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장 덕주배계(德州扒鷄) (1)
오소민의 외양은 전형적인 귀공자. 긴 머리를 틀어 올려 검은 비단으로 동여 묶는 치촬(緇撮)이란 머리 모양이지만, 양곡현에서 볼 때부터 느슨하게 풀려서 머리칼이 양쪽 귓가로 부스스하게 흘러내렸다.
워낙 잘생긴 얼굴이라 이 흐트러진 모습도 멋진데.
지금은 두 손으로 흘러내린 머리칼을 꼬면서 오만상을 쓰는 중.
“에, 내가 해형의 아버지가 될 수는 없는 노릇이고… 대체 뭔 소리를 하는 건지. 쩝.”
한참 해원기를 몰아붙여서 좋았건만. 뜬금없이 우중충한 표정을 짓다가 기이한 눈빛으로 엉뚱하게 사부 얘기를 꺼내는 사람.
어디 딴 세상에 갔다 왔나. 영 따라갈 수가 없다.
해원기의 심해와 같던 눈이 다시 심연으로 돌아왔다.
“오형 덕분입니다. 제가 얼마나 부족한지 깨달았습니다. 오형을 만나지 못했다면 헛걸음만 거듭하는 바보가 되었겠군요.”
“물론 바부탱이, 흡. 아아, 그 얘기는 아니고.”
오소민이 얼른 머리칼을 꼬던 손을 내저었다.
해원기가 대뜸 손가락 두 개를 내미는 바람에.
속으로 하던 욕이 툭 튀어나왔지만 저 두 손가락은 영 찜찜하다.
“더 가르침을 받고 싶은데. 그러려면 아까 약속한 대로 오형이 두 가지를 알려주어야 합니다.”
두 가지. 요성의 어디서 누구에게 얻은 정보인가.
빡빡하게 거래만 따진다고 투정할 생각도 나지 않는다.
해원기의 표정이 진지해서 오소민이 입맛을 다셨다.
“쩝. 어쩔 수 없지. 약속은 약속. 요성 제일의 기루인 만홍원(滿紅院)의 주사야(廚師爺)에게 들었어.”
또 기루인가.
주사야라면 기루의 주방장을 높여 부르는 호칭. 양곡현에서는 음식을 훔쳐 나오더니 여기는 아예 주방장과 거래를 텄나.
그렇다고 이게 신빙성 있는 정보라는 근거가 되진 않는다.
해원기가 말없이 손가락을 펴고 있어서 오소민이 할 수 없다는 듯 계속 입을 놀렸다.
“에, 하오문(下五門)이야, 하오문. 방주 사형의 뜻으로 하오문을 보호한 지 십 년이 넘었고, 그러면서 자연히 더 많은 걸 알게 되었어. 어떤 경우에는 거지보다 더 깊은 내막을 듣는 이들이잖아.”
해원기의 눈썹이 꿈틀했다.
하오문. 어떤 문파를 지칭하는 말이 아니다. 강호상에서는 여러 가지 의미로 쓰이지만, 일반적으로는 사회의 가장 밑바닥 일을 하는 이들, 예를 들자면 무덤을 파거나, 꽃을 팔거나, 기예를 팔거나, 측간을 푸거나, 몸을 파는 일 등에 종사하는 자들을 통틀어 가리킨다.
기루의 기생도, 그 기루에서 요리를 만드는 주방장도 결국은 천역(賤役). 호화로운 분장과 값비싼 요리는 다 수단일 뿐, 사실은 창녀와 백정에 불과하다.
불쌍하다면 불쌍한 인생, 그러나 어떤 면에서 백성들은 이들을 더 천대하기 일쑤.
왜냐하면.
“재인(宰人)의……?”
턱없이 바가지를 씌워 돈을 뜯어낸다는 속어가 해원기의 입에서 나오자 오소민이 가볍게 코웃음 쳤다.
“흥, 이런 건 잘 아네. 그래서 이게 대외적인 비밀이라고. 사람들은 천역에 종사하는 이들을 그냥 하오문이라고만 하지, 사실 하오문에도 흑백(黑白)의 구분이 있다는 생각은 안 하니까. 남의 약점을 노려 등쳐먹으려는 못된 것들과는 거래할 리가 없잖아. 그래서… 아, 귀찮아! 대강 그런 줄 알라고. 하여간 요성 관부의 대가리들이 어젯밤에 술 처먹고 난리 쳤는데 특별한 얘기가 없었다더군.”
하오문이 중요한 게 아니다. 관부의 우두머리들이 술잔치를 벌였다면 그야말로 무사태평하다는 뜻.
해원기도 다시 집중해서 생각에 잠겼다.
오소민이 구해온 정보. 제남부가 호송을 맡을 정도의 표행인데 요성에서는 소식조차 몰랐음이 확실하다.
진자현을 포함한 아홉 무리의 도적이 겁탈한 것 이전에, 아예 표행이 존재했다는 사실까지 의심스럽다면.
“공표(空鏢).”
“응? 가짜 표행이었다고?”
오소민의 눈이 번쩍 뜨였다.
공표. 표국에서 중요한 표행을 맡을 때 극히 드물게 쓰는 방법이다.
귀중한 물건이나 사람을 호송하면 가장 걱정되는 것이 겁표. 아무리 입을 단속하고 비밀리에 진행해도 소문이 돌고 정보가 새는 걸 막을 수 없는 경우, 차라리 공개적으로 겁표를 유인하는 게 낫다.
이렇게 유인하는 미끼가 바로 공표, 가짜 표행이다. 물론 가짜라고 해서 완전히 빈 수레를 끌고 갈 수는 없는 노릇. 도적들이 어느 정도 납득할 재물을 준비해야 제대로 된 계책이다.
도적들이 겁표가 성공했다고 여겨야만 진짜 표행이 안전하게 목적지에 도달할 여유를 가질 수 있기 때문에. 심지어 끝까지 공표였던 걸 모르는 도적도 있다고 한다.
일부러 강도당할 각오로 재물까지 준비하려면 웬만한 화주(貨主)로선 엄두를 내지 못할 일.
그래서 이 공표는 거의 사용된 적이 없다는데.
해원기가 왕 포쾌에게 들은 얘기를 다시 자세하게 전하고서, 자신의 생각을 덧붙였다.
“……그래서 공표라는 생각이 든 겁니다. 그렇다면 하북과 산동의 관병들이 일부분만 동원된 것도 설명되죠.”
“하지만 마차 한 대만 당했다면서? 호송인원도 피살되었고. 아무리 공표라도 사람이 죽은 것까지 감추었다는 건 좀.”
마차 한 대라면 작게 들려도 이미 표행의 규모를 아는 상태. 세 개의 표국에 관병들, 그렇다면 마차 한 대에 십여 명이 들러붙는다. 공표라고 사람이 많이 죽은 것까지 묻어두는 건 무리.
“해형이 표행에 대해 알기는 하겠지만. 이 정도면 마차 한 대에, 어자석에 둘, 전면에 둘, 후면에 둘, 좌우에 각각 셋. 합이 열둘이지. 한 놈이 나머지 열하나를 순식간에 해치웠다? 보통 솜씨가 아냐. 설사 미리 손을 썼더라도.”
해원기가 내막을 다 털어놓아서인가.
오소민도 아까와 달리 꽤 진지하다.
“전부 아홉 무리, 인원은 대강 스무 명. 진자현이 어리바리 셋을 데려갔다니, 다른 쪽도 혼자는 아니고. 그런데도 직접 손을 쓴 놈은 마차 호송 중의 하나. 요거 수상하고 흥미롭군.”
“수상하고 흥미롭다면?”
“미리 완벽하게 준비했을 거야. 굳이 많은 인원이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그런데도 스무 명이라, 진자현의 예를 보면 전부가 종적을 감추고 도주할 준비를 했던 게 아닐까? 그것도 겁표가 발각된 것보다는 다른 놈들의 눈을 속이려고. 자기들끼리 전혀 믿지 않았다는 얘기지. 서로 번호로만 알았다며? 요놈의 새끼들, 정말 웃기는 것들이야.”
흥미롭다는 부분을 욕설로 표현하니,
해원기도 수상하다는 부분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알 수 있었다.
“공표이든 아니든 필요한 물건이 어디 있는지 미리 알았다는 뜻이군요. 아니, 공표를 의도했을 수도 있겠습니다. 공표라면 마차 한 대 정도의 사고는 없는 일로 만들 힘이 있으면서. 또 호송인원 속에 이미 내통자를 배치할 수단까지. 보통이 아니로군.”
“보통이 아니라고? 흥, 엄청나잖아.”
해원기가 혼잣말에서야 겨우 반말을 한다는 걸 알게 된 오소민이 냉소를 붙였다.
두 사람이 제대로 논의하면서 비로소 얻은 결론. 비록 추정이지만 간단치 않았다.
어느새 눈썹에 붙은 손가락을 문지르는 해원기.
“네. 처음 생각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단순한 강도질이라고 여기기 어려운 내막이 있나 봅니다. 더구나.”
오소민의 시선이 자신의 손가락을 따라 움직이는 걸 모르고,
해원기가 손을 떼어 요대자에서 상자를 꺼냈다.
“그런 힘과 수단을 갖추고서 왜 아홉이나 되는 무리를 모았을까요? 진자현이나 동북 사투리, 교주 사투리를 쓰는 자들까지 동원할 이유가 뭐였기에.”
“음. 그게 그 아홉 개 중의 하나야?”
해원기가 대답 대신에 새빨갛게 테두리 친 검은 상자의 뚜껑을 열었고,
두 사람의 시선이 그 안에 꽂혔다.
여러 정보와 추리를 거듭해 얻은 결론. 그 결론에도 한 가지 풀리지 않은 의문이 있었다. 굳이 아홉이 모여서 하나씩 나눠 가져야만 했을까.
치밀한 계획, 엄청난 권력과 수단. 그런데도 굳이 손을 더해 소득을 분배한다?
사리에 맞지 않는다.
한참을 들여다보던 오소민이 슬슬 콧등을 긁었다.
“뭐지? 내 눈엔 그냥 돌멩이로 보이는데. 뭔지 알아?”
해원기가 상자를 뒤집어 내용물을 왼손바닥에 올렸다.
“모릅니다. 저도 돌멩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형태와 색이 조금 특이한 편이긴 해도.”
크기는 계란만 하고, 모양도 타원형. 상자처럼 온통 새까만데 표면이 매끄럽고 윤기가 있어서 언뜻 보면 간장에 조린 새알 같다.
부스럭.
오소민이 소매에서 뭔가를 꺼내 손바닥을 내밀었다.
“어째 얘랑 비슷하다. 질감은 다르지만.”
오소민이 손바닥에 올린 건 송화단(松花蛋). 속칭 피단(皮蛋)이라고 하는 오리 알을 삭힌 음식이다.
해원기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크기, 모양, 색깔. 너무나 닮아서 딱딱하지만 않으면 한번 깨물어 볼 생각도 들었겠다.
“오광석(烏光石)은 일부분만 검은빛이 나지. 오금석(烏金石)이나 오석(烏石)은 새까맣긴 해도 이렇게 동그랗고 윤이 나진 않아. 가공한 것 같지도 않잖아.”
“돌 종류도 잘 아는군요. 맞습니다, 표면을 다듬은 티가 전혀 없는, 완벽하게 자연적으로 이렇게 생긴 돌. 옥보다도 더 매끈하더군요. 돌이라도 기물(奇物)임에는 틀림없지만. 흠.”
오는 도중에 자세히 살펴보았었다.
분명히 돌. 그러나 무슨 돌인지 알 수가 없다.
그리고 기물이라고 해도 기껏 돌멩이인데 대체 무슨 가치가 있다고?
아무리 들여다봐도 모를 물건, 오소민이 손에 든 송화단을 입으로 가져가며 심드렁하게 말했다.
“아까 아홉 놈이 아무 소리 없이 나눠 가졌다고 했으니까 상자 속의 물건들이 다 똑같이 이 돌멩이란 소린데. 참 이상한 놈들일세. 먹지도 못하는 걸 가지고…….”
“그런데 그 송화단은 또 언제 챙겼습니까?”
“어, 이건 주사야가 식은 꽈배기는 심심하다고.”
“꽈배기도 먹었어요?”
“그게. 좁쌀죽에 적셔놓아서.”
“좁쌀죽? 점심 거르고 직행이라더니. 그거 이리 내놓으세요.”
“엥?”
당황한 오소민이 대뜸 송화단을 입으로 가져가며 펄쩍 뛰었다.
“덕주는 아직 멀었다고. 해형, 가자!”
쉬익.
아까보다 배는 빠른 경공으로 바람처럼 달려가는 통에 흙먼지까지 인다.
그 어처구니없는 뒷모습을 보던 해원기의 얼굴에서 장난기가 가시고,
송화단과 닮은 돌멩이를 다시 갈무리하며 입술 사이로 한 마디가 새어 나왔다.
“재미있는 친구다.”
거친 말투, 제멋대로 성질을 부리고, 혼자서만 몰래 먹을 걸 챙기지만.
오소민은 이 돌멩이에 손끝 하나 대지 않았다.
단지 해원기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계속 동행하는 게 아니다.
개방의 순행장로를 아무나 맡겠나.
‘친구’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미시(未時)가 끝날 무렵, 쫄쫄 굶은 해원기가 비로소 덕주의 북쪽에서 걸음을 멈추자.
쌩쌩한(?) 오소민은 손을 이마에 대고 남쪽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덕주는 운하(運河)도 있어서 시정이 아주 번화해. 흠, 구미가 당기는구먼.”
차림새는 귀공자면서 어찌 그리 개방 티를 내는지.
이제는 어느 정도 알게 된 해원기가 살짝 미소를 지었다.
“조사가 끝나면 내가 한턱내지요. 점심도 걸렀으니.”
“그렇지! 해형은 인정이 뭔지 안다니까. 그럼 가볍게 한 바퀴 돌아보고 내려가자고. 신비의 순행장로인 본 공자가 또 기막힌 소식을 물어다 줄지 모르잖나.”
소식을 물어다 주기보다는 음식을 물어뜯을 것 같은 의욕 넘치는 표정.
해원기가 가볍게 고개를 흔들며 주변을 돌아보았다.
“번화한 시정까지 갈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가 살필 곳이 경사에서 제남으로 통하는 가장 넓은 관도, 그렇다면 내가 한턱낼 곳이 그리 멀지 않거든요.”
“응? 뭘…….”
시정에 가지 않는다. 기대가 빗나가서 오소민이 맹한 표정을 보이자.
“덕주를 거쳐 간 적이 있다고 했잖습니까. 그때 알던 집입니다.”
“뭐 하는?”
“닭요리입니다.”
“그건 당연하지! 덕주하면 뭐니 뭐니 해도 덕주소계(德州燒鷄)! 시정에 유명한 집이 여럿.”
“흔한 덕주소계가 아닙니다.”
오소민이 덕주까지 동행한 또 하나의 이유는 바로 덕주소계. 세상에 널리 알려진 요리니 해원기가 한턱낸다고 했을 때 자연스럽게 연상했거늘.
해원기가 오랜만에 반격(?)의 기회를 잡아서인지, 장난스럽게 한쪽 눈을 찡긋했다.
“오향탈골배계(五香脫骨扒鷄)라고 들어봤습니까?”
“으잉?”
오소민이 희한한 소리를 내며 눈을 마구 깜빡였다.
처음 듣는 요리지만, 그것보다 해원기의 장난스런 눈짓에 놀라서.
이 바부탱이가 이런 표정도 지을 수 있었나? 게다가 요리에도 자못 식견이 있는 듯.
알다가도 모를 친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