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왕춘추-198화 (198/410)

제50장 신기능묘(神奇陵墓) (2)

“흐음, 어쩐지 소풍 가는 기분인데.”

정록이 해원기를 보며 히죽 웃었다.

다루를 떠날 때 유항이 챙겨주었던 먹을거리와 대나무 물통 몇 개. 게 눈 감추듯 해치운 자신과 달리 해원기는 아직도 육모(肉饃) 하나를 먹는 중이다.

장안을 벗어나자마자 빠르게 경공을 펼쳤건만.

눈썹이 날릴 정도의 속도가 아무렇지 않은 듯 참 알뜰하게도 씹어먹는다.

육모란 간 고기를 소로 넣은 찐빵. 당나라 이래 회회(回回)가 들어오면서 양고기를 쓰는 이런 찐빵이 아주 유행했고, 길거리에서 흔히 파는 간편한 음식이다.

다루에서 차에 곁들여 나온 땅콩이나 과자 부스러기가 가격은 더 나갈 터.

빠른 경공을 가벼이 펼치는 능력보다 육모 따위를 음미하듯 즐기는 해원기가 신기해서 농을 걸지 않을 수 없었다.

해원기가 그 뜻을 알아듣고 멋쩍게 입가를 닦았다.

두 사람이 멈춘 곳은 광활한 벌판. 주위엔 인적조차 없고 나지막한 산줄기가 병풍처럼 사방을 둘렀다.

“제대로 만든 양고기 육모는 처음이라…… 저 산줄기가 태릉인가?”

끼니를 놓친 지 한참 되었고, 여러 가지 일이 겹쳐 꽤 허기를 느꼈던 판. 또 음식에 관심이 많은 편이니 갓 사귄 벗 앞에서 못난 꼴을 보였나.

얼른 화제를 바꾸어 산줄기를 가리키자,

“맞아. 당 현종과 그 황후, 그리고 고력사(高力士)의 무덤이 한데 있지. 한참 잘 나갈 때였잖아. 뭐, 장안 주변의 제왕릉은 다 크니까.”

당 현종은 소위 개원성세(開元盛世)라는 가장 흥성한 시기를 이룬 임금. 비록 말년에 안사지란(安史之亂)으로 급격히 쇠망해버리긴 했으나 위대한 업적에 걸맞은 거대한 능묘랄까.

안내를 맡은 정록이 해원기를 힐끔 보았다.

“본래 금속산(金粟山)이란 산인데, 에, 고약한 환관 따위가 배장(陪葬)된 게 이상하지 않아?”

황제와 황후의 합장은 이해가 가도, 환관이 배장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더구나 민간에선 시선(詩仙) 이백(李白)과 연관 지어 고력사가 앙심을 품은 이야기도 꽤 유행하지 않았던가.

하물며 지금 동창 때문에 가는 중이니.

슬그머니 해원기의 반응이 궁금해졌던 모양.

해원기가 다 마신 대나무 물통을 요대자에 넣으면서 되레 고개를 흔들었다.

“그럴 만하다고 들었네. 비록 환관이지만 현종을 마지막까지 충심으로 보필했다니까. 천고현환제일인(千古賢宦第一人)이라는 평가도 있더군. 물론 당시 측천무후(則天武后)가 죽은 후, 위후(韋后)와 태평공주(太平公主)의 난으로 국정이 문란해서 환관밖에는 믿을 수 없기도 했지만. 흠, 어떤 면에선 지금과 비슷하구먼.”

대나무 물통은 굵은 대나무 한 마디에 물을 채운 것. 한번 마시곤 내버리기 일쑤인데.

빈 통을 허리춤에 넣는 게 궁색해 보이지만,

그것보다 줄줄 읊어대는 대답에 정록이 뜨악한 표정을 지었다.

평범한 생김새에 허름한 차림새. 검왕이라고 해도 겉으로야 가난한 심부름꾼으로 보이는 해원기가 이렇게 박식할 줄이야.

아니, 검왕이라는 이름도 무공이 뛰어나다는 의미거늘.

그런 심정을 알 리 없는 해원기가 다시 산세를 유심히 훑어보았다.

“묘하군. 기록에는 태릉의 위치가 오룡산(五龍山) 여맥(餘脈)인 금속산 남쪽이라고 하더니. 지맥은 오히려 더 남쪽까지 뻗은 듯한데. 게다가 관병의 그림자도 보이질 않아.”

뭔 기록을 봤다는 건지.

처음 온 게 분명하면서 지맥까지 본단 말인가.

새로 사귄 친구의 희한한 소리에 얼이 빠질 것 같은 정록이지만, 그래도 그 또한 기이한 점을 느끼던 터라 얼른 정신을 차렸다.

“킁, 괴물들 말고도 수백의 관병이라고 하더니. 수상한데.”

과거의 흥성한 시기에 이루어진 제왕의 무덤. 엄청난 크기라 두 사람이 선 광활한 벌판은 겨우 능묘의 입구에 불과하다.

산 아래까지 이르는 길만 십 리는 족히 될 듯. 관도 마냥 잘 닦인 길이 가운데에 곧게 이어지고 좌우에는 다양한 석물(石物)이 놓인 묘역.

현신장과 밀각 대부들이 병사들을 수백이나 끌고 왔다면 기척이 있어야 하거늘.

발자국조차 찾을 수가 없다.

누가 보냈는지 모를 연락. 믿을 만한 건가.

해원기가 산세에서 시선을 거두며 눈썹을 문질렀다.

어떻게 된 걸까.

제갈봉이 거짓 소식을 전했을 리는 없다. 화청궁에서 월영객을 구할 수 있었던 것도 그녀가 제때 연락을 주었던 덕분.

전갈에서 동창의 목적이 불명이라고, 자신이 먼저 살피러 간다고 했으니 급작스럽게 알게 된 일이었을 것이다.

‘그녀 역시 총망 중에 움직였던가 보군. 그래서 황가약포에 선을 대고 있으라는 말을 남겼고. 전혀 몰랐던 사정이라.’

제갈봉이 화산에 보냈던 서신도 밀각의 대부만 언급했었다. 현신장 셋과 회합한다는 건 미처 알지 못했다는 의미. 나중에 오소민과 같이 양도양경에 좌우봉원이란 말을 덧붙여가며 그 의도를 추측하기만 했었다.

역사적인 도읍을 거점으로 중원을 양쪽에서 잠식해 집어삼키려는 계획일 것이라고.

과연, 그 추측이 맞을까.

화청궁에서 회합한 자들이 이미 해원기와 험악한 싸움을 거쳤고, 혹여 그 불똥이 화산에 튈까 걱정했었는데.

엉뚱하게 태릉을 향했단다. 그렇다면 회합의 목적이 본래 따로 있었을지도.

“해 형의 말대로 산세가 더 남쪽으로 빠져가는구먼. 일부러 그렇게 만들었을까, 상당히 오래전에 이루어진 변화를, 허, 용케 알아봤네. 이거, 선사나 노조가 알았다면 욕깨나 먹었겠는걸. 크흥.”

코를 울리며 목을 옴츠리는 정록의 말에 생각에서 깨어났다.

정록은 그사이 주변의 지형을 다시 한 번 자세히 살핀 듯. 해원기의 박식함과 특이한 안목에 나름대로 충격을 받았나 보다.

온갖 잡학에 능했던 주장선 한우령의 비전을 익혔고, 녹림의 정예를 모은 녹림노조 방송서에게 발탁된 그다.

태릉이라는 능묘가 되어버린 산세와 지형을 면밀하게 따져보자 비로소 보이는 부분.

해원기가 눈썹에서 손을 뗐다.

“그렇군. 배장된 고력사의 무덤, 어딘지 아는가?”

단지 현종과 황후의 묘역으로만 여겼던 게 실수.

오래전에 이 제왕의 능묘를 비튼 적이 있다면.

정록도 바로 해원기의 말을 알아듣고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이 묘역이 평범하지 않다는 걸 공감했다.

산줄기를 옆으로 두고 동남쪽으로 방향을 잡은 둘.

정록이 앞장서며 머리를 흔들었다.

“고력사의 무덤은 포성(蒲城) 쪽의 남향산(南鄕山) 서촌(西村)이라는 곳이야. 굴묘(掘墓)하는 작자들 따라서 한번 가본 적이 있지. 그런데 거긴 남은 게 없을 텐데. 그 괴물들이 뭐하러……?”

굴묘하는 작자는 도굴꾼. 녹림이라고 별별 도둑들이랑 다 어울렸나.

기가 찰 노릇이지만, 해원기가 다른 의미로 짧게 혀를 찼다.

“쯧, 깜빡 잊었던 게 생각났네. 고력사가 평생 이룬 업적 중의 하나, 그게 건축과 관련 있다는 걸. 현신장과 밀각이 양도양경에서 회합했던 이유가 어쩌면.”

“그거 용문석굴(龍門石窟)이잖아. 어? 그럼 고력사의 무덤이 혹시.”

대뜸 말을 받던 정록이 한쪽 눈을 확 찡그렸다.

고력사가 낙양의 용문석굴에 당 현종의 복을 빌기 위해 서방무량수불(西方無量壽佛)을 열아홉 기나 조성했던 고사.

양도양경의 내막이야 어쨌든 확실히 낙양과 장안의 접점이 있다. 더욱이 건축이라는 면에서 고력사의 무덤이 평범하지 않을 가능성, 즉 도굴꾼에게 다 털린 그 무덤이 아예 가묘(假墓)일 수도 있다는 데에 생각이 미쳤다.

현종의 능묘에 배장되었다고 해도 한때 천하를 기울이던 권력자. 묘역의 지맥을 남몰래 비틀기도 그다지 어렵지는 않았을 터.

정록의 찡그린 눈이 해원기를 향한다.

“그렇다고 이놈들이 고력사 무덤을 도굴하러 왔다는 건 좀. 킁.”

아미파와 공동파를 점거한 괴물 셋과 동창 밀각의 고수들이 관병 수백을 거느리고 무덤을 파헤친다?

영 믿기 어려운 그림인데.

해원기가 미간을 좁히며 손을 살짝 들었다.

“내막이 있겠지. 속도를 줄이면서 지형을 일러주게나.”

위남 외곽에서 다시 포성 쪽으로. 본래 인적이 없는 곳이라 거리낌 없이 경공을 발휘했으나.

해원기는 이미 미세하게 기척을 느끼기 시작했다.

때는 신시(申時)가 끝날 즈음.

아직 날이 훤하고 더위도 여전하지만, 슬슬 저녁 준비를 할 때고.

남향산 서촌이 어떤 곳인지 전혀 모른다.

태릉 묘역의 가장자리. 그것도 산세와 지맥의 흐름을 이해하는 사람이나 그렇게 여길 끄트머리다.

포성의 현성에서 사십 리나 떨어진 곳이요, 서촌이라고 하지만 실제로 민가는 서너 채가 전부.

완만한 경사를 이룬 구릉은 빽빽한 숲으로 둘러싸였고, 한가운데 대패로 민 것처럼 지면이 드러난 면적이 대략 백여 장 넓이.

그리고 조그만 민가 서너 채를 다 가린 엄청난 크기의 바위 한 덩이가 우뚝 섰으니.

그 앞에 커다란 비석이 없다면 그 엄청난 크기의 바위가 무덤의 한 귀퉁이란 걸 알아채지 못할 것이다.

제왕의 능묘가 산과 다름없으니, 배장된 신하의 무덤이 어찌 작으랴.

작은 민가 서너 채도 본디 묘를 관리하는 이들이 머무는 집이고, 숲의 벌채를 감시하는 일을 맡았을 텐데.

지금은 온통 푸른 옷을 걸친 관병들이 주위를 가득 메웠다.

“슬슬 불을 피우고 숙영(宿營)할 준비를 하여라!”

지시를 내리며 돌아다니는 군관, 이리저리 모여 천막을 치고 밤을 지새울 준비를 하는 병사들이 분주하다.

대략 삼백의 인원. 그중 삼분지일이 몰린 엄청난 크기의 바위 쪽에서 흙먼지가 뽀얗게 오르고,

민가 앞에 복면을 한 인물 하나가 뒷짐을 진 채 그쪽을 보고 있다가 몸을 돌렸다.

“조금 있으면 길이 열릴 거요. 도면은 어떻소?”

냉랭한 음성.

조그만 민가 안에서 여유로운 목소리가 바로 답한다.

“대강 해독은 되었소만, 워낙 헤진 곳이 많아서. 흠, 그보다 단 대부와 조 대부의 상세가 걱정이구려. 비고(秘庫)에 들어갈 때 큰 도움이 될 텐데.”

걱정하는 느낌은 하나도 담기지 않은 목소리.

복면인이 짧게 코웃음 치며 민가 안으로 움직였다.

“흥, 이미 복귀한 걸 알면서 그러오? 다른 인원이 유시(酉時)가 끝나기 전에 도착할 거외다. 어차피 비고를 여는 건 당신, 공동 신술사(神術士)의 능력에 달렸지.”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다른 웃음이 터진다.

“하하, 공동 신술사? 어쩐 일로 우리 이 대부가 듣기 좋게 불러주실까. 그냥 요술사라고 하시지.”

웃은 이는 문가에 기댄 장발의 승려. 그 옆에 주저앉은 채의 중년 승려도 입을 삐죽거리자.

복면인의 눈이 차갑게 번들거렸다.

“그럼 두 분도 오온독존(五蘊毒尊)과 수화괴승(水火怪僧)이라 불러드려? 관병들도 있으니 말을 삼가시도록. 놀러 온 게 아니잖소.”

말투는 점잖아도 한 마디 한 마디에 다 가시가 돋쳐서,

작은 탁자를 앞에 두고 앉은 음양도포의 인물이 얼른 손을 내저었다.

“자, 자. 왜들 이러시오. 이번 일은 이 대부가 주관하는 걸 다 알면서. 그만 이쪽으로 오셔서 조금 쉬시구려. 새로 온다는 사람 얘기도 좀 해주시고.”

그렇게 중간에서 말리니,

복면인이 비로소 못 이기는 척 탁자 옆으로 다가갔다.

전부 화청궁에 등장했던 자들.

다시 복면으로 얼굴을 가린 이 대부, 탁자 위에 놓인 낡은 양피지를 살펴보던 요술사, 붉은 가사를 벗어버린 오온존자와 회색 승복 그대로의 진여신승 넷이었다.

“얼마 전에 대부 자리에 올랐지만, 본래 각각 현신장과 음형사(蔭形使)의 물망에 오르던 이들이라오. 영사태화의 성취나 기문진식에 대한 조예가 결코 단 대부나 조 대부의 아래가 아닐 터. 능히 신술사의 도움이 될 것이고, 비고가 열린 후에는 바로 존자와 신승을 보좌할 거요.”

이 대부가 책임자로서의 위치를 되새긴 듯 음성을 낮추어 답해주자,

비꼬던 오온존자와 진여신승도 말문을 닫고 시선을 돌렸다.

알력이 느껴지는 분위기.

요술사가 얼른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좋은 일이요, 좋은 일. 현신장과 음형사가 될 뻔한 인물이라면 나도 마음이 놓이지. 아, 그런데 아까 화청궁에서의 그놈은, 음, 절세검왕이 맞는다면 그냥 놔둘 일은 아니잖소?”

방 안의 분위기를 고려해서 화제를 바꾼 건데.

이 대부의 복면 속의 눈이 날카롭게 변하고, 오온존자와 진여신승의 시선도 홱 돌아왔다.

중간에 엉뚱하게 방해를 놓은 칠색천막. 그리고 뒤를 쫓기 어려웠던 숲의 기이한 변화.

오온존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 숲에 포설된 게 삼라잠종진이라고 했지요? 그렇다면 둔갑삼가 중의 으뜸인 제갈세가가. 아니, 제갈세가가 재건되었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었거늘.”

눈앞의 먹이를 놓친 게 영 불쾌했었다.

그런 심정은 다들 마찬가지. 이 대부가 무겁게 혀를 찼다.

“쯧. 화산의 상황을 지켜보러 갔을 때부터 조금 수상했었지. 자세한 사정은 단 대부와 조 대부를 복귀시키면서 보고하도록 조치했지만, 나 역시 찜찜한 심정이외다. 당장 맡은 이 일만 아니라면…… 음, 절세검왕의 출현도 그렇지만, 제갈세가는 정녕 의외였소.”

책임자라 더 답답한 건지. 막 한숨이 나오려는데,

말수가 적은 진여신승이 불쑥 탁자 위를 가리켰다.

“그 도면, 제갈세가에서 유출되었다는 소문.”

나머지 셋이 묘한 느낌에 절로 탁자 위의 양피지를 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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