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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우면 네가 천마 하든가-178화 (178/200)

제178화. 이선(異線), 청련 (3)

“어때? 무슨 생각이 드냐? 나는 잘 모르겠는데 말이다, 막 날 죽이고 싶고 그런가? 이봐, 말 좀 해 보라고. 기껏 지금까지 아껴둔 장난감이란 말이다.”

청유백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럴 가치도, 이유도 느끼지 못했다.

“…….”

청유백은 하얗게 까뒤집어진 청명휘의 눈을 바라보았다.

이미 그에게 이성은 터럭만큼도 존재하지 않는다.

사지도 멀쩡히 달려 있기는 하지만, 여기저기 찢어지고 떨어져 나간 것을 억지로 기워낸 흔적이 눈에 띄었다.

‘약강에서부터…인가.’

피가 빠져나간 상태를 보면, 분명 오래된 시체였다.

그동안 전투의 흔적이 없었던 것을 고려한다면, 청유백이 약강에 전속력으로 도착했을 때에 이미 늦어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청유백의 뇌리에 스쳐가는 것은 하나같이 실용적인 정보뿐이었다.

유의미하고, 당장 추측할 수 있는 일련의 단서들.

그중에 청명휘를 향한 동정심 같은 나약한 단어는 단 하나도 없었다.

청유백의 표정이 여전히 무표정한 채로 유지되자, 지거광은 고개를 까딱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뭐야, 재미없잖냐…….”

“무슨 반응을 바랬던 건지 모르겠군.”

“글쎄… 분노? 이상하다, 내가 너무 오래 살았나? 요즘 애새끼들은 가족애라는 걸 모르나…?”

청유백은 피식 웃었다.

아쉽게도, 청유백은 청명휘에게 이렇다 할 감정을 지니고 있지 않았다.

차라리 저게 청률이었다면 ‘멍청한 놈’ 정도의 감상이라도 있었겠지만, 청명휘와는 정말 그다지 연관이 없던 청유백이었다.

그에 대해서 무어라 말해야 하겠는가?

이렇다 할 일면식은 단 한 번에, 그것도 사적인 것이 아닌 공적인 임무 하달 자리에서 한 번이었는데.

청유백은 검 세 자루를 바닥에 잠시 꽂고, 그중 한 자루를 왼손에 쥐었다.

검 세 개를 계속해서 띄워 움직이는 것은 비효율적이었다.

지거광을 죽이기 위해서는 눈앞의 저것을 먼저 죽여야 할 듯했으니, 힘을 아낄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서걱, 스스슥.

수풀이 뒤척였다.

아직 공격하지 않는 괴이들의 목을 아무렇지 않게 베어버리며, 몇 명의 기척이 점차 다가왔다.

곧, 그 너머에서 가장 먼저 얼굴을 비친 것은 청률이었다.

후산은 시타를 품에 안은 채 뒤를 따르고 있었고, 묵태곤이 가장 뒤에서 쫓아왔다.

청률이 이 광경을 보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검을 꼬나쥔 청유백과, 둘러싸고 있는 괴이들의 무리, 그리고 괴이한 체형의 사내와 창백하고 기묘한 상태의 청명휘.

설명은 필요하지 않았다.

단순히 보는 것만으로, 청률은 지금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자신이 이곳에 왜 있는지, 무엇 때문에 조를 이탈하면서까지 왔는지.

모를 턱이 있겠는가.

“혀, 혀, 형니이이이임!!”

“아! 딱 좋은 음의 목소리야. 저걸 듣고 싶었어.”

“네, 네놈이……!!”

청률이 절규하며 손을 떨었다.

그의 상태는 몇 가지 단어로 단언할 수 있었다.

분노, 흥분, 그리고 안타깝지만…

만용.

청률은 육련을 마주한 적이 없었다.

마교에 침입한 교아와 마주한 적도 없고, 적철진과 함께할 때마저 육련과는 적대한 적이 없었다.

그렇기에 용감할 수 있었다.

무지는 인간에게 용기를 주었다.

끓어오르는 분노의 감정과, 그것이 손끝까지 이어져 강철의 어금니가 칼집을 긁게 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찰나, 섬광이 번뜩였다.

“큭, 크으으윽……!!”

하나는 청률의 검기.

새하얗디새하얀, 마교도라고 느낄 수 없는 선의 검기가 내뿜는 휘광이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칠흑색의 마기.

달려드는 청률을 순식간에 막아선 청명휘의 검기였다.

청명휘의 눈은 하얗게 흐려진 동공으로 초점도 없는 시야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지만, 그 몸놀림은 살아 있는 고수의 것이라고 하여도 믿을 수 있을 정도로 정밀하고 날렵했다.

말은 없었다.

눈빛의 소통도 없었다.

청명휘는 묵묵하게 청률의 검을 막아낼 뿐이었다.

“네놈… 형님을 어찌 한 것이야!”

“어휴, 보면 모르나? 눈치가 없어도 정도가 있어야지. 이봐, 네 역할은 딱 원통에 울부짖는 것까지라고. 다른 배역을 탐내면…….”

─카앙!

“크윽!”

지거광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청명휘의 검기에 힘이 더해졌다.

버티지 못한 청률은 곧이어 나가떨어졌고, 지거광의 앞을 굳건하게 버티고 선 청명휘와 시선을 마주했다.

지거광이 비웃듯 덧붙였다.

“그래, 그렇게 되는 거야.”

하지만 청률은 주저앉지는 않았다.

검을 지지대 삼아 다시금 일어났다.

혼자였다면 현실을 비관하고 도망쳤을지도 모르지만, 자신의 뒤에는 다른 일행들도 있었으므로.

옆에서 함께해 주는 이의 존재란 언제나 용기를 북돋아 주는 법이었다.

“야, 병신아! 대체 무슨 일…!”

뒤이어 묵태곤이 튀어나오며 청률을 타박하는 것도 잠시.

이 상황을 보고는 곧 입을 다물지 못했다.

뒤따른 시타와 후산도 마찬가지였고, 지거광이 눈을 흘기며 말을 이었다.

“아 이런, 배우들이 더 있었…?”

순간, 지거광의 눈빛이 흔들렸다.

일행 중 그 누구도, 청유백조차도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순간이었지만, 분명하게 흔들렸다.

그것은 시타와 눈빛이 마주친 순간이었다.

“…있었군. 그래, 의표를 찌르는 연출도 훌륭한 극의 일부지.”

그리고 곧, 자신의 입술을 악물듯 씹더니 이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마치, 무언가를 결정하고 결심한 듯한 표정이었다.

지거광의 말이 이어졌다.

“그래, 완벽한 무대로군! 배우와 관객, 훌륭한 선물까지. 반응도 훌륭하고, 이제 더 이상 원이 없겠어.”

“뭘 하려는…!”

“쉿, 감독에게 앞으로의 이야기를 물어보지 마라. 그 얼마나 재미없는 일이냐?”

그는 부채 조각을 들어 청명휘를 향해 손짓했다.

곧 청명휘의 몸이 마치 꼭두각시 인형이 이끌리듯 뒤틀리더니, 한순간에 바닥을 박차 청유백을 향해 뛰어들었다.

청률은 여전히 자세를 추스르는 중이었고, 대신 막아설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청유백은 미간을 찌푸렸다.

[괜찮겠느냐?]

‘…문제없다.’

청유백의 발치에 꽂힌 검 한 자루가 튀어나와 청명휘를 향해 쇄도했다.

두서없이 쏘아낸 것이라 조준이 명확하지 않은 검극이 노린 것은 복부.

사람이라는 것은 생각보다 연약하여, 몸의 한 부분이 관통당하면 그대로 죽는다.

그것은 당연한 상식이었으며, 당연히 청유백의 뇌리에, 몸에 각인되어 있는 불변의 사실이기도 했다.

허나.

─콰득!

“……!!”

청명휘는 날아드는 검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것은 그대로 그의 복부를 찔러들어 갔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

고통을 느끼지 않는 몸이라는 것을 순간 잊었다.

한 자루의 검은 움직임에 제동을 주기에는 심히 부족함이 있었고, 청명휘의 궤적은 그대로 청유백을 향해 날아들었다.

“젠장할.”

청유백은 반사적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뒤로 도약했다.

그리고 왼손을 휘저어, 바닥에 꽂혀 있던 나머지 검 두 자루를 전부 날려 보냈다.

청명휘의 몸은 여전히 청유백을 향해 쇄도하고 있어서, 검이 꽂혀들어 간 것은 왼쪽 옆구리와 오른쪽의 등허리.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아니, 초절정의 고수라고 할지라도 즉사했을 것이 분명한 상처였겠지만, 청명휘의 움직임은 멈추지 않았다.

청명휘의 팔이 휘둘러져, 그 검극이 청유백의 목을 향했고.

─슈욱!

그 칼날은 청유백 목의 바로 앞을 스쳐 지나갔다.

다음 공격은 즉시 이어졌다.

한 번, 두 번, 세 번.

그사이의 순간을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의 속도로 검격이 이어졌지만, 청유백의 목에 닿지는 못했다.

“키에에에…엑….”

청유백의 발은 다시금 땅바닥에 닿았다.

하지만, 청명휘의 발은 청유백의 도약을 따라잡으려 공중으로 뛰어오른 순간, 그곳에 붙들려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지거광은 박수를 치며 감탄하는 꼴이었다.

“햐, 대단한데. 세 자루의 이기어검이라……. 괴물이잖냐. 괴물!”

청명휘는 공중에서 추하게 팔다리를 휘적이고 있었다.

그를 공중에 붙들고 있는 것은 세 자루의 검.

가슴팍과 옆구리, 등에 꽂혀져 칼날의 반이 관통된 청유백의 검 세 자루였다.

그것들은 그의 몸에 꽂혀 들어간 채로, 더 이상 움직이지 않고 공중에 청명휘를 결박하여 있었다.

발이 바닥을 박찰 수 없으니 벗어날 방법도 없었고, 칼을 아무리 휘둘러도 이미 간격에서 벗어난 청유백에게는 닿지 않았다.

그럼에도 청명휘는 계속해서 검을 휘둘렀다.

그야말로, 이지 없는 괴이라는 말에 걸맞은 모습이었다.

다음 순간,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짝, 짝, 짝짝짝…….

계속해서 빨라지는 박수 소리는 결국 터져버린 웃음과 함께했고, 지거광은 고개를 흔들며 청유백을 바라보았다.

“대단해. 이야, 꼼짝없이 뒤질 줄 알았거든. 보통은 막고 뒷걸음질 치다가 결국 뒤져 버리는데 말이야. 저것들처럼.”

지거광은 근처에 있는 다른 괴이들을 가리켰다.

괴이들 중에서도, 화산파 놈들을 압박하던 ‘조금 다른’, 기묘한 속도를 지니고 있던 괴이들이었다.

자세히 보니, 그 괴이들의 대부분이 오른 손목이 으스러지거나 잘려져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즉, 저것들은 지금껏 지거광이 방금과 같은 방식으로 죽였던 고수들이란 소리일 테다.

검수의 생명인 손을 기습으로 하나 취하고, 전력을 낼 수 없는 고수를 친다.

아주 비겁하고 비열한 방법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비겁하고 비열하다는 것은, 몹시 ‘실용적이다’라는 뜻과 동일한 것이다.

“크르…으으으…….”

청명휘의 목구멍에서 올라오는 괴성에 청유백의 표정이 더욱 어두워졌다.

고통 없는 몸과 이지 없는 영혼.

청명휘는 계속해서 몸부림치고 있었고, 칼날은 계속해서 그의 몸을 파고들어 베어내고 있었다.

그 검들은 전부 천하에 몇 없을 명검들이었고, 인간을 베어내는 것도 쉬이 하는 살인의 명품들.

청유백이 베고 싶지 않다 하여 밸 수 없는 것이 아니었다.

청명휘의 몸부림에 맞춰 살은 착실하게 잘려나갔고, 그것은 곧 공중에서 풀려날 듯 보였다.

“네 형은 가족의 품이 아주 그리운 모양인데? 따뜻하게 안아주지 그러냐! 저렇게 몸부림치는데.”

“네 목을 쳐서 품에 안겨 줄 수는 있겠지.”

“아이고 무서워라! 큭큭, 뭐… 그건 다음 기회에 노려 보라고. 형제 상봉의 순간에 끼어들 정도로 눈치 없는 인간은 아니어서 말이야. 나한테 신경 쓸 시간이 있겠어?”

지거광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둘의 사이에서 둔탁한 소리가 들려왔다.

─툭, 투툭.

그것은 조각이 떨어지는 소리, 결국 청명휘에게 박힌 검이 그 몸을 전부 갈라 허공에서 추락한 소리였다.

갈라진 몸은 몇 조각으로 나뉘어 땅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은 아니었다.

지거광이 부채 조각을 흔들자, 청명휘의 몸 사이를 푸른빛의 실이 잇기 시작했다.

그것은 찰나의 순간에 끝맺어졌다.

한순간에 온몸이 기워졌고, 주위에 흩뿌려진 핏물 따위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양 청명휘는 다시 일어섰다.

“봐봐, 네 형이 할 말이 많은 것 같잖냐.”

지거광이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몸을 돌리자, 청유백은 사납게 목청을 울렸다.

“어딜 가는 거냐!”

“말했잖아. 무대는 이미 완성되었어. 각본가는 빠질 때가 된 거지. 대충 그런 이유라고.”

지거광의 발은 멈춰 서지 않았다.

곧 주변의 괴이들이 그가 지나간 길을 막아서기 시작했고, 빠른 발걸음이 아니었음에도 그의 모습은 금세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것은 썩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저것을 잡아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다른 언제도 아닌 바로 지금.

‘지금 잡아야 한다.’

청유백은 그리 확신했다.

그게 가장 빠른 길이었다.

청유백은 그나마 전력이 되는 이에게 고개를 돌렸다.

“후산! 놈을 쫓아라. 온전한 힘을 다할 수 없는 상태이니, 네놈이면 충분히 잡아 족칠 수 있다. 잡아서, 도륙을 내버려.”

후산이라면 할 수 있을 것이다.

저 정체 모를 신녀인 시타를 혼자서 호위하는 것 하며, 청유백 자신과 비등할 정도의 경공이 있으니 분명 다른 무공 또한 뛰어날 테다.

지거광은 자신의 손목을 붙잡고 있느라 그 또한 전력을 내지 못하는 상태.

후산이라면 능히 쫓아가 잡을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혀, 형제여. 내게 명령할 수 있는 것은 아가씨뿐이오. 명령 없이는…….”

하지만 후산은 난처한 듯 시타를 안은 팔에 힘을 주었다.

그의 임무는 호위.

당연하다면 당연한 대답이었지만, 품에 안은 시타가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

“뜻대로, 해 주세요. 소협께서 생각이 있으시겠죠.”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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