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왕춘추-108화 (109/410)

제27장 피단지미(皮蛋之謎) (4)

“쳇, 조금만 일찍 일어났으면 당 소저를 봤을 텐데. 움움.”

한 입으로 불평과 식사를 동시에 하는 재주.

증명단이 커다란 만두를 통째로 입에 욱여넣는 모습에 해원기가 기가 막혔다.

“그러기에 제때 일어나지 그랬니.”

“움, 오라버니는, 제때, 였나? 그럼 깨워주면 좀 어때서? 쩝쩝.”

쌍심지를 세우며 씹어대는 통에 입 밖으로 음식이 마구 튀어나온다.

당령이 떠나고 일 각 후. 증명단이 북룡포를 머리에 뒤집어쓰고 뛰어나왔지만, 사람은 이미 떠났고. 그때부터 이렇게 성질을 부리면서 식사하는 중.

해원기로선 졸지에 그 화풀이 상대가 되어버려서, 손으로 잘게 찢은 만두와 좁쌀 죽도 천천히 즐길 여유가 없다.

“천천히 먹어라. 체하겠다.”

달래줘도 들은 척 만 척.

“아니, 그 당 소저는 뭐가 그리 급했대? 밤에는 시무룩하더니. 비밀도 많아. 움움.”

불만이 이제 당령에게 옮겨가나 싶더니,

“단목 당주님이 너무 박하게 대하는 바람에 삐친 거 아닐까? 오라버니는 뭐 했어, 잘 위로해 주지. 에이.”

또 해원기를 원망하면서 커다란 피단(皮蛋)을 왁살스럽게 입에 넣는다.

그럴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강호에 출두한 이래 비슷한 또래랑 어울린 게 처음이었을 테니. 제대로 사귈 기회도 얻지 못한 게 억울할 게다.

그렇지만.

해원기가 잘게 찢은 만두를 좁쌀죽에 넣었다.

“위로라. 그렇구나. 하지만, 나도 너도, 심지어 형님도 위로할 자격은 갖지 못했잖으냐. 간밤에 형님은 최대한 당 소저를 배려한 거로 보았는데.”

시선을 죽 그릇에 내리고 가만히 건네는 말.

왁살스럽던 증명단의 입이 멈추었다.

입에서 나오는 대로 지껄이기만 했지, 실제로 위로가 뭔지는 생각해보지 않았었다.

구주정문 사천당가의 다섯째. 전궁유향이라는 신기한 신법에 독에 정통한 소녀. 사람들에게 오매불망이라는 별명까지 알려진 인물에게.

사연이 뭔지도 모르면서 위로랍시고 설쳤다간.

오히려 남의 집안일에 함부로 끼어드는 무례를 저지를뿐더러, 사이가 틀어질 수도 있다.

증명단이 비록 제멋대로의 성격이지만, 어리석지는 않다.

꿀꺽.

입안에 욱여넣었던 것들을 삼키면서 인상을 썼다.

단목정이 당령에게 뭔가 꺼리면서 말했다는 걸 이제는 안다. 엄청난 지혜를 지니고 뭐든지 아는 듯한 사람이 그렇게 말을 아꼈으니까.

해원기가 슬쩍 깨우쳐준 걸 깨달았지만, 그래도 심통은 남아서.

“칫, 글쎄 오독진살인지 뭔지. 알려주지도 않았.”

덜컥.

“허어, 이제야 아침이냐? 약왕당이 외할머니 댁도 아니건만 아주 늘어졌네, 늘어졌어.”

증명단의 말을 끊은 건 지친 모습으로 들어선 단목정이었다.

좁쌀죽을 물처럼 마셔댄 단목정이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후우우, 지쳤다. 어지간히 사람을 힘들게 하는구먼.”

수염에 붙은 건더기를 닦지도 않고. 붉게 충혈 된 눈과 거칠어진 피부가 꽤 고생한 듯.

실제로 전혀 잠을 자지 못했다.

그래도 그 입은 여전히 잘 움직여서.

“정수회가 그렇게 난리를 칠 만해. 괴질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증상이더구나. 동상과 화상이 한꺼번에 생기는 경우는 극히 드물거든.”

아침 인사고 뭐고 대뜸 왕진 나갔던 일부터 얘기하기 시작한다.

해원기가 간밤의 대화를 기억했다.

“오한과 고열이 동상과 화상으로 심해졌다고 했었죠.”

“그래. 이회주가 오밤중에 직접 찾아온 게 수상하다 했더니, 실은 중증의 환자를 직접 보일 심산이었던 거지. 내가 부재중이거나 아예 안경까지 가지 않을 상황까지 고려해서. 뭐, 그래도 수상쩍긴 해.”

증명단도 심야에 찾아온 정일건에 대해서는 대강 들었고, 수상하다는 말에 뿌루퉁하던 표정을 바꾸었다.

신통한 의술보다는 신통한 지혜라고 여겨지는 약왕당의 주인이 하는 말이잖나.

해원기와 나누는 대화에 집중한다.

“미리 사정을 다 말하지 않았었죠.”

“그거야 정일건이 먼저 오면서 시차를 계산하기 어려웠을 수 있지만. 그것보다는 원기, 네가 있던 게 신경 쓰였겠지.”

“제가 있는 게.”

“눈치 채지 못했니? 일부러 아무렇지 않은 척했던 거. 네가 나와 함께 약방에 들어서자마자 약왕당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아는 것 같았다. 어쩌면 그쪽에도 반룡령의 위탁이 들어갔을 수 있고. 어제 휘상의 정수회가 어떤 조직인지 알려줬잖아.”

중원 전체의 물류를 파악한 휘상의 무력조직. 동창이 용문세가에 심은 간세도 휘주의 차상.

그것만으로도 의심할 근거는 충분하다.

단목정이 다시 죽을 마시면서 손가락으로 해원기의 가슴팍을 가리켰다.

“음음, 그 판과가 네 용모파기의 특징 중 하나일 거다. 다만 일행이 보이지 않고 단독으로 나와 함께 있으니, 조금 헷갈렸겠지. 그건 그거고.”

비로소 수염을 소매로 닦으면서.

“심상치 않은 괴질이 우선순위. 그리고 그 증상이 자꾸 변해서 당황한 건 사실이다. 채가촌에 와서는 더욱 그런 티가 나더구나.”

평소의 느긋함은 그대로다.

해원기가 가슴팍에 걸린 판과를 만지면서 미간을 좁혔다. 육 년간의 쾌체 일을 함께했던 이 판과가 그런 실마리가 될 줄이야. 소홀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단목정의 말이 더 중요하다.

“증상이 자꾸 변한다? 어떤 병입니까?”

“몰라. 아니, 그냥 감기몸살? 흠, 이런 대답은 우습군.”

신의로 일컬어지는 단목정으로선 우스울지 몰라도, 해원기와 증명단은 조금 의외였다.

증상이 자꾸 변하는 괴질이라더니 그냥 감기몸살이란다.

정수회의 총회가 있는 안경.

처음에는 가벼운 감기몸살 정도로 보였던 환자들이 점차 심각한 증상을 드러냈고, 고명한 의원과 좋은 약을 있는 대로 썼는데도 전혀 낫질 않았다. 그러면서 급격하게 늘어가는 환자에 결국 괴질이 돈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총회에선 마침내 제세성수 단목정을 찾기로 결정했고, 증상이 가장 현저한 중환자 둘을 모든 수단을 이용해 가장 빠르게 약왕당 근처까지 옮겼는데.

먼저 방문한 정일건이 미처 받지 못한 보고가 있었다. 그건 바로 중환자 둘이 안경을 떠나 대별산에 가까워질수록 증세가 호전된다는 것.

그래서 새벽에 채가촌으로 왕진을 갔을 때는 단목정 앞에서 정일건이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고.

동상과 화상 환자를 하나씩 치료한 단목정도 이상한 점을 느끼게 되었다.

“정일건도 매우 놀랐는지 거의 숨김없이 털어놓더구나. 동상 환자는 사십 대 중반, 오랫동안 외공을 익혀 아주 강건한 신체를 지녔고. 화상 환자는 삼십 대 후반, 내공에 꽤 조예를 갖추었으며. 둘 다 정수회 안에서는 손꼽는 인재였다고. 게다가 몇 달간은 안경을 떠난 적도 없었단다.”

상황이 하도 이상해서 그간의 상황을 밝힐 수밖에 없었으리.

‘괴질’이라고 정수회의 이회주가 심야에 약왕당을 찾았건만. 기껏 왕진 온 제세성수 앞에 호전된 환자만 있었으니 엉뚱한 헛소리로 의심받을 터.

“외공을 익힌 자가 동상? 내공에 조예를 갖췄다면서 화상? 그게…….”

“환자들은 어떤 수준이었습니까?”

또 툭 끼어들려는 증명단 대신에 해원기가 짧게 묻자,

단목정이 눈가에 살짝 주름을 잡았다.

“우형을 그저 솜씨 좋은 의생으로 여겨주면 안 되겠니? 훗, 동상 환자는 횡련공부(橫鍊功夫)와 개비수(開碑手)를, 화상 환자는 동자공(童子功)에 중병기(重兵器)를 쓰는 자였다. 아마 일반 방파의 향주(香主)급 이상은 될걸. 그러니까 이상하지.”

단번에 환자들의 무공 내력을 밝히는 단목정이야말로 신기하지만.

증명단이 또 끼어들까 봐 해원기가 얼른 설명을 보탰다.

“횡련공부는 아주 고된 외공 수련법이지만, 개비수는 충분한 근기가 필요한 수법. 동자공은 순후한 내공이라도 유지하기가 어렵고, 대개는 권장을 겸용하지 중병기는 잘 쓰지 않는다. 흠, 정일건의 말과 달리 내외공을 갖춘 상당한 실력자들. 감기몸살과는 거리가 멀군요.”

단목정이 이상하게 느낄 수밖에 없다.

“맞아. 그 정도 실력을 갖춘 자가 동상이나 화상을 입으려면 그에 합당한 환경을 겪어야만 가능하지. 빙천설지(氷天雪地)도, 사막화산(沙漠火山)도 없는 안경에만 있었다는데. 거짓말할 이유가 없어. 게다가 오면서 호전된 것도 틀림없다. 내외공을 갖춘 자들답게 동상과 화상이 차츰 회복되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내가 진료를 마치고 처방한 약은 간단한 것뿐이었다. 현재는 그저 감기몸살에 오래 시달린 증상밖에 없거든. 백초환과 복원고도 필요 없는 괴질이라.”

동상이든 화상이든 심하면 썩어 들어간다.

만일을 위해 내부를 보호하는 백초환과 외상을 다스리는 복원고를 지참했으나.

단목정이 접한 건 경미한 감기몸살. 정일건이 당황해 변명처럼 그간의 사정을 털어놓았으니 어떤 면에선 확실히 괴질이었다.

“그게, 약왕당으로 오면서 호전된 건 아마도. 여기의 영험한 기운 덕에…….”

눈치를 보면서 슬그머니 입을 여는 증명단 덕에,

“하, 그거 좋은데. 증 낭자 말이 딱 내 맘이구나. 왓하하하.”

단목정이 폭소를 터뜨렸고, 해원기도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어처구니없는 농담이지만, 그렇게 여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랄까. 어쩐지 당혹해하는 정일건의 얼굴이 연상된다.

하지만 단목정의 폭소는 금방 멈추었고, 반짝이는 눈이 해원기와 증명단을 차례로 훑었다.

“나도 정일건에게 그런 농담을 건넸었지. 마침 문진(問診)하기에 좋은 기회였거든. 약왕당의 영험한 기운 때문이 아니라면 어떻게 증상이 호전되었을까? 안경에서 오는 동안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리고…….”

잠깐 말을 끊으면서 더욱 낮아진 음성.

“이 괴질의 원인은 무엇인가? 왜 안경에서, 대략 한 달 전부터 시작되었을까? 라고 질문을 던졌다. 이게 만약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적으로 치유되는 병이 아니라면, 병근(病根)을 찾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니까.”

의원이라면 당연한 질문. 환자의 주변 상황을 파악해야 원인을 찾고 그에 맞는 처방을 내릴 수 있는 법.

쓴웃음을 짓던 해원기의 시선이 날카로워졌다.

슬슬 단목정의 말버릇을 알게 되었기에. 이렇게 나중에 꺼내는 얘기에 핵심이 있다.

“원인을 아셨습니까?”

단목정이 눈을 가늘게 뜨면서 머리를 젓는다.

“아니. 정일건이 깜짝 놀라더니 대충 얼버무리면서 바로 작별을 고하더구나.”

의외의 답은 또 증명단을 참지 못하게 한다.

“네에? 그럼 안경이란 곳의 환자들은 어쩌려고? 다 끌고 온대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묻는 말에,

이번엔 해원기가 대답해주었고.

“왜 호전되었는지, 병근이 무엇인지 알았군요. 그 이회주는.”

단목정이 대견한 듯 미소를 짓는 모습에 증명단은 다시 어리둥절해졌다.

병을 고치러 온 자가 어렵사리 신의를 모셔놓고는 신의보다 먼저 원인을 깨닫자 그냥 떠난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단목정이 해원기를 보며 말투를 바꾸었다.

“나를 안경으로 모신다는 얘기도 없던 게 되었으니 네 말이 맞을 거다. 그럼 생각해보자, 시간이 지나서 치유된 게 아니요, 약왕당의 영험한 기운 덕분도 아니라면 그 둘은 어떻게 호전되었을까?”

걸리고 한 달이면 낫는 병이 아니다. 약왕당의 영험함이야 두말할 필요 없는 농담.

해원기가 미간을 좁히며 중얼거렸다.

“시간이 아니라 공간. 안경에서 이곳까지의 거리.”

“그렇게 봐야지. 안경을 떠나오면서 차츰 호전되다가 이 대별산에 들어와선 아예 감기몸살 정도로 변했으니까. 그렇다면 이 괴질의 병근은.”

“안경에 있군요. 정일근은 그게 무엇인지 깨달았고. 그러나 밝힐 수 없는 사정.”

“약왕당의 주인 앞에서도 밝힐 수 없는 무엇이지. 뭔지는 몰라도 상당히 해괴한 물건이다. 꽤 무공을 갖춘 자들이 이유도 모른 채 동상과 화상에 걸릴 만큼. 그런데 우린 마침 휘상에 관해 얘기를 나누었었다.”

해원기의 눈썹이 꿈틀했다.

이 형님이 말투를 바꾸어 빠르게 대화를 진행하는 건 자신이 스스로 생각해 답을 찾게 하려는 의도.

“용문세가의 간세, 중원 천하의 물류를 장악한 소식망…….”

하나하나 따져보면서 머릿속에 서서히 윤곽이 드러나는 어떤 형태.

단목정이 얼른 또 하나의 단서를 추가해준다.

“괴질의 발병은 한 달 전쯤이라고 했지만, 환자 둘은 몇 달간 안경을 떠나지 않았다고 했다. 감기몸살은 주로 환절기에 생기지.”

휘주의 안경은 남쪽에 속하는 기후. 북쪽보다는 봄이 빠르다. 최근의 환절기는 겨울에서 봄으로 바뀌는 때. 즉 입춘이 지나서다.

무공을 익힌 자도 걸리는 괴질. 억울하게 독살당한 화전민 마을.

입춘이 지나고 무슨 일이 있었나? 흥륭에서 비천무영 황정리를 통해 용문세가를 만나기 전.

해원기의 눈이 번쩍 빛을 발했다.

“설마.”

답은 나왔고. 단목정이 천천히 젓가락을 들었다. 지금까지 좁쌀죽만 마시다가 이제야 뭘 집어 먹으려나.

젓가락이 집은 건 바로.

“그 병근이 이 오리 알이 아닐까.”

탁자 위에 아침 식사로 차려진 피단을 가리킨 게 아니다.

두 사람의 대화를 어떻게든 쫓아가려고 열심히 머리를 굴리던 증명단이 소스라치게 놀랐다.

아홉 개의 금오혈석. 그중 하나가 안경에, 정수회의 총회에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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