는지 몰라도.
지금까지 어떤 구조인지 몰라 감히 무공을 쓰지 않았으나, 확실히 통기구인 좁은 통로와는 다른 공간일 것이다.
기는 속도가 단박에 빨라지고, 빛이 드는 작은 구멍 주위를 조심스럽게 무너뜨린 후에야,
머리를 내민 둘이 똑같이 눈을 껌뻑였다.
삼 장쯤의 높이.
밑에는 곳곳에 석순(石筍)이 고개를 쳐들어 바라보고, 두 사람은 천장의 종유석 사이로 머리를 내밀고 있으니.
지하의 지하, 그리고 또 지하.
대체 얼마나 깊은 곳인가.
종유석과 석순이 마치 보석처럼 빛나는 광장이 기상천외해서 보고도 믿기 어려웠다.
그렇게 껌뻑거리며 아래를 훑어보던 해원기와 정록의 눈이 거의 동시에 한 곳에 모여들었고, 말 한마디 나누지 않고서 함께 아래로 뛰어내렸다.
종유석에 뚫린 조그만 구멍을 통해 좁은 통기구로 스며들었던 희미한 빛.
지하광장이 이렇게 훤히 보이는 건 빛이 더욱 환하기 때문이다.
똑, 똑.
한겨울의 고드름이 매달린 것처럼 뾰족한 종유석에서 드문드문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음악처럼 울리고,
밑에는 구렁이가 똬리를 튼 듯 거대한 석순이 옥처럼 반짝거리며,
아예 위아래로 이어진 거대한 종유석은 장엄한 열주(列柱)처럼 빽빽이 늘어섰다.
그 가운데를 구불구불 흐르는 물. 폭은 좁으나 깊이를 알 수 없는 물줄기는 대체 어디서 시작되어 어디로 흘러가는지.
더구나 그 색이 싯누렇고 광채를 품어서 그야말로 황금이 녹아 흐르는 착각이 들 정도다.
얼음, 옥, 황금이라.
참으로 매혹적인 광경.
어디서 빛이 비치는가.
광장 한가운데, 네모반듯한 석대(石臺)가 어울리지 않게 펼쳐졌고, 댓돌 세 개가 포개진 위에 덩그러니 세워진 작은 정자.
이 또한 돌을 쪼아 만들었는데, 난간과 지붕이 전부 육각형이며, 그 편액의 양쪽에 박힌 구슬이 휘황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리고 편액에 적인 글자.
[신기대(神奇臺) 보병정(寶甁亭)]
그 편액을 올려다보는 해원기의 시선이 번갯불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