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꼬우면 네가 천마 하든가-169화 (169/200)

제169화. 들키지 않으면 범죄가 아니다 (4)

잘못 들었나?

청률은 그런 표정으로 청유백을 올려다보았다.

고기를 한가득 입에 문 채로 고개를 돌린 그 표정에서는 안쓰러움까지 묻어나올 지경이었지만, 안타깝게도 청률의 청각은 정상이었다.

“그래, 너.”

“무, 무슨 소리냐 아우야? 갈 길이 멀지 않으냐. 허비할 시간은 없다.”

“허비라니. 미래에 대한 투자야.”

뭐… 상황에 따라서는 정말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허비가 될지도 모르지만, 언제나 세상일은 모르는 법이다.

그리고, 모르기 때문에 만약을 대비해 놓으려는 것이고 말이다.

“고작해야 예선, 시간도 얼마 안 걸리겠지.”

“네 뜻이 정히 그렇다면야 왈가왈부하고 싶지는 않다만… 네가 직접 하면 되지 않느냐?”

새끼, 말 많네…….

청유백은 혀를 차며 깊게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맑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형님을 믿으니까 그렇지요. 여러 명이 나갈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어? 어! 콜록, 그, 그건 그렇지.”

청률은 갑작스러운 청유백의 태도 변화에 당황했는지, 먹던 고기에 사레가 들려 콜록거렸다.

“그럼 잘 부탁한다.”

“어? 아, 그…… 그래.”

청률은 무어라 말을 하려다가도 결국 한숨을 내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다루기 쉬운 인간이었다.

명예로 움직이는 부류는, 칭찬만 좀 해줘도 말문이 턱 막히는 법이었다.

자신에게 걸리는 기대를 배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청률은 마지못해 대답해야만 했다.

“그래, 이 형님만 믿어라. 기껏해야 세간의 시험. 이 청가의 차남이 고작 예선에서 막힐 리가 없지 않으냐!”

“당연히 그렇겠지?”

“그렇고말고!”

청률은 조금의 주저도 없이 호언장담했다.

어차피 이 객잔에 모인 무인들 수준으로 치르는 예선이라면, 뭐가 나오든 간에 그리 어렵지도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후산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좋군! 그러면 우리 모두 다 함께 가보지! 내 목표는 어차피 그것이었다네, 형제들이여!”

그러나, 천하의 누가 그러지 않았던가.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이 있다고.

처맞기 전까지는…….

* * *

예선이 치러지는 장소를 찾는 일은 아주 간단했다.

어쩜 하나같이, 시험장에 들어갔다 나온 무인들은 똑같이 똥 씹는 표정을 짓고 있었으니 말이다.

“망할! 말이나 돼?! 이딴 걸 어떻게 하라고!”

청유백 일행이 한 일은, 단순히 그 똥 씹은 표정의 사람들이 온 길을 돌아가 가장 많은 사람이 모인 인파를 찾는 것뿐이었다.

그곳은 마을 외곽의 광장이었고, 거진 수십은 되어 보이는 무인들이 둘러 모여 무언가를 지켜보고 있었다.

“호! 이번에는 정말 될지도 모르겠는데!”

“무슨! 저 정도로는 어림도 없소!”

수십 명 무인들의 말소리가 뒤섞여서 들려왔고, 누군가는 환호를, 누군가는 야유를 퍼부어대고 있었다.

그리고 한 차례의 환호가 지나간 다음에는, 꼭 그 무리의 한가운데를 제치고 사내 한 명이 걸어 나왔다.

하나의 예외도 없이, 전부 똥 씹은 표정이었다.

“…아무래도 뭔가 심상치 않은데.”

“그러게 말이오. 나오는 사람들 표정이 하나같이 좋지 않구려?”

“이 협소한 공간에서 비무를 벌일 리는 없을 테고….”

예선의 종목이 비무라기에는, 저 사내들이 둘러 모인 공간은 너무나도 좁았다.

게다가 비무를 치를 것이라면 그냥 서녕에서 전부 해결하면 될 일이지, 굳이 예선을 볼 필요는 없으리라.

묵태곤은 ‘궁금하면 물어보면 되지’라고 한 마디 툭 내뱉고는, 방금 예선을 마치고 나온 듯 보이는 무사 한 명을─당연히 똥 씹은 표정이었다─를 불러 세웠다.

“이보시오, 말 좀 물읍시다.”

“뭐요.”

“대충 보니 저기가 예선 시험장인 것 같기는 한데, 뭘 하길래 저리 사람이 모여 있소?”

“아아, 당신네들도 저 망할 시험을 치러 온 무인인가 보지? 내 친절한 조언 하나 드리건대, 그냥 집에 돌아가서 발 씻고 잠이나 자시오.”

“뭐? 이 개새끼가…….”

묵태곤은 금세 욱해 험악하게 인상을 일그러뜨렸지만, 무사는 진정하라는 듯 두 손을 들어 보였다.

“아니, 화내지 말고 들으시오. 진심이 담긴 충고니까. 웃기지도 않는 시험을 앞두고 있는데, 어찌 반가이 보내줄 수 있겠소?”

“……대체 뭐길래?”

“가서 보면 알 거요. 뭔 철 덩어리를 가져다 놨는데, 거기 생채기 하나라도 내면 성공이라더군. 하, 생채기는 무슨! 그게 되면 이딴 대회를 나오겠소? 어디 지방에서 떵떵거리면서 살지…….”

무사는 그리 말을 끝마치고는 성을 내며 떠나가 버렸다.

묵태곤은 코웃음 치며 어깨를 으쓱였다.

“생채기 하나만 내도 성공이라고? 뭘 가져와도 만만할 것 같은데?”

“바위를 베라고 해도 분명 벨 수 있을 텐데, 생채기라니, 뭘 가져다 놨길래…….”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청률은 직감적으로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나도 해 볼까’ 따위의 말을 읊고 있는 묵태곤을 무시하고, 인파 속을 가르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들은 시험을 응시하는 것은 아니고 그저 구경꾼들일 뿐이었는지, 순순히 길을 내어 주었다.

그리고 그 끝에서 청유백 일행이 본 것은, 몹시 단순해 보이는 철 덩어리였다.

“저건 뭐요?”

“뭐야, 고작 철 주괴인가? 금방금방 하겠구만. 유백아, 이거 생각보다 쉬울지도 모르겠구나.”

청률은 그리 말했고, 청유백은 어깨를 으쓱였다.

말마따나, 겉으로 보기에는 그냥 단순한 철 덩어리였다.

네모나고, 여섯 개의 면을 지닌 철 덩어리.

다만 특이한 점이 있다면, 그것이 단지 철을 녹여 만든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는 점이었다.

겉면에는 이곳저곳 비어 있는 공간이 있었고, 울퉁불퉁하여 고르지 않은 곳도 있었다.

굳이 이르자면, 그것은 마치 철을 접거나 연마하여 억지로 네모난 형태를 띠게 만든 듯 보였다.

물론, 그래 봤자 철인 것 같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 많은 사람이 다 실패한다고? 이 많은 사람 중에 검기를 쓸 줄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을 리는…….’

……없는데.

청유백의 생각이 거기까지 닿았을 무렵, 뒤이어 쫓아온 묵태곤이 헛숨을 들이쉬었다.

“아니, 잠깐만. 저 광택은…….”

한순간 시뻘게진 그의 얼굴은 확연히 분노한 듯 보였고, 급기야 뒷목을 부여잡으며 비틀거렸다.

청률은 당황한 채로 그를 부축하며 물었다.

“왜, 왜? 뭐가 문제야?”

“왜냐고? 왜? 왜냐고오오?”

묵태곤은 그딴 단순한 것도 모르냐며 눈을 희번덕였다.

그리고, 청유백은 그 순간 직감했다.

너무 멍청하고, 지나치게 조악하여 자신은 곧바로 알아보지 못했지만.

일류 검장인 묵태곤은 저 철의 정체를 곧바로 알아낸 듯 보였다.

“세에에에에상에 어떤 쌍또라이 새끼가 철 아까운 줄 모르고 저딴 데에 쳐 낭비해!!”

그래, 어지간한 검기조차도 생채기 하나 낼 수 없는 철이 한 가지 있지 않던가.

묵태곤의 비명이 교차했다.

“만년한철을 저따위 모양새로 낭비해! 아이고, 아이고! 씨발 철이 운다! 안 들리냐! 비명을 지른다!!”

“지, 진정해라. 그래 봤자 주괴 아냐? 녹여서 쓰면 되지.”

“녹여? 저걸? 돌았냐?”

묵태곤의 말이 옳았다.

이미 저 모양이 된 만년한철은 다시 사용하기 몹시 어려웠다.

만년(萬聯).

만 번 내리쳐 제련한다는 뜻이다.

한철에 다른 몇 가지의 광물을 섞어내고, 그것을 두들겨 펴서 하나의 광물로 만들어 내는 것이 만년한철이었다.

당연히 그 과정에서 광물의 비율은 만든 제작자만이 알고, 그것을 돌이킬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저것을 녹여 다시 사용한다고 해도, 결국 불순물 덩어리인 철이 될 뿐이다.

그러니까 저것은, 엄밀히 말하면 만년한철 주괴가 아니라 검이 되지 못한 실패작이라는 것이다.

묵태곤은 그것이 퍽 중요한 듯 보였지만, 청유백은 인상을 찌푸리며 대꾸했다.

“언성 좀 높이지 마라. 어차피 우리 물건도 아닌데, 왜 그리 열을 내나.”

“안타까워서 그런다. 안타까워서!”

묵태곤은 자신의 가슴을 퍽퍽 치며 탄통하고 원통하다며 뒷목을 잡았다.

청유백으로서는 알 바 아닌 일이었기에, 대충 그래그래, 하고 대꾸하며 청률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할 수 있겠어?”

“좀… 빡셀 것 같구나. 동생아.”

“할 수 있다는 소리네?”

“하느냐 못 하느냐로 묻는다면, 그야 할 수는 있겠지. 선천진기를 끌어올려서 최대로 강력한 검기를 뽑아내고, 그걸로 내려치면 좀 움푹 파이게 만들 수는 있을 것 같기는 한데…….”

“결국 할 수 있다는 소리잖아?”

“……나가 죽으라고?”

“아니, 농담이다. 의미 없는 짓이지.”

솔직히 말하면 그냥 해보라고 하고 싶기는 한데.

진짜 의미가 없는 짓임을 청유백도 잘 알고 있었다.

선천진기까지 뽑아서 전력으로 내려치면 저 정도야 누가 못 베겠는가?

그만큼 선천진기의 효력은 강력한 것이었다.

뭐, 내리치고 바로 끽 하고 뒤지거나 뒤진 것만도 못한 신세가 될 것이라는 게 작은 부작용이지만 말이다.

“음. 어쩔 수 없지.”

청률은 고개를 끄덕이며 청유백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러니까 포기하자! 저건 못 하겠구나. 답이 없다, 동생아!”

“웃기지 마. 왜 이렇게 근성이 없어?”

어렵긴 하겠는데, 청유백은 못 하겠다는 말은 들어줄 수 없었다.

세상만사, 뭐든 헤쳐 나갈 방법은 있는 법이다.

“무슨 생각이라도 있느냐?”

“있지.”

“부정행위는 아니겠지?”

“그건 모르겠고.”

가령 부정행위를 한다고 쳐도, 일단 헤쳐 나갈 수만 있다면 괜찮다.

왜냐고 묻는다면, 그야 들키지만 않으면 부정행위고 나발이고 없지 않은가!

“자.”

“이건…?”

청유백은 허리춤에서 검 하나를 끌러내어 청률에게 내밀었다.

태양빛을 반사하며 반짝이는 순백색 검신의 백월검을, 청률은 무의식적으로 받아 들었다.

“이건 왜?”

“이거 들고, 나가서 휘둘러 봐. 아니다. 휘두를 필요도 없어. 그냥 꽉 잡고만 있어. 알겠지?”

“잡고만? 그게 무슨…….”

“괜찮아. 가보면 무슨 뜻인지 알 거야. 이게 또 명검이거든.”

청률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일단 주었으니 받았다.

그리고 곧 자신의 차례가 와 앞으로 나서기는 했으나, 검을 뽑아드는 그 순간까지도 회의감이 일었다.

‘아니, 아무리 명검이라도 못 하는 건 못 하는 건데…….’

아무리 검이 좋다고 만년한철을 베어내는 것은 검수의 실력이다.

절정의 고수는 나뭇가지만으로도 돌을 가른다고 하지 않던가.

결국에는 칼의 질보다는 검기의 정밀함과 위력의 문제였고, 백소하는 아직 그런 것을 내뿜을 실력이 되지 못했다.

그리고, 그렇다는 것을 자신 스스로도 잘 인지하고 있었다.

“자, 다음. 빨리빨리 하고 가쇼. 뒤에 기다리는 사람 많응께.”

“…알겠네.”

청률은 자신을 재촉하는 심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결국 검을 뽑아 들었다.

어차피 이왕 신청한 것, 한 번쯤 휘두르는 모습이라도 멋지게 보여야 하지 않겠는가.

청률은 검을 천천히 뽑아 들었다.

그러나 검을 잡는 그 순간부터, 뭔가 오묘한 기분에 휩싸이기 시작하는 것을 느꼈다.

‘……어라?’

마치, 자신의 몸에 신이라도 들린 것 같은 기분이었다.

자신이 움직여야 할 검로(劍路)를, 힘의 세기를, 각도를.

마치 이 검이 스스로 안내하듯이 움직이는 것 같았다.

그리고 자신의 몸도 그것에 맞춰서 자연스럽게 움직이고 있었다.

‘오, 오오옷……!’

깨달음을 얻기라도 한 것일까.

고작 이 검을 하나 쥐었다고!

청률은 감격에 벅차며 검을 두 손으로 꼬나쥐었다.

근육의 감각이 기묘했다.

정말로, 자신이 움직여야 할 경로를 미리 알려주는 것만 같았다.

이것이 제육감이라는 것일까!

‘나는 어느새 신검일체(身劍一體)의 경지에 올라 있었던 것인가! 그런가, 내게 부족한 것은 좋은 검이었던가……!!’

청률은 그렇게, 검을 휘둘렀다.

* * *

한편.

청유백과 천화는 인파 사이에서 남모르게 그를 향해 손을 뻗고 있었다.

‘자, 그래, 팔 조금만 더 틀어 주고…….’

[알겠느니라. 이쪽으로?]

‘그래. 그대로 조금만 유지하자. 난 이쪽을 움직여야 해서…….’

…안타깝게도, 자신의 성취에 심취한 청률은 마지막까지 자신의 몸을 둘러싸고 있는 옅은 녹색의 기운이 있음을 알아채지 못했다.

[그런데 이건 사기 아니냐? 부정은 안 저지른다지 않았느냐.]

‘대답은 안 했어.’

[아니, 하지만…….]

‘저놈도 행복할 거 아냐. 잠깐은 고수가 된 기분일걸?’

[……그게 바로 사기지 않으냐?]

‘나도 좋고 쟤도 행복한데 왜?’

[그런가…?]

‘다 그런 거야.’

그렇고말고.

(다음 편에서 계속)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