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꼬우면 네가 천마 하든가-186화 (186/200)

제186화. 첫 번째 꾀 (1)

“…….”

청유백은 자연스럽게 거리를 지나갔다.

허리춤에 검이 한 자루밖에 없는 것이 퍽 허전하기는 했지만, 검이야 언제든지 다시 불러들일 수 있으니 문제 될 것은 없었다.

다만 문제를 찾으라면, 자신을 적대하는 이들이 한둘이 아니라는 점일까.

“이쪽에서 소란이 들렸다! 이봐, 저쪽으로 돌아봐!”

“멀리 가지 못했을 거다! 쫓아!”

그들의 복장은 제각각 전부 달랐고, 움직이고 협력하는 형태를 보아도 각기 다른 세력 소속이라는 것이 명확히 눈에 들어왔다.

격앙하여 자신을 쫓는 화산의 다른 제자들부터 무당의 말코도사들….

‘얼씨구, 소림 땡중까지.’

청유백은 절로 나오는 코웃음을 참으며 그들의 옆을 스쳐 지나갔다.

청유백으로서는, 도대체 중원에서 제 배때기 쳐 불리고 있을 놈들이 왜 이 변방까지 기어 나와 이러고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을 따름이었다.

‘곤륜제전 때문에? 아니, 당연히 그건 아니겠지…….’

그들은 권세가 높은 만큼이나 자존심도 높다.

구태여 무림의 행사에 영향을 미치고 싶다면 자신들 손으로 판을 짜지, 이 변방까지 와서 불확실한 판에 발을 담그지는 않을 것이다.

천화가 무심히 대꾸했다.

[사마신교와 모종의 연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타당하지 않겠느냐.]

‘그야 그렇겠지. 지거광 놈이 화산파 제자들을 그냥 보내준 일도 있었으니… 여기 모인 면면들을 보면, 오대 거파 모두가 참여한 모양인데.’

[대충 윤곽이 잡히는구나.]

‘그래. 곤륜제전이고 나발이고… 곤륜파와 사마신교만으로는 이리 큰 판을 짤 수 없었겠지.’

당연한 일이었다.

곤륜파는 이미 몰락한 지 오래고, 사마신교도 결국은 마교에서 갈라져 나온 지 길어봐야 수십 년이다.

즉, 어느 쪽이든 간에 물질적으로 풍족한 부를 지니고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만한 대회를 열고, 예선까지 치를 정도라면 당연히 막대한 돈이 들어갔을 것이 너무나도 자명한 일.

물밑에서 꾸며지고 있을 모종의 계획들도 생각해 본다면, 천문학적인 금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리고 당연히, 그 금을 대주는 물주의 존재는 필연적인 요소였다.

[오대 거파, 그리고 사마신교…. 썩 어울리지는 않는 조합이구나.]

‘욕망에 충실하다는 점에서는 어울릴지도 모르지.’

청유백은 코웃음 쳤다.

뭐, 영생이라는 미끼 앞에서 낚이지 않을 인간이 얼마나 되겠느냐마는, 청유백은 그것에 대고 당당히 얘기할 수 있었다.

영원한 삶이라는 것은 결국 빛 좋은 개살구이며, 결코 그럴싸한 물건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말이다.

‘사적인 욕망은 결국 파멸을 불러오게 되어 있어. 당연한 일이지.’

[호오, 그럼 네놈은? 네놈의 행동 원리는 사적인 욕망이 아니었느냐?]

‘난 파멸할 거야. 제발 누가 시켜줬으면 좋겠군. 한… 칠십 년만 더 살고 나서.’

[양심이 없어도 적당히 없어야지…….]

천화는 한숨을 내쉬었다.

하기야 뭐, 수십 번이나 같은 삶을 살았다면 새로운 자극을 원할 법도 하다만.

전형적인 그것 아니던가.

[그… 내가 하면 순애보, 남이 하면 불륜? 그거 아니더냐.]

천화는 아리까리한 기억을 되짚어가며 그런 말을 입에 담았다.

그러면서 아무래도 요즘 젊은것들이 하는 이야기는 잘 모르겠다는 말을 덧붙이고 있었다.

청유백은 대답 없이 그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을 뿐이었다.

이어서 투덜거리는 천화의 목소리를 무시하며, 청유백은 슬쩍 소매 아래로 약도를 살펴보았다.

‘대충 근처인 것 같은데…….’

도시가 워낙 넓은 만큼 더 살펴봐야겠지만, 일단은 표기된 장소는 이 부근이 맞는 듯 보였다.

대로가 아닌, 점차 으슥한 골목으로 들어가는 부근이었다.

건물과 건물 사이의 틈새가 맞닿아, 누군가 몸을 숨기기에는 퍽 괜찮아 보이는 장소였다.

이렇게 되면, 백소상이 살아 있다는 쪽이 조금 더 현실성 있게 다가온다.

[아마 저쪽이 입구… 으음?]

…헌데, 문득.

갑작스레 새 한 마리가 날아와 청유백의 머리 위를 맴돌더니, 어깨 위에 앉았다.

그리 커다랗지는 않았고, 평범한 참새 정도 크기의 새.

…그리고 직후, 청유백의 뒤에서 한 남성의 일갈이 귓가를 울려왔다.

“찾았다! 저놈이다!”

“……!!”

그 말과 동시에, 주변 무사들의 시선이 한순간에 청유백에게 고정되었다.

─챙! 챙! 챙! 챙!

그리고 이어서, 수십 개의 강철 소리가 연달아 들려오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청유백은 오래 고민하지 않았다.

당장 몸을 돌려 골목 안쪽으로 내달렸다.

‘어떻게 찾은 거지?’

뒤이어 수십 개의 발소리가 분주하게 청유백을 뒤쫓는 것이 들려왔다.

뒤를 돌아볼 겨를은 없었다.

단지 청유백이 시선이 향한 것은, 여전히 자신의 머리 위를 맴돌고 있는 한 마리의 새였다.

‘그렇군, 추적향인가.’

[귀찮게 되었구나.]

청유백은 혀를 차며 검을 뽑았다.

그리고 일순간 마기를 끌어올려, 날려 보낸 검으로 새를 단번에 꿰뚫었다.

하지만 준비한 새가 한 마리뿐은 아닐 터.

‘철두철미하군. 언제였지? 처음부터였나?’

추적향은 사람의 코로는 감지할 수 없는 향이다.

오로지 특수하게 훈련된 동물만이 반응하여 쫓을 수 있고, 그 거리는 능히 천 리 바깥에서도 이어진다고 한다.

개가 아닌 새를 이용한 추적향이니만큼 그 거리가 그만큼 길지는 않겠지만─

능히, 이 성 전체를 감지하고는 남음이 있을 것이다.

저 멀리서 두 번째 새의 그림자가 보였고, 청유백은 그것마저 꿰뚫으며 골목을 내달렸다.

주변의 인기척이 점차 좁혀들고 있었다.

적이 많아도 너무 많다.

새를 처치하는 것은 좋지만, 이것도 결국은 스스로의 목을 조여오는 행위였다.

아무리 잠깐씩 마기를 끌어올리는 것이라고 해도 그것을 탐지하는 이는 있을 테고, 자신의 현재 위치를 까발리는 것과 다름없는 행위였으니 말이다.

얼마 가지 않아, 골목 저편에서 인영 하나가 튀어나와 소리쳤다.

“이쪽이다! 놈이 여기에 있다!!”

‘젠장 할.’

어디를 가도 결국은 사람이 있다.

오대 거파 놈들뿐이었다면 어느 정도 여유가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골 때리게도 적은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이곳 서녕에서 마교도는 무림공적.

공 한번 세우고 유명세 좀 떨쳐 보겠다고 날뛰는 떨거지가 한둘이 아니었다.

“놈이다! 죽여라!!”

“…….”

이윽고, 결국 검을 휘둘러야 하는 상황까지 오고 말았다.

밀려드는 인원은 결국 청유백의 앞을 가로막았다.

죽이는 것에 거리낌이 있는 것은 아니나, 문제는 숫자.

이놈들 전부를 죽일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 도망치는 데에 집중해야만 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백소상이 남겨둔 표식에는 전혀 닿지 못했다.

‘분명 이 부근일진대.’

그들이 살아 있다면, 어쩌면 이 부근에서 버티고 있는 것만으로 유의미한 대처가 될지도 모른다.

혹시나 하는 바람이었지만, 정말로 혹시나 지원을 와 줄 수도 있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청유백은 검을 꼬나쥐었다.

어찌 되었든 간에, 지금으로서는 결국 희망찬 바람일 뿐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을 꼽아 보라면, 청률과 묵태곤은 이미 따로 움직이게 한 이후라는 점이었다.

이 포위망 속에서 놈들의 신경을 써 줄 여유는 전혀 없었을뿐더러, 신경 쓰지 않다가 생포당해 있는 정보 없는 정보 다 씨부리는 것보다야 백 배 나았다.

…결국 당장 해야 할 일은, 눈앞의 인파를 돌파하는 일이었다.

“죽어라!!”

청유백은 진부한 헛소리들에 미간을 찌푸리며, 벽을 타고 뛰어올랐다.

왼쪽 벽과 오른쪽 벽을 번갈아 밟으며 도약했고, 가장 앞쪽에 있는 무리의 머리 위를 날았다.

그리고 곧, 검이 닿는 한 놈들을 베어 넘기며 지붕 위로 뛰어올랐다.

죽지는 않고, 다리나 팔에 움직이지 못할 정도의 부상만 남겼다.

[저들의 목숨을 아끼는 게냐?]

‘개소리를…. 당연히 이쪽이 나으니까 그렇지.’

청유백은 힐끗 뒤편을 돌아보았다.

몇몇은 청유백을 따라서 지붕 위로 올라왔고, 몇몇은 상처를 지혈하며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그리고 또 다른 몇몇은, 지혈하고 있는 자신의 동료를 부축하며 추격을 포기했다.

죽이면 물론 그것대로 나쁘지 않겠다만, 당장의 전투 인원을 줄이는 데에는 살해보다는 부상이 나았다.

전부 각각의 이득만을 좇는 승냥이 떼라면 모를까, 결국 동료가 있고 집단이 있는 이상 서로의 목숨을 챙겨 줘야만 하기 때문이다.

지붕으로 올라온 놈이 대략 열, 아직 아래에서 기다리는 놈들이 수십.

그리고 정보를 듣고 이쪽으로 달려올 놈이 족히 기백은 될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답이 없다.’

청유백은 팔을 뻗어, 처음에 숨겨 두었던 검들을 불러들였다.

홍련검과 비천검은 잠시가 지나기 전에 부름에 응답했고, 내달리는 청유백의 뒤를 향해 자동으로 날아갔다.

“이런, 무슨……!”

─캉! 카캉!

갑작스러운 이기어검에 당황하며 날아드는 검을 쳐낸 무사가 반, 저항도 못 하고 비명횡사한 무사가 반이었다.

힐끗 돌아보아 확인한 청유백은 만족하며 검들을 다시 불러 모았다.

어차피 기습에 한 번 반응한 놈들은 제대로 상대해 주지 않는 이상 더는 통하지 않을 게 뻔했다.

거리를 한 번 벌렸으니, 차라리 이 거리의 이점을 활용하는 것이 나았다.

‘주변에 사람이 없는 골목이 있나?’

[으음, 하나 있구나.]

‘방향은?’

[저쪽이니라.]

청유백은 천화가 가리킨 방향을 향해 정면으로 질주했다.

중간중간에 지붕 위로 뛰어올라 청유백을 기습하는 이가 몇 있었지만, 공중에 떠 있는 이상 검의 이슬이 되어 횡사하기 딱 좋은 각도였다.

설령 받아쳐서 살아남는다고 해도, 결국은 바닥으로 다시 떨어질 운명이고 말이다.

청유백은 곧장 내달려 아직 사람이 없는 골목을 향해 뛰어들었다.

그것은 좁은 틈새였다.

건물과 건물 사이의, 쓰레기와 먼지, 쥐가 지배하는 작은 나라.

어찌 보면 사람이 없는 것도 당연한 골목이었지만, 청유백은 어딘가 작은 위화감을 느꼈다.

“……이건.”

[그렇군… 사람이 없는 이유가 있었던 게로구나.]

알 수 없는 기시감.

미간을 짜릿하게 울려오는 익숙한 이 감각은, 청유백이 이미 잘 알고 있는 것이었다.

“진법의 흔적이다. 천화, 찾을 수 있겠어?”

[본녀를 뭘로 보는 게냐?]

“좋아.”

다만 문제가 있다면, 다름 아닌 시간.

이곳에서 버티다가 눈앞에서 갑자기 사라져 버리면 반드시 의심을 사게 될 테고, 진법 너머로 사라진다고 해도 누군가의 이목 바깥에서 해야만 할 테다.

하지만 아무리 천화라고 한들 진법을 해석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 시간은, 이 골목에서는 끌 수 없을 것이었다.

“얼마면 되지?”

[반 각. 아니면 반의반?]

“좋아.”

청유백은 마기를 전력으로 끌어올렸다.

어차피 이미 위치는 다 들켰으니, 시간을 벌 수 있는 방법은 딱 하나밖에 없었다.

아주 단순하고, 아주 원초적인.

살해.

─서걱!

청유백이 도약하며 허공으로 날려 보낸 검이, 마침 골목으로 이어 뛰어내리려던 무사의 미간을 꿰뚫었다.

그리고 그 너머의, 세 번째로 오던 새도 찔러 죽였다.

이어 날아든 나머지 두 개의 검이 아직 낙하하고 있는 두 무사의 몸을 찢어발겼고, 청유백이 다시 지붕 위에 섰을 때는 그 주변에 살아 있는 무사는 없었다.

단지, 이제 막 지붕으로 올라오기 시작하는 무사들 몇몇이 저만치에서 보이기 시작할 뿐이었다.

“후우…….”

큰 기술은 사용할 수 없다.

바닥까지 긁어모아 기술을 날린다면 이 일대를 통째로 날려버릴 수 있겠지만, 이 건물들과 저기 어딘가에 숨어 있는 백소상까지 날려버리게 되리라.

정밀함이 필요했다.

오직 사람만을, 정밀하게 찢어 죽일 수 있는 기술이.

“……좋아.”

청유백의 전신에서 검은 마기가 피어올랐고, 세 자루의 검이 그 주변을 공전했다.

그리고, 손을 뻗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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