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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우면 네가 천마 하든가-183화 (183/200)

제183화. 신앙의 대가 (3)

성의 검문은 단순했다.

평소와 같은 때의 행상인들은 몰라도, 무림인들은 각자의 예선에서 내어 준 동패를 보여 주기만 해도 가볍게 통과할 수 있는 듯 보였다.

‘곤륜이 보증한다는 건가.’

하기사, 돈보다도 명예와 명분으로 움직이는 놈들의 특성상 곤륜이 아무리 빈곤하대도 이 정도 보증은 서 줄 수 있을 것이다.

뭐… 당장 이 거대한 도시에서 비무 대회를 열 정도이니, 그 참가자들에 대한 보증은 당연한 것이었지만 말이다.

‘일단 시선은 느껴지지 않는군.’

[그래도 방심은 금물이니라.]

‘알고 있어.’

그것은 당연한 기본이었고, 굳이 생각할 의미조차 없는 일이었다.

이곳은 명확한 의미의 적지.

굳이 사마신교가 아니더라도, 곤륜의 앞마당인 이 도시에서는 긴장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되었다.

특히, 힘이 강력한 마인일수록 더욱 그러할 터였다.

익힌 마공이 강성할수록 몸 밖으로 흘러나오는 마기가 선명해지고, 이 도시에는 마인만 보면 쳐 죽이려 드는 미친놈이 득시글거린다.

‘그러고 보니, 운도 억세게 좋은 놈들이군.’

청유백은 자신의 뒤를 따르는 청률과 묵태곤을 돌아보았다.

청유백 본인이야 마기의 조절에 관해서는 거진 반박귀진(返璞歸眞)의 경지라 별문제가 없었지만, 다른 후계자들은 아니었다.

적영 같은 경우는 겉으로 보기에도 대놓고 마공을 익힌 마인이었고, 그녀보다 강력한 적철진이나 청명휘 같은 경우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이 청률이나 묵태곤이 이리도 태연하게 백주대낮에 대로를 활보할 수 있는 이유는…

뭐, 단순했다.

첫째로 청률은 애초에 마공을 익히지 않아서 그랬고.

…둘째로, 묵태곤은 그냥 약해빠졌기 때문이다.

굳이 비교하자면 백소하와 대등하거나 좀 더 강한 정도라 할까.

‘아니, 아마 진법을 펼칠 수 있는 상황이라면 백소하가 더 강할지도.’

…이걸 행운이라 불러야 할지는 묘한 부분이겠지만, 뭐.

결과적으로는 좋게 작용했으니, 좋은 게 좋은 것 아니겠는가.

아무튼.

‘여기까지는 좋다. 좋은데…….’

작은 문제가 하나 있기는 했다.

계속 귓가에 거슬리게 다가오는, 저 빌어먹을 놈의 한숨 소리였다.

“휴…….”

“뭐가 불만이야.”

청유백은 짜증스레 묵태곤을 돌아보았다.

그들은 입구를 넘자마자 시타 일행과 헤어져 각자의 길을 걸었고, 저 놈은 그 직후부터 쭈욱 저 상태였다.

묵태곤은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로 대답했다.

“이대로 헤어져도 괜찮은 거야? 뭐랄까, 여행의 회포라든가…….”

“한가함을 주체할 수 없는 모양이군. …탓하진 않겠다만.”

“뭘 탓해? 내가 뭐 잘못했냐?”

…쯧.

눈치도 없고, 경험도 없다.

그러니 청유백은 한숨만 내쉴 뿐이었다.

능력이 되지 않아 하지 못한 것을 탓하는 것은 못난 짓 아니던가.

‘대놓고 적대적이었던 그 태도를 눈치채지 못한 건가….’

정확히 말하자면, 후산이 지거광을 놓치고 난 이후에 돌아온 시점부터.

그의 태도는 어딘가 날이 서 있었다.

전혀 의심의 여지가 없는 동료에서, 잠재적 적대의 대상으로 시선을 바꾼 것 같은 감각에 온몸을 찌르는 듯한 불쾌감이 느껴졌다.

‘저쪽은 좀 눈치챈 것 같은데.’

청유백은 슬쩍 청률을 향해 눈을 굴렸다.

그는 조금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청유백을 따라 걷고 있었고, 들썩이는 가슴은 분명 불규칙한 호흡을 내보이고 있었다.

무언가, 생각하는 것이 있다는 의미였다.

[연기를 퍽 못하는 아이니 말이다. 청률 정도만 되어도 조금 찝찝하다는 생각 정도는 했겠지 않겠느냐.]

‘그럼 쟤는 왜?’

[저건 그냥 눈치가 없는 거고.]

‘…뭐 어쩌겠어.’

갖추지 못한 자를 탓하는 것은 책임을 전가하는 행위일 뿐이었다.

아무리 육가의 후계라고 해도 아직 젊으니, 이런 상황에 대한 경험이 미숙한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청유백은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묵태곤을 돌아보며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러면 어쩔 수 없지. 아직 늦지 않았을 거다. 한 번 보고 올래?”

“음? 그래도 되냐?”

“되고…말고. 그래.”

청유백은 잠깐 치민 울화를 애써 참아냈다.

묵태곤, 이 칼쟁이는 지금 청률과 청유백의 반응을 보고서도 전혀 눈치채지 못한 것 같다는 점이 골 때리기는 했지만, 어차피 보내버릴 거라면 뭐면 어떠랴.

“가는 김에 숙소도 알아오고, 이왕이면… 앞으로 뭐 할 건지 물어보는 것도 좋고. 네 눈치껏 알아서 행동해.”

“하하, 그래! 맡겨 두라고. 여행의 끝이 이리 찝찝하면 안 되지. 그렇지 않냐?”

묵태곤은 팔꿈치로 청률의 옆구리를 찌르며 호쾌하게 물었다.

“어? 어. 그렇지.”

“그래. 그럴 줄 알았다고. 야, 그럼 다녀온다!”

“유, 유백아. 나도 말이냐?”

“같이 갔다 와. 저 머저리만 보냈다가 무슨 일이 일어날 줄 알고.”

“…….”

청률은 겸연쩍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결코 자연스러운 태도는 아니었으니, 청률은 아마 후산의 반응을 대충 눈치채고 있을 것임이 확실했다.

고작 며칠 만난 인연인 주제에, 뭘 그리도 연연하는 것인지 청유백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다.

모든 만남의 끝이 아름다운 것은 아니며, 이 정도 이별이라면 썩 괜찮은 마무리일진대 말이다.

…문득, 청률이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다른 사람들은 괜찮을까 모르겠구나.”

“다른 사람? 누구?”

“청명휘 조의 사람들 말이다.”

“그건…….”

청유백은 말끝을 흐렸다.

…표정이 어두웠던 이유가 후산 때문이 아니라 그것 때문이었나?

설마.

데려온 두 놈이 그 정도로 눈치 없는 빡대가리는 아니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아니, 믿어 의심치 않고 싶었다.

제발.

청유백은 어깨를 으쓱이며 대꾸했다.

“몰라. 별반 다르지 않을 수도 있고. 멀쩡히 살아 있을 수도 있지. 근데 말이다, 그런 거 신경 쓸 시간에 네 목숨 간수나 잘 하라고.”

무인의 운명이란 본디 그런 것이다.

칼 한 자루에 기대어 천하를 떠돌다가, 칼 한 자루에 기대어 끝을 맞이한다.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그 끝의 평온함을 찾아주는 것뿐이리라.

그것이면 족했다.

하지만 만족할 수 없는 대답이었는지, 묵태곤의 질문이 이어들었다.

“그럼 넌 어디 가는데?”

“걔네 상황 알아보러.”

“…….”

니네랑 나는 다르지. 빡대가리들아.

* * *

청유백은 우선 서녕에 숨어 있는 마교 지부로 향했다.

‘위치한’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숨어 있는’ 지부였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지부도 아니지. 구멍가게 정도인가.’

청유백은 골목길에 있는 허름한 음식점의 앞에 발걸음을 멈추었다.

‘우호식당’이라 이름 붙여진 현판이 내걸린 이곳이 바로 마교의 서녕 지부였다.

청유백은 새삼 영락한 마교의 현 상황을 실감하며 음식점 안으로 발을 들였다.

누가 이런 장소를 마교의 비밀 지부라고 생각하겠는가?

거대한 기루가 있어 금전을 모을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정보 처리의 요지로서 작용하는 것 또한 아닐진대 말이다.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지만.’

더 중원 안쪽으로 가면 그럴싸한 지부가 있기도 하지만, 이곳 서녕은 지나치게 마교에 대한 배척과 감시가 심한 장소다.

그들의 눈을 피해 장소를 마련하자니 거창한 것은 할 수 없었고, 고작 이 정도 장소를 마련하여 피난처로 쓰거나 정보의 경유지 역할을 하는 정도의 용도로 쓸 뿐이었다.

─터벅, 터벅.

식당은 몹시 조용하여, 청유백이 걸음을 옮기는 소리 하나하나가 고요하게 울렸다.

손님도, 점소이도 없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주인장 또한 요리를 하고 있지 않았고, 그저 게슴츠레한 눈빛으로 청유백을 응시하고 있었다.

청유백은 가장 안쪽의 자리에 앉아 허공을 바라보며 물었다.

“주인장, 좋은 술이 있소?”

“…이 어둑한 골목길에 와서 왜 그런 것을 찾으시는지요.”

“이런 곳 나름의 풍취도 있기 마련이니까. 숨은 맛집이라는 것이 있지 않소.”

청유백은 그리 말하며 손을 두 번 움직였다.

첫 번째는 동전을 날렸다.

그것은 정확하게 주인장의 손에 떨어졌고, 몇 개가 이어 날아가자 짤랑이는 소리가 연속해서 들려왔다.

그리고 두 번째로 날린 것은 묵색의 신분패였다.

옥으로 이루어져 있어, 동전과 부딪쳐 청아한 금속의 소리를 내는 그것은 청가의 옥패.

청가주가 내어 주었던, 신분 확인을 위한 물건이었다.

그것을 본 주인장은 조금의 미동도 없이 그것을 품에 넣더니,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곧장 이어서 온갖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도마질 소리가 들리기도 했고, 무언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요리 소리? 진짜 음식집이더냐?]

‘언제 어디서 듣는 귀가 있을지 모르니까.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거지.’

옥패 이전에 동전을 몇 개 던진 것도 그런 의미의 행동이었다.

갑자기 누군가가 이 현장에 들이닥쳐도 얼버무리기 위해서.

“기다리셨지요…….”

곧 주인장은 주방에서 돌아왔고, 그는 요리가 가득 담긴 쟁반을 청유백의 앞에 내려놓았다.

그의 음식 실력은 퍽 괜찮아 보였다.

쟁반 가득 담긴 국수나 장육, 장아찌들은 상당히 먹음직스러워 보였고, 그 구석에는 청유백이 내밀었던 옥패와 정말로 자그마한 쪽지 두 장이 올려져 있었다.

청유백은 그것을 보고는, 웃으며 말했다.

“다는 못 먹겠는데.”

“남기셔도 됩니다. 어차피 끽해야 이틀이면 버릴 음식이었으니까요.”

“언제 산 식재이길래?”

“열흘 전이였지요.”

“그렇구만.”

청유백은 젓가락을 들며 대꾸했다.

‘닷새 전이라.’

식재는 이 쪽지 서신을 이르는 말이고, 식재를 산 날짜는 곧 이 서신이 도착한 날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청유백은 조심스레 쪽지를 펼쳐 보았고, 손가락 세 마디만 한 종이에는 단 세 개의 단어만이 적혀 있었다.

무탈(無頉).

응집(應集).

출발(出發).

그 한자는 암호도 뭣도 아니었고, 단순하기 그지없는 의미였다.

‘아니, 어떤 면에서는 암호기는 하지.’

이 서신은 오롯이 청유백을 향한 것이므로, 청유백이나 그 관계자가 아니면 그 의미를 이해하기 힘들 것이었다.

상황의 설명도 추가적인 정보의 전달도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청유백에게는 이것으로 충분하고도 남았다.

아무 문제없다.

무사들을 모았다.

지금 출발한다.

그러니까, 열흘 전에 전서구가 이곳에 당도했다는 것은 곧─

‘열흘 전에 오로목제에서 출발했다는 뜻.’

마교의 일급 수하들을 이끌고 달려오고 있다면, 앞으로 며칠이면 이곳에 닿을 수 있을 것 것이다.

빠르면 하루.

늦어도 이틀.

‘내가 생각한 것보다 빠르군.’

[낭보로구나.]

‘그래, 그렇지. 지금은 별로 의미 없지만.’

[그래도 좋은 일이지 않으냐.]

그들이 이끌고 오는 무사의 수준이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대비책이 하나 생긴 것만으로도 나쁘지 않다.

하지만 지금 당장이 아닌 미래의 일.

일단은 이 성 안의 상황을 파악할 필요가 있었다.

분위기는 어떤지.

놈들은 무엇을 준비하는지.

청련은 어디에 있는지.

청유백의 머릿속에서 대략적인 계획이 그려졌다.

헌데 문득, 천화의 질문이 이어졌다.

[헌데, 다른 쪽지는 무엇이더냐?]

‘글쎄…….’

쪽지는 두 장이었다.

하나는 백소하의 것이었지만, 다른 한 장이 또 있었다.

‘종이 크기를 보면 전서구를 이용한 것은 아니고.’

[아마도 인편, 다급한 필체나 종이의 구김 상태를 보면 상당히 위태로웠던 모양이구나.]

청유백은 그것을 펼쳐 보았다.

종이 안에서 나타난 것은, 다름 아닌 하나의 약도였다.

대략적인 거리의 모습과, 그중 한 장소에 동그라미 표식이 되어 있었다.

‘…이게 뭐야?’

청유백은 주인장을 돌아보았지만, 주인장은 고개를 내저을 뿐이었다.

그리고는, 조용하게 손가락 끝을 들어 입술 위로 가져가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콰아앙!

가게의 문이 박살 나며, 허리춤에 검을 매단 남성의 무리가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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