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2화. 살아 있는 밤의 습격 (2)
운표와 운우.
화산파의 두 사내는 하나의 임무를 위해 거의 반년 동안이나 문파를 떠나 유랑하고 있었다.
화산이 위치한 섬서에서부터 신강까지, 그야말로 천하의 반을 건너는 대여정.
그들이 바랐던 여행은 아니었지만, 장로들과 장문인의 총의였기에 스스럼없이 의무를 행했을 뿐이었다.
그 임무는, 어떠한 종교 조직에 미리 물어 두었던 ‘질문’의 대답을 지니고 돌아가는 것.
그 위치가 신강이라기에 마교와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닐까 걱정하기도 했지만, 다행히도 그런 것은 아닌 듯 보였다.
그들의 우두머리는 분명 마인도 아니었고, 대부분이 젊어 은거한 마두(魔頭)라고 보기에는 어려움이 있었으니 말이다.
고된 임무였으니, 화산파로 돌아가면 운표는 차기 장문인의 자리에 한 걸음 다가설 수 있으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던 중이었다.
그것만으로도 큰 공이었는데, 귀환하는 길에 화산의 신물인 백월검을 가지고 돌아간다…?
무어 더 말할 필요가 있을까!
장밋빛 장막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장문인의 자리?
당연히 자신의 것이 되리라.
자신이 다른 동년배의 제자들에 비해 결코 실력이 뒤처지지는 않으니, 십수 년 뒤 논공(論功)을 하게 된다면 반드시 자신의 승리가 될 것이었다.
……분명히, 그리 확신하고 있었다.
“이보십시오. 정신 좀 차려 보세요.”
“어, 어? 그, 그래… 미안하네.”
운표는 순간 흐려졌던 눈을 껌뻑이며 정신을 고쳐 잡았다.
그의 시야에는 무슨 일 있냐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청유백이 비치고 있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이리 물어왔다.
“검을 그리 거칠게 다루시면 어찌합니까. 날 다 상하겠습니다.”
물론 그럴 리는 없다.
어디 만물상에서 파는 조잡한 철검도 아니고, 백월검 수준의 명검이라면 어지간한 정도로는 날이 나가지 않을 테다.
하지만 무릇, 자신의 물건이 아닌 것을 그리 다루면 뭐라 답하기 어려운 것이 당연지사.
운표는 표정이 굳은 채 멋쩍게 대답했다.
“미, 미안하오.”
무어 할 말이 있을까.
검을 보여달라 한 것은 그였고, 상대는 호의를 보였건만 운표가 보인 행위는 무례 그 자체였다.
설사 상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해도, 무기는 무인의 목숨과도 같다.
목숨을 남의 손에 맡겼는데, 그것을 험하게 다룬 것과 마찬가지인 일이었다.
하지만 운표는 이해할 수 없었다.
분명, 자신이 아는 화산의 신물일 것이라고 확신했는데.
‘이런 끔찍한 기운을 머금은 검이 화산의 신물일 리가 없지 않은가.’
아니, 더욱이 나아가─
이런 검이라면, 도대체 아까의 순백의 검기는 무엇이었단 말인가.
하지만 그것에 대해 추궁할 수는 없었다.
호의에 기댄 운표의 행위는 이미 충분히 무례했고, 이 이상의 호의를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당연히, 그를 무릅쓰고 질문한다고 해도 청유백은 대답해 주지 않을 심산이었고 말이다.
그렇기에 운표는, 지금의 상황에서 할 수 있는 합리적인 질문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이 또한 무례한 것은 매한가지였지만, 추궁보다는 나을 테니까.
“……어찌 그런 요물을 지니고 다니는 것이오?”
“당신의 말마따나, 검을 좋아하기 때문이지요. 뭐 별다른 이유가 있겠습니까?”
“그 귀기, 언젠가 반드시 주인을 해칠 검이오.”
“그건 제가 알아서 할 일이지요.”
“…….”
옳은 말이었다.
그리고 운표는 만족스러운 대답 하나 듣지 못한 채로 청유백에게 다시 검을 내밀어야 했다.
더 이상 무얼 추궁하겠는가?
마검을 지녔으니 마교도라고?
‘얼토당토않은 소리.’
이곳은 곤륜의 근방이고, 당연히 마인에 대한 경계 또한 삼엄하다.
당연히, 마교도를 발견하게 된다면 그는 곧장 쫓기게 되겠으나─
그만큼 발언에 신중해야만 하는 것이다.
청유백에게서는 티끌만큼의 마기도 느껴지지 않았고, 마인 특유의 사악함 또한 엿보이지 않았다.
그저 이유도 없이 저 많은 검을 지니고 다니는, 세상물정 모르는 햇병아리 검수.
그것이 청유백에 대한 운표의 평가였다.
저 백월검이 여전히 탐난다면 또 모르겠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그냥 우연일 뿐이었군. 닮았을 뿐인 검이었어…….’
당연히, 이제는 구태여 위험을 감수하면서 수작을 부릴 이유도 없었다.
오히려 방금까지 온갖 경우의 수를 상정하던 자신이 부끄러워질 뿐이었다.
“미안하오. 주제넘었구려.”
“아시면 됐습니다.”
“……하하.”
구태여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았기에, 운표는 더 이상 대꾸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사제, 운우를 돌아보고는 괜찮다며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빨리 화산으로 귀환해야겠어. 타지를 오래 떠도니 온갖 생각이 다 드는군.’
운표는 그리 생각하며 청유백에게 백월검을 돌려주었다.
아무래도 요 근래 신경이 거슬리던 일이 자주 있던 차라 민감해져 있던 모양이었다.
‘그래, 말도 아니었지. 여길 갔더니 저길 가라, 그래서 저길 갔더니 다시 다른 데를 가라…….’
웃기지도 않는 돌리기였더랬다.
처음에는 서녕으로 갔더니 오로목제로 가라고 하고, 다음에는 약강으로 가라고 하고…….
하나같이 다른 사람의 의견을 물어야 한다며 다른 곳으로 보내기를 반복했더랬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운표가 느낀 것은 끊임없는 짜증뿐이었다.
‘종교 집단은 뭔 놈의 종교 집단?’
가는 곳마다 피 냄새에, 정상적인 신도라고는 하나도 보이지 않았는데 말이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명예롭고 긍지 높은 화산이 그런 광신도 무리와 어울릴 이유가 없었다.
화산의 영역 내에 있는 이들도 아니었거니와, 그들에게 얻을 만한 것이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화산파의 장로들과 장문인은 구태여 그들을 찾아가 뭔지도 모를 질문의 답변을 알아 오라지 않던가…….
‘이름이 뭐였더라.’
무슨, 신교였는데.
천마신교?
아니, 아니다. 그건 마교를 이르는 명칭이 아니던가…….
그래, 분명히…….
‘사, 뭐시기였는데.’
너무나 짜증 났던 탓에 계속 부러 신경을 쓰고 있지 않았고, 자연스레 그 이름도 잊혀졌다.
발걸음을 옮기는 일행들 사이에서 운표는 인상을 찌푸리며 뇌리를 훑었고, 잠시 후에서야 그 이름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래. 사마신교였나.’
분명, 그런 이름이었다.
* * *
관군과 무인들의 여행길은 큰 탈 없이 이어졌다.
처음에는 아이인 시타의 편의를 봐주려는 무인들도 꽤 있었다.
그야, 아무리 험악하게 살아온 자들이라고 해도 얌전한 아이를 싫어하는 이는 그다지 없으니 말이다.
일정이 조금 늦어지더라도 시타를 쉬게 해주려고 했고, 그런 훈훈한 분위기를 싫어하는 이도 없었다.
어차피 대회 본선의 시작까지는 꽤 일정이 남아 있다고 했으니, 조급할 것도 없는 셈이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일행의 발걸음은 별로 지체되지 않았다.
오히려 시타의 걸음에 맞추기보다는 관군들의 걸음에 맞춰야만 했다.
시타는 후산의 품에 안겨 있으면 그만이었고, 본선에 참가하는 무인들만큼의 체력을 지니지 못한 관군들은 필연적으로 지치기 마련이었으니.
뭐, 그래도 비교적 나약하다는 것이지, 일반인들의 보도 속도에 비하면 확연히 빠른 편이긴 했다.
청유백은 이 여행의 속도보다는 다른 것이 걱정이었다.
‘슬슬 백소하 쪽의 상황을 알아야 하는데…….’
아마, 분명 본교의 지원을 받아 무사들을 이끌고 오고는 있을 것이다.
그래도 그나마 머리가 돌아가는 놈이니 믿고 맡긴 것이고, 어떤 것이 최선의 행동인지 분명히 알고 있을 테다.
문제는, 어디까지 왔는가.
‘지금쯤 약강…이려나.’
[아마 그렇지 않겠느냐? 그쪽은 늦게 출발하는 만큼 시급을 다투어야 할 테니.]
‘아마도 그렇겠지.’
하지만, 결국 ‘아마도’다.
결코 정확한 정보가 아닌 것이다.
하지만 지금으로선 정확한 정보를 받아 볼 방법이 없었다.
신강성을 벗어난 이 시점에서, 약강이나 오로목제 크기의 지부는 이제 없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제 마교의 직접적인 영역은 벗어난 지 오래였고, 이곳은 이미 정파의 영역이었으니 말이다.
요청 가능한 무인도, 정보책도 없다는 것이다.
전서구라도 하나 데리고 다니면 모를까, 지금으로서는 무리였다.
‘너무 눈에 띄기도 하고.’
뭐, 아주 거대한 대도시나 들킬 위험이 없는 변방의 촌에는 정보의 경유를 맡는 소조직이 있기는 했으나…….
이 일행으로는, 그런 곳에 들르지 못할 것이다.
결국, 답은 하나밖에 없었다.
‘서녕에 도착해서… 그곳 지부를 찾아야겠군.’
기실, 서녕에 있는 것은 지부라기에는 그 덩치가 몹시 작은 것이었다.
거대한 기루를 운영하지도, 전장이나 상단이 위치하지도 않는다.
청유백이 알기로는, 아마 작은 식당 정도가 하나 있을 뿐일 테다.
하지만 정보의 전달 정도는 분명 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백소하가 이미 출발할 때 예측하고 전서구를 띄웠을 수도 있고.’
청유백이 서녕에 먼저 도착할 것이라 예상하고 자신들이 언제 출발했는지 알린다는, 그런 가능성도 있었다.
헌데 문득, 청유백의 표정을 어찌 받아들였는지 후산이 물어왔다.
“형제여, 왜 그리 표정이 어둡소?”
“……별로?”
표정이 어두웠나?
잘 모르겠다.
청유백이 천화를 돌아보았지만, 그녀 또한 그저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하하, 그리 부정할 것 없소! 무인들이 실종된다는 말에 잔뜩 쫄아 있는 게 분명하군. 하지만 걱정 마시오! 이리도 사람이 많은데, 어떤 정신 나간 놈들이 습격을 감행하겠소?”
“아니, 그러니까 별로 걱정하지 않았는데.”
“쉿. 너무 굳세어 보이려 노력할 필요 없소…….”
후산은 급기야 손가락을 뻗어 청유백의 입을 틀어막았다.
‘죽일까…?’
[참거라….]
청유백은 피가 흐를 정도로 입술을 꽉 깨물며 끓어오르는 살의를 참았다.
그냥 산맥에서 미아가 되게 내버려 두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도 잠시 들었다만, 결국에는 심호흡을 하며 정신을 가다듬었다.
그래, 결국은 내면의 평화다.
내면의 평화…….
표정이 어두울 이유가 뭐 있겠는가?
연락은 서녕에 닿으면 자연히 될 것이고, 습격이 일어날 리도 없다.
생각이란 게 가능한 인간이라면, 관군까지 함께하는 이 무리를 습격할 리가 없으니 말이다.
결국 기우일 뿐일 테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씨발.’
청유백은 알고 있었다.
익숙한 감각, 익숙한 상황이다.
너무나도 평화로운 지금의 상황에서, 저딴 대사를 지껄이게 되면 결코 멀쩡히 넘어가지는 않는다는 것을.
천화는 코웃음 치며 웃었다.
[에이, 기우 아니더냐?]
‘무신과 다투던 시절에는 진짜 자주 있던 일이었거든.’
[그놈의 무신은 대체 뭐 하는 인간인 게냐……?]
‘비슷한 경우로는, 전쟁을 앞두고 애인의 정표를 꺼내 보며 ‘이 전쟁이 끝나면 그녀에게 청혼할 거야’ 따위의 대사를 읊는 것 등이 있었지….’
한 발짝 더 가자면, 뒤진 줄 알았던 무신에게 ‘쓰러뜨렸나!’ 같은 말을 하는 아군 같은 게 있었더랬다.
…아무튼 간에.
“습격입니다!!”
마치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 일행의 앞쪽에서 그런 말이 들려왔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