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3화. 개전(開戰) (3)
분쇄.
그러나 무의식적으로 과도하지 않게 조절한 탓일까, 채 다 부서지지 않은 육편 하나가 청유백의 다리를 스쳐 지나갔다.
“큭…!!”
“아, 스쳤나? 아쉽군. 머리를 부숴버릴 기회였는데… 하지만 괜찮지! 시간은 많으니까.”
큰 상처는 아니었다.
하지만 작은 파편 하나가 스친 것임에도 불구하고 눈에 보일 정도로 피가 흘러내렸다.
‘시간을 끄는 건 좋지 않겠군.’
덜그럭.
청유백은 발아래의 이질적인 감각들을 밀어 치웠다.
평평했던 돌바닥은 이미 온갖 공격으로 난잡해져 수천 개의 돌조각으로 나뉘어 있었다.
공격이 직격한 부분은 아예 가루가 되어 버렸지만, 간접적으로 공격의 여파가 미친 부분은 조각이 되어 날아간 탓이었다.
“아까의 기세는 어디로 갔지, 청유백!!”
지거광은 청유백에게 자세를 다잡을 시간을 주지 않았다.
청유백은 계속해서 능숙하게 피해내고 반격하기를 반복했지만, 공방이 계속될수록 바닥의 상태는 난잡해져만 갈 뿐이었다.
이대로는 일방적인 소모전으로 끌고 가질 것이 분명할 터.
─콰아앙!!
어느덧, 그 넓었던 광장은 거의 난장판이 되어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지거광의 공격이 한 번 스칠 때마다 돌조각이 튀었고, 그것에 휘말린 시체들이 바닥을 굴렀다.
아까 그물에 걸리지 않은, 괴이가 되지 않았던 시체들이었다.
일견 보기에는 이상할 것 없었다.
그저 공격의 여파에 휩쓸려, 몸 여기저기가 부러진 채 굴러다니는 시체들일 뿐이었다.
헌데, 문득.
‘…저건?’
청유백의 시선에 기이한 사실이 하나 비춰졌다.
뭔가 기묘했다.
이 박살 난 바닥들과, 굴러다니는 시체들.
그리고 지거광과 청유백 자신의 현재 위치…….
‘설마.’
청유백은 무언가를 확신하고는, 검을 고쳐 쥐었다.
그리고 눈빛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지거광도 눈치챘는지 실소를 흘리며 주먹을 들었다.
“뭔가 그럴싸한 계략이라도 생각난 건가? 그래, 이 무대의 결말은 정해져 있겠지만… 악당도 좀 저항을 해 줘야 볼 맛이 나겠지? 뭐든 해 보라고.”
지거광은 가벼운 웃음과 함께 자신이 든 주먹을 스스로 떼어냈다.
말이 주먹이지, 그것 하나의 지름이 청유백의 몸보다도 거대했다.
그리고 그것을, 곧장 청유백을 향해 내던졌다.
“……!!”
청유백은 곧장 도약하여 날아오는 주먹을 피해냈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괴물 본체가 청유백을 향해 돌진하고 있었고, 잘린 팔에서 뻗어 나온 푸른 실이 주먹을 향해 기어가고 있었다.
그것은 신속했고, 청유백이 도약한 방향과는 정 반대 방향이었다.
이제 와 칼을 날려 보낸다 한들, 저 실은 어차피 다시 이어질 것이다.
그랬기에 청유백이 선택한 것은 도리어 돌진이었다.
─우우웅!
청유백은 검 세 자루를 휘감아 공전시키며 하늘로 뛰어올랐다.
방향은 괴물이 돌진해오는 바로 그 정방향.
청유백은 괴물의 위로 뛰어올랐고, 지거광은 놓치지 않겠다고 말하는 양 그대로 바닥을 박차 허공의 청유백을 노렸다.
인간이라는 것은, 결국은 뛰어다니기 위해 발판이 필요한 생물인지라.
대부분의 경우 허공에서 공격을 피할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바람을 짓밟고 뛰어오르는, 허공답보(虛空踏步) 따위의 방법이 있기는 하겠으나, 그것은 기본적으로 내공의 소모가 극심한 방법.
‘설령 네놈이 피한다고 해도, 두 번은 사용하지 못하겠지!’
지거광은 그리 확신했다.
소모전으로 끌고 가면 결국은 자신의 승리가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리고 다음 순간, 청유백이 도약했다.
지거광은 쾌재를 불렀다.
저것 한 번으로 소모될 그의 마기를 생각하면, 앞으로 전투는 채 일각이 지속되지 못하리라.
딱, 한순간은 그렇게 생각했다.
“……네놈!!”
하지만 아니었다.
청유백은 허공을 밟지 않았다.
그가 밟고 도약한 것은, 그의 주변을 공전하던 세 자루의 검 중 하나.
그리고 두 번을 더 밟아 피하며, 결국 지거광의 돌진을 완벽하게 틀어냈다.
청유백과 지거광의 위치가 뒤바뀐 모양새였고, 지거광의 다리는 다시 바닥에 닿았다.
하지만, 이번에 날아드는 것은 전혀 다른 것.
실이 뻗어나가 연결되었던 주먹이 마치 채찍처럼 청유백에게 쇄도했다.
좌에서 우로, 그 장절한 길이를 자랑하듯이 허공을 찢어발겼다.
─콰과광!
첫 번째 문과 함께 궁궐을 지키고 있던 담벼락이 공격에 단번에 쓸려나갔다.
벽은 붕괴했고, 바위의 파편은 아무렇게나 튀어 굴렀다.
하지만 이번에는, 청유백은 크게 피하지 않았다.
그저 한 발자국 물러날 뿐이었다.
그리고 마치─요술처럼.
지거광의 공격은 청유백의 발끝 한 치를 스치지 못하고 지나쳤다.
그 거대한 공격이 청유백에게 미치지 못한 것이었다.
길이가 모자랐던 것일까?
아니, 아니다.
저 긴 담벼락을 전부 허물 정도의 공격이 청유백에게 닿지 못할 리가 없었다.
맞았다면 즉사였고, 스쳐도 중상은 분명할 공격임에도 불구하고.
공격을 멈춘 것이었다.
의도한 것이다.
그것 외에 이유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 광장 전체를 아우르는 공격을, 청유백의 코앞에서 멈추었다.
다만.
그 의도가 지거광의 의도였는지는.
글쎄, 그의 표정에 드러나고 있었다.
청유백이 실소를 머금었다.
“그런 거였나?”
─콰앙!
진각을 내리밟자 바닥이 균열과 함께 갈라졌다.
가루를 내지는 못했지만, 바닥을 부수기에는 충분한 위력이었다.
그리고 바닥을 부순다면 당연히, 사람의 머리를 부수기에도 충분한 위력이었다.
그리고 그의 발치에는 널브러진 시체 여럿이 있었다.
곧, 지거광은 흥분하며 흉측한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각본에 없는 짓을…!! 무대를 망가뜨리다니!!”
“네가 쳐부순 건 안 보이나 보지?”
무대고 나발이고, 개소리도 참.
청유백은 어깨를 으쓱이며 눈을 굴렸다.
뭐, 이해 못 할 것은 없었다.
사람이라는 것은 본디, 예상치 못한 상황이 오면 말이 많아지는 법이다.
가령… 이렇게.
─푸욱!
청유백은 검을 들어 시체 중 하나의 팔을 찔렀다.
일순간, 지거광의 표정이 심하게 일그러지는 것이 보였다.
비명도 지르지 않고, 표정도 금방 돌아온 것으로 보아 참는다고 참아낸 것이겠지만.
어디 고통이라는 것이 뜻대로 되는 물건이던가.
청유백은 그대로 검을 돌려 상처를 후벼팠고, 분명히 죽었을 시체의 손가락이 꿈틀거렸다.
청유백은 비웃듯 이죽거렸다.
“이상하다 싶었지. 청련, 이성 없는 괴이. 그런데 왜 너는 멀쩡할까?”
“……!!”
청유백은 회상했다.
청련의 대가는 지성이다.
시술자는 이성 없는 괴이가 되어야 마땅하고, 천화도 그것을 증언했다.
‘하지만 놈은 그런 기색을 보이지 않았지…….’
지성의 감퇴도, 이성의 부재도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몸을 이어붙이고, 계속해서 살아나기를 반복한다.
[그럼 그렇지. 그게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불사겠지…….]
천화는 허탈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절대적인 불사는 없다.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면, 저 괴물은 어떻게 된 것일까.
“답은 하나밖에 없지.”
녀석은 ‘청련’이 아니다.
지거광은, 청련은 자신의 몸에 청련을 시술한 자가 아니다.
오히려 다른 이들을 ‘청련’으로 일으켜 세우는 자.
즉, 기술자였다.
[처음부터 놈은 싸우지 않았구나. 그저… 모든 게 인형일 뿐이었어.]
인형을 일으키고.
인형으로 말하고.
자신은 그저, 옆에서 시체인 척 누워 있을 뿐이다.
팔이 잘리고 뼈가 부러져도 괜찮다.
시체 밭에서는 조금 움직여도 들키지 않고, 설령 신체가 잘려나간다 해도 목숨만 붙어 있다면 붙일 수 있다.
그것이 놈의 비밀이었다.
청유백은 굴러다니는 시체에서, 아니 지거광 본체에게서 칼을 뽑아 들고는, 놈의 배를 걷어차 날려버렸다.
“커억…!”
직접 장기를 울리는 타격까지 참을 수는 없었는지, 지거광은 결국 시체 행세를 그만두고 숨을 토했다.
본체가 쓰러지자 괴물은 곧 무너져 내렸고, 청유백은 그에게 다가가 머리채를 붙잡았다.
“공교롭게도 난 한 번 본 건 쉽게 잊지 않아서 말이야. 숲에서 보았던 시체들의 얼굴 하나하나, 여전히 기억하고 있지.”
처음에는 그저 기시감이었다.
전투의 흔적.
바닥의 상흔.
그 모든 것이, 일정한 간격을 띄우고 만들어져 있었다.
무작위로 내리쳐진 것이 아니라─ 어느 중심을 두고 그것을 보호하듯 움직이고 있었다.
기실, 이상하기는 했다.
바위가 으스러지고 모래알로 변하는 공격이 수없이 반복되는데도, 시체들이 으스러지는 횟수가 현저히 적었다.
[시체가 줄어들면 놈이 숨어들 배경도 줄어드니 그랬겠지. 뭐, 얄팍한 눈속임이구나.]
천화가 이죽거렸고, 청유백은 어깨를 으쓱였다.
결국 확신을 지닌 것은 다른 이유였으니까.
“그런데… 분명 거기서 뒤졌을 게 분명한 놈이 여기 멀쩡히 쓰러져 있군.”
그 숲에서 죽었던 시체와 동일한 것이 이곳에 있었다.
키, 체형, 얼굴, 모든 것이 동일한 시체였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 부활이라도 했는지 숨을 켁켁거리며 뒷걸음질을 반복했다.
“유언은 저승에 가서 뱃사공에게나 들려주도록.”
청유백은 검을 날려 지거광의 턱밑에 가져다 대었다.
굳이 다가가서 빈틈을 줄 이유도 없었기에, 끝을 맺는다면 이대로가 가장 좋을 테다.
“자, 잠깐만! 후회할걸!!”
하지만 지거광은 상처를 부여잡으며 어떻게든 소리를 끌어모아 입을 열었다.
통증과 신음 사이로 살고자 하는 발악이 고통스레 새어 나왔다.
“어, 어차피 너는 도망칠 수 없다. 소란을 들은 다른 무사들이 여기를 둘러쌀 테고, 네 패배는 예견된 종막이다! 그, 그래도 날 살려준다면─”
“살려주면, 뭐?”
“나, 나도… 나도 살려 보내 주겠다. 이대로 끝내지 않겠나? 무승부로. 응? 그 왜, 희극에서도 악당이 살아가는 경우가…….”
“들을 가치도 없군.”
개소리도 정도가 있지.
…하지만 청유백은 순간 인상을 찡그렸고, 곧 침묵했다.
생각해 보니 저 말이 전부 개소리인 것은 아니었다.
청유백은 백소상이 언질해 주었던 조언 하나를 상기시켰다.
봉화 두 개가 오를 것이다. 첫째 봉화가 오른다면, 그때 진입하라.
그리고 두 번째가 있었다.
‘싸우되, 적들이 몰려올 때까지 두 번째 봉화가 오르지 않으면 도망쳐라.’
어쩌면 상식적인 말이었다.
이곳에서 적들에게 둘러싸인다면, 그것을 돌파하고 살아나갈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청련과 싸우고 힘이 꽤 빠진 지금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백소상은 이렇게도 말했다.
‘두 번째 봉화가 오른다면, 계속 싸워도 좋다’
…라고.
그러나 청유백은 이해할 수 없었다.
‘백소상은 이미 첫 봉화 때 목숨을 잃었을 것이 분명한데…….’
설마 그 정도의 붕괴에서 살아남을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기 힘들었다.
그렇다면, 두 번째 봉화는 대체 뭐란 말인가?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물리치듯, 미리 준비한 무언가가 있다는 말인가?
‘……어쨌든, 결단을 내려야 한다.’
놈은 어차피 여기서 죽는다.
하지만 더 들어갈 것인가, 말 것인가.
어차피 들어가면 죽음은 확실한데도, 각오하고 들어가야만 하는가?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았다.
고민한 후 청유백의 검극이 살짝 흔들리고, 청유백이 숨 한 번을 다 내뱉을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직후.
─콰아아아아앙!!
굉음이 천지를 뒤흔들었다.
그리고, 땅을 뒤덮을 것 같은 불길이 충천했다.
하늘과 구름은 붉게 물들었고, 지거광의 얼굴은 시시각각 푸르게 변색되어 갔다.
봉화가, 올랐다.
“……글쎄.”
거대한 폭발에는 언제나 상응하는 화재가 따른다.
청유백이 아무리 요란하게 싸웠다 한들, 소란으로 따지자면 저것의 천분의 일도 되지 못하리라.
청유백은 어깨를 으쓱였다.
“안 올 것 같은데?”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