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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우면 네가 천마 하든가-195화 (195/200)

제195화. 개전(開戰) (5)

찬연하고도 패도적인 붉은색 강기의 막이 청유백의 앞을 가로막았다.

검은빛과 붉은빛이 격돌했고, 다음 순간 서 있는 것은 세 명의 남자였다.

묵련과 청유백.

그리고 그 사이에 굳건히 서 버티고 있는 사내.

적색 범의 문양을 가슴팍에 새기고, 한 자루의 도를 꺼내 든 남자가 그곳에 있었다.

[……!!]

‘……적철진?’

이놈이 왜 여기에?

청유백은 자신의 앞을 교차하여 막아섰던 네 자루 검을 물렸다.

그리고 끌어올렸던 마기를 다시 한 바퀴 돌아 갈무리하며,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백소하가 데려온 지원군인가?’

아니, 아니다. 그럴 리는 없다.

시기가 맞지 않는다.

적철진이 본교의 명을 받은 이후 출발했다면, 전력으로 경공을 펼쳐도 나흘은 더 있어야 이곳에 올 수 있었을 것이다.

전서구가 날고, 파발이 내달릴 시간.

그리고 제아무리 빠르게 달려도 이곳까지의 거리를 감안한다면, 그 기간 이전에는 도착할 수 없었다.

‘……허면, 그의 의지인가.’

순간 청유백의 기억 속 한 장면이 스쳐갔다.

백소상이 말했던 변수, 그 두 가지 중 하나.

‘신경 쓸 필요 없습니다. 만에 하나 찾아올 가능성일 뿐이니까요.’

그래, 분명 그리 말했더랬다.

청유백은 그 변수가 눈앞에 있노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적가의 후계가 그대에게 묻겠다.”

적철진은 도를 들었다.

허리춤에 매달려 있는 칼집은 두 자루였지만, 그의 손에 쥐여져 있는 것은 한 자루뿐이었다.

“그대인가?”

고요한 한 마디.

“그대가 나의 형제와 결투하여 승리한 자인가?”

그 목소리에는 분노도, 좌절도 담겨져 있지 않았다.

청명휘 조에 적우각이 속해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그가 모습을 보이지 않을 이유는 단 하나밖에 없음을 알고 있음에도.

적철진은 예전과 같이 고요하게 목을 울렸다.

“대답하라.”

“기세 한번 오만하군. 개치고는 제법이야. 아니, 이번에는 고양이라 해야 하나…….”

묵련은 피식 웃더니, 눈빛을 바꾸었다.

그리고는, 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 바닥에서 돌덩이를 띄워 손에 쥐었다.

“결투라고 할 만한 것이 아니었다. 일방적인 훈육이었을 뿐.”

“훈육이라.”

“무지와 나약함을 일깨우는 대가는 언제나 죽음이지. 그렇지 않나?”

언뜻 도발적인 말이었음에도, 적철진의 표정은 여전히 무기질적인 시선을 던지고 있을 뿐이었다.

반응을 살피던 묵련은, 입꼬리를 흘기며 말을 덧붙였다.

“해서… 복수하러 왔나, 적가의 후예여?”

“복수가 아니다. 명예의 설욕일 뿐.”

“명예? 명예라… 흐음. 그래, 저기 죽어버린 녀석이 너를 위해 준비한 선물도 있었는데 말이야.”

묵련은 턱짓으로 바닥에 쓰러져 있는 지거광을 가리켰다.

그리고는, 왼손을 들어 손가락을 한 번 튕겼다.

따악.

공허한 소리가 허공에 울렸고, 곧 두 번째 문 너머에서 무언가 튀어 올랐다.

그것은 사람의 그림자였다. 팔 척 장신의 거구였으며, 온몸이 근육으로 이루어진 거한이었다.

피부는 창백했으나, 청유백과 적철진은 그가 누구인지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참 악취미야. 구태여 아껴 두면서까지 대기시켜두다니.”

“…….”

묵련은 적철진을 돌아보며 어깨를 으쓱였다.

“어떤가? 난 놈처럼 광인은 아닌지라, 딱히 의미는 없다만… 그래도 형제의 상봉이라는 것은 각별한 법 아닌가.”

여전히, 적철진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청유백은 그 광경을 보고는 혀를 찼다.

‘저건, 글쎄…….’

[썩 무용(無用)한 수로다.]

그리고 마치 천화의 말을 듣고 똑같이 읊어내는 것만 같이, 적철진의 입에서 똑같은 말이 흘러나왔다.

“무의미한 짓을.”

그리고, 그의 칼끝이 번뜩였다.

찰나의 섬광.

붉은빛이 시야에 점멸하고, 청유백과 묵련의 시선이 동시에 칼끝을 쫓았다.

모두가 똑똑히 보았지만, 그 누구도 제지하지는 않았다.

그럴 이유가 없었으니까.

─쿠웅!

다음 순간, 적우각의 거대한 몸뚱어리가 바닥에 쓰러졌다.

목이 베여 검붉은 피가 조금 흘렀으나, 살갗이 조금 붙어 있어 떨어져 구르지는 않았다.

자비라고는 전혀 없는 일격.

적철진은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고서 피를 털어냈고, 조용히 말을 이었다.

“반역의 죄는 가문의 손으로 씻는다. 죽음의 명예 또한 가문이 짊어진다. 패배의 설욕 또한, 내가 이룰 것이다.”

“호오.”

“아우의 생은 명예롭게 끝을 맺었다. 사자를 모독하지 말라.”

묵련은 의외라는 듯 눈을 껌뻑였다. 반면 청유백은, 그럴 줄 알았다며 옅은 숨을 내쉴 뿐이었다.

이미 한 번 보았던 광경 아닌가.

적철진은 항상 원칙에 따라 움직이는 인간이었다.

가문의 규율, 마교의 원칙.

그것들을 한데 모아 빚어 인간의 형상을 이루면 저 사내가 되리라.

하지만… 어떨까.

청유백은 순간, 도의 손잡이를 악쥐는 그의 손끝을 보았다.

그가 이곳에 당도한 것이 정녕 마교의 뜻일까.

혹은, 동생을 잃은 형의 원한일까.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단지, 그가 청유백과 묵련의 사이를 가로막으며 마기를 붉게 피워 올렸다는 결과만이 남을 뿐이었다.

“가라, 청유백. 아직 내 도가 여전히 피를 보고 싶노라 말한다. 이놈은… 내 몫이다.”

대신 상대하겠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목적은 묵련의 척살이 아닌, 놈들 계획의 궤멸.

청유백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묵련을 우회하여 돌파하려던 찰나, 적철진은 청유백에게 힐끗 눈을 돌렸다.

정확히는 청유백의 주위에 맴돌던 네 자루의 검을 향한 시선이었다.

그러다가, 청유백을 멈춰 세웠다.

“그래, 네놈은 기묘한 재주를 부렸었지…. 네놈, 검이 더 필요한가?”

“……? 있으면 좋지.”

순간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했음에도 청유백은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청유백이 다루던 검은 본디 여섯 자루였고, 따지자면 아직도 두 자루가 모자랐다.

청유백의 마음에 차던 물건이 없었던 탓이었다.

청유백의 의문에 적철진은 행동으로 답했다.

자신의 허리춤에 매여져 있던 두 자루의 칼집.

하나는 검이었고, 하나는 도였다.

도는 적철진의 손에 들려 있었으니, 남아 있는 것은 검.

적철진은 그것을 끌러내어 청유백의 발치에 내던졌고, 청유백은 검을 주워들며 대꾸했다.

“네 것 아닌가? 무기가 없어서 패배했노라는 핑계는 듣기 싫은데.”

“…단 한 번도 뽑은 적이 없었다. 나를 위한 물건이 아니야.”

“무슨 뜻인지 모르겠군.”

청유백은 눈살을 찌푸렸다.

필요도 없는 검을 왜 가지고 다녔단 말인가?

지금껏 두 자루를 매고 다녔던 것은 그저 장식이었단 말인가?

게다가 분명, 저것은 적철진이 검묘에서 가지고 나온 물건이었을 테다.

‘그렇다면 분명한 일품일진대…….’

청유백은 순간 이해할 수 없었다.

일단 준다니 받기야 하겠지만, 구태여 왜 그런 번거로운 행위를 해 왔단 말인가.

하지만 그 몰이해는─ 청유백이 그 검을 뽑아 들자마자 일순간에 사라졌다.

“……!!”

칠흑색의 검신이 태양빛을 받아 반짝였다.

모든 빛을 삼켜 버릴 것만 같은, 한밤중의 하늘 같은 검신.

청유백은 이 검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검집을 바꾸고 칼받이를 바꾸어, 뽑아 들기 전에는 전혀 알아보지 못했지만.

이 칼날은 청유백에게 있어 결코 잊을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진천검…!”

전생의 청유백이, 패도천마 천류하가 휘두르던 애검.

적철진은 무성의하게 대꾸했다.

“애초부터 필요 없던 물건이었다.”

진천검은 그 자체로 하나의 신검임과 동시에, 교주의 권위를 상징하는 신물.

적철진이 그것을 취하고, 지니고 다녔던 이유는 단 하나뿐이었다.

“그저… 청명휘 놈의 손에 들어가지 않게끔 내가 먼저 취했을 뿐.”

경쟁자에게 그 신물을 내어 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신이 검을 다루지 않는다고 해도, 이 명검을 청명휘에게 내어 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교주의 자리를 두고 다툴 사내를, 어찌 보면 경계했다고 볼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이리될 줄 알았다면, 처음부터 취하지 말 걸 그랬다는 생각도 드는군. …멍청한 놈.”

아니.

후회는 무의미한가.

적철진은 그렇게 낮게 읊조렸다.

그리고, 전신의 마기를 끌어올려 붉은 투기로 온몸을 감쌌다.

“가라, 청유백. 승전보 외에는 듣지 않겠다.”

“……그때까지 살아나 있지.”

“흥, 누가 할 소리를.”

청유백은 옅게 웃으며 적철진의 머리 위로 도약했다.

문은 묵련이 막아서고 있었지만, 상관없다.

“어디를…….”

─카앙!

청유백을 향해 날아드는 검은빛의 파편들은, 달려든 적철진이 일거에 쳐내어 막아냈다.

“네놈은 내 몫이다. 집중해라.”

“……!!”

적철진의 표정은 여전히 공허했지만, 묵련의 얼굴은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그 얼굴이 의미하는 바는 단순했다.

이 너머에는 아무것도 없다.

당연한 말이었다.

묵련 이상의 전력이 있을 리가 없다.

즉, 그를 그리 만드는 것은 다름 아닌 조급함이었다.

“네놈이 감히…!!”

─콰아아앙!

등 뒤에서 격돌하는 압도적인 투기를 느끼며, 청유백은 두 번째 문을 열었다.

─데앵, 데앵.

그와 동시에 저 멀리서 다시금 종소리가 울려왔다.

역시, 이번에도 어딘가 신경을 긁는 것만 같은 소리였다.

* * *

붉은 홍염이 하늘을 뒤덮었다.

이곳, 연원궁에서도 보일 정도로 장절한 화염의 폭풍이었다.

게다가 분명, 저 부근은 곧 치러질 곤륜제전의 무대가 마련된 자리.

한자리에 모여 있던 오대 거파의 수장들은 아연실색하며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저, 저것은…!”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란 말이오!”

누가 보아도 인위적인 발생이었다.

저 거대한 화염 폭풍이 어찌 자연적인 것일 수 있을까.

저게 자연히 일어났다면, 그것이야말로 천존의 분노일 테다.

그들은 서로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그 시선은, 결국 무리의 한가운데 있는 한 여성에게로 향했다.

단아한 백색 소복, 무녀의 옷차림을 하고 있는 여인에게로.

그녀 자신을 소개하기를, 황련(黃蓮)이라 일컬은 여인이었다.

“진정하세요. 별일 아닐 겁니다.”

“별일? 별일이 아니라고? 허면 저 바깥에서 울려오고 있는 칼 소리는 뭐란 말이오!”

“맞소. 거래를 한 이상, 우리는 합당한 대답을 들을 자격이─”

─키이잉!!

화산파의 장로는 분개하며 목소리를 높였으나, 저 바깥에서 이어서 들려온 격렬한 충격음에 말을 차마 끝맺지 못했다.

저 바깥에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곤륜제전의 회장은 이미 아수라장이 되었을 것이 뻔하며, 하늘 높이 피어오르는 검은 연기가 그것을 증명했다.

상황이 심상찮게 돌아가고 있었다.

‘저 폭발은 대체 뭐야? 폭약을 준비했단 말인가? 저만한 폭발을 일으키려면, 얼마나 준비가 필요할지 가늠도 되지 않거늘!’

‘젠장, 일이 이렇게 되면…….’

‘강호에 온갖 헛소문이 나돌겠군. 하지만… 이목이 너무 많아. 없는 호랑이도 만들어 낼 수 있을 거다.’

‘아미파에 미칠 추문의 영향을 생각하면…….’

결국, 그들은 생각해야만 했다.

저울질을 해야만 했다.

갑작스레 알 수 없게 되는, 늪으로 빠져만 가는 불로불사.

갑작스레 일어난 화재, 이곳에서 벌인 살인 행각들의 무마…….

그리고 그 가운데, 각자의 문파에 미치게 될 추문의 영향들.

저 바깥에서 싸우고 있는 것이 뭔지는 몰라도, 결코 범상한 존재는 아니다.

‘수틀리면, 어쩌면 황실… 관군이 개입했을 지도 몰라.’

‘아니, 하지만 이 성의 관계자들은 전부 매수했던 게…….’

그들은 결국 늙은 여우들이었다.

언제나 손익을 따졌고, 문파의 위대함과 명성을 유지시키기 위해 어떠한 일이라도 해온 일선의 존재들이다.

단연, 그들의 계산은 빨랐다.

가장 먼저 자리에서 일어난 것은 화산파의 장로였다.

“이런 제길! 화산은 빠지겠소.”

“…진정하세요. 마교의 습격일 뿐입니다.”

“마교는 무슨 놈의 마교!!”

웃기지도 않는 소리라며, 장로는 고함을 내질렀다.

그리고, 다른 장로들을 돌아보았다.

“마교가 여길 왜 친단 말이오!! 곤륜의 제전 때문에? 허튼소리! 그럼 저 폭발은 뭐요?!”

“그것도 적들의 계략…….”

“우리 모두의 이목을 피해 마교 놈들이 이곳에 잠입할 수 있을 것 같소? 저만한 폭약을 짊어지고!!”

모두가 서로를 힐끗 돌아보았다.

당연히 그럴 리가 없다.

마교도는 마공을 수련하고, 그에서 비롯되는 마기는 결코 쉬이 숨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강한 마인일수록 숨만 내쉬어도 새어 나온 마기가 대기를 장악할 테고, 강한 무인들이 모래알처럼 모인 이곳 서녕에서 그것을 들키지 않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늘로 치솟거나 땅을 파고 숨지 않은 이상 불가능한 일이오. 청유백인지 뭔지 하는 눈엣가시? 당신들은 그가 진짜 마교도일 것이라고 보오?”

“그건…….”

“당연히 아니지! 미친 소리를! 어떤 멍청한 우두머리가 홀로 잠입을 보내겠소. 정말 마교가 쳐들어 왔다면 그 모두를 소탕해 달라 부탁했겠지!”

서로가 서로의 눈치를 살피느라 확언하여 들고 일어나는 이는 달리 없었지만, 모두 동의하는 분위기였다.

침묵은 긍정의 이면이라 하지 않던가.

애초에 그를 쫓는 이유는 마교도라서가 아니었다.

이것은 총체적인 거래였고, 고작 한 명을 잡아 죽이고 은폐하는 것으로 추가적인 빚을 지울 수 있다면 그것이 ‘이득이니’ 실행했을 뿐이다.

하지만 상황이 변했다.

저 폭발은 무언가 심상찮았다.

이대로 가다간, 이득이고 나발이고 문파 존체가 몰매를 맞는 상황이 오고 말 것이라고 확신했다.

‘문파의 영광.’

백 년 전의 전쟁 이후로 빈틈없이 쌓아온 그 영예가, 자신의 대에 무너진다는 것은 죽음보다도 두려운 일이었다.

“무당도 이 일에서 손을 떼겠소.”

“……아미도 동의하는 바입니다.”

무당의 장로와 아미의 장로 또한 차례차례 일어났고, 죽고 새로운 대표로 갈아치워진 청성의 대표 또한 눈치를 살피며 일어났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사태를 관망하던 소림의 주지까지 어쩔 수 없다는 양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부터 이상하기는 했지. 워낙 달콤한 말이라 속는 셈 치고 함께하기는 했지만…….”

“우리와 거래를 다시 맺고 싶다면 더 완벽한 계획을 준비하여 소상히 고해야 할 것이오.”

그들은 일제히 등을 돌려 계단을 내려갔다.

서둘러야만 했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한 가지 생각밖에 없었다.

자신들이 얽히기 전에, 제자들을 전부 데리고 서녕을 뜬다.

뒤에서 황련이 무어라 소리치는 것이 귓가에 맴돌았지만, 한 번이라도 뒤를 돌아보는 이는 존재하지 않았다.

“……멍청한 자들.”

빠득.

황련은 이를 갈며 계단을 내려간 늙은 여우들을 쏘아보았다.

애초에 멍청한 자들이니 기용했고, 멍청한 자들이니 이용한 것이지만─

거사의 마지막에 결단을 내리지 못할 정도로 무능할 줄이야.

“당신들이 거래한 대상이 누군 줄도 모르고… 이미 목줄이 누구의 손에 쥐여져 있는지도 모르는군요.”

“……뭐라고?”

“길들여진 개가 어찌 주인의 손을 벗어난단 말입니까.”

황련은 장로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찬연한 황금색 기류가 손에서부터 뻗어 나왔고, 그것은 하나의 선이 되어 그들에게로 뻗어갔다.

“배신하는 건가!”

“배신이라니요.”

황련은 공허하게 웃었다.

황금의 선은 장로들에게로 일직선으로 뻗어갔고, 그들은 각자의 검기를 일으켜 그것을 베어냈다.

늙은 여우라고 한들, 호랑이 없는 산에서는 여우가 왕.

그들이라고 수련이 결코 얕은 것이 아니었다.

허나─ 그 칼질은 무의미했다.

“커억… 이, 이 무슨……!”

“아아아아악!!”

황금빛 선은 검을 그대로 통과하여, 그들의 이마에서 하나로 이어졌다.

선은 그들의 이마에 하나의 문양을 그렸고, 그것으로부터 백색의 기운이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어차피 제물이 되었을 목숨. 그 예정이 앞당겨졌을 뿐인데.”

그 선은 얼마간 이어졌다.

백색 기운이 빠져나올수록 황련의 손으로 빨려 들어가는 선이 더욱 두꺼워졌고, 반대로 장로들의 몸은 피폐해져 점점 쪼그라들었다.

기어코, 잠시 후에는.

“꺼어…….”

공허한 눈빛의 송장이 되어 바닥에 엎어졌다.

몇 개의 둔탁한 소리가 허공에 울렸다.

“질 낮은 영혼이군요. 탐욕, 쾌락, 오만… 죄악의 합리화도 정도껏이어야지.”

그리고는 황련은 고개를 돌려 자신은 계단을 올라갔다.

이곳은, 왕좌가 있는 방이었다.

죽은 장로들은 가장 바닥에 있었고, 황련은 이제 왕좌를 향해 나아갔다.

그리고, 그 꼭대기─

왕좌에 앉아 있는 작은 소녀의 턱을 쓰다듬으며, 문 바깥에서 다가오고 있는 존재감에게 고개를 돌렸다.

잠시 후.

공허한 경첩음과 함께, 거대한 문의 틈이 서서히 벌어졌다.

“오셨습니까? 마교의 후예여.”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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