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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우면 네가 천마 하든가-198화 (198/200)

제198화. 삶의 이유(3)

시타는, 아니.

그것은 고고하게 웃었다.

“이거 참… 반가운 면면이 아닌가.”

위압적인 목소리.

목에서 내는 것이 아니라, 공간을 울려 머리에 직접 때려 박는 것만 같은 음성이었다.

저것은 시타가 아니다.

육련 놈들이 그렇게나 울부짖던 ‘그분’, 바로 그 본인.

눈앞의 존재감은 그것 외에는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허나, ‘반가운 면면’이라.

청유백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기에, 아무래도 천화를 가리키는 말인 듯싶었다.

천화가 비술을 개발했고, ‘그분’과 연관이 있는 일이라면 필경 기억이 있을 테다.

청유백은 자연히 천화에게 물었지만, 그녀는 멀쩡히 대답하지 못했다.

[아, 아냐…….]

‘천화?’

[저자, 저자는… 그는…….]

‘……젠장.’

천화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고통을 호소했다.

시간이 필요한 듯 보였다.

청유백은 굳어버린 팔에 억지로 힘을 주며 입을 열었다.

손가락이 조금씩 삐걱대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리가… 만난, 적이, 있었던가?”

“우자여, 그건 섭섭한 질문이군.”

그것은 옥좌에서 일어나 청유백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그리고 그의 뒤로 돌아가, 무언가 알 수 없는 소리를 내었다.

삐걱, 콰득, 쿠드득.

청유백은 그것이 뒤에서 무엇을 하는지 볼 수 없었지만, 그것이 뼈와 근육을 비트는 소리라는 것은 알았다.

몇 번 들어본 적이 있었다.

흉수나 간자들이 적지에 침입할 때, 근골을 뒤틀어 얼굴을 바꿀 때 나는 소리였다.

예상은 맞아떨어졌고, 그것은 청유백의 앞에 고개를 들이밀었다.

“이리하면 알아보겠나?”

“……!!”

“아! 기억 난 모양이군. 그것참 다행이야. 섭섭할 뻔했지 않은가. 아무리 우자(愚者)라 한들 어리석음에도 정도가 있는 법이지. 아무렴.”

청유백은 몸을 떨었다.

어찌 저 얼굴을 잊을 수 있을까.

결코 잊을 수 없고, 잊고 싶지도 않은 얼굴이었다.

꿈을 꾸지는 않았다만, 청유백이 밤에 자신의 꿈을 꾸었더라면 그 등장인물에는 반드시 저자가 등장했을 것이 분명할 터였다.

수십 번의 삶.

영원과 다름없는, 끊임없는 고통.

그 생 속에서 몇백 번 몇천 번이나 자신과 검을 나누었던 인물이 눈앞에 있었다.

“무신…! 진서령!”

얼굴의 근골에 한계가 있었는지 조금은 어린 모습이었지만, 상관없었다.

천류하와 무신은 다양한 나이대의 모습으로 서로를 마주했었고, 당연히 지금보다 훨씬 어린 나이대의 만남 또한 있었다.

어릴 적에 놈을 조져서 싹을 잘라 버리자─라는 생각을 안 한 것은 아니었으니까.

그렇기에 청유백은 분명하게 알아볼 수 있었다.

흉내 따위가 아니었다.

이 분위기. 이 기시감.

이 불쾌함!

눈앞의 인물은, 분명히 자신의 숙적이었다.

한때 무신이라 불리었던 그것은 옅은 실소를 흘리며 대답했다.

“클클클, 그래. 우자의 대에는 그리 불리기도 했었지. 세대와 시대를 넘어 짐에게는 수많은 이름이 있었으나, 그대가 편하다면 그리 부르게나.”

“네가… 사마신교의 신이었나?”

“아, 그건 조금 다르지. 저들이 멋대로 짐을 섬긴 것이야. 짐은 저 아이를 통해 그것을… 조금 윤허해 주었을 뿐이지.”

그는 곁눈질로 바닥에 쓰러진 유서온의 시체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어깨를 으쓱였다.

“저 아이를 만난 것은 퍽 행운이었지. 인간을 가장 간절하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가? 바로 빈곤이라네.”

원초적인 부족으로 인한 생명의 위협.

우습게도, 동서고금을 통틀어 그 간절함은 변한 역사가 없었다.

“자식을 팔고, 부모를 팔고, 나아가 신의를 팔고, 의지를 팔지…….”

언제나 그러했다.

지금도 그러하고.

천 년 전에도, 당연히 그러했다.

“때로는 자기 자신을 파는 것 또한 예외가 아니라는 것을 자네도 알 테지. 저기 멋들어진 예시가 있지 않은가?”

그는 옅은 비웃음을 머금으며 바닥에 널브러진 시체 중 하나에게 턱짓했다.

차갑게 식어가고 있는 후산이었다.

그러고는, 옆의 유서온의 시체를 끌어올려 자신이 앉아 있던 옥좌에 앉혔다.

목도 주워 들어서는, 그 위에 대충이나마 올려 주는 꼴이었다.

“우자여, 이 아이는 자신을 팔았다네. 거래를 한 게지. 구천에 떠도는 짐의 영혼을 볼 수 있는 드문 아이와… 삶을 건 거래를 말이야.”

그는 그리 말하며 손을 휘적였다.

그 위에 머무는 황금의 기운이 넘실거리는 파도처럼 요탕한 움직임을 보였다.

영혼.

그가 그 단어를 입에 담자, 청유백은 그제야 육체들에서 빨아들여 하나로 뭉치는 저 기운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저것은 사람의 혼이었다.

사람으로서 살고, 사람으로서 죽어 스러질 수 있는 증거일 터였다.

그의 말은 그칠 줄을 몰랐고, 청유백의 팔이 서서히 움직였다.

“그래… 그야말로 행운이었어. 이 아이는 지긋지긋한 굶주림에서 벗어나고, 짐은 새로운 육신을 얻고. 비록 이 아이는 자질이 모자란 탓에 짐의 인격을 받아들일 수는 없었지만, 뭐 어떤가.”

그는 자신의 몸을 돌아보았다.

아직 어리지만, 그만큼 가능성이 충만한 육체.

이 어린 나이에도, 천 년의 망집을 담은 영혼을 온전히 담아낼 수 있는 그야말로 신녀(神女)의 제목.

“이렇게 훌륭한 몸을 찾아 주었는데.”

그는 웃음 지었다.

물론, 아쉬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만─

“여아의 몸이라 아쉽기는 하지만, 상관없는 일이지…….”

그래, 상관없는 일이었다.

그는 청유백의 주변을 돌며, 아직 굳어 있는 그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청유백의 미간은 험악하게 일그러진 채였지만, 그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으며 말을 이었다.

“우자여. 그녀를 담아낼 정도로 비대해진 상단전을 지닌 그 몸, 짐에게 양보하지 않겠는가?”

“웃기지… 마라!!”

─꽈득. 꽈드득.

기어코, 청유백의 몸이 구속을 풀고 움직였다.

손에 쥔 검은 물론, 허공에 멈추었던 검들도 동시에 춤추며 허공을 난도질했다.

하지만, 조금 움직이는가 했던 검들은 다시 허공에 붙들렸다.

청유백의 검은색 검기가 아닌, 황금색의 기운에 뒤덮인 채로.

“이런. 짐은 폭력은 썩 좋아하지 않는다네. 품위 없는 행위지.”

그는 가볍게 손짓하여 청유백을 날려버렸다.

청유백의 검 또한 마찬가지였다.

청유백의 마기 탓에 자유자재로 움직이지는 못했지만, 멈춰 두는 것 정도는 얼마든지 가능한 듯 보였다.

계단을 반쯤 구른 청유백을 내려다보며 그는 차가운 웃음을 지었다.

“그래, 그 위치 정도가 딱 좋군. 짐에게도 익숙하니 아주 좋아.”

“하, 미안하군. 나는 다른 사람을 올려다보지 않는데 말이야…!”

─고오오오!

청유백의 전신에서 마기가 휘몰아쳐 폭풍을 일으켰다.

여전히 몸은 삐걱댔지만, 한 번 움직인 이상 그 상태를 유지하는 것은 비교적 쉬웠다.

꽈득.

청유백은 이를 악물었다.

여전히 몸이 굳은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고통으로 그것을 어느 정도 무마할 수 있었다.

‘이제 뒤는 없다.’

놈이 마지막.

그렇다면, 모든 것을 쏟아부을 뿐.

무신?

그분?

아무래도 좋은 일이다.

정황 따위는, 모든 것을 끝내고 천화에게 들으면 그만인 일이었다.

지금은 놈의 목을 딴다.

그것이면 족했다.

청유백은 왼손에는 진천을, 오른손에는 백월을 들었다.

“아…! 그 검. 익숙하군. 하지만 달라. 그 야생마를 길들였는가.”

“고맙게 쓰고 있다. 개새끼야.”

어차피 허공에 띄운 검은 반쯤 막힌다고 생각해도 좋을 터.

차라리 직접 들고 달려드는 편이 나았다.

그리고 검의 개수가 줄어들면 그만큼 힘을 집중시킬 수 있었다.

어차피 적은 하나이고, 묘수도 통하지 않는 상대.

필요한 것은 우직한 힘이었다.

청유백의 칠흑색 검기와 그의 황금색 기운이 맞부딪혔다.

“이왕이면 온전한 몸을 얻고 싶은데 말이야. 정말 짐에게 양보할 생각이 없나?”

“죽이고 가져가 봐라.”

“흐음. 애석한 대답이로군.”

─캉! 깡! 캉! 까앙!

베고, 찌르고, 베고, 다시 벤다.

청유백이 섬전같이 휘두르는 검을 그는 조금의 어려움도 없이 받아넘기고 있었다.

신체의 부담은 전혀 없어 보였다.

모든 것은, 저 황금의 기운에서부터 비롯되고 있었다.

‘……영혼, 인가.’

영혼의 힘.

사람이 쌓아온 시간의 힘.

이 자리에 있는 사자의 영혼 모두가 온전히 힘이 된다면, 고작 어린 여자아이의 몸으로 저만한 위력을 발휘하는 것도 이상하지는 않을 테다.

‘빌어먹을, 적당히 천재여야지. 천화!’

황련이 다섯 번째라 했나.

그게 저 빌어먹을 ‘무신’, ‘그분’을 부활시킨 거고?

그래, 지금껏 상대한 놈들이 그만큼이나 괴물이었는데, 필생의 역작이 이만한 힘이 없다면 오히려 농담 같을지도 모른다.

청유백이 쉼 없이 움직이고 있을 때, 천화의 목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미안하다. 본녀 탓이니라.]

‘좀 괜찮나?’

[이제 조금은 낫구나.]

아직도 머리가 울려오고 있었다.

기억이 돌아오는 고통은 다른 무언가와 비견될 만한 것이 아니었다.

기억이 돌아온 이유가 가까이 있는 조각들 때문인지, 혹은 저자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최소한 하나는 확실했다.

[허나… 네 몸이 굳은 건 본녀 탓이니라. 기억이 없어도 영혼에 새겨진 공포가 여전히 남아 있구나.]

‘…공포? 이제는 괜찮나?’

[보는 대로. 네 몸도 조금은 가볍지 않으냐?]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청유백은 허공으로 도약하여, 옥자의 뒤에서부터 그를 찔러들어 갔다.

계단에서 싸우는 것은 단연 아래에서 싸우는 것이 불리하다.

그렇다면 굳이 불리한 전장을 유지할 필요 없이, 그를 내려보내면 될 일이었다.

‘놈은 나를 직접 멈출 수는 없다. 그렇다면!’

몸이 굳은 것이 천화 탓이라면, 그것은 확실할 테다.

그리고 그것은 보기 좋게 먹혀들어 갔다.

청유백의 검을 정면으로 받아낸 그는 몇 발자국 정도 뒤로 물러났고, 곧 한쪽 다리가 계단 아래로 내려나며 청유백이 힘으로 밀어붙이는 형세가 되었다.

헌데─ 문득.

그는 눈을 반짝이며 두 손을 들었다.

“호오, 호오, 잠깐, 잠깐…….”

청유백의 두 자루 검과 그의 두 손아귀가 맞닿은 채로 떨어질 줄을 몰랐다.

힘 싸움은 계속되었지만, 그는 오히려 얼굴을 더욱 들이밀었다.

가까이, 더 가까이.

그는 무언가를 찾아내려는 듯 청유백의 눈을 깊숙이 응시했고, 곧 기괴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런, 이런, 이런……!!”

“……?!”

“반가운 얼굴 탓에 지금껏 눈치채지 못했군. 그대가 함께였단 말인가! 하하, 그래! 어쩐지 짐의 심장이 이토록 뛴다 했지. 짐이 고작 우자 따위에게 이다지도 흥분할 리가 없거늘!”

콰앙!

그는 작은 마찰음과 함께 두 손으로 청유백의 검을 비껴냈다.

힘으로 밀어붙이던 청유백은 중심을 잃고 앞으로 쏠렸고, 다시 계단의 위쪽은 그가 차지했다.

“아아, 얼마나 고대했는지 아는가. 짐의 그대여! 짐이 그대를 단 한시도 잊지 않았다는 사실을 그대는 아는가!”

그는 진심으로 기쁜 표정이었다.

그러나, 청유백을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시타의 몸이니만큼, 어쩌면 그가 천화를 볼 수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천화는 청유백의 밖으로 현현하여 험악하게 인상을 구겼다.

“여전히… 뻔뻔하구나…!”

“하하, 그러는 그대야말로 여전히 앙칼지고. 짐은 그대와의 첫날밤을 여전히 잊을 수 없는데 말이야.”

“내 순결을 짓밟고, 목숨을 앗아간… 그날 말이냐!”

천화가 격앙하여 목청을 높였다.

허나, 그는 도리어 둘도 없이 맑은 웃음을 지으며 몸서리칠 뿐이었다.

“잊지 못할 하룻밤이었지. 어찌 잊겠나? 짐이 노년을 바쳐 찾아 헤매던 영생을… 비로소 취한 날인데!”

그야말로, 순수한 악(惡)의 웃음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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