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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우면 네가 천마 하든가-175화 (175/200)

제175화. 살아 있는 밤의 습격 (5)

안타깝게도, 그것을 들은 것은 시타 혼자만은 아닌 듯 보였다.

분명한 비명이었다.

청률이 먼저 몸을 떨며 말했다.

“……그럴지도 모르겠는데.”

“우습게 볼 수는 없겠군.”

청유백은 하늘에 떠 있는 태양의 각도를 가늠하며 손을 뻗었다.

여름인 점을 가늠하면, 앞으로 해가 지기까지 반나절이 채 남지 않았을 것이다.

숲은 넓고, 적은 얼마나 있는지도 알 수 없다.

그렇다고 적장을 해치우는 등의 극적인 해결책이 있느냐 묻는다면, 그 또한 아니었다.

목표는 그저 돌파였고, 이 숲을 빠져나가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일 뿐이었다.

“하지만 이대로 돌아설 수는 없다. 가까운 마을도 멀고, 이 숲만 넘어서면 서녕은 금방이야…….”

우물쭈물하다 숲에서 밤을 보내는 것보다는, 차라리 돌파하여 서녕에 당도하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지금은 놈들이 근처에 없는 것 같았지만,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장담은 할 수 없다.

청률이 입을 열었다.

“가까운 곳에 거대한 호수가 있지. 차라리 물길을 이용하는 건 어때?”

“병신아, 배가 어디서 나서?”

“뭐, 가다 보면 나루터 하나쯤은 나오지 않겠어? 부서진 나룻배 하나쯤은 있겠지.”

“그 부서진 나룻배는 누가 고치는데?”

“태곤아. 생각은 내가 했으니, 고치는 건 네가 해야 되지 않을까?”

“미친 새끼.”

묵태곤은 코웃음을 치며 들을 가치도 없다는 양 고개를 내저었다.

“배를 발견해도 쫓기는 중이면 어쩔 건데? 배를 고치는 중에 놈들이 습격하면? 아니, 다 때려치고… 쟤네가 수영도 할 수 있으면? 물 위에서 상대할 수 있겠냐?”

“으음…….”

청률은 말문이 막힌 채 고개를 숙였다.

두 사람 다 몸을 움직이는 쪽이지 머리를 굴리는 부류는 아닌지라, 선뜻 명확한 결론을 내놓지 못했다.

청유백은 어깨를 으쓱이며 대꾸했다.

“어쨌든 나쁘진 않은 생각이다. 중앙을 돌파하는 것보다야 외곽으로 가는 편이 낫겠지. 그리 돌아가지도 않는…….”

…길이니.

청유백은 말을 그리 끝맺었다.

하지만 평소처럼 명료하지는 않았다.

뭔가 기묘한 것을 발견하기라도 한 듯이, 눈을 부릅뜨며 비명이 들려온 방향을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시죠?”

“…….”

청유백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비명이 들려온 쪽에서 얼핏 느껴진 작은 기운을 피부로 느꼈다.

방금까지 느껴지지 않았던 기운.

동시에, 지금껏 몇 번인가 부딪쳤던 이질적인 금속의 기운.

[부채 조각이구나.]

“……하나인가.”

그다지 강대하지는 않았다.

추측일 뿐이었지만, 저곳에 있는 것이 청련 본인은 아닐 터였다.

하지만 저곳에 있는 조각의 기운은 분명 진짜.

청유백은 몸을 돌렸다.

“뭐가 됐든, 확인할 가치는 있겠지.”

* * *

청유백은 일행과 헤어져 숲속을 내달렸다.

후산에게는 호숫가를 따라 움직이라고 해 놨으니, 추후에 합류하는 데에도 문제는 없을 것이었다.

물론, 놈들에게 당하지 않는다는 가정하에서이지만 말이다.

하지만 청유백은 굳이 걱정하지 않았다.

불필요한 걱정을 미리 사서 할 필요는 없을 테다.

청률과 묵태곤도 일단 자기 몸은 지킬 수 있는 실력이고, 결정적으로 후산이 있으니 어떻게든 될 것이다.

뚫어내지는 못해도, 도망칠 수는 있으리라.

‘아니, 그 전에…….’

청유백은 잠시 멈춰 섰다.

청유백은 놈을 잡을 생각이었다.

일단은 부채 조각을 가진 그놈이 이 사달의 원인일 테니, 놈을 잡아 족치면 안전도 확보될 수 있을 것이었다.

그리 되면, 도망이고 나발이고 필요 없게 될 테다…….

하지만.

‘…기척이 멎었다.’

순식간에 고요가 찾아왔다.

숲은 정적으로 가득 찼고, 한순간 들려왔던 비명은 이제는 종적을 감추었다.

소리도, 기척도.

그 무엇도 느껴져 오지 않았다.

청유백은 당혹을 감출 수 없었다.

‘도망친 건가? 그 찰나에?’

순식간에, 자신이 감지할 수 없는 거리 너머로 도주했단 말인가?

‘…아니, 그럴 리는 없나.’

그렇다면 멀어져 가는 기운이라도 포착했어야 했다.

차라리, 조각의 기운을 숨길 수 있는 모종의 방법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올바를 것이었다.

청유백은 정신을 집중했다.

하나, 둘, 셋.

공중에 떠오른 총 세 개의 검에 마기를 담고, 각기 다른 방향으로 쏘아 보내기까지의 시간이 찰나.

검들은 마기를 흩뿌리며 허공을 날았다.

하나는 북쪽을, 하나는 남서쪽을, 하나는 남동쪽을.

그리고, 그것에 부딪혀 돌아오는 기척들을 청유백이 감지해 내었다.

괴이들은 일제히 다른 무언가를 향해 뛰고 있었다.

청유백 자신은 아니었고, 시타 일행이 있을 방향도 아니었다.

‘대략… 다른 무사들이 향한 방향, 숲의 중심부…….’

─움찔.

북쪽으로 쏘아 보낸 검에 두 사람의 기척이 잡혔다.

당황한 듯 급박하면서도 불규칙적인 발걸음과, 부상당했는지 바닥을 명료하게 적시는 방울진 소음이 동시에 느껴져 왔다.

청유백은 결론을 내렸다.

‘……화산파 놈들인가.’

[처음 비명을 지른 자와는 거리가 조금 있지 않더냐?]

‘순서대로 사냥하는 거겠지. 괴이들의 방향이 지나치게 규칙적이야.’

그것들은 마치 노려야 할 사냥감을 알고 있다는 것마냥, 일제히 한 방향을 향해 뛰고 있었다.

코앞에서 보았던 지성 없었던 짐승들의 움직임과는 확연히 달랐다.

명확한 적의와 살의.

잠깐의 침묵이 흐르고, 천화가 대답했다.

[그렇다면… 필경 우두머리가 있는 게로구나.]

‘그래. 그리고 당연히, 놈이 조각을 지니고 있을 테고 말이야.’

이 무리를 조종하는 것이 그놈이라면, 응당 그 근처에 있을 터.

청유백은 발끝에 힘을 집중하여 땅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괴이들이 일제히 향하고 있는 방향을 쫓았고, 놈들을 추월하여 그 방향의 끝을 확인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놈들이 달린다고 해 봤자 넘어지고 저들끼리 부딪치기 일쑤인지라 그리 속도는 나지 않았으니까.

“저곳인가.”

청유백은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끝에 다다랐고, 점차 그의 주변으로도 괴이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보는 이도 없으니, 이젠 거리낄 것도 없었다.

청유백은 자유롭게 마기를 휘두르며 놈들을 베고 앞으로 나아갔다.

곧, 누군가의 간절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이, 이런! 아까와는 다르잖아!”

“사형! 조심하십…크윽!!”

곧 청유백의 시야에 그들이 비쳤다.

운표와 운우였다.

검을 뽑아든 그들은 괴이들과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괴이들이 휘두르는 검과 창을 막아내고, 동시에 놈들의 피육을 썰어 접근을 저지하고는 있었으나.

─카강!

“……!!”

아무래도, 그것도 곧 한계에 부칠 듯 보였다.

청유백은 나무 위에서 기척을 숨긴 채 상황을 살폈다.

[괴이들의 움직임이 기이하구나. 아까와는 판이하게 다르다. 아니… 정확히는…….]

‘조금 다른 녀석이 있군.’

대부분의 괴이는 느려 터지고 이지가 없는, 아까 보았던 지성 없는 괴물 그대로였다.

하지만 몇몇, 다른 놈들이 보였다.

마치 살아 있는 사람처럼 움직이고, 살아 있는 사람처럼 검을 휘두른다.

몸을 아낄 줄을 모르는 다른 괴이들과는 다르게, 한 번 치고 한 번 빠지면서 ‘사람’의 검술을 구사하고 있었다.

‘……저게 청련인가.’

사마신교의 육련은 제각각 다른, ‘죽음으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이라고 했다.

그 안에서 생각한다면, 유추할 수 있는 청련의 능력은 한정되어 있었다.

청유백의 뇌리에 몇 가지 가능성이 스쳤고, 가장 직관적인 것은 한 가지였다.

‘시체를 일으키는 힘…이라고 보아도 좋겠군.’

[아마 그럴 게다. 순서상 청련은 두 번째이니, 그리 고등한 과정이 아닐 게야.]

백련은 영혼을 새로운 몸에 깃들게 하는 기술이고, 녹련은 다른 이의 몸을 탈취하여 영혼을 깃들게 하는 기술이다.

그렇다면 청련은, ‘이미 죽은 몸에 영혼을 깃들게 하는 기술’일지도 모른다.

지금까지와는 달리 그 숫자가 어마어마하기는 하지만, 그것 또한 모종의 특이점이 존재할 것이었다.

움직임이 다른 것은 성공작과 실패작의 구분인 것일까.

‘저게 청련 본인인가……?’

저 특수 괴이들을 전부 죽이면 이 상황이 해결될까?

청유백은 확신할 수 없었다.

움직임이 다른 놈이 한 놈뿐이었다면 놈에게 ‘조각’이 있으리라고 유추할 수 있었겠지만, 얼핏 보아도 재빠른 놈이 열은 되어 보였다.

조각의 기운은 여전히 느껴지지 않았으니, 청유백이 할 수 있는 것은 단순히 추측하는 것뿐이었다.

이 숲에 있는 모든 괴이의 배를 갈라 볼 것은 아니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천화가 입을 열었다.

[으음, 청련 본인이라기에는 너무 나약하지 않느냐?]

‘그건 그렇군. 교아나 낙무열에 비하면 저건…….’

아무리 숫자가 많다 한들, 썩 위협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물론 숫자는 가장 강력한 힘이지만, 그 강력한 힘을 두고 청련 본인이 앞에 나와 싸울 것 같지도 않았고 말이다.

청유백은 조금 더 지켜보기로 했고, 문득 다른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런… 화산파… 제자 놈들 아니신가…….”

“……!!”

그것은 수풀의 너머를 헤치고 나아왔다.

청유백으로서도 탐지할 수 없었다.

그것은 특별히 강한 힘을 가지고 있던 것도 아니었거니와, 주변에 널린 괴이들과 같은 기척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놈은 말을 하고 있었다.

느릿하고 어눌하지만, 분명히 놈의 입으로 소리를 내었다.

심지어 운표와 운우의 소매를 알아보고 있지 않은가.

청유백은 기척을 숨기고 그 상황을 지켜보았다.

갑자기 등장한 노인은 십수 일을 굶었는지 빼빼 마른 모습이었고, 두 눈은 공허하여 어둠만이 자리하고 있었다.

기이한 점은, 마치 다른 괴이들이 그의 명령을 듣는 것처럼 보였다는 점이었다.

노인이 등장하자마자 괴이들은 공격을 멈추었고, 그저 꼭두각시처럼 멈춰 서 있을 뿐이었다.

운표가 노인에게 검을 향하며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화, 화산을 안다면 정체를 밝히시오!”

“묵련께서는… 협약을 지키라 하셨지만…… 흐으음…….”

노인이 고민하는 듯 턱을 쓰다듬자 주변의 괴이들이 움찔거렸고, 운표는 기겁하여 검을 떨어트릴 뻔했다.

“사, 살려주시오. 무엇을 바라시오? 우리를 이대로 보내만 준다면, 화산이 분명 잊지 않고 보답을 할 것이오.”

“…….”

흐으으음, 하는 고뇌에 찬 신음이 잠시간 흘렀고, 노인은 결국 고개를 끄덕이며 앙상한 팔을 들어 운표를 가리켰다.

“내가 주었던… 서한. 지니고 있겠지…….”

“다, 당신이 준 서한? 우리가 언제 보았다고…….”

“서녕에서… 받은 게 있을 텐데.”

운표는 아는 바가 있는지, 노인의 말을 듣고는 품에서 굳게 봉인된 서한 하나를 꺼내 들었다.

몇 겹의 끈과 밀랍으로 봉인되어 있어, 도저히 중간에 열어볼 수 없는 구조였다.

“이, 이것 말이오?”

노인은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네놈들의 주인에게… 전해라. 결국은 그분을 위한 일… 사소한 여흥으로 망칠 수는 없지…….”

노인은 클클클, 하고 웃으며 손을 들어 한 번 튕겼다.

허공에 딱, 하는 소리가 울려 퍼지고, 어느새 우르르 몰려들었던 괴이들은 길을 내듯이 서로 옆으로 비켜섰다.

운표와 운우는 순간 얼타 멍하니 멈춰 서 있었지만 노인의 고갯짓에 정신을 차리고는 검을 든 채로 천천히 걸음을 떼었다.

당장이라도 저 괴이들이 자신에게 달려들 것 같았으니 일단은 검을 납검하지는 않은 채였다.

“사, 사형. 어찌 된 일입니까?”

“나라고 알겠느냐. 살려준다니… 일단 가는 거지.”

어차피 이곳에서 버텨 봤자 개죽음밖에 되겠는가.

뭐가 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일단은 도망쳐야만 했다.

운표와 운우가 다급하게 발걸음을 놀렸고, 괴이들은 다시금 흩어져 다음 목표물을 찾는 것처럼 주변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노인의 손에서 작은 은빛의 물체가 반짝였다.

길이는 십 촌이요, 너비는 일 촌에서 이 촌인 강철의 조각.

노인은 그것을 꺼내어 괴이들을 지휘하듯 휘둘렀고, 다음 순간.

─콰득!

섬광을 찢고 날아든 순백색의 검에 팔이 뜯겨 날아갔다.

나직이, 청유백의 목소리가 울렸다.

“너구나?”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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