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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우면 네가 천마 하든가-177화 (177/200)

제177화. 이선(異線), 청련 (2)

“아! 손님은 도착했고, 선물까지 오고 있으니. 그야말로 완벽한 무대구만! 좋아, 좋아!”

“…….”

청유백은 마기를 흩어 주변을 탐지했고, 분명히 주변까지 다가온 자신의 일행을 감지했다.

시타와 후산을 포함하여, 청률과 묵태곤까지 전부.

청유백은 무의식적으로 혀를 찼다.

오른팔이 묶인 상태이니 그들이 유의미한 전력이 될 가능성도 있지만, 그들이 오게끔 유도한 것은 청유백이 아니라 지거광이었다.

당연히, 응당 대응할 방법이 있다고 보는 것이 옳았다.

지거광이 시타 일행이 오는 것을 반기는 듯 보였고, 청유백은 그 반대였다.

…그것은 곧 청유백이 수 싸움에서 계속 한 수 밀리고 들어간다는 것을 뜻했다.

하지만 어쩌랴.

‘…저 멍청이들을 탓할 수도 없고.’

호수를 향해 달렸을 터인 그들이 이곳에 있을 만한 이유라면 하나뿐이었다.

‘청유백이 걱정된다’ 따위의 병신 같은 이유로 쫓아올 이들은 아니니, 분명히 교아의 진법이 작용한 것일 테다.

백소하나 그에 준하는 다른 두뇌파가 있다면 또 몰랐겠으나, 청률과 묵태곤은 지능적인 선택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는 종자들이었다.

‘……하지만 아직 멀다.’

아직 거리가 있었다.

직선거리로 대략 삼십 장.

무엇이 되었든 간에, 지거광의 ‘기분 좋은 계획’이 시작되기까지는 삼십 장의 거리가 좁혀질 시간이 필요했다.

멀뚱히 기다려 줄 필요가 어디에 있을까.

되든 안 되든 간에, 차라리 청유백은 당장 놈의 목을 떨어뜨리는 것이 나으리라 판단했다.

‘모자라긴 하지만!’

움직이지 못하는 오른손 대신 왼손을 뻗어 휘저었다.

하지만 검의 궤적은 지거광의 몸을 스치지 못한 채 허공을 스칠 뿐이었고, 몇 번쯤 반복해도 그것은 달라지지 않았다.

“이야, 대단한데? 벌써 손모가지가 뜯겨 나갔어도 이상하지 않았을 텐데…….”

청유백은 미간을 찌푸리며 오른손을 움켜쥐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오른손을 보호하기 위해 사용하는 마기는 많아져만 갔고, 검의 속도가 빨라질 여지는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청유백은 가볍게 손짓하여 목표물을 바꾸었다.

놈은 혼자가 아니다.

유의미한 전력이 되지 못하는 동료는 언제나 족쇄가 될 뿐이었고, 그것은 비단 아군에게만 해당되는 말이 아니었다.

─슈욱!

지거광을 향해 쇄도하던 칼들이 목표를 바꾸어 교아의 몸을 난자했다.

지거광은 기이할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지만, 이미 눈에 초점이 흐려진 교아는 이렇다 할 저항의 미동도 보이지 않았다.

놈은 다른 괴이들과 다를 것 없는 상태였다.

허공을 가른 청유백의 검은 순식간에 교아의 목을 떨어뜨렸고, 지거광은 처음으로 허탈한 표정으로 어께를 으쓱였다.

“허 참, 성질 급한 것 좀 봐. 얘랑은 구면이잖아? 반갑지 않아?”

“반갑기는커녕, 그깟 게 선물이하면 상당히 실망할 것 같군.”

“아, 그럴 리가! 걱정 말라고. 내가 그렇게 형편없는 남자는 아니거든.”

지거광은 무릎 꿇은 교아의 시체로 다가섰다.

목 없이 축 처진 교아의 몸을 한 손으로 일으켜 세워서는, 웃으며 청유백을 돌아보았다.

“아, 그리고 뭐… 마음 쓰지 마! 어차피 내가 죽일 거였거든.”

“…….”

청유백은 순간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콰득!

하지만, 다음 순간 선명한 유혈이 낭자했고─

교아의 심장을 꿰뚫은 지거광의 손이 강철의 편린을 들고 있는 것이 보였다.

두 번째 부채 조각이었다.

처음에 지거광의 손에서 빼앗은 것은 여전히 청유백의 오른손에 쥐여져 있었으니, 이제 그의 손에는 전혀 다른 하나가 들렸다.

동료를 아무렇지도 않게 죽여버린 지거광은 정말로 전혀 신경 쓰지 않는지 헤프게 웃었다.

“지난번엔 이름을 까먹더니, 이제는 말하는 법도 까먹었더라고. 백련같은 반푼이 기술이 그럼 그렇지 뭐! 그래도 뒤져서라도 조금은 도움이 되었으니, 아마 그분께서 조금은 참작해 주시겠지.”

그분.

육련이, 사마신교가 섬기는 신.

그냥 들으면 그저 평범한 신앙의 하나였지만, 어딘가 뒤틀려 있었다.

물론 천마신교도 종교를 근간으로 삼고 있고, 천자마라는 신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구성원들을 묶는 매개체에 불과했다.

천자마께서,

천마자의 이름으로,

천자마께서 이르시길─

어떤 종류의 미사어구를 자연스레 사용해도, 그것은 그저 입에 붙은 말에 지나지 않았다.

이유? 그야 단순하다.

신이란 놈이 있어도 당장 칼 들고 싸우는 자신을 지켜줄 수는 없고, 이 한 목숨 보전하려면 신에게 기도하는 것보다는 칼 한 번 더 휘두르는 것이 더 건설적인 방법이기 때문이었다.

천마, 교주의 위세가 강대한 것도 비슷한 이유였다.

강한 자니까.

가장 강한 자이므로, 자신들에게 평화와 풍요를 가져다 줄 수 있음을 광신하는 것이다.

즉, 마교의 신앙은 어디까지나 ‘실용’에 밀접하여 있었다.

필요하기에 신을 믿었고.

필요하기에 신을 세웠다.

하지만 사마신교는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교아도 그러했고, 낙무열도 그러했다.

한 놈은 지 하고 싶은 말만 하는 놈이었고, 한 놈은 지나치게 엄숙한 놈인지라 무엇 하나 정황을 들을 수 없었지만, 역시 이상했다.

‘왜 목숨을 바치지? 무엇을 위해서?’

지거광의 말은 그야말로 기묘한 것이었다.

죽기 위해 죽는다.

그분을 위해 죽는다.

이름조차 스스로 말할 수 없는 신을 위해, 선뜻 자신을 희생하고 목숨을 내놓을 수 있는 광적인 신앙.

청유백은 이해할 수 없었다.

‘물론 신앙의 힘은 강력하지. 중원의 말코도사든 땡중이든, 스스로 믿는 신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놈들은 얼마든지 있다….’

하지만.

하지만 사마신교의 뿌리는 마교에서 뻗어나간 것이다.

다른 종교의 신도들이 전부 그러할지라도, 마교는 그러할 수 없다.

도가가 도를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다.

불가가 덕을 위해 목숨을 바칠 수도 있다.

하지만 천마신교는 무엇을 위해 목숨을 바치던가.

강함을 위해?

승리를 위해?

뭐, 옳은 말이다.

그렇다면 그 강함과 승리는 대관절 무엇을 위한 것이겠는가?

‘당연히… 명예와 풍요다.’

그리고 명예와 풍요에는, 당연히 자신의 생존과 가족의 생존이 최우선으로 요구된다.

자신이 죽더라도 가족이 풍족하다면.

자신이 죽더라도 교단의 초석이 된다면.

그러한 ‘이유’가 있어야, 사람은 비로소 자신의 목숨을 내려놓을 수 있는 것이다.

[본녀도 동의하느니라. ‘천자마께 무궁한 영광을 위해서!’라고 달려드는 것은 일부의 광인뿐이지. 당연히… 하나의 목숨에는 응당 보상이 있어야 하는 법인즉.]

‘하지만 놈들의 보상은 뭐지? 뭘 위해… 대체 뭘 위해 저리 선뜻 죽고 죽일 수 있는 거지?’

청유백은 사마신교를 모른다.

그러니 그들의 신도 모르고, 교리도 당연히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최소한, 그들의 지거광의 말에 합리적인 이유가 없다는 것만큼은 알았다.

‘그분’께서 참작해 주실 거라고?

대체 그분이 뭐하는 놈이길래.

“너희는 뭘 위해 싸우는 거지?”

“뭐? 아니… 당연한 거 아냐?”

지거광의 표정은 너무나도 당황스럽다는 반응이었다.

더욱 정확히 말하자면, 왜 그런 당연한 걸 묻느냐는 표정이었다.

이 시점에서 청유백은 자신의 질문이 잘못되었는가를 의심했다.

하지만 그 의심이 길게 이어지기도 전에, 지거광은 선뜻 말을 이었다.

“아, 그렇군. 한 놈은 머저리에, 한 놈은 건망증 병신. 싸우면서 말 한마디 할 여유도 없는 놈들이기는 했지!”

교아와 낙무열을 이르는 말이었다.

백련은 죽을 때마다 기억을 잃고, 녹련은 죽을 때마다 감정을 잃는다.

그럼 청련은 무엇을 잃는 것일까 잠깐 생각이 들었지만, 교아의 말이 빠르게 이어졌다.

지거광의 황당해하던 표정은 조금 찌푸려져, 어이가 없다는 듯한 감정을 표현하고 있었다.

“아니, 그래도 좀 실망인데. 그 단순한 것 하나 이해하지 못한 거야? 아니면 뭐… 나도 한 번 끼워 달라, 그런 욕심의 표출인 거야?”

“…….”

“그건 정말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표정인데? 좀 놀라운걸.”

지거광은 머리를 긁적이고는, 자신의 팔을 벌리며 몸을 드러냈다.

청유백이 절단했던 부위뿐만 아니라, 몸 곳곳에서 푸른빛의 실이 누빈 흔적이 드러났다.

“이 몸을 봐. 죽어도 죽지 않는, 이 영원한 몸을 보라고.”

지거광은 그리 말하며 스스로 자신의 목을 후려쳤다.

마치 인형의 목이 뜯겨지듯 지거광의 목은 멀리 날아갔고, 목 없는 몸통은 스스로 움직여서 근처 괴이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조금 고민하는 듯한 움직임을 보이더니, 괴이 무리 중 하나의 머리를 뜯어 자신의 목 위에 올렸다.

곧, 목에서 푸른빛의 실이 뿜어져 나오며 목과 머리를 하나로 이었고, 곧 그것은 원래 그의 머리였던 것처럼 움직였다.

이제 그는 노인이 아니라 청년의 얼굴이었다.

지거광이 웃었다.

“멋지지 않냐? 하지만 불완전하지. 계속 죽다 보면, 언젠가는 살아 있는 게 의미 없는 지경이 와…….”

분명 그럴 것이었다.

교아는 기억을 잊고, 이름을 잊고, 말을 잊은 끝에 저 꼴이 되었고, 낙무열은 이미 어떤 감정도 느낄 수 없는 상태였다.

순간 청유백의 뇌리에 한 가지 생각이 스쳐갔다.

죽을 때마다 대가가 쌓인다면, 청련의 대가는 무엇이기에 저리도 쉬이 목을 친단 말인가.

그리고…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괴이들을 일으키는 것은 무엇이 원리인 것일까.

지금으로서는 알 수 있는 것이 없었다.

하지만, 일단 눈앞의 저놈을 갈아버리면 대충은 답이 나오리라.

지거광의 말이 이어졌다.

“하지만 그분께서 곧 오실 거야. 온전한 부활을 가지고, 온전한 영생을 우리에게 내려주시겠지. 그리고 나는… 그 가장 앞에서 처음으로 영광을 받을 거고!!”

지거광은 자랑스럽다는 듯 고개를 꼿꼿이 들고 팔을 펼쳐 보였다.

그리고 청유백을 내려다보며 나직히 물었다.

“어때? 부럽지 않냐?”

“……….”

지거광의 말은 이제 이해가 되냐, 라는 질문이 아니었다.

당연히 이해했을 것이고, 얼마나 부럽느냐, 라는 질문이었다.

…하지만.

“……멍청하군.”

“뭐?”

청유백은 여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지거광의 말은 이해했지만, 오히려 더욱 혼란에 빠졌다.

그들이 무엇을 위해 죽는지 알았지만, 그 ‘무엇’이 그만큼 가치 있는 것인지 이해하지 못했다는 뜻이었다.

기실,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육련의 기술과 ‘불사’의 존재를 안 시점에서 그들의 목표를 인지했을 것이다.

무엇을 위해서 죽음을 불사하는지, 무엇을 위해서 목숨을 선뜻 내놓을 수 있는지 이해했을 것이다.

하지만 청유백은 평범하지 않았고, 그 비범이 단순한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영생.

영원한 삶.

이미 천 년을 가까이 살아본 청유백은, 이미 그것의 의미를 잘 알고 있었다.

청유백은 씁쓸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영원한 삶이라는 건 썩 가치 있는 물건이 아님을… 아직 모르는군.”

“마치 영생해 본 적이 있다는 것처럼 들리는데.”

“글쎄, 어떨는지.”

청유백은 대답할 가치를 느끼지 못했다.

말한다고 합리적으로 들릴 이야기도 아니었거니와, 구태여 쓸데없는 잡담을 나누고 싶지 않았다.

둘이 아닌, 다른 일행이 있는 곳에서라면 더더욱 그러했다.

시타 일행이 곧 도착할 것이었다.

청유백도, 지거광도 그 사실을 알았다.

“자, 그러면 주 무대를 열어 보자고.”

하지만 무엇보다도 먼저, 지거광이 손을 움직였다.

지거광의 손에 들려진 부채 조각이 유려한 선을 그렸고, 부채 끝에서 흘러나온 푸른빛의 선이 요탕한 움직임을 보이며 휘둘러졌다.

그러자, 명확한 반응이 있었다.

“그르르르…….”

“그어어어……!”

주변에서 지금껏 가만히 있던 괴이들이 거친 숨을 내쉬며 청유백을 노려보기 시작했다.

당장에 달려들지는 않았지만, 먹이를 앞에 두고 주인의 명을 기다리는 사냥개와도 같은 눈빛을 보였다.

“……!!”

[역시 저것으로 명령을 내리는 게로구나.]

청유백은 욱신거려 오는 오른손을 어떻게든 유지하며, 허공에 떠오른 세 개의 검을 모았다.

이렇게 된 것, 후산과 청률의 도움을 받아야 할 것 같았다.

아무리 숫자가 많고 당장 덤벼든다 한들, 그들이 오기까지는 고작 찰나다.

충분히 버텨낼 수 있었다.

…하지만 지거광이 다음에 내린 지시는 그 괴이들을 달려들게 한 것이 아니었다.

지거광은 괴이들이 아니라 자신의 뒤편, 나무와 수풀 너머를 향해 부채 조각을 휘둘렀다.

곧, 그 너머에서 한 사람의 인영이 튀어나왔다.

“자, 정말 아껴서 준비한 거거든?”

“크으…….”

청유백보다 댓 살 정도 많아 보이는 사내였으며, 이목구비도 묘하게 그와 닮아 있는 청년.

푸른 늑대 자수의 옷을 걸치고 칠흑색의 검을 지닌 청년이었다.

청유백은 그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크어어……!!”

“…….”

흉흉한 푸른 안광을 빛내는 청명휘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지거광은 맑게 웃어 보였다.

“어때? 마음에 들어?”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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