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꼬우면 네가 천마 하든가-168화 (168/200)

제168화. 들키지 않으면 범죄가 아니다 (3)

‘……잘못 봤나?’

청유백은 드물게도 당황하여 눈을 껌뻑였다.

시타는 청유백을 돌아보며 물었다.

“아는 이라도 계신 건가요?”

“잘못 봤나 싶었는데…….”

하지만, 아니다.

안타깝다고 해야 할지, 청유백의 눈은 정상이었다.

사람을 착각하고 말고의 여지조차 없이, 그것은 분명 청가의 차남인 청률이었다.

하지만 분명, 이 주변에서 마공을 익힌 자의 기척은 느끼지 못했는데…….

‘……아.’

청유백은 청률과 고꾸라진 사내를 몇 번 번갈아 바라보고는, 잊고 있던 사실을 깨달았다.

놈은 마공을 익히지 않았더랬다.

태청심법인가 뭔가 하는, 곤륜의 무학을 따온 안전지향적인 무공을 익힌 놈이었다.

그것 때문에 짜증이 치밀었었는데, 이제 와서 보니 꽤 도움이 될 듯 보였다.

‘과연… 녀석이라면 마공을 익히지 않았으니, 서녕에서 대놓고 움직여도 괜찮겠군.’

이건 생각지 못한 변수였다.

문제는, 저놈이 어떻게 이곳에 있느냐는 건데.

그건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는 궁금증이었다.

청유백은 곧장 그의 귓가로 전음을 때려 넣었다.

{청률.}

자신을 부르는 전음에, 청률은 곧장 고개를 들어 주변을 돌아보았다.

적잖이 당황한 듯 보이기도 했고, 반가운 듯한 눈치이기도 했다.

{이, 이 목소리는… 유백이냐?}

{그래. 네가 어떻게 여기 있는 거냐?}

{그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이구나! 오로목제에서 여기까지는 상당히 거리가 있을 텐데… 얼마나 무리해서 달려온 게냐?}

{무리라 할 만한 것은 없었다.}

{무슨 소릴. 말을 타고도 보름은 걸릴 거리였을 텐데?}

{달리는 게 더 빨라. 나는 오히려 네 행동이 빠른 게 더 의외였다.}

청률이 이곳에 있을 만한 이유는 한 가지밖에 없었다.

‘저쪽에도 곧장 청명휘 조의 상태가 전해졌다는 거겠지.’

청유백 조가 있던 곳은 오로목제고, 적철진 조가 있던 곳은 합밀이다.

거리로 따지면 합밀이 오로목제보다 훨씬 이 도시에 가까우니, 청률이 여유롭게 이곳에 도착한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렇게 빠를 수가 있나?

‘적철진이 청명휘의 일로 감정적이게 될 것 같지는 않은데.’

청유백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자신을 찾으려 애쓰는 청률을 무시하곤, 주변을 다시금 탐지했다.

청률은 적철진 조의 일원.

만일 적철진이 근처에 있다면, 분명히 그 존재감이 명확히 느껴질 것이었다.

하지만 역시 주변에서 그리 명확한 반응은 돌아오지 않았다.

하기사, 자기 동생의 목도 주저 없이 쳐버린 놈이다.

남의 안위 따위로 감정적인 판단을 내릴 리는 없을 테다.

{그러면, 온 것은 너뿐인가?}

{아니, 쟤도 같이 왔단다.}

{……쟤?}

청유백은 일순간 이해하지 못했다.

곧 청률은 손가락을 뻗어 거리 한구석을 가리켰고, 과연 인파 너머에서 사람들이 모인 채 무언가를 구경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하도 사람이 많아서, 지금껏 발견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 다른 남자 위에 올라탄 채 마구 주먹을 휘두르는 익숙한 얼굴이 하나 있었다.

“야! 이 씨발 새끼야! 너도 내가 만만하냐! 이 새끼고 저 새끼고 싹 다 지만 잘났지? 오냐 그래, 너는 오늘 뒤졌다!”

“자, 잠깐, 켁, 자…….”

“칼쟁이가 뭐? 느그 칼은 조상님이 내려주는 모양이지? 뒤져 새끼야! 뒤져!”

묵태곤이었다.

묵가의 차남, 이전에 홍련검을 단련해 주었던 인연이 있었다만…….

‘솔직히 지금은 좀.’

어쩜, 쓸모 있는 인간이라고는 단 한 명도 없는 조합이다.

저 욕쟁이가 지금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지나가는 사람이랑 싸움 안 붙으면 칭찬해줘야 할 수준인데.

‘…없는 것보다는 낫나?’

묵태곤은 무인이라기에는 미묘한 실력이었으니─물론 그래도 백소하보다는 백배 낫겠다만─마기로는 탐지하기 어렵기는 했다.

근데 그러면 뭐 하는가.

청유백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 역시 없는 게 차라리 더 낫군.’

결국 약하다는 소리고, 저 욕쟁이 대장장이는 지금 상황에서는 영 쓸모가 없었다.

청유백은 갑자기 지끈거려오는 미간을 짓누르며 물었다.

그래도 아직 희망은 있다.

적철진이 있다면, 뒤를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는 전력이 있다면 쓸 수 있는 전술은 몇 배로 늘어난다.

청유백이 물었다.

{그럼 적철진은?}

{우리 둘뿐이야.}

{…왜?}

{어쩔 수 없었다. 녀석은 본교의 연락을 기다리는 쪽을 택했거든.}

그럼…….

너는 왜 오셨어요?

{…….}

청유백은 목구멍 끝까지 차오른 질문을 애써 삼켰다.

정말, 하등,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기는 하지만, 그리 말해도 바뀌는 것은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차마 청률의 행동이 이성적이라고는 말할 수가 없었다.

이유? 당연하지 않은가.

‘저놈이 육련을 만나면… 그대로 순살인데.’

그냥 끽이다.

만나는 순간 끽.

이미 처리한 녹련이든 백련이든, 청률로는 이길 수 없다.

청률의 실력이 적영과 비슷한 수준이라고는 하지만, 청률에게는 적영과 달리 독기와 무자비함이 없다.

‘명예, 정의, 그놈의 긍지.’

그러니까 즉, 불에 달려드는 불나방 같은 선택이란 말이다.

다른 적절한 표현을 생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그것이 정확한 표현이었다.

{적철진이 가도 된다던?}

{단독 행동이라도 좋으니 가야겠다고 말하니까 가라고 하더군. 알아서 하라던데?}

{…….}

그걸 가겠다고 보내주는 놈이나, 가란다고 진짜로 가는 놈이나….

‘…아니, 상관없나.’

청유백은 잠깐 놈들을 어찌할까 생각하다가, 결국 결론을 내렸다.

애당초 놈들의 지원은 상정 외의 것이었으니 말이다.

혼자서 어떻게든 해결하는 것은 무리겠지만, 서녕에 도착하고 며칠 후에는 백소하가 본교의 지원군을 이끌고 올 것이다.

그러니까, 답은 단순하다.

‘처음부터 없던 셈 치면 그만이지.’

응. 아무리 생각해도 그게 낫다.

청유백은 그냥 무시하고 지나가기로 했다.

저러다 뒤지면 뭐, 그게 다 자기 운명인 거겠지 싶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쉴 새 없이 주변을 둘러보던 청률은 청유백을 발견해내고 말았다.

청률은 인파를 헤치고 청유백에게 나아가, 그의 어깨에 손을 뻗었다.

“찾았다!”

하지만.

그 손은 어깨에 닿기 직전에 멈춰 섰다.

보다 정확히는, 후산의 손이 그 손목을 도중에 붙잡아 두고 있었다.

“누구시오?”

“소협, 아시는, 분이신가요?”

순간 청유백과 청률의 눈이 마주쳤다.

처음 보는 이국의 사람에 당황한 청률의 시선과, 귀찮기 그지없다는 청유백의 찌푸림.

잠깐의 교차 끝에, 청유백은 칼같이 대꾸했다.

“모르는 사람이다.”

“아, 아우야! 이러기냐?!”

“죄송하지만 사람을 착각하신 게 아니신지?”

“너, 너…! 너 형한테…….”

“아 모른다구요. 가세요, 좀.”

청유백은 눈살을 찌푸리며 손을 내저었고, 청률은 급기야 그대로 꿇어앉아 청유백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졌다…….

사람 패는 것을 만족한 묵태곤이 청률을 발견하고 돌아오기 전까지 말이다.

* * *

“하하하! 우리 형제의 형제라면 나와도 형제요! 가까이 지냅시다!”

후산은 객잔의 탁자를 내려치며 청률을 얼싸안았다.

아직 음식이 나오지 않아 뭔가 엎어지거나 하지는 않았다만, 청유백의 기분은 이미 엎어져 있었다.

“나는 너랑 형제가 된 적이 없다.”

“무슨 소리! 이 정도 인연이면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형제요!”

“중원에 왔으며 중원 문화를 따라야 하지 않나?”

청유백은 언젠가 서양의 속담을 들은 기억이 있었다.

옛날에 있던 나라라던데, 로마라고 했던가?

로마에 가면 로마 법을 따라라.

서역에 그런 속담이 있었더랬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의외의 것이었다.

“어허, 타국의 문화를 존중하는 것도 군자가 해야 하는 일이라오.”

“…….”

저놈 입장에서 여기는 타국이 아닌 걸까.

청유백은 지끈거리는 미간을 주물렀다.

더 말해봤자 뭐 하겠는가.

말이 통하질 않으니 이길 도리가 없다.

문득, 그런 청유백을 향해 청률이 입을 열었다.

“그런데 유백아, 너 말이 좀 짧아진 것 같은데….”

“기분 탓이다.”

“그렇…구나.”

“그래.”

대놓고 말 걸지 말라며 살기를 뿜어대고 있었지만, 청률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으며 말을 이었다.

생각만 없는 줄 알았는데, 염치도 없는 모양이었다.

“좋아, 유백이 너는 앞으로 일정이 어찌 되냐? 바로 서녕으로 향할 거지?”

“아마 그럴 것 같기는 한데…….”

왜, 따라오게?

…라고, 청유백이 한 번 비아냥거리려는 찰나.

─콰앙!

갑작스레 울려온 굉음에 모두의 이목이 그 방향으로 돌아갔다.

소리의 근원에 있는 것은 문을 부수고 들어온 험상궂은 인상의 사내였다.

사내는 들어오자마자 점소이 하나를 붙잡고 고함을 질러댔다.

“이런 씨발! 이게 말이나 돼?!”

“그 손님, 진정하시고…….”

“진정이고 나발이고! 내 돈이나 내놔! 저딴 걸 가져다 놓고 도전비를 쳐 받고 있어? 웃기지 말라고!”

사내는 점소이를 내팽개치고 객잔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몇 번이고 점주를 데려오라며 호통쳤고, 듣다 못한 다른 무인들이 닥치라며 주의를 ─물리적이었다─ 준 후에야 분통을 터뜨리며 객잔을 떠났다.

“저건 또 무슨 소란이야?”

“요즘 자주 있는 일입니다.”

청유백의 의문에 대답한 것은 음식을 내어 온 다른 점소이였다.

청유백은 그에게 동전 몇 문을 튕겨 주었다.

“아이고, 뭐 이런 걸 다……. 헤헤, 이게 다 곤륜지횐지 뭔지 하는 대회 때문입니다요. 그, 손님분들도 그것 때문에 오신 것 아니십니까요?”

“요점만.”

청유백은 다시 동전을 더 튕겨 주었고, 받아 챙긴 점소이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제 입을 두드렸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예선 심사를 본다는데, 접수를 우리 객잔에서 합니다요. 그런데 그게 너무 어려운지, 종종 저리 항의하러 오는 놈팽이들이 있곤 합니다요. 뭐, 대부분은 어중이떠중이라 다른 손님들께 저리 혼쭐이 나고 쫓겨나긴 합디다.”

“……흐음.”

예선.

예선이라.

흥미로운 상황이다.

딱히 그 대회에 흥미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예선을 치를 정도라는 것은 그 규모가 생각 이상으로 거대하다는 의미니까 말이다.

이 정도 규모라면, 이미 곤륜이 처리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

아니, 넘어선 지 오래였다.

‘이 정도라면, 백 년 전 전성기의 곤륜이라고 하더라도 감당할 수 있을지 없을지 확신할 수 없는 수준인데.’

천화가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왜, 관심 있느냐? 강함을 보여주고 싶으냐? 너도 결국 사내놈일 뿐이라는 게지?]

‘아니, 이미 수백 번 했어. 그런 건 관심 없다.’

[그럼 무슨 고민을 하는 게냐? 네가 원하는 대로 하면 되지 않느냐.]

‘그러면 곤란해질 것 같으니까 그렇지.’

생각보다 이 대회가 중요할 것 같다는 직감이 들었다.

하지만 예선이 존재한다면, 서녕에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늦었을 터.

“…….”

“하하! 형제여, 고민하지 마시오. 내가 함께하지 않소! 형제 또한 쉬이 합격할 것이 분명하다오!”

청유백의 생각하는 표정을 어떻게 해석했는지, 후산은 고민에 끼어들며 그리 말했다.

하지만 청유백은 쉽게 대답할 수 없었다.

‘그리 간단한 게 아냐.’

일단, 청유백은 근본적으로 마인이다.

마기를 갈무리해 들키지 않는 것도 싸우지 않을 때만이지, 본격적으로 싸우기 시작하면 분명 마기의 존재를 들키고 만다.

뭐, 예선 정도라면 다른 방법을 몇 가지 찾아볼 수도 있겠지만, 결국 다른 이들에게 얼굴을 팔리게 되지 않던가.

사마신교에게 자신의 존재를 들키는 것만큼은 사양하고 싶었다.

예선에는 참가해야 하고, 마인인 것을 들키지 않아야 하며, 직접 나설 수도 없다.

‘……그렇다면.’

방법은 한 가지뿐.

그리고 결국, 고개를 끄덕이며 결론을 내렸다.

“아니, 난 안 해.”

“호오, 그러면?”

“얘가 할 거다.”

청유백은 청률을 가리켰고, 오향장육을 맛있게 입안에 쑤셔 넣던 청률은 그대로 젓가락을 멈추며 고개를 들었다.

“……나?”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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