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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우면 네가 천마 하든가-194화 (194/200)

제194화. 개전(開戰) (4)

굉음과 폭열의 뒤를 쫓아, 검고 붉은 연기가 하늘 높이 치솟아 올랐다.

귀를 막아도 고막까지 전해져 오는 충격에 뇌가 떨렸지만, 그럼에도 다리는 멈추지 않았다.

지금은 달려야 할 때였다.

“콜록, 콜록!”

“적들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서둘러야 합니다.”

“도와주기나 하고 말을… 아니, 됐어요. 어서 가죠.”

저 새하얀 옷에 검댕 하나 묻지 않은 꼴을 보면 조금 짜증 나기는 했지만, 원래 백소하의 역할이 그런 것 아니겠는가.

괜히 도와준답시고 깝쳤다가 폭발에 휘말리기라도 했다면 그쪽이 더 골 때리는 상황이었을 테다.

책사에게는 책사의 역할이, 무사에게는 무사의 역할이 있는 법이었다.

…녹지연 본인도 몸으로 구르는 쪽이라기에는 어폐가 있었지만, 상황이 이런데 뭐 어쩌겠는가.

지금은 지푸라기라도 붙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래도 작전은 잘 들어맞았네요. 계획대로 되고 있는 것 맞죠?”

“저쪽도 계획대로 되었다면요.”

모든 게 순탄하다고 확신할 수는 없었다.

적군 계획의 간파.

계획의 지연 및 파괴.

아군 계획의 진행.

이 모든 것들이 한 번에 맞아떨어져야 하건만, 서로 소통할 수단은 없다.

심지어, 아군의 ‘계획’이라는 것은 그저 지레짐작으로 서로가 최선의 결단을 할 것이라고 상정하고 움직여야만 했다.

청유백은 지금쯤 적을 뿌리치고 사마신교의 본진에 들어가야 했으며, 백소상과 백소하는 각자의 위치에서 적의 이목을 끌고 도주해야 했다.

이들 중 하나라도 아귀가 맞지 않는다면 다른 둘이 위험해질 것이 뻔한 상황이었다.

“그래도, 이게 최선입니다.”

“…믿는 수밖에요.”

“설령 조금 어긋났다고 해도 조금은 끼워 맞출 수 있습니다. 화약고를 찾아내 폭파했으니, 놈들의 계획 중 하나는 이미 망가진 셈이죠.”

백소하는 여기까지 오는 길에 보았던 이지 없는 괴이들을 기억했다.

살아 움직이는 푸른 시체들.

그리고 그것들과 싸운 것으로 보이는 거대한 전투의 흔적까지 말이다.

괴이의 부패한 정도를 보아, 죽은 지 얼마 안 된 시체들.

사마신교의 목적이 무사들을 몰살하여 괴이의 군단을 만드는 것이라면, 그 목적은 이미 반쯤 파멸한 것이라 볼 수 있었다.

설령 그것이 목적이 아니었다고 해도, 저들이 모아 놓은 자원을 풍비박산 내었으니 뭐 어찌 되든 좋은 일이었다.

결과적으로 이목까지 끌었고 말이다.

“이제 도망치기만 하면 됩니다. 다음 상황을 지켜봐야겠지만, 우선 청유백의 위치부터 파악을 해야겠죠.”

“잠깐, 사람이 와요. 이쪽으로.”

백소하의 팔을 녹지연이 잡아끌며 벽 뒤로 몸을 숨겼다.

그만한 폭발이 일었으니 화재가 크게 번진 것은 당연지사.

당연히 곧 사람이 많이 몰릴 테고, 그 인파에 섞여 빠져나가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지금 발각되는 것은 곤란했다. 아직 인파가 충분하지 않았다.

“서둘러라!”

“화재를 진압해라! 너는 사람들을 유도하고, 어서!”

무사들 몇몇이 지척을 스쳐 지나갔다.

저 멀리에서 현장으로 달려오는 사람들도 보였고, 곧이어 물바가지를 들고 뒤쫓아오는 이들도 보여왔다.

“말려든 사람은 없겠죠?”

“있으면 뭐 어떻습니까?”

“으음, 그건 그렇네요. 어차피 알 바 아닌…….”

“천 명 죽을 것을 열 명만 죽게 만들었는데요. 오히려 감사할 겁니다. 그런데 못 들었군요. 뭐라고 말하셨습니까?”

“…아무것도 아니에요.”

나만 나쁜 놈인가…

녹지연은 설레설레 고개를 내저으며 숨을 죽이고 주변을 주시했다.

사람은 점차 모여들고 있었지만, 점점 큰 소란으로 번지는 탓에 이쪽을 주목하는 이들은 없었다.

슬슬, 나가도 될 듯싶었다.

그런데─ 그러던 중.

“음? 저건…….”

“뭔가 봤나요?”

“아닙니다. 내가 착각을 한 것 같은데… 아니, 그래도 방금은…….”

백소하는 무어라 말을 잇지 못하며 혼란스러워했다.

그리고 결국, 무언가 결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잘못 봤을 리가 없다.

아니, 잘못 본 것이 아니라면 좋겠다고, 그리 생각했다.

“아무래도, 상황은 퍽 괜찮은 것 같습니다.”

“무엇을 보았길래?”

“사람이었습니다.”

“다소 생뚱맞은데요.”

“신경 쓰지 마십시오. 여기 왔을 것 같지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래도 내가 잘못 본 게 아니라면 좋겠지만 말입니다.”

녹지연은 고개를 까딱였다.

“흐음.”

그야 사람일 것이다.

주변에 수백의 사람이 몰려드는 광경을 두 눈으로 담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백소하는 짐짓 진지하게 말을 받았다.

백소하는, ‘그’가 설령 이곳에 오더라도 벌써 당도하지는 못했으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원칙주의의 화신과도 같은 그 사내가, 마교의 총의(總意)를 어기고 독단적인 선택을 내렸을 리가…….’

그럴 리가 없다.

하지만 잘못 보지 않았다면.

지금의 상황은,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고 흘러가고 있는 것이리라.

* * *

청유백은 이제 입을 열지 않았다.

그야말로 문답 무용.

남은 것은 처형,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뿐이었다.

찰나의 시간만이 흘렀다.

목젖에 치달았던 검극이 그대로 지거광의 턱을 찔러 들어갔고, 그것은 그대로 그의 목숨을 취할 듯 보였다.

하지만, 그다음 순간.

칼날이 목을 뚫고, 그 피가 비산하여 흩뿌려지려던 찰나─

무언가가 날아들었다.

허공을 파(破)하고, 공기를 찢어발기는 굉음과 함께 무언가가 청유백의 머리를 향해 쇄도했다.

“……!!”

너무나도 강렬한 존재감이었기에, 청유백은 미리 알아채고 검을 날려 도중에 그것을 받아쳤으나.

─키잉!!

찢어질 듯한 금속음과 함께, 거센 기세로 날아들던 검은 일격에 튕겨나 청유백의 발치에 박혔다.

청유백은 무의식적으로 시선을 돌려 자신에게 날아든 물체를 힐끗 바라보았다.

그것은 박살이 나 바닥에 조각으로나마 흩어져 있었지만, 그 원형이 무엇이었는지는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전혀 어렵지도 않은 일이었다.

[돌멩이…?!]

바닥에 나뒹굴고 있는 것은, 몇 개로 쪼개어진 돌조각이었기 때문에.

그리고 이어서 또 다른 사내의 목소리가 울려왔다.

“멈춰라. 마교의 개.”

“무, 묵련! 오셨습니까!!”

사내를 발견하자, 지거광의 얼굴이 금세 밝아지며 환호했다.

묵련.

‘알고 있다.’

저놈이 구태여 입에 담지 않았더라도, 곧장 인지했을 것이었다.

그야 저 이질적인 검은자위는 다른 무언가로 흉내 낼 수 있는 것이 아닐 테니 말이다.

“킥, 네놈은 이제 끝났어! 무대에서 내려갈 시가─”

─푸욱.

청유백을 비웃던 지거광은 말을 채 끝맺지 못했다.

그 말을 끝맺는 대신 턱 위의 머리가 깔끔하게 도려내져 바닥으로 떨어질 뿐이었다.

“말이 많다.”

묵련의 공격으로 잠시 주의가 분산된 것뿐이지, 놈의 목에서 칼이 치워진 게 아니었는데 말이다.

청유백은 검을 한 번 휘둘러 피를 털어낸 후, 묵련을 다시 돌아보았다.

그는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청유백을 똑바로 응시하고 있었다.

‘……살아남은 건가.’

그 지진에서.

묵련의 옷매무새는 상당히 지저분해져 있었다.

흙먼지를 포함한 갖은 흠집들은 그가 분명히 백소상의 계략이 적중했다는 것을 대변하고 있었지만, 정작 본인은 별다른 상처가 없어 보였다.

체력적인 측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숨을 헐떡이지도, 약간의 피로를 호소하지도 않았다.

그저 옷이 조금 더러워진 것을 불쾌해하는 정도.

묵련의 표정은 정확히 그 정도였다.

그러던 와중, 그가 입을 열었다.

“청련의 적합자는 많지 않은데…. 또 일을 저질러 주셨군.”

‘적합자?’

청유백이 눈살을 찌푸리자, 천화의 설명이 이어졌다.

[……당연한 말이지만, 육련은 아무나 시술할 수 있는 것이 아니거니와, 아무에게나 시술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라.]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모두에게 평등하게 적용 가능한, 편리한 죽음의 비술 따위가 있을 리가 없지 않던가.

천화는 말을 이었다.

[애당초 한 사람을 위한 연구였던 만큼, 자격 있는 자가 아니라면 불사에는 다가갈 수 없느니.]

‘그렇군.’

청유백은 아무래도 좋다, 라고 뇌까리며 자세를 고쳐 잡았다.

결국 놈들의 전력을 깎아낸 것만이 지금 중요한 진실일 뿐이었다.

다른 무언가에 눈을 돌리기에는, 눈앞에서 공간을 장악해가고 있는 거대한 존재감이 너무나도 강대했다.

그 거대한 악의는 차츰 청유백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마교의 개… 청가의 후예여.”

묵련은 서서히 청유백을 향해 걸어왔다.

빠르지도 않고, 그저 한 걸음씩.

“우선은 칭찬해 주마. 훌륭하다. 생각지도 못했던 버러지가 이만큼 기어오를 줄 누가 알았겠나.”

그가 한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땅이 움푹 파여 발자취가 남았고, 공기가 점차 떨려오는 것이 느껴졌다.

‘이것이 묵련.’

최강의 무(武).

물리적인 불사.

청유백과 묵련의 시선이 교차했다.

“허나… 이 앞으로는 나아갈 수 없다. 내가 있는 이상, 그분께 다가서지는 못하리라.”

“그래?”

하지만 청유백은 주눅 들지 않았다.

대뜸 포기하지도 않았다.

여기서 무슨 선택을 하겠는가.

선택지는 하나고, 그저 그 하나를 이루기 위해 검을 들 뿐이거늘.

청유백은 네 자루의 검을 동시에 허공에 띄워 올리며 손바닥을 펼쳤다.

“그렇다는 말은 즉…….”

그리고, 씩 하고 웃어 보였다.

“네놈이 없다면, 나를 막을 것도 없다는 소리군.”

“무용(無用)한 질문이다.”

두 사람은 시답잖은 잡담은 나누지 않았다.

그럴 필요도 없었고, 그럴 의미도 없었다.

피차 목적은 명확했다.

상대방의 배제. 혹은 척살.

명확한 살의의 형태가 허공에서 맞부딪혔다.

“편히 죽을 생각은 마라.”

“꿈 한번 거창하게 꾸는군.”

먼저 움직인 것은 청유백이었다.

청유백의 손짓에 따라 네 자루 검이 일제히 쏘아져 나아갔고, 그것은 서로 다른 방향에서 묵련을 향해 찔러 들어갔다.

눈, 목젖, 심장, 단전.

단 하나라도 찔린다면 치명상이 되겠지만, 묵련의 반응은 단순하다 못해 수수했다.

그 공격을 보지 못한 것은 아닐까, 의심될 정도로 말이다.

그러나, 결과는 극적이었다.

─카앙!

묵련이 쳐낸 것은 단 한 자루뿐이었다.

눈을 향하던 것, 그 한 자루.

장난스럽게 내뻗은 손짓 하나에 바람을 찢어발기던 칼날은 장난감처럼 나뒹굴었다.

그리고, 다른 것들은─

─카캉!

분명히 피부를 찔렀음에도 강철에 부딪힌 것 같은 마찰음을 내며, 그의 피부를 뚫어내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뚫고 들어가려 찌르기도 했고, 어떻게든 베어내려 몇 번이고 칼날이 춤추기도 했다.

허나.

“무의미한 짓을.”

─쿠웅.

벌레를 살풋 지르밟듯이, 그의 진각이 바닥을 짓밟았다.

대지가 울리고, 바람이 몸을 떨었다.

조용한 한 걸음이었으나─ 폭풍이 몰아쳤다.

“……!!”

콰앙!

그 한 번의 진각으로 청유백의 검들은 동시에 나가떨어져 바닥을 뒹굴었다.

금세 다시 불러들여 청유백의 주변에 모여들기는 했으나, 청유백의 표정은 결코 밝지 못했다.

‘……여기서 전부 쏟아부을 수는 없는데.’

저 뒤에, 두 번째 문의 뒤에 무엇이 있을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설마 묵련보다 강한 것이 존재하지는 않겠지만, 무엇이 나오든 대비할 수 있어야만 했다.

저놈을 죽이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가 아니니까 말이다.

그러나 묵련은 친절하게 고민하는 것을 기다려 주지 않았다.

“우선 팔부터 시작할까.”

그의 손에는 어느새 쥐어 든 바닥 파편이 들려 있었다.

그는 그것을 주먹으로 쥐어 으깨었고, 허공에 흩뿌리듯 공중으로 던졌다.

그리고, 일격.

주먹을 내뻗었다.

부서진 파편의 알갱이들은 순간 검은빛으로 화하여 청유백을 향해 쇄도했다.

하나하나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공격이었고, 청유백은 급격하게 마기를 끌어올렸다.

막지 못할 것은 없다.

싸우고자 한다면, 지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다음 싸움의 존재.

청유백을 주저케 하는 것은 바로 그것이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붉은 혜성이 청유백과 검은빛 사이를 가로막아, 시야를 물들였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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