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6화. 이선(異線), 청련 (1)
습격은 찰나에 시작하여 한순간에 끝맺어졌다.
백월검이 손목을 꿰뚫은 것과, 홍련검이 날아들어 노인의 목을 베어낸 것은 거의 동시였다.
두 가지 물건이 동시에 땅에 떨어졌다.
하나는 노인이 쥐고 있던 부채 조각이었다.
노인이 무엇을 하려 했는지, 청유백은 알 수 없었다.
저 괴이들을 부채 조각을 매개로 조종하는 것일까?
혹은, 자신은 알지 못하는 다른 무언가를 행하려 했던 것일까?
알 수 없다.
아마도 영원히 알 수 없을 것이다.
이유는 단순했다.
─툭.
팔과 함께 바닥을 구르는 다른 하나의 물건이, 방금까지 노인의 목 위를 지키던 무거운 부위였기 때문이었다.
뭉툭한 살점이 뭉개지는 소리가 공허하게 울렸다.
하지만 그것으로도 끝이 아니다.
─퍼석!
청유백은 주저 없이, 목을 날린 시체의 심장을 꿰뚫고 사지를 난자했다.
어께를 꿰뚫어 조각내고, 무릎을 찔러 옆으로 으깨었다.
두 번 다시 이어 붙일 수도, 꿰맬 수조차 없을 흉측한 상처가 남게끔 검을 휘둘렀다.
놈이 어떤 수작을 부리든 결국은 인간.
이미 녹련이든 백련이든, 놈들의 뭔지 모를 기술은 지독하게 보아 왔다.
놈이 다시 움직일 수 있을지, 움직이더라도 어떤 식으로 움직일지는 전혀 모르지만─
‘뭐가 되었든, 팔다리를 잘라내면 움직이지는 못할 테지.’
청유백은 순식간에 떨어져 내린 노인의 몸뚱어리 조각들을 발로 차 날렸다.
설마 찢겨나간 몸뚱어리가 도로 붙기야 하겠느냐마는, 만약을 대비하여 나쁠 것은 전혀 없었다.
“크르르륵…….”
“……….”
괴이들은 청유백을 보면서도 그저 멀뚱멀뚱 서 있었다.
엄밀히 말하면, 청유백을 보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초점 없는 눈이 앞을 향해 있고, 그 방향에 청유백이 서 있었을 뿐이다.
[분명 이지(已知) 없는 괴물이로구나. 명령을 내리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 것일 테지.]
‘지금 기습하길 잘했군.’
청유백은 주변의 괴이들을 한 번 돌아보았다.
놈들은 실이 끊어진 꼭두각시 인형처럼 축 처진 채로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대충 보이는 숫자만 백이 넘었으니, 아마 이곳뿐만 아니라 다른 곳의 녀석들도 똑같이 되었을 테다.
“자, 그럼…….”
청유백은 발끝에 차이는 노인의 몸을 굴러 넘기며 주변에 떨어졌을 부채 조각을 찾아 헤맸다.
녀석이 ‘청련’ 본인인지는 아직 의구심이 들었지만, 그 조각만큼은 진짜였다.
설령 저것이 본인이 아니더라도, 운이 좋다면 조각에서 청련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며, 청유백은 부채 조각에 손을 뻗었다.
그런 찰나.
─콰악!
“……!!”
무언가가 청유백의 손목을 움켜쥐었다.
그것은 부채 조각의 옆에서 뒹굴고 있던 앙상한 손.
몸통에 연결되어 있지도 않았으며, 잘려나가 홀로 떨어져 있는 노인의 앙상한 손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청유백의 뒤편에서 어스름에 물든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런…….”
“…….”
청유백은 손목을 조여 오는 어마어마한 악력을 느꼈다.
앙상한 손에서 나올 것이라 생각지도 못한 악력이 청유백의 손목을 압박했고, 청유백은 마기를 팔에 둘러 강화하여 버텼다.
피가 통하지 않아 파래지고, 그것을 마기로 복원하여 잠깐 통하게 하는 공방이 반복된다.
한순간이라도 팔에 힘이 빠진다면, 손목을 조이는 이 손이 당장에 손목을 으깨버릴 것 같다는 확신이 뇌리를 스쳤다.
노인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성격이 너무 급한 것 아니냐? 뭐가 그리 다급하다고…….”
꾸드득.
청유백은 억지로 오른팔을 움직여 부채 조각을 주워내고는, 뒤를 돌아 목소리를 바라보았다.
그것은 아래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잘려나간 노인의 목이 스스로 구르더니, 의미 없는 턱짓을 반복했다.
입술과 혀를 이용하여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턱은 그저 그대로 벌려진 채, 아무것도 이어지지 않은 목구멍 너머에서 마치 악마가 말하듯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미안한걸. 너무 조촐한 맞이였나?”
노인은 큭큭, 하고 허탈하게 웃었다.
아니, 더 이상 노인이라고 하면 안 될 것 같았다.
방금까지는 노인의 몸과 노인의 목소리였지만, 저 목구멍 너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이제 노인의 것이 아니었다.
청유백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웃기지도 않는 재주로군.”
“하하, 유감이지만 양해해 달라고. 버러지들과 섞여 뒹구는 건 썩 취향이 아니어서 말이야….”
노인의 목이 스스로 어디론가 구르더니, 조각조각 난 몸뚱어리들이 하나로 모이는 것이 보였다.
팔이, 다리가, 몸통이 한 군데로 모여 스스로 떠올라 그 균열을 맞추었다.
거칠게 뜯겨지거나 부러진 뼈 같은 것은 처음부터 상관도 없었는지, 그저 모양만 그럴싸하게 맞춰지고 있었다.
오직 청유백의 오른손을 붙든, 저 노인의 오른손만을 제외하고 말이다.
곧 노인의 형상은 온전해졌고, 몸의 균열 틈새 사이사이를 푸른빛의 실이 메꾸어가며 바느질했다.
녹련과는 조금 다른, 기묘한 광경이었다.
푸른빛의 실.
녹련은 다른 사람의 탈을 쓴 채 몸을 움직이는 것이었다면, 저 청련은 마치 꼭두각시를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수십, 수백의 꼭두각시를 말이다.
노인은 곧 비틀어진 머리를 끼워 맞추며 턱을 움직였고, 청유백을 보며 비웃듯 입을 열었다.
“이리 일찍 올 줄 몰라 조촐한 준비밖에 하지 못했지만, 이해하지?”
노인은 손목 위가 존재하지 않는 자신의 공허한 오른팔을 불만스레 쳐다보더니, 곧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리고는, 적당히 가까이에 있는 괴이 하나의 팔을 뽑아 뜯었다.
맨손이었지만, 그 행위에는 어떠한 부담도 어려움도 없는 듯 보였다.
노인은 부러뜨린 팔에서 손만 잘라 자신의 빈 손목 위에 올렸고, 곧 손목에서부터 푸른빛의 실이 환부를 감싸며 두 신체를 하나로 접합했다.
“아, 그러고 보니 이 머리도 좀 질리는군. 이게 누구 거였더라? 음… 무슨 파의 장문인인가 했었는데.”
노인이 자신의 목을 손가락으로 훑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접합선을 손가락이 지나칠 때마다, 피부 아래에서 푸른빛의 실의 요탕한 움직임이 보였다.
노인은 이내 시선을 청유백을 향해 돌렸다.
“뭐, 상관없지. 지금 보니 네 머리도 꽤 괜찮은 것 같아. 적당히 비열하게 생긴 게, 딱 내 취향이군.”
“역겨운 놈.”
“으음, 목소리도 딱 좋은걸. 아, 자기소개라도 할까? 내가 바로 청련, 지거광이다. 아니, 이건 좀 식상한데…….”
청유백은 더 이상 듣고 있지 않았다.
스스로 검집에서 뽑혀져 나간 검 세 자루가 동시에 노인, 지거광을 향해 쇄도했다.
하나는 머리를, 하나는 심장을, 하나는 단전을 꿰뚫으려 했다.
하지만 두 번 무력하게 당하지는 않는다고 말하는 것처럼, 청련은 능숙하게 뒤로 뛰어오르며 세 번의 공격을 자연스럽게 피해냈다.
“호! 신기하게 싸우는걸. 보통 칼잡이 놈들은 오른손을 묶으면 병신이 되는데… 너, 더 좋아졌어.”
“유감이군. 고백은 염라대왕에게 해라.”
콰악.
청유백이 주먹을 움켜쥐었다.
청련의 몸은 여전히 허공에 떠 있는 채였고, 청유백의 검은 단지 직선으로 날아가지 않는다.
스스로 허공을 날아 격하고, 방향 전환은 언제나 자유자재.
청련이 피해낸 칼날은 찰나가 지나기 전에 다시금 쇄도했고, 이번에는 유의미한 상처를 입혔다.
─퍼석!
분명히 피육을 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기묘하게도, 조금 푸석하고 썩어빠진 짚단을 가르는 소리였다.
분명 청유백의 칼날은 지거광의 팔을 찌르고 갈랐지만, 피는 흐르지 않았다.
거죽을 자르고 근육이 잘려도, 이미 그 아래 흐르던 피는 말라 버린 듯 보였다.
[꼭두각시 그 자체로구나. 이미 사람이 아닌 게야.]
‘……….’
난해했다.
교아도 결국 피 흘리는 사람이었으며, 낙무열도 몸을 옮긴다고는 해도 결국은 사람의 몸.
하지만 피 흘리지 않는 인형이라면, 어찌 죽여야 한단 말인가?
결국 지거광의 발은 다시 땅에 닿았고, 갈라져서 뼈가 보이는 자신의 팔을 불만스레 쳐다보았다.
“아이 참, 이러면 팔도 다 갈아야 하잖냐……. 왜 이렇게 성질이 급해? 기껏 준비한 선물도 있는데, 까 보기도 전에 뒤지겠네.”
“필요 없다.”
“에이, 보면 생각이 달라질 거야. 진즉 오른팔만 잘라서 내가 쓸까 하다가, 널 위해 남겨둔 장난감이라고. 슬슬 관객들도 올 때가 됐는데…….”
관객?
이건 또 무슨 소리인지.
청유백의 미간 주름이 필 새가 없었다.
차라리 정파 놈들이나 무신과 싸울 때가 나았던 것 같기도 했다.
놈들은 좀 협잡하고 비겁하기는 할지언정, 하늘의 이치를 벗어난 무언가를 시도하지는 않았으니까.
‘빌어먹을.’
하지만 사마신교는 아니었다.
무언가 계획을 꾸민다고 하면 그 실체가 무엇일지,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짐작도 되지 않았다.
당장에 사지를 기워 일으키는 놈이 눈앞에 있는 마당이니, 저 ‘선물’이라는 것에서 뭐가 튀어나와도 놀라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아, 드디어 손님이 온 것 같은데! 내가 이것 때문에 저 멍청한 새끼를 다시 살렸다고. 알아?”
“…….”
청유백은 말없이 왼손을 들어 검들을 계속해서 날렸다.
살려? 누굴?
별로 알고 싶지 않았다.
왼팔로도 검을 휘두를 수는 있었지만, 오른손이 부자연스러워서 균형을 잡을 수가 없었다.
검에 마기를 실어 날리려고 해도, 오른팔을 계속해서 보호하느라 온전한 힘을 다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지거광도 마찬가지였다.
─콰드득!
그 또한 청유백의 팔을 붙들기 위해 상당한 힘을 쓰고 있었다.
언뜻 보면 교착 상태라고 볼 수도 있으리라.
청유백은 오른팔이 붙들려 전력을 다할 수 없고, 지거광은 오른팔을 붙들기 위해 다른 힘을 쓸 수 없다.
지거광은 웃으며 계속 청유백의 검을 피했고, 이윽고 어떤 나무의 뒤편까지 다다랐다.
청유백은 그 뒤편으로 검을 날렸지만, 지거광은 당연하다는 듯 그것을 피하며 나무 뒤편에서 뛰쳐나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었다.
“……!!”
“어때? 구면이지? 좀 멍청하고 모자라게 되긴 했는데, 이 꼴이 나도 생전에 하던 건 대충 따라할 수 있거든. 진법이라는 게 꽤 쓸모가 많아서 말이야.”
온몸에 푸른 실이 가로질러 엉망이 된 몸을 기워낸 시체.
텅 빈 동공과 하얀 머리칼의 사내의 시체가 공허하게 지거광의 손에 이끌리고 있었다.
백련.
교아였다.
지거광은 즐겁게 말을 이었다.
“그리고… 손님도 온 것 같고.”
* * *
한편, 청유백과 헤어져 숲길을 달리던 시타 일행은 갑자기 괴이들의 움직임이 멈췄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넘어지고 상처 입으면서까지 다가오던 놈들은 실이 끊긴 꼭두각시처럼 멈춰 섰다.
가장 먼저 말한 것은 청률이었다.
“야, 쟤들 안 쫓아오는데?”
“……청유백 그놈이 진짜로 뭔 짓을 했나 보지. 좀 허언증이 심한 것 같기는 해도, 할 건 했잖아?”
“그것 참 멋진 일이군. 형제들이여, 그런데 말이오…….”
후산이 묵태곤의 대답에 반응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조금 흐린 말끝에는, 썩 달갑지 않은 상황이라는 말투가 묻어나고 있었다.
“우리는 분명 호숫가를 향해 달렸던 것 같은데… 갈수록 숲 안쪽으로 가는 것 같지 않소?”
“그럴 리가. 방향은 정확했어. 아까는 호숫가도 보였잖아.”
“나도 분명 보았소. 보았는데…….”
어찌 된 조화인지, 호수는 전혀 나올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분명 호숫가 방향으로 뛰었건만, 기묘하게도 나무 너머로 보이는 호숫가의 풍광은 점점 멀어져 가는 것만 같았다.
조금씩 들리던 산새들의 소리와 호숫가의 정적인 물방울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대신, 다른 것이 들려왔다.
강철이 부딪치는 소리. 검이 휘둘러지는 소리. 죽음이 찾아오는 소리.
시타를 안은 품에 더욱 힘을 주며, 후산이 말을 이었다.
“대신 사람은 찾은 것 같구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