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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우면 네가 천마 하든가-184화 (184/200)

제184화. 신앙의 대가 (4)

청유백은 힐끗 눈을 돌려 그들의 옷차림을 살폈다.

각자의 병장기는 약속이라도 한 듯 한 자루의 검. 비수를 숨길 만한 소매나 도구는 보이지 않았다.

대낮이라 그런 것인지, 암행복이 따로 없는 것인지, 옷은 특별할 것 없는 평상복.

최소한, 저놈들은 전문적으로 길러진 살수는 아니었다.

‘무림인이지만, 살수는 아닌가.’

[사마신교 놈들도 여유가 없는 모양이구나. 대충 정황을 보자면, 놈들은 아마…….]

‘……화산파.’

천화는 동의한다는 양 고개를 끄덕였다.

놈들의 소매에 대놓고 매화 자수가 그려져 있지는 않았지만─꼴에 암살한답시고 다른 옷으로 입은 듯 보였다─ 우두머리로 보이는 사내에게서 풍기는 끔찍하리만치 짙은 매화향이 그것을 반증했다.

무공을 펼칠 때 은은하게 풍기는 매화향은 화산의 상징이며, 그것의 짙은 정도가 대략적인 고수의 지표가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놈들 중 익숙한 얼굴이 두 놈 있었다.

‘그랬지. 지거광이… 화산파 두 놈을 그냥 살려 보냈었던가.’

이름이 뭐였더라, 운표?

뭐, 상관없는 일이었다.

청유백은 손가락만을 움직여 옥패와 쪽지를 소매 안으로 숨겼다.

정파라는 놈들이 아무 확신도 없이 무고한 사람을 해치지는 않을 테니, 시치미 떼면 그만인 일이었다.

“무,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부외자가 끼어들 일이 아니다.”

우두머리는 주인장에게 일갈하며 청유백에게 다가왔다.

청유백은 태연하게 고기로 젓가락을 뻗었고, 우두머리는 청유백의 등허리에 메어져 있는 검들을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세 자루의 검. 확실하군. 네가 청유백이라는 자인가?”

“처음 듣는 이름인데.”

“…….”

청유백의 태연한 대꾸에 우두머리는 미동도 없이 그저 뒤의 수하들을 바라보았다.

운표가 앞으로 나서며 대답했다.

“저, 저와 동행했던 자는 맞습니다. 하지만 청유백이라는 자는 분명히 마인이라지 않았습니까. 저자는 분명 마인은 아니었습니다…….”

“…흐음.”

분명 옳은 말이었다.

갑작스러운 척살 명령이 내려진 청유백이라는 자는 서녕에 침입한 마인이라 하였으니, 지금 찾아야 하는 이는 분명 짙은 마기를 머금은 인물이다.

허나, 눈앞의 사내는 어떠한가.

‘마기는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검을 세 자루나 지니고 다니는 이가 흔할 리 없을 터.’

청유백이라는 인물에 대해 들은 사항은 총 두 가지..

하나는 침입한 마인이며, 둘은 세 자루의 검을 지니고 다니는 자.

얼굴이 그려진 수배서라도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워낙 갑작스러웠던 일인지라 그런 것도 없었다.

“…….”

우두머리는 잠시 고민했다.

다른 제자 중 한 명이 ‘검을 세 자루 든 이를 보았다’고 말하기에 쫓아 보았지만, 정작 발견한 것은 마인은 아닌 상황.

‘어찌해야 할 것인가.’

우두머리는 가게의 주인장과 제자들, 청유백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보는 이는 한 명.

처치 대상도 한 명.

따르는 이는, 자신에게 배속된 직계 사제들…….

잠시 뒤, 우두머리는 결국 결론을 내렸다.

“죽여라.”

“예? 하, 하지만 저자는…….”

그 단순한 말 한 마디에, 따라온 화산 제자들은 헛숨을 들이쉬며 물러섰다.

당연한 일이었다.

눈앞의 사내는 조금 인상이 나쁘긴 하지만 마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사형, 그냥 평범한 무인 아닙니까. 도저히 마인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반박귀진의 고수라는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지. 장문께서 직접 하달하신 일이다. 완벽하게 수행해야만 해.”

“…….”

다른 제자들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반박귀진의 고수?

웃기는 소리다.

그게 어디 발길에 채일 정도로 흔한 것도 아닐 뿐더러, 설령 정말 그런 고수라면 가만히 죽이라고 목을 내밀어 주겠는가.

그러니까, 저 말의 뜻은 단순한 것이었다.

‘중요한 일이니까, 그냥 물어보지 말고 닥치고 따라라.’

이어서 우두머리는 그 말에 쐐기를 박았다.

“이번 일이 얼마나 중대한 일인지 생각한다면, 만의 하나의 가능성조차 묻어서는 안 될 테지. 책임은 내가 지겠다.”

“…알겠습니다.”

화산파 제자들은 점차 청유백에게로 가까이 다가왔다.

청유백은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허, 참.”

청유백은 터져 나오려는 폭소를 공들여 참아야만 했다.

그야 아주 우스운 대화가 아니던가. 죽이기는 무슨.

‘누가 얌전히 죽어 준다던가.’

청유백은 어느샌가 비어버린 고기 접시 위에 젓가락을 올려놓으며 찻잔을 기울였다.

당장 몇 놈 썰어 죽이는 것은 어렵지 않았지만, 신중히 생각해야만 했다.

이놈들이 전부일지, 바깥에 다른 놈이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닐지…….

그리고 만약 그렇다면, 어떻게 이 자리에서 빠져나가야 할지.

화산 제자들은 점점 다가오고 있었고, 청유백은 일단 무심한 태도로 대꾸했다.

“명망 높은 화산이 무고한 자를 핍박하는 건가?”

“……!!”

그 말에, 화산 제자들의 발걸음이 잠시 멈추었다.

서로가 서로를 당혹한 표정으로 돌아본 다음에는, 결국 그 어찌해야 할 지 모르겠다는 시선은 우두머리에게로 향했다.

그 또한 퍽 놀란 눈치였다.

화산의 표식을 내건 것도 아닌데 단박에 그것을 맞혀낼 줄 몰랐던 탓이었다.

“…변방 무인의 입에서 화산의 이름이 거론될 줄은 몰랐군.”

썩어 빠졌다고는 하나 결국은 정파의 이름을 잇는 자들이었다.

실상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차치하고서라도, 그들이 가장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단 세 가지였다.

명예, 명분, 평판.

정의야 뭐, 명분을 만들면 따라오는 것이니 구태여 신경 쓰지 않는다.

언제는 정의가 공정한 것이었던가?

정의는 누구에게나, 스스로의 것을 만들어 자위하는 대상으로 작용하게 된 지 오래인 세상이지 않은가.

허나 그랬기에, 청유백은 이들이 이리도 당당하게 움직이는 이유를 대강 짐작할 수 있었다.

“왜, 변방의 도시에 촌의 무사이니, 알아보는 이도 없으리라 생각했나? 경솔한 짓이군. 보는 눈이라는 것은 밤이든 낮이든 반드시 있기 마련일진대.”

청유백은 대놓고 코웃음을 쳤다.

그러니까, 이놈들이 이리 기묘한 태도를 갖는 이유는 ‘아무도 자신들을 모를 것’이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에 기인하는 것이었다.

뒷골목에서 몰래 처리하면, 다른 이들에게 들키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는 것일 테다.

설령 괴한의 소문이 나더라도, 그들이 화산파라는 것을 알아보는 이는 없을 것이라고, 그리 확신했으리라.

…그리고 아마, 실제로 그랬을지도 모른다.

아무리 오대 거파의 세가 강성하다고 한들 이곳은 서녕.

중원보다는 세외의 경계와 가까이 있는 도시였으니, 이곳의 그 누구도 화산의 위명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니 그만큼 행동의 과감함도 늘어나는 것일 테다…….

하지만 청유백의 말로써 그들은 서녕에 화산에 대해 충분히 알 만한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경각심이 일었다.

하지만, 그것도 순간.

스릉.

우두머리는 곧 망설임을 지워 버리고는 검을 뽑아 들었다.

“보는 눈은 상관없다. 결국 전부 치워버려 없을 테니.”

“……호오.”

이렇게까지 막장으로 나온다 이거지?

청유백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놈들은 분명 어떤 식으로든 사마신교의 사주를 받았고, 어떤 식으로든 그들과 연관되어 있다.

‘그렇다면, 이놈들을 족치면 뭔가 알 수 있지 않을까?’

청유백의 뇌리에 순간 그런 생각이 스쳤지만, 이내 그만두었다.

천화가 귓가에 속삭인 말의 내용 탓이었다.

[아랫것들의 반응을 보면 저들은 모르는 것 같구나. 아마 윗선들의 독단일 테지.]

확실히, 좀 미묘했다.

놈들 스스로가 뭔갈 이루기 위해 덤벼드는 모습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굳이 따지자면 시키니까 어쩔 수 없이 한다, 정도의 느낌.

그렇다면 지금 이곳에서 저 우두머리 놈의 주리를 틀어도 얻을 건 없을 것이다.

청유백은 우두머리 사내와 눈빛을 마주했다.

“허면 나가서 얘기하지. 피해를 끼치는 것은 별로 좋지 않으니.”

이곳은 서녕에 딱 하나밖에 없는 마교 지부였다.

지금까지 들키지 않고 유지하는 것도 거진 기적이었으며, 이 소중한 지부와 담당자를 잃는 것은 상당한 손해가 될 것이었다.

그리고 다행이라 해야 할지, 놈들에게도 최소한의 이성은 있는 듯 보였다.

“…우리도 바라는 일이군.”

우두머리는 살짝 몸을 틀어 청유백이 지나갈 수 있게 비켜 주었다.

하지만 앞쪽의 다른 화산 제자들은 여전히 길을 막은 상태였다.

같이 나가는 주겠지만, 도망치게 두지는 않겠다는 뜻이 역력하게 내비쳤다.

곧 청유백과 화산 제자들은 가게를 나와 골목길을 걸었고, 놈들은 언제 청유백을 공격해야 할지 고민하는 모습이었다.

청유백은 가게에서 나오자마자, 가장 먼저 기를 흩뿌려 주변의 매복을 탐색했다.

‘주변의 고수는…….’

[많구나. 탐지가 의미가 없어. 저 중 누가 적인지도 구분할 수 없지 않으냐.]

‘…확실히 그렇군.’

하지만 별로 성과는 없었다.

그놈의 곤륜제전 탓에 이 도시에 발길에 채일 만큼 많은 것이 무림 고수였고, 하나하나를 감지한다 한들 그들 중 누가 적인지 알 방법이 없었다.

그러니까, 그냥 대충 최악의 상황을 상정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가령… 이 골목 주변에 있는 기운들이 전부 살수들이라던가.’

[에이, 그건 너무 비약이 심하지 않더냐?]

‘글쎄…….’

청유백은 어깨를 으쓱였다.

그리고 그들이 충분히 으슥한 구석에 도착했을 때 즈음, 먼저 입을 연 것은 멈춰 선 우두머리였다.

“생각보다 순순히 따라 나오는군. 하지만 그냥 보내줄 것이라 생각하면 오산…….”

─서걱.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것이 그의 마지막 유언이었다.

순식간에 청유백의 검집에서 뽑혀 나온 백월검이 그의 목을 베어 땅에 떨어트리고 있었다.

순간 화산 제자들의 인지에는 부조화가 찾아왔다.

이게 무슨 상황인지, 방금까지 자신들을 인도하던 사형의 목 위는 어디로 갔는지, 방금까지 자신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그 모든 것이 한데 섞여 흔들렸다.

그러나, 목숨을 위협하는 공포는 정신을 집중하게 만드는 법.

─카카카카캉!

연속된 강철의 소리가 잇따라 들려왔다.

“대, 대체 무슨……!”

각자의 검을 뽑아들어 그것을 청유백에게로 향했다.

하나같이 검을 잡은 손이 떨려오고 있었고, 실질적인 위협이 되는 이는 하나도 없었다.

“너희는 병신이냐?”

처음 죽인 우두머리가 정면으로 싸웠다면 썩 위협이 될 법했지만, 기습에는 언제나 장사 없는 법이었다.

그리고 남은 것들은 상황 파악도 똑바로 하지 못하는 머저리들뿐.

청유백은 그 모습에 진실로 가당찮아하며 검 세 자루를 전부 공중에 띄웠다.

“나오란다고 진짜 나올 줄은 몰랐는데, 멍청하게 스스로 어둑한 장소로 안내하는 꼴이라니.”

생각이란 걸 할 줄 알면 이러지는 않을 텐데.

설마 정말로 순순히 죽어줄 거라고 생각했나?

얌전히 죽을 테니까 좀 으슥한 곳으로 가서 죽여달라고 하는 줄 알았나?

‘지랄도 정도가 있지.’

청유백은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아무리 정파 놈들이 머저리라지만 그렇게까지 머저리는 아닐 것이라는 사실에 생각이 닿았다.

놈들의 행동에는 분명히 근거가 있었을 것이다.

가령, 설령 상대방이 저항하더라도 능히 제압하고 죽일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 그 근거 말이다.

그리고 청유백은 곧 그 근거를 확인할 수 있었다.

눈앞의 화산파 제자 놈들은 별것 아니지만, 주변에서 신속하게 몰려드는 다른 고수들의 기운들은 썩 만만하지 않았다.

아니, 개개인은 상대하지 못할 건 없는 수준이기는 한데─

그 수가,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정말로 이 골목 근처에 있던 수십 명의 무인이 전부 살수였던 것만 같은, 그런 숫자였다.

“이런, 제기랄.”

어쩜, 불길한 예감은 언제나 빗나가는 법이 없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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