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장 청명상하(淸明上河) (4)
다각다각.
말이 네 필이나 끄는 마차, 꽤 속도를 내는데도 밑에 판자를 덧대고 바퀴에는 부들까지 감은 고급마차라 진동이 크지 않다.
그런 마차가 두 대, 모두 용문세가의 표지를 높이 매달았고, 행렬의 전후에는 말을 탄 무사들이 십여 명이나 호송한다.
웬만한 표국의 표행이나 관아의 압송에 버금갈 규모. 게다가 하남 땅이다. 한껏 용문세가의 위용을 과시하는 행차라 너른 관도를 빠르게 달린다고 누가 감히 불평하겠나.
그렇게 중간에 쉬지도 않고.
상구에서부터 달려온 마차 행렬이 당당하게 개봉 성문을 통과했다.
그 안에 누가 탔고, 무엇이 실렸는지 궁금해 하는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개봉은 송나라 때 도읍이었던 고성(古城).
당시 변경(汴京)이라 불렸던 곳답게 여전히 번성한 고을이라, 슬슬 해가 저무는 시각이 되었는데도 오히려 활기가 더해지는 듯.
곳곳에서 줄지어 매달리는 등롱이 밤이 되면 불야성을 이룰 번화한 지역도 그렇지만, 중심지에서 벗어난 외곽에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어울린다.
동서남북을 막론하고.
서북쪽에서 흘러들어오는 강. 개봉 성내를 구불구불 돌아가는 이 강의 이름이 변하(汴河)고, 변하의 양쪽 기슭을 따라 사람들이 모여 살기 시작했다나.
다닥다닥 붙은 가옥들에서 조금 떨어진 언덕, 나지막한 담장과 다듬어진 화원을 갖춘 동산이 바로 응방원이다.
막 정문을 통해 들어와 안쪽의 아담한 정자로 향하던 증명단이 머리를 설레설레 저었다.
“무슨 사람이 이리 많대. 아까 도착했을 때도 그랬는데, 어째 날이 저물수록 점점 더 늘어나는 거지? 개봉 사람들은 잠을 다 밖에서 자나?”
앞서서 일행을 인도하던 오보혜가 입을 가렸고, 뒤에서 따라오던 오소민이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그거 재미있는데. 개봉 사람들이 들으면 전부 기함할 소리구먼. 전부 거지 취급이라니.”
다들 미소를 머금었다.
항산에서 갓 내려온 소녀. 물론 태원이라는 큰 고을을 보았겠지만, 태원이 아무리 산서의 중심지라 해도 개봉과 비교하는 건 무리다.
소위 촌사람의 서울 구경인 셈이라. 증명단의 놀라움을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과묵한 악송령조차 여기 오는 동안 두리번거리지 않았나.
맨 뒤에서 호로병을 홀짝거리던 단삼육이 코웃음을 쳤고.
“흥, 아무나 거지 하는 줄 알아? 총단 거지들은 그래도 지붕은 이고 잔다고.”
밖에서 잔다고 다 거지는 아니란다.
무공화상이 늘어진 얼굴로 피식거리다가,
“그게 그런 얘기가 아니잖아. 하여간 거지들은, 아미타부르.”
째려보는 단삼육의 눈을 피해 얼른 불호를 외우는데,
바로 그 옆.
“놀고 있네. 어린 낭자가 처음 낯선 구경에 신기해하면 제대로 설명할 생각부터 할 것이지. 너희가 그러고도 무림의 선배냐?”
벌컥 화를 내는 거친 목소리 하나.
반백의 머리를 낡은 동곳으로 묶어 올렸고, 부릅뜬 눈에 뻗친 수염이 어지간히 성질 사나운 인상. 걸친 도포와 등에 멘 송문검(松紋劍)이 아니라면 뒷골목의 못된 깡패인 줄 알았을 외모다.
목소리가 얼마나 카랑카랑한지.
웃음을 터뜨렸던 오소민과 말을 꺼낸 증명단까지 찔끔해서 입을 다물 정도.
거친 말투? 막돼먹은 성격? 오소민의 자유분방함도, 증명단의 급한 성격도 이 도사를 만난 후에는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그야말로 시도 때도 없이 화를 내는 도사, 바로 풍진삼우의 마지막 한 사람인 노도 부덕도인.
증명단이 살짝 뒤를 돌아보다가 어깨를 움츠렸다.
상구에서 출발하기 직전에 들이닥친 부덕도인은 취개와 무공화상보다 어떤 면에선 더 심해서,
얼마나 쉬지 않고 달려왔는지 전신에서 흙먼지를 피워 올리며 등장, 오소민을 잡아먹을 듯이 몰아대다가 취개의 호로병을 뺏어 마구 들이키고, 무공화상을 때릴 것처럼 난리를 치더니.
마침내 해원기의 정체를 알고는 그 자리에서 기절해버렸다.
풍진삼우에 속하는 기인이 눈앞에서 꼴딱 기절하는 모습은 그 이전의 모든 광태보다 더 충격적이었고,
곧장 깨어나 깍듯하게 예를 차리는 건 또 얼마나 괴상하던지.
삼우가 아니라 삼괴(三怪)가 어울리겠다고 종알거리는 소리를 듣고는 또 엉뚱하게 셋이 함께 처량한 표정을 보이는 건 또 뭐람.
하여간 상식 밖의 사람들. 같은 마차를 타지 않은 게 그나마 다행이다.
그런 생각을 하던 증명단에게 해원기가 말을 걸었다.
“지금이 청명 때라서 그렇단다. 개봉 사람들은 예로부터 청명 때가 되면 삼삼오오 변하 강변으로 모여 즐겼다고 하지. 오면서 차관(茶館)을 많이 보았잖니. 그게 다 이런 풍속 덕분일 게다.”
차분한 설명. 주루와 차관에도 그렇게 많은 사람이 들어찬 걸 처음 보았던 증명단이다.
“청명 때면 보통 소묘(掃墓)하러 가는 거 아녜요? 여긴 좀 다르네.”
아직 많은 곳을 보지 못했지만, 세상 사는 게 뭐 그리 다르랴. 청명의 풍속은 후손이 선조의 묘를 쓸고, 절하여 만나 뵙는 일.
오소민이 얼른 끼어들었다.
“개봉도 마찬가지야. 하지만 여기는 송나라 때 도읍이었던 까닭에 시집(市集)과 유흥이 많이 발전했거든. 그래서 집안 식구들이 죄다 모여 소묘를 한 후에는 같이 노는 명절처럼 된 거지. 장사하기 좋은 환경이잖아. 그래서 청명상하도(淸明上河圖)라는 유명한 그림도 남아있다고.”
오보혜가 힐끗 돌아보았다.
“마침 우리가 가는 방화정(訪花亭) 한쪽 벽면에 그 모사가 있어. 그걸 보면 단매가 당시 개봉이 얼마나 번성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거야.”
설명을 보태면서 오소민을 보는 시선이 묘하다.
이런 걸 어떻게 아는 걸까. 거지라면서.
준수한 외모에 풍류 공자다운 차림새. 그 신분을 몰랐다면 제대로 공부한 귀한 집 자손이라 여겼을 터.
무인 같지 않은 건 해원기만이 아니다.
오보혜가 조금 걸음을 빨리했다.
“그럼 제가 먼저 가서 알리겠습니다.”
이곳의 지주는 개방, 오늘의 주최는 용문세가. 개방은 이미 풍진삼우의 취개를 보냈으니, 용문세가에는 오보혜가 알리는 게 순서다.
상의할 얘기가 적지 않은데, 용문세가는 아직 해원기가 누군지도 모르잖나. 오보혜가 서둘렀다.
증명단은 조금 어리둥절했지만, 일단 골치 아픈 얘기를 듣지 않아서 좋았고. 또 다 함께 소위 청명상하라는 구경을 할 수 있는 게 즐거웠다.
용문세가의 이가주라던가.
금은을 새긴 관(冠)에 윤기가 반들거리는 비단옷, 단정한 이목구비에 깔끔하게 손질한 삼각 수염까지. 그림에서 빠져나온 듯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외모가 그야말로 귀인(貴人)에 어울리는 어르신.
돌아가며 인사를 하고, 오보혜를 무사히 지켜준 것에 대한 감사를 받고.
그런 의례가 끝나자 다들 우르르 나오게 되었다. 벽면에 새겼다는 청명상하도는 제대로 구경하지도 못했는데.
취개 단삼육과 해원기만 남아서 그 이가주라는 사람과 따로 얘기를 하는 듯.
그러나 그것도 금방 끝나서 해원기가 바로 나왔고.
그게 반 시진도 걸리지 않았다.
일행이 천천히 걸어 응방원의 입구에 이르고 나서야, 증명단은 비로소 뜻밖의 이별을 알게 되었다.
“해 소협, 그럼 소림에서 뵙기를. 아미타부르.”
“멍충아, 약왕당은 무당산과 더 가깝다고. 억지로 숭산으로 초대하지 말라니까. 감히 회주(會主)께…….”
무공화상에게 소림으로 간다는 약속을 했었나. 거기에 화를 내는 게 부덕도인답지만.
부덕도인은 왜 해원기를 회주라고 부르는 걸까.
어떻든 풍진삼우라는 괴상한 양반들과는 만난 지도 얼마 되지 않았고, 함께 다니면 힘들 것 같아서 헤어지는 게 낫다.
그러나.
“귀찮아하시는 건 알지만, 세가에 직접 모셔 감사를 표하지 못하는 게 아쉽군요. 덕분에 무사히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단매를 많이 보살펴주세요.”
오보혜가 배웅하러 나왔다는 걸 깨달을 때까지 함께 간다고 착각했었다.
본래 이 여정은 오보혜를 호송하는 것. 이가주라는 어른을 무사히 만났으니 헤어지는 게 당연하잖아.
“막돼먹은 여동생이랑 무뚝뚝한 친구. 고구마 대장과는 딱 어울리는 조합이구먼. 훗, 구경 잘 하라고.”
하지만, 오소민까지 히죽 웃으며 작별을 고하는 데에는.
청명상하의 구경이라는 즐거움도 사그라들었다.
해원기가 마주 웃는 낯을 보였다.
“끝까지 놀리는구먼. 그나저나 나 때문에 괜히 자네만 피곤하게 되었네.”
“뭐, 어쩔 수 없지. 슬슬 잡혀갈 때가 되었거든. 대사 형이 직접 보자고 하는 데야. 놀 때는 놀지만, 그래도 순행장로잖아. 방주님 명은 따를 수밖에. 후딱 끝내고 바로 따라갈 거야.”
언제 이렇게 결정되었을까.
오보혜도, 오소민도 다 각자의 사정이 있구나.
비로소 세상의 물정이 얼마나 복잡한지 조금은 알게 된 증명단이 시무룩했다가 오소민의 마지막 말에 반짝 생기를 되찾았다.
“다시 올 거예요?”
“당연하지. 그 오리알 도적놈들 다 찾을 때까지 해형이랑 같이 하자고 약속했으니까. 게다가…….”
목소리를 확 낮추어,
“소단, 너는 고구마 대장이랑 무뚝뚝이랑 가는 게 마음이 놓이냐?”
귓가에 속삭이는 소리에 증명단이 키득거렸다.
고구마 대장 해원기, 무뚝뚝이 악송령. 확실히 숨 막히는 여행이 될 소지가 충분하다. 오소민이 있어야 그래도 숨통이 트일 터. 평소 모습으로 돌아온 증명단을 보며 피식거리던 오소민이 악송령에게 얼굴을 돌렸다.
“이런 소리 할 정도로 친분이 있진 않으나. 음, 해형을 잘 부탁하오.”
역시 말없이 고개만 끄덕이는 악송령이지만, 그걸로 충분하다.
마지막에 해원기의 어깨를 살짝 두드리는 거로 인사는 끝.
해원기가 몸을 돌렸다.
해원기, 악송령, 증명단. 셋으로 줄어든 일행은 이제 개봉을 떠나 남쪽으로.
귀공자를 모시는 시비와 요리사로 분장할 이유도 없고, 딱히 남에게 부탁받은 일도 없다.
우연히 흥륭에 들르면서 용문세가가 낀 상계의 사건에 휘말렸지만,
이제는 본래의 목적에 집중할 때.
약왕당에 간다.
가만히 찻잔을 어루만지던 용문세가의 이가주, 엄정원이 짧게 탄식했다.
“허, 그분과는 전혀 다르지만, 역시 그분의 제자랄까.”
맞은편에 앉아 호로병을 기울이던 단삼육이 웃기 시작하고,
“흐흐, 누가 거스를 수 있겠소? 듣자 하니 이가주는 과거에 그분을 직접 뵌 적이 있다고. 그럼 해 소협이 어떨지 대강 짐작할 텐데.”
살짝 놀리는 듯하지만, 엄정원이 고개를 흔들었다.
“아닙니다. 당시에는 제가 너무 어려서 뭐가 뭔지 몰랐지요. 나중에야… 교(喬) 노인에게도 엄청 무례했었으니. 늦게 사부를 모신 제가 감히 해 소협의 경지를 엿볼 재간이 있겠습니까. 흐음, 그보다 동창이라. 어쩔 셈일까요?”
용문세가의 이가주지만, 강호에선 단삼육이 훨씬 선배.
화제가 바뀌자 단삼육도 호로병을 내렸다.
“함부로 추측하긴 어렵소. 동창은 이미 강호에 적잖이 끼어든 흔적이 있으나, 그게 당금 황상의 뜻인지, 아니면 다른 배후가 있는지는 아직 모르지. 이가주도 잘 알겠지만, 근 이십 년, 강호는 회복과 재건에 몰두하느라 다른 데 눈을 돌릴 틈이 없었고. 그게 사람들을 적잖이 평화와 안녕에 젖게 했나 보오. 그런 환경이 결국. 쯧.”
마음에 들지 않는 얘기. 혀를 차는 소리에 엄정원도 인상을 굳혔다.
“압니다. 허나 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 오죽하면 제가 호가삼원을 이끌며 이가주라는 과분한 자리에 앉았겠습니까. 무(武) 쪽이 무너진 후에 관(官)과 상(商) 쪽까지 거의 잃었으니 복구하는 데 이십 년도 짧았습니다. 비단 세가만이 그랬겠습니까. 그게 엉뚱한 것들이 끼어들 틈을 주었겠죠. 그래서 용문을 노렸다라. 이번엔 아주 우습게 보였군요.”
흥륭에게 손해를 끼치기까지 했으니 이를 갈만하다.
그렇지만 단삼육은 이런 반응을 기대한 게 아니어서. 내렸던 호로병을 도로 들었다.
멍충이와 울화통이 돌아오기 전에 미리 말할 게 있었지만, 초점이 자꾸 빗나간다.
이가주, 엄정원. ‘그분’을 직접 뵌 적이 있다면서, ‘교 노인’도 알면서. 왜 해원기가 인사만 마치고 떠나갔는지 모르나?
아니, 해원기가 출두한 의미가 뭔지 알기는 하는 걸까.
술맛이 영 느껴지지 않는 단삼육의 시선이 응방원의 입구 쪽을 향했다.
절령제오(節令第五) 청명(淸明) 기이답청(其二踏靑)
이른바 청명풍(淸明風)은 동남쪽에서 불어온다. 동남쪽은 곧 손(巽)의 방위, 역(易)에서는 제호손(齊乎巽)이라 하는데 제(齊)는 결제(潔齊)라, 모든 것이 깨끗해진다는 뜻이다. 그런고로 이때가 되면 기운은 맑고(淸), 경치는 밝아져(明), 만물이 모두 씻긴 듯 또렷해지는 법.
마침내 난화(暖和)한 봄. 춘(春)은 본디 출(出)이니 겨우내 옴츠렸던 사물이 바야흐로 생기를 맞이하러 나가도다.
사람도 이에 목욕하여 상서롭지 못한 것들을 털어내고, 들에 나가 생육(生育)의 기미를 받아들이니. 젊은 남녀가 기쁘게 모여 함께 노래하고 함께 춤춘다.
이런 봄놀이가 답청(踏靑)이라. 물을 가로지른 고량교(高樑橋)를 지나 물가에 가득한 푸른 풀을 밟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