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1화. 살아 있는 밤의 습격 (1)
[시선이 늘어나는 것은 결코 바라는 일은 아닐 테지? 어찌할 테냐?]
‘…거절할 분위기는 아니지 않나.’
청유백은 옅은 한숨을 속으로 삼켰다.
이곳은 마교의 영역이 아니다.
유사시에 몸을 의탁할 지부도 없을뿐더러, 마교도라는 것이 밝혀지면 곧바로 공적으로 몰리는 적지나 마찬가지였다.
그런 곳에서, 관군의 권유를─반쯤 강요라고는 하지만─ 무시하는 것은 결코 현명한 일은 아니리라.
“언제 출발합니까?”
“시간이 된다면 인원이 모이는 즉시 출발이오. 오늘이 아니라면, 다음 출발은… 정확히는 모르지만, 아마 닷새는 넘어야 할 거요.”
사람이 모여야 하니까.
관군 대장은 그리 말을 끝맺었다.
‘쯧. 선택지가 없군.’
청유백은 마지못해 대답해야만 했다.
“알겠습니다. 곧바로 가지요.”
하루 이틀이면 모르겠지만, 닷새는 너무 길다.
아무리 청명휘의 뒤를 전력으로 쫓지 않는다고는 해도, 닷새나 되는 시간을 태연하게 허비할 만한 여유는 되지 못했다.
“헌데, 그쪽의 소저도 일행이오?”
“그렇소만!”
관군 대장이 후산의 뒤편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 시타를 가리키며 묻자, 후산은 자랑스레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하지만 관군 대장은 영 탐탁지 않은 듯 보였고, 자신의 턱을 쓰다듬으며 얼마간 신음을 흘렸다.
“으음…….”
그리고 자신의 뒤편에 있는 다른 관군들과 무사들을 슬쩍 바라보더니, 어쩔 수 없다는 양 혀를 차며 다시 청유백을 돌아보았다.
“그리 강행군이 되지는 않겠지만, 편의를 지나치게 봐줄 수는 없소. 미리 양해해 주시오.”
“이해합니다.”
사람이 없으니 같이 가달라고 하는 쪽이 편의를 봐줄 수 없다고 하는 게 퍽 우습기 그지없었다만, 청유백은 일단 긍정했다.
구태여 걸고 넘어져서 닷새나 기다리게 되는 것은 바라던 바가 아니었으니 말이다.
‘뭐, 별로 상관없겠지.’
어차피 시타가 힘들어서 걸음을 멈추게 되는 일은 없을 것이었다.
애초에, 덕령합까지 온 시간의 구할 정도는 후산의 품에 안겨서였으니, 서녕까지 가는 길도 그리하면 될 테다.
청유백 일행은 기다리던 무인들과 합류했고, 관군들까지 합쳐 그 숫자는 대략 스물이 되었다.
청유백 일행 다섯과 무인 일곱, 관군 여덟.
문득, 천화가 입을 열었다.
[전부 상당한 실력자들이구나.]
‘…내 눈에 차지는 않는다만.’
[그래도 서녕으로 향한다는 것은 그 예선을 통과했다는 것 아니겠느냐? 만년한철에 흠집을 내는 검기를 쓰는 검수는 많지 않지.]
청유백은 구태여 대꾸하지 않았다.
최소한, 그들 전부 청률보다는 강할 테니 말이다.
관군들은 숫자가 모이자 이제야 출발이냐며 서로 옹기종기 모였고, 벽에 기대거나 바닥에 주저앉아 기다리던 무인들은 그제야 몸을 일으켰다.
상당히 신경질을 내는 이도 있는 것이, 아무래도 그들 각자가 기다린 시간은 상이한 듯 보였다.
아마, 방금 청유백이 들은 대답처럼 닷새쯤 기다린 사람도 있으리라.
마냥 이 자리에 죽치고 앉아 있지는 않았겠지만… 매일매일 이 자리로 나와서, 언제 출발할지 모르는 기약 없는 대기를 반복했을 테다.
‘그럴 바엔 차라리 지금 출발하고 말지.’
청유백은 그리 되뇌었고, 무사들을 한 번씩 돌아보다 어느덧 사내 두 명에게 시선이 가게 되었다.
무언가, 특출난 느낌이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리 강한 기세가 느껴지는 것도 아니었으며, 사이한 기운이 뿜어지는 것도 아니었고, 그들의 외관이 후산과 시타처럼 특이한 것도 아니었다.
다만 청유백의 시선이 꽂힌 것은 다름 아닌 그들의 소매.
‘매화 무늬……?’
그리 이상할 것 없는 장식이었지만, 사내놈… 그것도 무인의 소매에 수놓기에는 역시 낯간지러운 무늬였다.
기생오라비도 아니고, 정상적인 생각이 머리에 박힌 무인이라면 저런 옷을 입고 싶어 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청유백은 저런 옷만을 고집하는 제정신이 박히지 않은 말코도사들의 무리를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도가 문파면 도가 문파답게 산에 틀어박혀 수행이나 할 것이지, 무소유는커녕 극(極)소유를 하고 싶은지 속세를 나돌아다니는 무리들.
‘화산파 놈들이 여기를 왜?’
기이했다.
화산파는 오대 거파 중 하나.
그 빌어먹을 무신 놈이 몸담았던 문파였지만, 놈들의 본거지는 섬서(陝西)였다.
여기서 보도로 걸어도 세 달은 가야 할 거리였고, 이곳은 빈말로라도 차마 화산의 영향이 미치는 곳이라고 할 수가 없는 장소다.
‘하지만 착각했을 리는 없다.’
무신의 소매에 수놓아져 있던 그 무늬를, 청유백이 결코 잊을 수 있을 리가 없었으니 말이다.
청유백은 경계 가득한 시선으로 그들을 흘끔거리며 살폈지만, 정작 그들은 청유백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대신 그들의 시선이 향한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청률이었다.
먼저 보여 온 그들의 반응에 청률은 기꺼워하며 대꾸했다.
“우리가 마주친 적이 있었습니까?”
“아, 그건 아닙니다. 일방적으로 보았지요. 그 만년한철을 베는 검기는 실로 훌륭했습니다.”
“아, 그 자리에 계셨군요. 하지만 과찬이십니다. 그저… 검이 좋았을 뿐입니다.”
흠칫.
칭찬을 여과 없이 받아들인 청률은 눈치채지 못한 듯 보였지만, 청유백은 분명히 보았다.
청률의 ‘검’이라는 말에, 사내의 시선이 일순간 떨린 것을 말이다.
‘……설마?’
청유백은 일순간 긴장했다.
백 년 전의 일이다.
그들이 이곳에 있는 이유가 ‘그것’때문은 당연히 아니겠지만, 그래도 ‘그것’을 알아보았다면 조금 일이 피곤해질지도 모른다.
청유백이 과하게 반응한다고 생각했는지, 천화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왜 그러느냐?]
‘화산파 놈들과는 악연이 깊어서 말이지.’
[흐음… 하지만 조금 과하지 않으냐? 뭘 그리 검병을 꼭 잡고 있는 게야.]
……….
그랬던가.
무의식적인 행동이었다.
청유백은 백월검을 손에서 놓으며, 옅게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대꾸했다.
‘…왜냐면, 이 검의 주인이 화산파 놈이었거든.’
[하긴… 처음에는 경이로울 정도의 선기로 가득 차 있었지. 그만한 선기를 채울 수 있는 문파는 몇 없을 테야…….]
그리고 그 몇 없는 문파 중 하나가 바로 화산파다.
매화를 상징으로 삼는, 강호의 대문파.
그리고 무신이라는 영걸을 배출하고, 지금은 천하에서 가장 강한 다섯 문파 중 하나가 된 세력이다.
그리고, 그 무신의 검이 바로 백월검이니─
다른 누구도 아닌 화산파 놈들이라면, ‘백월검을 알아본다’라는 가능성도 충분히 있었다.
백년이나 지난 데다 화산의 근처도 아니니 경시하고 있었다만, 분명히 가능성 있는 일이었다.
화산파 사내는 청률에게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아닙니다. 아직 어려 보이시는데, 그 경지라니요. 분명 피땀 어린 노력이 배어 있겠지요.”
“하하, 별것 아닙니다.”
“저는 운표라 합니다. 부족한 몸이지만, 일정에 함께하게 될 것 같으니 미리 인사드리겠습니다.”
“아, 청률이라 합니다. 운표 소협이라 부르면 되겠습니까?”
“부디 편하신 대로 하시지요.”
운표는 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청유백이 저 자리에 있었다면, 저리 웃는 순간부터 경계를 시작했을 것이다.
자기소개와 호의의 표현은 결코 이유 없이 따라오지 않는다.
분명히 바라는 것이 있거나, 필요한 것이 있을 때에나 하는 행위다.
단순한 인사?
그 또한, 앞으로의 관계를 호의적으로 쌓아나가기 위한 단계에 불과한 것이다.
그리고 과연, 청유백의 예상은 적중하여 운표는 곧바로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한데… 멀리서 본 것뿐이지만 실로 명검이더군요.”
“아아! 분명 그러했지요.”
“그런데 지금 갖고 계신 그것은 아닌 듯 보이는데…….”
“아, 제 동생의 검을 빌린 것이라서 말입니다.”
청률은 그리 말하며 무의식적으로 청유백을 돌아보았고, 이어서 운표의 시선 또한 그 방향을 향했다.
“그러십니까…?”
“…….”
청유백과 운표의 시선이 허공에서 교차했다.
아직 약관도 되지 않은 청년과, 대략 이십 대 후반은 되어 보이는 무인.
한 배분은 아래일 정도로 차이가 나는 나이라면 분명 예의를 차려도 이상하지 않겠지만, 청유백은 굳이 그럴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지금 숙이고 들어가면 저쪽의 요구가 당당해질 여지도 있으니 말이다.
“용건이라도 있으십니까?”
“소협은 검을 상당히 많이 가지고 다니시는구려. 두 자루도 아니고 세 자루라니… 검을 좋아하나 보군?”
전부 사용하는 것이라는 경우는 생각지 않는지, 운표는 그리 운을 떼었다.
어찌 보면 운표의 반응이 당연한 것이기는 했다.
이기어검이라는 기예가 결코 흔한 것은 아니니 말이다.
청유백은 정정해줄 생각이 없었고, 그저 대충 대꾸했다.
“그런 셈이지요.”
“아까 전 보았던 검기가 너무 찬연하여 그런데… 혹여, 부족한 선배에게 구경 한번 시켜줄 수 있겠는가?”
“…그러시지요.”
청유백은 잠깐 뜸을 들이다가 결국 백월검을 끌러 운표에게 내밀었다.
어차피 앞으로 적어도 이레는 얼굴을 봐야 할 테다.
초장부터 이리 명료하게 의견을 내비치는 인간이라면, 지금 거부한다 하더라도 무슨 수를 써서든 백월검을 끄집어내고 말 것이다.
차라리 그럴 바에는, 처음부터 한 번은 보여 주는 것이 좋을지도 모른다.
운표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소협의 호의에 감사하네.”
“별것 아닌 검입니다. 성에 차실지 모르겠군요.”
“허허, 별것 아니라니. 그럴 리가…….”
그럴 리가 없지.
운표는 속으로 그렇게 되뇌었다.
* * *
운표 자신이 백월검을 직접 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기록으로, 그림으로, 그리고 화산파에 남은 모조 모형으로는 수십 번 수백 번을 보았다.
그리고, 머릿속으로 수천 번을 생각했었다.
‘진짜 백월검이 있다면… 분명 이런 형태일 것이야.’
그것을 쥐어 보는 미래를 생각하고, 직접 휘둘러 화산의 검기를 내뿜는 장면을 그려 보았다.
그리고, 나아가 지금.
운표는 확신하고 있었다.
이 무게.
이 감각.
이것은, 분명히 잃어버린 화산의 신물이라고 말이다.
‘틀릴 리가 없다. 이건 진짜야.’
어떻게 이것이 저 세상 물정 모르는 소년의 손에 있는지는 영문을 모를 일이었지만, 상관없다.
여차하면 힘으로라도 뺏어 버리면 그만이다.
화산의 신물을 되찾는 일이니, 어느 정도의 불명예는 충분히 감수할 가치가 있었다.
설령 이것이 진짜 백월검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뭐 어떤가?
‘우기면 그만이지.’
고작해야 변방의 꼬맹이.
그리고 명문 정파의 후계인 자신.
세간이 누구의 손을 들어 줄지는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그리고, 뭐…….
‘불명예도 그걸 전할 사람이 있어야 생기는 거고.’
운표는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억지로 참으며 주변을 돌아보았다.
자신과 자신의 사제를 제외하고, 열여덟.
관군들은 사실상 의미 없는 전력이니, 유의미한 상대는 열 남짓이다.
여자도 있고, 그것을 보호해야만 하는 놈도 보이니, 사실상 여덟이 채 되지 않는다…….
‘여차하면 충분히 죽일 수 있다.’
운표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그저, 이 검을 뽑아 들고 자신이 뿜게 될 화산의 검기가 눈앞에 아른거릴 뿐이었다.
─스릉.
운표는 검병을 쥐고, 검집을 밀어 그 검신을 세상에 드러냈다.
그 사이에서 순백색의 찬연한 광채가 태양빛을 반사했고, 곧 운표는 자신의 생각이 옳음을 확신하게 되었다.
진짜다.
진짜 백월검이 아닌 다른 무언가가, 이런 찬연한 달빛을 만들어 낼 수 있을 리가 없다…….
……라고, 생각한 그 순간.
“……?!”
─쿠드득!
검병을 쥔 운표의 손아귀가 비틀어졌다.
아니, 비틀어 진 것만 같은 환상이 보였다.
동시에 끔찍한 사기(邪氣)가 검집의 틈을 타고 삐져나왔고, 그것이 운표의 팔을 타고 올라갔다.
지금의 백월검은 그야말로 마검.
그리고 그 마검은, 아무래도 자신을 쥔 저 사내를 썩 좋아하지 않는 듯 보였다.
“허억…!”
─콰앙!
운표는 경악하며 검집과 검병에서 불빛이 일 정도로 거칠게 검을 다시 닫았다.
순간 묵태곤의 눈살이 찌푸려졌지만, 사색이 된 운표의 안색을 보고는 곧 혀만 찰 뿐이었다.
청유백이 웃으며 물었다.
“만족하셨습니까?”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