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1화. 개전(開戰) (1)
고요한 방 안, 백소상은 홀로 남아 의자에 걸터앉아 있었다.
완벽한 고요 속에서 그를 방해하는 것은 무엇도 없었으며, 창밖에 드리운 안개 탓에 바깥의 소란은 거짓말같이 느껴졌다.
“퍽 이상하지 않습니까?”
백소상은 짐짓 궁금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홀로 술잔을 홀짝였다.
홀로 남은 회색의 공간, 그의 말을 들어주는 이는 하나도 없었음에도.
그는 자연스레 말을 이었다.
“구태여 다른 장소들을 전부 제쳐두고, 비효율적이기 그지없는 궁궐 따위에 둥지를 틀다니요.”
군사(軍師)인 백소상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니, 조금이라도 전술 지식을 지니고 있는 이라면 모두가 그것에 동의할 것이다.
궁궐은 터를 잡아 수비하기에 결코 좋은 장소가 아니었다.
지리적 이점은 없고.
효율적으로 틀어막을 수 있는 수단도 없으며.
나아가, 적의 눈을 속여 함정에 빠뜨리는 등의 준비도 불가능하다.
전부 개활지에, 엄폐물이라고는 일부 장식과 담벼락 정도밖에 있지 않은 장소 아닌가.
수비할 면적은 넓은데 인원은 훨씬 많이 필요하고, 인원이 많아도 효율이 떨어진다.
궁궐이라는 장소는 그만큼이나 비효율적인 장소였다.
백소상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기에, 그냥 입에 담아 보았다.
대답을 바라고 한 말은 아니었다.
허나.
─콰득.
“……!!”
─콰드득.
문 너머에서 기이한 소리가 들려왔다.
결코 쉬이 들을 수 있는 소리는 아니었다.
진법을 힘으로 찢어발기는 소리.
이지(理智)가 무력에 굴복하는 신음이 바로 저러했다.
그리고 다음 순간, 기대하지도 않았던 대답이 저 너머에서 들려왔다.
“단순한 이유지.”
그리고 동시에, 창문 바깥에 드리웠던 안개들이 점점 사라져 갔다.
고요는 사라지고, 바깥의 소란이 점차 전해져 오기 시작했다.
“그분을 모시기 위한 장소인데, 험한 야산 따위에서 맞이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귀한 분께는 그에 맞는 신전이 필요한 법이니…….”
─콰앙!
문이 산산조각 나며 날아간 직후, 목소리의 주인이 방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백소상과는 대비되는 흑의를 걸친 사내였다.
달리 특이한 점이라면, 한 가지.
“며칠 만에야 다시 얼굴을 보는군. 설마 코앞에 숨어 있었을 줄은 몰랐어.”
그 눈의 흰자위가, 전부 검은색으로 물들어 있다는 점이었다.
그와 마주 보고 있는 백소상의 감상으로는, 자신의 앞에 있는 것이 결코 ‘인간’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그 존재감, 그 분위기.
그 모든 것이 인간을 초월하여 있었고, 저 눈을 마주보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용기를 필요로 했다.
“……묵련.”
허나, 지금으로서는 절로 표정이 일그러졌다.
분노하지 않는다면 그것이야말로 거짓말일 테다.
고작 며칠 전.
자신의 동료들을 죽였던 장본인이 바로 눈앞에 있었다.
하지만 침착해야만 했다.
백소상은 천천히 술잔을 다시 기울였고, 묵련은 그 모습을 보며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운이 나쁘군. 도망치는 실력 하나는 발군이었거늘…. 아니, 지금껏 숨어 있을 수 있었으니 오히려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하나?”
“운은 당신네 동료가 더 좋지 않았습니까? 청련이라는 놈은, 당신이 오지 않았으면 필경 뒈졌을 텐데.”
애당초 약강에서 놈을 패퇴시켜 이곳 서녕까지 쫓게 된 것이었다.
패색이라고는 조금도 없었고, 이곳 인근까지 이르러 겨우 놈을 죽일 수 있으리라 보였다.
하지만 그때 눈앞의 사내가 나타났다.
자신을 묵련이라 칭한 흑의 사내가 말이다.
“차라리 끝까지 숨어 있지 그랬나. 그랬다면 의식이 끝날 때까지는 쫓지 않았을 텐데.”
“그런 최후에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이런 끝은 의미가 있는 것 같나?”
“글쎄요, 어떨는지.”
백소상은 술 한 잔을 더 따라 잔을 기울였다.
썩 맛이 좋지는 않았다.
방금 나가서 급하게 사 온 것이었으니, 많은 것을 기대하는 것도 사치겠지만 말이다.
이윽고, 묵련이 백소상의 지척까지 이르렀다.
“헌데… 청유백은 어디에 있지? 분명 추적향은 이곳을 향했는데.”
묵련은 숨을 내쉬며 코를 찡그렸다.
몇 번이고 반복하는 그 모양새는, 마치 직접 향을 맡고 있는 듯 보였다.
“추적향? 하하…….”
‘미친놈.’
찾아내리라고 생각은 하고 있었다.
‘애초에 굳이 이곳을 나가 술을 사 온 이유도, 구태여 찾아오라고 단서를 흘린 것이지만…….’
진법 안에 가두어진 향을 직접 맡아 찾아내었단 말인가?
‘훈련받은 동물들조차 찾아내지 못하는 것을?’
백소상은 허탈하게 웃었다.
말이나 되나.
최소한, 저것이 인간은 아니다.
평범한 인간의 잣대를 들이밀면 안 되는 존재인 것이다.
‘하긴, 그러니까 지금 이 상황까지 몰리게 된 건가…….’
아니, 상관없다.
몰린 것은 그저 자신들이 모자랐기 때문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이야기다.
‘중요한 것은 지금부터.’
쥐새끼도 구석에 몰리면 고양이를 무는 법이다.
“이렇게 맛대가리 없는 술은 또 처음입니다.”
그리고, 마교의 백색 쥐는…….
“어때요, 같이 드시겠습니까?”
“사양하지.”
“아쉽군요. 저승길 선물로라도 받아 주셨으면 했는데.”
“……?”
…언제나, 그 반전을 배신하는 법이 없었다.
─달그락.
백소상은 비어버린 술잔을 내려놓았다.
이제 술은 한 방울도 남아 있지 않았다.
다른 미련도, 한 방울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 순간.
─덜그럭.
술잔이 덜그럭거리는 소리와 유사한 소리가 발밑에서 울렸다.
균열이 일어나는 소리였으며, 거대한 현상의 작은 전조였다.
그 소리가 귓가를 울리고, 하늘 높이 울려 퍼지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백소상이 술잔을 내려놓고.
발밑의 소리가 울리고.
묵련이 크게 인상을 일그러뜨리며, 백소상의 목을 베어내기까지 단 한 순간.
그 한순간 뒤에는─
─콰르르릉!!
방 전체를 집어삼키는 거대한 무저갱이 발아래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진법은 붕괴했고, 주변의 풍경은 이미 돌아온 지 오래.
그러므로 이것은 현실이었다.
지반이 붕괴하고 방이 무너져 내렸다.
무언가를 딛고 도약하려 해도 남아 있는 바닥은 이미 없었다.
있는 것은 위에서 쏟아져 내리는 건물들의 잔해들 뿐.
동시에, 거대한 먼지구름이 하늘 높이 치솟아 올랐다.
* * *
[세상에.]
저 멀리 솟아오르는 거대한 먼지구름을 보며, 천화는 기겁하며 헛숨을 들이켰다.
비상식적인 크기였다.
이 먼 거리에서도 느껴질 정도의 진동과 먼지구름이라면, 저 인근에서는 대체 어떤 생지옥이 펼쳐졌을지 짐작도 되지 않았다.
[…의심할 여지도 없구나.]
‘그래.’
저것이 백소상이 말했던 ‘봉화’일 것임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저것이 청유백에게 모든 것을 맡긴다는 신호이기도 하다는 것이 느껴져 왔다.
백소상은 저 자리에 남아 있었고, 저만한 대계를 펼치고도 목숨이 온전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다만, 그가 끌어들였을 육련의 하나가 부디 그와 함께 저승의 강을 건넜기를 바랄 뿐이었다.
─데앵. ─데앵.
그렇게 잠깐 상념에 빠져 있던 찰나, 저 멀리서 울려오는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청유백을 깨웠다.
그저 바람에 묻어가듯 울리는 종소리였지만, 청유백의 신경을 긁어냈다.
‘왠지 거슬리는군…….’
진입을 압두고 감상에 젖기라도 한 것일까.
청유백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정신을 가다듬었다.
“서두르지.”
주저 따위는 필요 없었다.
청유백은 멀리서 자신의 검 세 자루를 전부 불러들였다.
그리고, 허리춤에 찬 다른 하나의 검을 손에 쥐었다.
이것은 백소상이 그에게 맡긴 검이었다.
더욱 정확히는, 청명휘의 시체에서 백소상이 가지고 도망친 유품이었다.
‘나약한 사람의 손에 남아 있는 것보다는… 제대로 된 주인에게 가는 것을 그도 더 좋아할 테지요.’
불휘(不輝).
이름처럼 빛을 머금지 않은 채, 서늘한 예기를 내뿜는 잿빛 검이었다.
이제 총 네 자루.
검을 다룰 수 있는 시간은 더욱 줄어들겠지만, 상관없다.
“시간을 오래 끌 것도 아니니.”
청유백은 눈앞의 정문을 바라보았다.
‘연원궁…이라 했던가.’
정문을 지키는 이는 있었지만, 정작 주변을 돌아다니는 행인은 별로 없었다.
사마신교 놈들의 본거지이니, 모종의 조치를 취해 놓았을 가능성이 다분했다.
뭐, 어찌 되었든 좋은 일이었다.
신경 쓰지 않고 검을 휘두를 수 있으니 말이다.
“거기 누구냐! 그 자리에…….”
─서걱.
청유백을 발견하고 창을 치켜들던 경비들은 차마 말을 끝맺지 못한 채 그 머리가 땅에 떨어졌다.
밖에서 보았을 때, 돌파해야 하는 문은 대략 세 개.
청유백은 일단, 첫 번째 문을 박살 내며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리고 동시에, 안쪽에서 들려온 우렁찬 목소리가 귓가를 때렸다.
“발사!!”
첫 번째 문 안에는 수많은 궁사들이 도열하여 있었다.
대체 언제부터 준비하고 있던 것인지, 문이 박살 나기 무섭게 청유백을 향해 화살의 비가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기습이 아니었나?”
이 준비는 마치 자신이 올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한 모양새였다.
청유백은 도열한 병사들을 주욱 한 번 훑어보았고, 그것은 아니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작정하고 준비했다고 보기에는 그 숫자가 일천했다.
대비했다 하더라도, ‘만에 하나’ 정도일 것이다.
곧장 정면에서 쏟아져 내리는 화살 비. 뒤로 물러나는 것 또한 하나의 방법이겠으나─
“무의미한 짓을.”
청유백에게 화살은 결코 유효한 공격의 수단이 아니었다.
화살이 청유백을 향해 하늘로 쏘아 올려질 무렵, 청유백은 허공에 띄웠던 검 세 자루를 전부 바닥에 꽂아 넣었다.
특별한 의미가 있는 행동은 아니었다.
그저 동시 조종하기에는 버겁기에, 잠시 버려둔 것뿐이었다.
그 후, 청유백은 주먹을 쥐었다.
날아오는 화살을 향해 손을 뻗어, 그 모든 것을 가려 움켜쥐듯 당겼다.
화살이라는 물건은, 검에 비해 한없이 가벼운 물건인지라.
“저게 대체 무슨……!!”
“더, 더 쏴라! 멈추지 말고 쏴라!!”
…아무리 많이 쏘아 올린다 한들, 그 운동을 멈추어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 전혀 어렵지 않은 무기였다.
그러니, 다음에 일어날 일은 뻔했다.
화살은 허공에 멈추었고, 청유백은 주먹을 쥔 방향을 틀었다.
그 화살촉들은 머리를 틀어, 자신을 쏘아댄 주인을 바라보았고.
“저, 저거!”
“두려워하지 마라! 방패를─ 커억!”
훨씬 더 강력한 비가 되어 병사들의 몸을 꿰뚫었다.
목제 방패 같은 것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찰나가 지나고, 그 자리에 두 발로 서 있는 병사는 단 한 명도 남아 있지 않았다.
“차라리 검을 들고 백병전을 펼치지 그랬나?”
그랬다면 최소한 체력을 조금이나마 소진시키는 것은 가능했을 것이다.
무얼, 이제는 들을 수 있는 인간이라고는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지만 말이다.
청유백은 주저 없이 걸음을 옮겼다.
앞으로 남은 문은 두 개.
‘앞으로도 이렇게 맞이해 주면 참 편하겠는데 말이지.’
그런 궁상맞은 생각을 하며, 청유백이 줄지어진 시체를 뛰어넘을 찰나.
“조언 고마워. 다음에는 꼭 그렇게 하도록 하지.”
─콰득!
쓰러진 시체 하나가 푸른 안광을 뿜으며 청유백의 발목을 붙잡았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