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장 조양신문(朝陽神門) (4)
해원기의 얼굴이 굳어지는 걸 느꼈는지 오소민이 얼른 머리를 흔들었다.
“아니, 함부로 단정하는 건 옳지 않군. 역사상 정상적인 종교가 필요에 따라 사교로 지정된 경우가 적지 않았으니까. 기존의 권력이 자신에게 이롭지 않다고 여기면 얼마든지 이단(異端)으로 몰아붙이지.”
오보혜가 새삼스럽게 오소민을 돌아보았다.
“별 걸 다 아는군요. 맞아요, 대진경교(大秦景敎)나 배화교(拜火敎), 심지어 라마교(喇嘛敎)도 사교라는 멍에를 뒤집어썼죠. 물론 그들의 교의(敎儀)가 독특하고 고립적인 면에서 기인한 것도 있지만. 그러나 이런 사교의 출현에는 무엇보다 조정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법. 민심의 이반을 초래해 황권(皇權)을 위협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죠.”
‘신앙’의 특징을 짚으면서 대답을 기대한 건 해원기였다.
조규헌과 학생들을 유심히 관찰하면서 해원기 또한 암암리에 그들의 언행을 살폈음을 알았기에. 일정을 핑계로 조양신문을 방문하려는 귀공자를 번갈아 말린 것도 그런 이유.
그런데 대답은 오소민. 게다가 관련된 지식도 상당하다.
아무리 개방 신비의 순행장로라고 해도 그렇지. 이런 판단과 개념은 체계적으로 학문을 닦고서야 얻을 수 있거늘.
신비한 건 해원기만이 아니다.
역사상 사교로 몰렸던 종교들을 열거하며 다시 오소민의 반응을 들어보려는데.
이번에는 해원기가 말을 받는다.
“뒤집어서 생각하면 종교의 외형을 빌리는 것만큼 민심을 호도하기 쉬운 게 없지요. 혹세무민(惑世誣民)이란 상투적인 용어를 그리 좋아하지 않지만, 사술(詐術)은 목적을 이루는 가장 편리하고 유용한 수단이라고.”
‘배웠습니다.’라는 뒷말은 굳이 할 필요가 없다.
당세 무림의 중흥기를 맞기 전, 사악한 음모가 얼마나 오랜 세월, 많은 이들을 농락했던가.
예상이 거듭 어긋난 오보혜가 해원기를 보다가 움찔했다.
해원기의 얼굴. 처음 보는 것 같다.
더벅머리에 평범한 용모, 흥륭 황부에서 깔끔한 흑의 경장으로 갈아입었어도 가슴팍에 달린 판과며 주머니가 늘어진 허리띠가 여전히 허름한 티를 내고.
놀라운 무공을 지닌 신비한 인물이지만 말할 때는 여지없이 답답하고 고리타분하다. 오죽하면 오소민이 ‘바부탱이’나 ‘고구마 대장’이라고 놀릴까.
그러나 지금은.
두 눈 깊숙한 곳에 불꽃이 피어오르는 것 같고, 굳어진 표정은 똑바로 보기 어려울 만큼 엄숙하다.
무섭다.
증명단이 바로 입을 놀리지 않았다면 저절로 시선을 내렸을 정도.
“사교면 관청에서 더 난리를 치잖아요. 삼교(三敎)라고 떠들면서 엉뚱한 수작을 부리는 것들도 있고. 그런데 이렇게 당당하다? 말이 안 되는데. 그 철패로 강도질한다는 것도 믿기 어렵다고요.”
사교니 혹세무민이니 어려운 얘기가 나오면 지루하다.
성질을 돋우는 흥미진진한 사건이 될 줄 알았더니 이야기가 엄한 곳으로 빠져서 괜스레 심드렁해진 증명단.
해원기의 굳었던 얼굴이 풀렸고.
“그렇구나. 아직은 아무것도 모르지. 하지만 그 당당한 게 제일 걸린다.”
“음?”
악송령이 밀어준 밀삼도나 한 점 집으려던 증명단이 머리를 발딱 젖혔다.
오소민과 오보혜와 달리 해원기는 그래도 자기 말을 잘 받아준다. 답답하긴 해도.
“아까 관핍민반이라고 했지. 백성들 편에 서서 부당한 압박에 저항한다, 그러면 금세 민심이 쏠리기 마련. 그런데 무슨 종교 조직처럼 몰려다니는 데도 별달리 제재를 받지 않아. 특히…….”
증명단을 보면서 손짓으로 가리키는 오소민과 오보혜.
“산동 대부분에 동지가 퍼져있다고 했는데 다 처음 듣는 이름이잖으냐. 제남에서도 그렇고.”
증명단이 가리키는 대로 두 사람을 차례로 보다가 밀삼도를 날름 입에 넣었다.
개방과 용문세가. 그리고 흥륭과 황하문.
용문세가야 낙양에 있으니 그렇다 쳐도, 개방은 천하에서 가장 정보에 밝은 조직이요, 흥륭과 황하문은 산동의 중심에 근거지를 갖고 있는데.
조양신문을 모른다.
눈동자를 굴리던 증명단이 달콤한 밀삼도를 씹지도 않고 꿀꺽 삼켰다.
“민심은 얻는데 소문은 나지 않는다. 세력을 넓혀도 아는 사람이 없다. 에? 그게 가능해요? 짜고 치는 야바위가 아니고서야.”
“흐흥.”
“그렇지요.”
오소민이 가벼운 웃음을 더하고, 오보혜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견한 듯 바라보는 시선.
“총명한, 소녀요.”
심지어 악송령까지 칭찬해주니 증명단의 입이 헤벌쭉 벌어진다.
“헤헤, 뭐. 그런데 해 사부는 고구마 대장인데도 잘도 그런 생각을 하네요.”
어째 겸양의 말이 이상하게 어긋나는데.
‘고구마 대장’은 눈썹에서 손을 떼며 나직하게 중얼거린다.
“엄청난 사기극이 뭔지 배웠거든.”
너무나 작아서 잘 들리지 않는 혼잣말.
천하를 백 년이나 속였던 망령이 어떤 것인지 그보다 잘 아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관청과 짜고 민심을 얻는다. 어차피 민심을 얻기 위한 수단이었으니 나중에 사교라고 몰릴 일도 없을 터.
관의 비호를 받고 민심을 등에 업으면 여간해선 외부로 소문이 새어나갈 염려가 없다.
우아한 태도, 고풍스러운 언사. 문무를 겸비하고 지역을 바탕으로 한 보편적 신앙을 세운다. 뿌리를 탄탄히 할 때까지 들키지 않는다.
“이 부근은 전통적으로 무관이 없지. 유가의 본고장이라.”
오소민이 설명을 보태자, 악송령도 짧은 말을 더했다.
“동쪽은, 군부가.”
악송령은 내주 출신, 해적과 왜구 때문에 어려서 군에 팔려갔다는 얘기를 했었다. 즉 태산과 곡부, 그리고 동쪽 연안까지는 이렇다 할 문파나 무인이 없다는 뜻.
그래서 조양신문이 더 노출되지 않았을 터.
한데 해원기가 살짝 머리를 저었다.
“아니. 장구한 역사를 지닌 문파가 하나 있었네. 태산의 검보다 더 오래된.”
좌중이 동시에 해원기를 쳐다봐야 했다. 나름 지금까지의 분석을 정리하려고 보탠 설명인데.
다들 들어본 적이 없다. 백여 년 전에 멸문된 태산파보다 더 오랜 전통의 문파가 있었다니.
“어떤 문판데요?”
증명단의 급한 물음에 해원기가 미소를 지었다.
하여간 무림에 관해서만은 관심이 많은 소녀다.
“신유문(神儒門)이라고 유가의 문파란다.”
“그거, 조양신문이랑 비슷하게 들리네요. 그런데 유가의 문파? 유가도 무림에 있나?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허여멀건 한 책벌레가.”
“허. 그건 몰랐지만, 나도 소단하고 같은 생각인데.”
개방 장로도, 용문세가의 대소저도 궁금하긴 마찬가지.
유생처럼 꾸미고 다니는 무림인이 없지는 않다. 그러나 그건 전부 개인의 취향이거나 정체를 숨기려는 수단일 뿐, 실제로 유가 출신의 무인은 듣지도 보지도 못했거늘.
유가란 본디 무(武)를 경시하지 않던가.
해원기가 멋쩍게 입맛을 다셨다.
“그게, 음. 옛날에는 아주 소수지만 고심한 무공을 지닌 유문(儒門)이 중원의 남북에 있었다고 하네. 여기 산동의 신유문과 호남(湖南)의 대아지당(大雅之堂). 물론 유가 출신의 개인으로 무림에서 일가를 이룬 이도 있었고. 물론 이 또한 백 년 정도 된 얘기라. 그래도 전통이란 게 그리 쉽게 사라지진 않으니까.”
“그럼요!”
누구보다 크게 긍정하는 증명단. 그녀 또한 항산의 검을 잇지 않았나.
그런데.
해원기는 자신을 향하는 좌중의 묘한 시선에 어색해져서,
대화 중에 주의를 끌었던 몇 가지를 깜빡 잊었다.
오소민이 철패를 들며 좌중을 둘러보았다.
“자, 대강 얘기는 끝났으니 마저 먹고 일어서지. 이게 무슨 수작인지 어차피 드러날 테니, 흥, 아예 드러나기 전에 움직이면 어떠려나. 본 공자께서는 태산에 흥미를 잃었거든. 속히 속히 가보자고.”
우연히 마주치게 된 조양신문.
지금은 그쪽에서 건드리지 않는 이상 굳이 먼저 찾을 필요가 없다.
이번 여정은 종적을 드러내지 않는 게 우선. 괜히 귀찮은 일에 얽혀서는 안 된다.
먹고 자고.
사람은 쉬지 않고선 버틸 수 없다.
원래 대묘에서 아침 식사를 마치면 잠시 눈을 붙일 생각이었으나, 조양신문과 마주치고서 더는 머물 마음이 들지 않았다.
낮의 이동은 편하지 않다. 밤에는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경공을 쓸 수 있기에 제남에서 태산까지 밤을 도와 이를 수 있었지만.
해원기의 제안으로 마차를 이용하기로 하고, 아예 포장을 두른 작은 마차 하나를 구매해버렸다.
“비녀 둘에 요리사 둘까지 대동한 부잣집 공자님 행차잖아. 돈을 물 쓰듯 하는 기개가 있어야지. 어험.”
오소민의 떳떳한(?) 이유 덕분에, 해원기와 악송령은 어자석(馭者席) 신세. 귀공자께서는 문무쌍비와 함께 마차 안에서 쉬신다.
포장이 열리며 오소민이 그 잘생긴 얼굴을 내밀었다.
“마침 두 사람 다 몰 줄 알아서 다행이야. 춥지는 않지?”
해원기가 고삐를 쥔 악송령을 보곤 고소를 지었다.
“왜, 안이 따뜻해서 미안하던가? 괜찮네. 자네도 좀 쉬어. 나중에 악형과 교대해주고.”
“미안하긴, 도리어 불편해. 아가씨 두 분이 정좌하고 계시는데 혼자서 뒹굴 거릴 수는 없잖아. 아주 곤욕스러워. 악형, 악형이 먼저 쉬겠소?”
인상을 쓰며 건네는 말에 악송령은 돌아보지도 않고 머리만 흔들어서.
“쳇, 별수 없군. 그럼 이대로 얘기나 하면서 가지.”
오보혜와 증명단이 조식(調息)에 들어가자 어지간히 심심한 듯.
“소단도 오 소저가 정좌하는 걸 보더니 냉큼 따라 하더라고. 꼬맹이가 다른 건 몰라도 무공에는 아주 열심이야. 해형이 복룡검식을 전수해준 게 꽤 충격이었나. 제멋대로 설치는 급한 성격이라 좀 의외더군. 아, 그러고 보니 악형은 나이가 어떻게 되오?”
증명단은 아예 소단이라 부를 셈인가 보다. 그만큼 나이 차이가 나니.
처음엔 되바라진 애송이라고 상대도 하지 않다가, 이젠 꽤 마음에 드는 모양. 혼자서 입을 놀리다가 갑자기 악송령의 나이를 묻자.
느긋하게 고삐를 쥐었던 악송령의 손이 살짝 흔들렸다.
“금년에…스물아홉.”
“오, 나는 스물다섯이오만. 그래도 악형은 그 나이로 보이지, 해형이 스물여덟이라고 밝혔을 때는 깜짝 놀랐다오. 나랑 비슷하게 봤거든. 그럼 태산에서 가져온 자루에는 악형의 애병(愛兵), 칼이 들었겠지요?”
힘이 빠지는 손등, 악송령은 여전히 앞만 보고.
“모양만, 잡았고. 완성은 멀었소.”
“호오, 그 말은 악형이 직접 만든다는 건데. 대단하구려, 자신의 병기를 스스로 제작하는 경우는 드물지. 모양이라면, 어떤 모양일까?”
해원기가 난감한 뜻 중간에 끼어들었다.
“악형은 말하는 걸 그리 좋아하지 않아. 자네도 알면서.”
누구라도 꼬치꼬치 캐묻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슬쩍 악송령을 감싸주자 오소민은 더 흥이 난 듯.
“그러니까 더 자주 대화를 해야지. 해형도 처음에 막 떠들어대서 그나마 악형이 알아준 거잖아. 그리고 공부도 끝났으니 이젠 빨리 말을 되찾게 도와야 하지 않겠어? 뭐든지 연습, 연습이 가장 중요…….”
“환수도(環首刀).”
귀가 덜 시끄러우려면 빨리 대답하는 게 낫다. 악송령이 얼른 말을 받자, 오소민이 궁금한 얼굴을 더 내밀었다.
“환수도? 이것도 잘 모르겠.”
“흔히 환도(環刀)라고 하는 걸세. 다만 환도보다 칼등이 두텁고 송곳 형태에 휨이 적어서 요즘은 보기 힘들지. 상당히 고대에 만들어진 도의 추형(雛形)이랄까. 장도지조(長刀之祖)라고도 불리며 얼핏 보아선 장검으로 혼동하기 쉬운데, 다만 호수(護手)가 없어. 흠, 그 칼은 악형의 스승님, 그 도사라 불린 분에게 배웠소?”
손잡이 끝에 커다란 고리 모양이 달린 칼. 악송령 대신에 자세한 설명을 해주던 해원기도 궁금해졌다.
환수도란 이름도, 그런 칼도 당세에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군에서는 장도보다 장병도가 주력이고, 휴대에 간편한 칼이라면 차라리 간단한 판도(板刀)가 낫다. 당연히 무림에는 더 다양한 칼이 있어서, 종잇장처럼 얇은 면도(緬刀)며 방울이 아홉 개나 달린 구환대도(九環大刀), 손잡이에 귀신의 머리를 매단 귀두도(鬼頭刀)에 톱날을 단 거치도(鋸齒刀) 따위까지.
수많은 병기를 공부한 해원기조차 아직 환수도를 실제로 본 적은 없다.
사부에게 물려받은 고죽의 검, 그 검이 만들어졌을 때만큼 예전에 출현했던 도. 완성은 안 되었다지만 그런 칼을 만들었다니.
“그렇소. 환수도, 바로 담도(膽刀)라고.”
“으응?”
오소민이 내밀었던 머리를 해원기에게 돌리며 눈을 껌뻑였다.
담도. 얼마 전에 해원기와 하북 팽가를 논하면서 거론했던 단어인데.
공교롭다는 생각이 절로 들 때,
악송령이 고삐를 은근히 당기며 다시 입을 열었다.
“해 사부, 오 공자, 저 앞에, 말 탄 이.”
대화 중에도 앞만 보고 있던 악송령이라 멀찍이 보이는 형상을 먼저 알아봤고. 그 즉시 호칭도 바꾸었다.
과연, 꽤 먼 거리에서 천천히 움직이는 말과 그 위에 올라탄 사람. 일행의 마차와 같은 남쪽을 향하고 있다.
절령제오(節令第五) 청명(淸明) 기일행청(其一行淸)
북두칠성(北斗七星)의 두병(斗柄) 끝이 정동편남(正東偏南)의 을위(乙位)를 가리킨다. 이때가 되면 생기가 왕성해지고 찬 기운이 쇠퇴하며, 하늘은 청신(淸新)하고 대지는 명랑(明朗)하다.
천지가 묵은 것을 내뱉고 새로운 것을 들이는 토고납신(吐故納新)을 실감하는 이는 오로지 사람일지니. 천지(天地)와 함께 인(人) 또한 기리도다.
이에 하늘이 되어 나를 낳으시고, 땅이 되어 나를 기르신 선조를 찾아 삶의 근본을 되새기나니, 이를 행청(行淸)이라 한다.
행청이 무엇인고? 후손이 선조의 묘를 쓸고(掃墓), 절하여 만나 뵙는(祭祖) 일이로다.
선조를 어찌 공경할꼬? 계지술사(繼志述事)러니, 그 뜻을 잇고 그 일을 좇는 것이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