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3화. 살아 있는 밤의 습격 (3)
‘봤지?’
[흐으으음…….]
이젠 놀라거나 딴지를 걸 여지도 없는지, 천화는 그저 어이없다는 듯 목을 울릴 뿐이었다.
그래, 뭐.
처음부터 뭔가의 습격이 온다고 말을 듣기는 했었지 않던가.
대충 보이는 적은 수십 정도.
앞쪽에 선 무인들이 일사불란하게 각자의 병장기를 뽑아드는 것이 보였다.
그 화산파 놈들도 마찬가지였고, 청률과 묵태곤, 그리고 자신의 뒤로 시타를 숨긴 후산 또한 각자의 무기를 꺼내들었다.
수십 개 강철의 마찰음이 연달아 들려왔고, 청유백은 한 걸음 물러서서 전체의 상황을 살폈다.
“자, 그래서…….”
이 무리를 건드린 정신 나간 놈은 도대체 누구냐?
* * *
기실, 이 관군들을 이끄는 십인장(十人將) 허곽은 이 임무를 무시하고 있었다.
아니, 임무라고 부를 건더기나 있나?
사실상의 산책, 아니면 그저 나들이라고 부르는 것이 옳을 터였다.
눈앞에서 튀어나온 의문의 무리를 보며, 곽주는 당장 어제 술자리에서 나누었던 부하들과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실종? 실종은 뭔 놈의 실종! 웃기지도 않는 소리지. 그냥 저들 마음에 내키지 않아서 돌아갔을 게 분명한데, 몇 명쯤 보이지 않는다고 실종이라니!’
‘그러게 말이유. 그 인간들을 습격해서 얻을 게 뭐 있길래 그 염병을 떨겄소? 산적들도 털 놈 안 털 놈 구분은 할 틴디.’
무림인이라는 인간들 어떤 종자들이던가?
뭐 의이니 협이니 하는 것들은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봉급의 자신들로서는 잘 모르겠지만서도, 일단 상상이 안 갈 정도로 무지막지하게 강하다는 것 정도는 안다.
뭐 산적들 중에서도 그런 부류가 있고, 황군의 장군들 중에서도 그런 부류가 있겠지만, 최소한 자신들과는 엮일 여지가 없었다.
자신들은 무공이 고강하지도 않고, 달리 특별한 재주가 있는 것도 아닌 단순한 병졸일 뿐이니 말이다.
그렇기에, 이 일에 대해서 별달리 특별한 생각을 지니지 않았다.
이유라 함은, 그야 단순했다.
‘미치지 않고서야 검긴지 뭔지 쓰는 인간들을 뭣 하러 습격하겠어? 습격도 이유가 있어야 하든 말든 하지…….’
‘그렇쥬. 뭐 상단이라도 호위하며 간다면 또 모를까! 평소에는 빼앗을 거 하나 없는 인간들이잖소.’
뭐 귀한 것이라고 한다면야, 그들이 지니고 다니는 범상찮은 무기들 정도나 될까?
하지만 무기 하나 뺏자고 목숨을 걸고 덤벼드는 것은 별로 현명한 판단이 되지 못할 것이다.
모든 산적에게 그러할 테고, 산적이 아니더라도 대부분의 인간들은 그렇게 생각할 것이었다.
…그렇게 생각할 지성이 있는 인간이라면 말이다.
하지만… 지성이 없다면 어떠할까.
“놈들이 물러서지 않습니다!”
“주, 죽여라!”
눈앞의 저 습격자들은 검과 창을 들이밀어도 한 치의 두려움 없이 천천히 전진했다.
그 움직임은, 용기라기보다는 무지(無知)에 가까웠다.
‘미친놈들…! 생각이라는 게 없나?’
스스로 말하고서도, 허곽은 스스로 당황했다.
생각이 없다. 지성이 없다.
너무나도 얼토당토않고,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는 것을 본인도 알고 있었다.
세상은 넓고 광인(狂人)은 얼마든지 있지만, 진실로 지성이 없는 인간이 있을 수 있겠는가.
짐승도 제집이 있고 천적을 두려워하는 지성이 있는데, 하물며 미쳤다고 한들 인간이 어찌 지성이 없을 수 있을까.
골목에서 유명한 미친놈들도 공권력 앞에서는 깨갱하고, 복날에 개 패듯 맞으면 정신을 차린다는 것이 세간의 정설이었다.
그렇기에, ‘지성’이라는 것은 가장 필수적인 인간의 조건일지도 모른다…….
지금 이 상황에서 떠올리기에는 너무 추상적인 생각이었지만, 허곽의 그 생각은 거의 본능적인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 조건의 아래에서는─
차마, 저것들을 인간이라고 부를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푸르게 변색되어 버린 피부와 초점 없는 눈, 지성 없이 달려드는 저 걸음걸이.
그리고, 갖은 상처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저 무모함.
“무, 무슨! 고통을 느끼지 않는 건가?!”
“고통? 웃기지도 않는…! 심장을 찔려도 움직이고 있다!”
아무래도 이 상황에 당황한 것은 허곽을 포함한 관군들 뿐만은 아닌 듯 보였다.
무인들은 가차 없이 무기를 휘둘러 습격자들을 찔러 죽였지만, 그들은 멈춰 서지 않았다.
유혈이 낭자했다.
팔이 잘려 나뒹굴고, 심장이 찔려 뒤로 넘어져도 다시금 일어났다.
다리를 잘려 바닥을 기어도 팔로 땅을 짚으며 달려들고 있었다.
“이, 이게 대체 뭐야!”
결국 앞에서 싸우던 무인 중 하나는 뒤로 물러섰다.
베고, 쓰러뜨리고, 다시 베고.
그것들을 반복해도, 놈들은 죽지 않고 계속해서 달려들었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사지 중 하나가 베이는 것만으로도 전의를 상실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보면, 다치지 않은 사람조차도 싸울 의지는 반드시 사라지고 만다.
하지만 저것들은 전혀 그런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자신이 다치고 죽어도, 그저 눈앞의 적에게 달려드는 것만을 생각하고 있는 듯 보였다.
“크아악!”
“대, 대장! 지시를!”
전황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달려드는 괴이(怪異)들을 막아내는 것에는 곧 한계가 왔고, 청유백 일행이 합세해도 그것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묵태곤은 별반 도움이 되지 않았고, 후산은 시타를 지키느라 앞으로 나서지 않았으며, 청률도 개인으로서는 대단한 무력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청유백이 끼어든다면 조금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그는 아직 상황을 살피고 있었다.
‘천화.’
[음. 사마신교로구나.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 않더냐? 슬슬 서녕에 가까워져 오는 지금이니 말이다.]
‘이런 방식일 줄은 몰랐지만 말이지.’
물론 어떤 방식으로든 방해를 펼치리라 생각은 하고 있었다.
청유백은 꽤 눈에 띄게 움직이고 있었고, 사마신교 놈들이 머저리가 아니라면 응당 대처를 취할 테니까.
천화는 웃으며 대꾸했다.
[이럴 줄 몰랐는데도 별로 놀라지 않는구나?]
‘글쎄…….’
과거의 청유백이라면 놀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청유백은 이미 육련이라 자칭하는 머저리들을 두 놈이나 골로 보낸 이후였다.
백련 교아와 녹련 낙무열.
죽음에서 도망치는 것은 이미 지긋지긋하게 봤고, 눈앞의 것은 그것의 또 다른 형태일 뿐이었다.
증오스럽다면 증오스럽겠지만, 놀랄 하등의 이유가 없다.
청유백은 자신의 앞까지 오는 것들의 목만 적당히 베어 버리며 물었다.
‘아는 것 없나?’
[새로 맞춰진 부채 조각은 아직 없지만… 고등한 것은 아니로구나. 척 보아도 백련이나 녹련과 비교하면 상태가 좋아 보이지는 않지 않으냐?]
‘…확실히 그렇지.’
눈앞의 괴이들은 숫자는 많지만, 교아나 낙무열에 비하면 결코 ‘부활’이라고 이를 수준이 되지 못했다.
몸은 움직이나, 지성이 그것을 받쳐주지 못하고 있었다.
지성 없는 부활을 어떻게 부활이라 할 수 있을까.
[육련은 결국 연구의 결과물이니라. 나중에 만든 것일수록 삶에 가까워지지. 백련이 삼천(三天)으로 세 번째였으니, 그렇다면 저것은… 육련 중 두 번째 것.]
첫 번째가 실패하고, 두 번째로 시도한 방법.
그리고 죽음에서 도망치는 연구의 시발점을 연, 두 번째 선택(二線).
천화는 그렇게 말을 이었다.
[이선(二線)의 청련이니라.]
‘뭐든 간에 상관없어.’
청유백은 눈살을 찌푸리며 검을 휘두를 뿐이었다.
눈앞의 것들은 잘 쳐줘도 생전에 삼류였던 것들뿐이었고, 느려터진 지금은 별로 위협이 되지 못했다.
“이, 이것들… 목을 베면 죽는다!”
“원래 사람은 목을 베면 죽어, 멍청아!”
“그 말이 아니지 않나!”
그리고 다른 무인들도 그건 마찬가지인지, 당황도 점차 줄어들며 주저 없이 괴이들의 목을 베어내고 있었다.
하지만 청유백은 영 불편했다.
‘청련 본체도, 부채 조각의 기운도 느껴지지 않아…….’
“본녀도 마찬가지니라. 보이는 것도 없구나. 몰려오는 것은 전부 괴이들뿐이야.”
천화는 급기야 영체화하여 허공을 날았지만, 그리 해도 보이는 것은 없었다.
‘괴이의 숫자는?’
[글쎄, 백… 이백? 나무 사이에 가려서 잘은 모르겠구나. 언덕 너머에서도 계속 오는 걸 보면… 어떤 숫자를 말해도 의미가 없을지도.]
‘썩 유쾌한 상황은 아니군.’
하나하나는 큰 위협이 되지 않지만, 언제나 숫자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된다.
청유백은 백월검을 오른손에, 홍련검을 왼손에 쥐고 자신의 주변에 있는 괴이들을 일제히 베었다.
앞에서만 오던 괴이들은 어느새 넘쳐흘러, 수풀과 나무를 넘어 옆에서도 다가오고 있었다.
마주하는 순간 죽인다고 하더라도, 그 숫자가 너무 많았다.
“…….”
청유백은 혀를 차며 저 앞쪽을 바라보았다.
무인과 관군들은 당장 몰려오는 눈앞의 적들을 쓰러뜨리기도 급급해 보였고, 전황 전체를 살피는 이는 그나마 시타를 지키려 주변을 쉴 새 없이 돌아보는 후산 정도였다.
청유백은 다시 검을 휘두르며 십인장 허곽에게 전음을 날렸다.
{이보시오, 십인장.}
“……!”
허곽은 깜짝 놀라며 청유백을 돌아보았다.
아무래도 그는 전음을 할 수 없는 듯 보였고, 청유백은 태연히 말을 이었다.
{일단 물러서지요. 너무 많습니다. 놈들의 속도는 느린 것 같으니, 달리면 뿌리칠 수 있을 겁니다. 동의하면 한 번만 고개를 끄덕이시오.}
허곽은 그제야 주변 상황을 파악했는지, 한 번 고개를 돌리고는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 번만 끄덕이라고는 했다만, 당장 눈앞이 깜깜한데 무슨 상관일까.
곧, 지체 없이 허곽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모두들! 퇴로가 막히기 전에 우선 물러납시다! 돈이고 나발이고 일단 살아야 할 것 아니오!!”
“……!!”
다른 무인들도 동의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누군가는 앞으로 돌파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고 주저하는 듯 보였지만, 앞에서 몰려오는 괴이의 숫자를 보고는 곧 체념하여 등을 돌렸다.
“퇴각! 퇴각!”
후퇴는 신속했다.
앞으로 나아가려 하니 놈들에게 가로막혔을 뿐이지, 놈들은 달리는 속도도 썩 빠르지 않았다.
빠르게 걷거나, 그것보다 못한 정도의 걸음을 보일 뿐이었다.
따돌리는 것은 쉬운 일이었고, 일각 정도 도망치자 놈들은 쫓아오려 하지 않는 듯 보였다.
체력에 한계가 다다른 허곽은 가쁜 숨을 내뱉으며 손을 들었다.
“이, 이만하면 괜찮을 것 같지 않소?”
“…쫓아오지는 않는 것 같군.”
모두의 동의 아래, 일단은 멈춰 서서 정비하기로 했다.
필요한 것은 상황의 파악, 그리고 휴식이었다.
“허억, 허억…….”
“젠장, 저게 뭐야?”
“사, 사람은 아닌 것 같소만…….”
각자의 반응은 상이했다.
관군들은 일단 목 끝까지 벅차오른 숨을 내쉬는 것이 우선이었고, 아직 여유가 있는 무인들은 짜증과 분노가 먼저 밀려왔다.
상황 파악 이전에 일단은 휴식과 정비가 필요했고, 무인들은 각기 짐에서 도구를 꺼내 검에 묻은 피와 기름을 닦아내기 시작했다.
일단은 안전한 듯 보여도, 놈들이 쫓아올지 쫓아오지 않을지는 확신할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그리고 다들 조금 안정을 찾고 난 이후에는, 당연하다는 듯이 혼란이 찾아왔다.
먼저 입을 연 것은, 무인 중 한 사람이었다.
“가까운 마을도, 거점도 없소. 야숙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지금 당장 결정해야만 하오.”
“무엇을? 저걸 뚫을지 말지? 당신 미쳤소?”
“두려우면 돌아가시오. 어차피 그리 빠르지도 않더군. 당신네 관군들만 아니었으면 우리끼리 돌파할 수 있었을 거요.”
“저 괴이가 대체 뭔 줄 알고! 서녕이 멀쩡할지 망했을지 어찌 알겠소!”
말 자체는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무인은 코웃음을 치며 대꾸할 뿐이었다.
“킥, 고작 저따위 것으로 서녕이 망하기는 무슨… 내 수준의 고수가 널려 있을 거요. 망하고 싶어도 못 망할 것 같은데.”
“난 못하오. 내 부하들도! 의미도 없이 개죽음당할 수는 없지.”
“누가 하랬소? 그냥 얌전히 돌아가시오. 난 애초부터 모여서 가야 한다는 말 자체가 맘에 안 들었거든.”
“하, 하지만 명령이…….”
“그거야 당신네들 사정이고.”
의견은 쉽사리 통합되지 않을 듯 보였다.
무인들은 서녕으로 향하고 싶었고, 관군들은 덕령합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야, 무인들에게는 저 괴이들이 썩 위협적으로 다가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방금은 발걸음을 지체당해 둘러싸일 뻔 했지만, 혼자라면 충분히 돌파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우리 알아서 하겠다니까.”
“우리끼리는 못 돌아간다니까!”
주변을 둘러보던 청유백은, 한숨을 내쉬며 그 사이에 끼어들었다.
“…허면, 이리 합시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