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왕춘추-2화 (3/410)

제1장 호중객잔(壺中客棧) (2)

사람이란 게 그렇다.

아무리 낯선 이라도 눈앞에서 누군가 넘어지는 장면을 목격하게 되면 일단 도우러 다가가는 법.

장노이와 소주도 당연히 몸이 앞으로 향했는데.

아무래도 뭔가 어울리지 않는 느낌에 잠깐 멈칫거리게 되었다.

대첨산의 뱃속에 해당하는 곳에다 거센 바람 탓에 구름까지 몰려서인지 신시가 지나자마자 금방 어둑해지고 있었건만,

나타난 인물이 고꾸라지는 것과 동시에 바람이 홀연히 그치고 도로 잠깐 밝아지는 듯.

그래서 그 인물 주위로 뽀얀 먼지가 풀썩 일어나는 것까지 볼 수 있었다.

“쿨럭, 에고고, 머리통이야. 엣취!”

기침에 탄식에 재채기까지.

참으로 다양한 소리를 내며 더벅머리가 들리자 그제야 장노이와 소주가 정신을 차리고 급히 달려 나갔다.

“어이, 괜찮소?”

“이게 뭐 하는 거, 에, 사냥꾼?”

가까워지면서 눈 밝은 소주의 목소리가 또 위로 올라갔다.

뭉그적거리며 상체를 일으켜 주저앉는 인물.

머리는 까치집을 흙구덩이에 넣었다 뺀 듯 엉망진창에 더럽기 그지없고, 그 더러운 머리칼에 반 이상 가린 얼굴도 인상을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지저분하다. 걸친 옷도 본래 무슨 색이었는지 알아보기 어려운데, 그나마 군데군데 짐승 가죽을 덧댄 것 같고 손목과 발목에는 단단히 천을 묶었으며 허리춤에는 갖가지 물건을 매달아 놓은 차림이라.

얼핏 사냥꾼으로 여길 만하다.

허나.

“아니, 대체 뭐 하는 사람, 허, 아주 젊은 친구 아닌가?”

장노이가 고개를 저으며 걸음을 멈추었다.

소주보다 눈은 어두워도 사람을 살피는 눈매는 더 노련한 장노이. 아무리 더러워도 한눈에 간편한 경장에 가죽조끼, 그리고 주머니가 달린 허리띠를 단단히 묶은 차림새인 걸 알아보았다.

낡고 더러운 건 바깥 생활을 오래 했다는 뜻, 하지만 사냥꾼일 리가 없다.

활도 칼도, 아니, 날카로운 꼬챙이 하나 보이질 않는 데다가.

이 대첨산 뱃속에 사냥을 올 수 있는 이라면 기껏해야 황장촌의 늙은 망나니밖에 없으니까.

재채기 끝에 오만상을 쓰는 얼굴은 주름 하나 없이 팽팽하니 기껏해야 스물네다섯쯤 먹었을까.

간만에 보는 청년이다.

그런데 소주와 장노이의 묻는 말에 대답은 않고서.

“어, 정말 있네. 길이 워낙 괴상하고 험해서 설마 했는데, 저거, 호중객잔(壺中客棧), 맞죠?”

코를 쓱 문지르던 손을 들어 가리키며 거꾸로 반문.

더벅머리에 가려졌던 두 눈을 크게 뜬 청년의 묻는 말에.

장노이와 소주가 또 한 번 얼굴을 마주 봤다.

방금 두 사람이 덧창을 단단히 댄 낡은 건물,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채 대첨산의 산복에 숨겨진 작은 객잔.

찾아오는 이가 극히 제한적이니 굳이 깃발이나 편액을 달 까닭이 없어서 딱히 객잔이란 티가 나지도 않고.

당연히 객잔의 이름 따위 신경 쓰는 이가 있겠는가.

아는 이들 사이에서만 그저 ‘그 객잔’, ‘산속 거기’라 불릴 뿐.

처음 객잔이란 걸 시작할 때 붙인 이름이 무엇이었는지는 이제 장노이조차 가물가물하다.

호중객잔.

그래, 그런 이름이었지.

호리병 속에 오도카니 있는 모양이라고 그리 붙였었지만.

생면부지의 이 청년은 어찌 아는 것일까?

평범한 시골 늙은이로 보이는 외모와는 달리 눈치 빠르고 노련한 장노이.

미간을 슬쩍 좁힌 채로 구부정한 허리를 더 굽혔다.

“허어, 누가 여길 알고 찾아오는 건 아주 드문 일인데. 전에 온 적이 있었던가? 자넨 누구고 어쩐 일로?”

말소리는 더 느리게, 말투는 더 친절하게.

대단히 수상한 이 청년의 배경을 은근히 더듬어 볼 생각이다.

더럽기 짝이 없는 청년이 비로소 시선을 장노이와 소주에게 번갈아 보냈다.

영 해괴한 만남으로 시작한 걸 겨우 깨달았는지 껌뻑거리는 눈에 계면쩍은 빛이 스친다.

“아차, 이거 참. 제가 영 못난 꼬락서니라서. 음, 예전에 듣기는 했어도 아직까지 그대로일 줄은 몰랐거든요…….”

뭔지 모를 소리를 웅얼거려 소주도 인상을 쓰며 귀를 기울이다가,

청년이 펄쩍 일어나는 통에 질겁했다.

절그럭.

뜻밖에 울리는 쇳소리. 청년의 가슴팍에 비스듬히 걸린 끈, 그 끈에 매달린 작은 철판이 흔들려서다.

손바닥 두 개를 붙인 크기의 동그랗게 납작한 철판은 뭐에 쓰는 물건인지. 청년의 동작에 맞추어 울어댄다.

“인사가 늦어 죄송합니다.”

두 손을 모으자 먼지가 풀썩 일고.

“저는 하북(河北)에서 온 해원기(海元基)라고 합니다. 태원부에서 일을 마치고 급히 산동(山東)으로 넘어가야 하기에 할 수 없이 이 험한 길을 택했습지요.”

자기소개를 하며 머리를 숙이자,

절그럭.

또 쇳소리.

“두 분은 객잔에 머무시는? 아니면…….”

말을 끌며 머리를 들자 흙먼지가 우수수 떨어진다.

먼지 풀썩, 쇳소리 절그럭.

차라리 예를 차리지 않는 게 낫지. 움직일 때마다 이 무슨 난리인고.

소주가 급히 뒤로 물러나며 두 눈에 쌍심지를 세웠다.

“아 쫌!”

이름 따위 귀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뭐 이런 인간이 다 있나.

“흐음. 쾌체(快遞) 일을 한다고요. 그럼 관아나 표국에서 들은 게 아닐까요? 거 입빠른 전령이나 오래 묵은 표두 중에 우리 객잔을 거친 자들이 좀 있잖아요.”

사내처럼 팔짱을 낀 중년 여인, 소주 엄마의 말에 장노이가 입맛을 다셨다.

“그럴 수도 있지만… 그렇게 먼 거리를 다니는 쾌체라니. 더구나 객잔 이름까지 아는 게 영. 형수님도 거의 잊어먹지 않았수? 좀 찜찜해서리.”

소주 엄마의 미간이 살짝 접혔다.

낯선 길손이 출신과 이름, 직업까지 다 밝혔다.

쾌체는 돈을 받고 남의 급한 심부름을 대신 해주는 일. 보통은 서신이나 작은 물건을 전하기에 길눈이 밝고 다리가 튼튼한 이들이 맡으며, 그 일의 특성상 관아나 표국에도 안면이 있는 경우가 꽤 있다.

그래서 해원기라는 낯선 청년이 나타난 걸 자연스러운 일로 이해하려 하지만.

하북 출신이 산서의 태원에 왔다가 또 산동으로 간다? 어마어마한 거리다. 이 정도면 이미 쾌체가 아니라 보표(保鏢)가 담당하는 게 맞을 터.

그리고 호중이라는 객잔의 이름을 대체 누가 알려줄 수 있을까.

아무래도 수상쩍은 구석.

의자에 앉은 장노이나 궤짝을 쌓아 만든 계산대에 기댄 소주 엄마나 인상이 쉬 펴지지 않는 까닭이다.

그런데 주방을 가린 휘장이 홱 열리며 소주가 튀어나왔다.

“아유, 그게 뭐 그리 대단한 거라고. 예전에도 관차 나리께서 엉뚱한 작자랑 동행한 적 있었잖아요. 찜찜하긴 무슨, 아니, 도둑질이라도 하러 왔단 거예요? 뭐, 뭐 가져갈 게 있는데? 이런 곳을 노린다면 어지간히 멍청한 도둑이겠네.”

뿌루퉁하게 나온 입을 마구 놀리면서 손에 든 찻잔이며 접시들을 탁자 위에 거칠게 내려놓는 모습에.

소주 엄마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얼씨구, 요놈의 계집애가…….”

“허허, 그 말이 맞구먼. 하긴 어느 멍텅구리가 여기까지 도둑질하러 올까나? 형수님, 소주가 제대로 봤소이다. 이거, 간만에 손님이 오니까 괜히 쓸데없는 생각만 들어서. 쯧.”

되바라진 소릴 한다고 소주 엄마의 손이 움직이기 전에,

장노이가 혀를 차면서 몸을 일으켰다.

“자, 손님을 제대로 모셔야 객잔이지. 헛간에서 좀 씻으라 했는데 다 끝났을까? 소주야, 거 따뜻한 물 남았으면 마저 가져가자. 형수님은 슬슬 저녁 준비나 해주시고.”

괜히 서두는 척.

다 소주의 머리에 또 알밤이 먹여질까 미리 수를 쓰는 거다.

“벌써 준비했다고요. 그 더러운 몰골을 객잔 안에 들일 수는 없잖아요. 기껏 대청소까지 해놓았는데.”

냉큼 대답하며 장노이의 뒤를 따르는 소주의 움직임이 경쾌해서,

소주 엄마의 입가에 쓴웃음이 달렸다.

까진 주둥아리라고 놀려대긴 해도 오랜만의 손님이라 기운이 났나. 철딱서니 없는 주제에 나름 야무진 티를 내니.

“나도 저녁을 서둘러야겠네.”

소주 엄마도 얼른 주방으로 향했다.

달랑 손님 한 명에 활기를 되찾는 객잔이다.

솨솨아아.

덜컹, 덜컹.

바람이 도로 거세져서 덧창이 흔들리는 소리가 객잔 안을 울렸다.

“허어, 음.”

따뜻한 물을 담은 큰 주전자 하나를 든 채 장노이가 입 밖으로 나오는 탄성을 삼켰다.

헛간이라고 해봤자 따로 짐승을 기른 적이 없으니 자질구레한 물건을 쌓아두거나 술이나 물을 채운 단지를 두는 좁은 공간.

객잔의 한쪽 벽에 잇대어 간단하게 지붕을 올린 허술한 곳인데.

자기 방 안에 있는 것 마냥 의젓하게 맞이하는 젊은이.

급한 대로 일단 작은 표주박 하나를 건네며 얼굴이나 닦으라고 한 게 조금 전이다.

헌데 그 잠깐 사이에 말쑥해진 용모로 웃는 낯을 보이다니.

전혀 딴판이 되었다.

묶지 않은 더벅머리야 여전히 거칠어도 깨끗해진 얼굴은 굵은 눈썹과 단정한 이목구비가 선명하고, 머리에서 발끝까지 전신을 뒤덮었던 흙먼지도 말끔하게 사라졌다.

기껏해야 표주박으로 한두 번 물을 뜰 시간이었는데.

헛간 바닥에 물을 흘린 흔적도 없으면서 마치 시원하게 목욕이라도 하고 나온 것 같잖은가.

수상한 청년.

낡은 수건을 든 소주가 기가 막혀서 대뜸 앞으로 나섰다.

“얼씨구? 정말 희한한 사람이네. 길짐승이 물에 들어갔다 나오면 전신을 털어 대서 단번에 깨끗해지는 건 봤어도 어떻게…….”

“어흠! 소주야, 그 수건부터 건네줘야지.”

장노이가 급히 헛기침으로 말을 막았다.

아무리 수상해도 사람을 개나 고양이 취급해서야 되나. 기껏 손님으로 대접한다면서 면전에서 대놓고 욕을 하는 셈이니.

청년이 빙그레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그러지 않아도 물기를 닦을 게 마땅치 않아서 곤란했더랍니다. 마침 센 바람이 한바탕 불어 여진(旅塵)은 얼추 털어냈습니다만 얼굴을 말리는 건 영 따갑거든요. 하, 그런데 날씨가 영 수상하군요.”

나름 적당한 이유를 대면서 소주의 손에서 슬그머니 수건을 받아드는 청년. 해원기라고 이름을 밝힌 청년을 장노이가 다시 한번 찬찬히 훑어보았다.

수상한 건 자신이 아니라 날씨라는 건가.

굵고 짙은 눈썹, 우뚝하게 솟은 코, 두툼하면서 단정하게 물리는 입술. 약간 각이 진 턱에 수염 자국이 거뭇하지만 그게 더 사내다움을 풍기는 얼굴이다.

눈에 확 뜨이는 준수한 용모라고 할 수는 없지만,

‘호오, 남자답게 잘생겼다. 특히…….’

관상이라도 보는 것처럼 하나하나 뜯어보던 장노이의 시선이 해원기라는 청년의 눈에 머물렀다.

눈꼬리가 깊게 파여 조금 더 길어 보이는 눈매, 그 속에 흰자위는 어린아이처럼 푸른빛을 띠고 새까만 눈동자는 맑고도 깊다.

참으로 매력적인 눈.

“이름이 해원기라고 했던가? 음, 나이답지 않게 꽤 돌아다닌 모양이구먼. 깨끗해졌으면 안으로 들어가세. 저녁 준비를 하고 있으니까.”

“아, 네.”

깍듯하게 머리를 조아리며 걸음을 옮기자.

절그럭.

전신을 뒤덮었던 먼지는 털어냈어도 쇳소리가 또 울렸다.

소주가 미간을 찡그리며 과장되게 머리를 숙였다.

“거 참. 대체 그건 뭐에 쓰는 물건이에요? 그러고 다니면 귀찮지 않아요?”

일부러 눈을 가까이 대며 묻는 소리에,

해원기가 어색한 표정으로 흔들리는 철판을 얼른 허리춤에 끼워 넣었다.

“아, 이거. 도중에 끈 하나가 사라져서 이렇게 덜렁대네요. 중요한 물건이지요, 먹는 문제를 해결해주는 놈인데 귀찮을 리가 있겠습니까.”

동그랗고 얇은 철판. 손바닥 두 개를 붙인 정도의 작은 크기. 가까이서 보니 새까맣지만 윤이 반들거리는 이 쇳조각이.

“먹는 문제를 해결해주는 놈?”

뭔 소린지 몰라 눈을 껌뻑거리는 소주 옆에서 장노이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 판과(板鍋)로군. 그렇게 작은 건 처음 보지만.”

“맞습니다. 평저과(平底鍋)의 가운데만 따로 떼어낸 모양이죠. 약간 우묵하게 만든 건데 돌아다니다 보니 이런 꼴이 되었네요. 쩝.”

해원기가 씁쓸하게 입맛을 다시는데,

소주는 건네준 수건을 돌려받을 생각도 하지 않고 묘한 눈길만 보낸다.

지지고 볶을 때 쓰는 평저과야 객잔 안에도 몇 개나 있지만, 재료가 넘치지 않도록 막아주는 테두리조차 없는 이런 조그만 철판은 처음 보는 것.

그야말로 장노이가 말한 판과라는 이름이 딱 어울리는 판때기에 불과하다.

먼 거리를 오가는 쾌체라는 일을 하니까 당연히 노숙에 대비한 조리도구를 지녔겠지.

허나 어째 이 해원기라는 청년은 지닌 물건조차 다 신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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