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꼬우면 네가 천마 하든가-166화 (166/200)

제166화. 들키지 않으면 범죄가 아니다 (1)

이 이상 이곳에 볼일은 없었고, 현장의 증거가 없는 이상 이대로 무사들을 철수시켜도 무방할 것이었다.

청유백은 철수 명령을 내렸고, 청유백을 안내했던 사내는 그에게로 다가와 넌지시 물었다.

“허, 헌데 파견관님… 괜찮은 겁니까? 저 여인은 본교의 인물이 아닌 듯 보입니다만…….”

“글쎄…….”

타당한 의문이었다.

저 여자는 어찌 보아도 서역의 사람이었고, 마교와는 연관이 없어 보였다.

마교의 폐쇄성을 생각하면, 시타를 자신들의 거동을 알게 된 목격자랍시고 대뜸 죽여버려도 이상하지 않을 테다.

말마따나 그녀가 마교에 위협이 될 만한 세력의 사람이라면 그 편이 안전한 선택이 될 수도 있고 말이다.

‘하지만… 문제가 있을까?’

청유백은 별로 상관없다고 보았다.

오히려 중원과 전혀 연관이 없으니, 마교뿐만 아니라 사마신교나 중원 무림의 문파들과도 관련되지 않았을 테다.

‘정말로 이 신강 땅에 발을 들인 이유가 곤륜제전 하나 때문은 아닐 테지만.’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달리 큰 문제가 생길 것 같지는 않았다.

설마하니 저 여인이 사마신교와 관련이 있지 않는 한 말이다.

‘아니, 설마 사마신교와 관련이 있다고 해도… 그건 그것대로 좋다.’

오히려 주변에 두고 거동을 확인할 수 있으니, 만에 하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곁에 두고 감시하는 쪽이 옳을 것이었다.

문득, 청유백의 뒤편에서 천화가 시타에게 물었다.

“그나저나, 본녀의 목소리도 들린다는 게냐?”

“네. 너무나… 선명하게.”

“신묘하구나. 보통은 본교의 신녀조차도 똑바로 된 목소리를 듣지 못할 터다. 어지간히도 재능을 타고난 모양이야.”

“과, 과찬이십니다.”

혼령을 보는 것과 그 목소리를 듣는 것은 전혀 다르다.

사경을 헤매다가 강 너머의 부모를 보았다는 사람은 꽤 있어도, 조상님이 나타나서 과거 시험 답안을 알려줬다는 사람은 별로 없지 않던가.

대충 그런 것이다.

정확하게는 다를 것 같기는 한데, 최소한 청유백은 그 대화를 들으며 그런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다.

“소협, 곧바로 출발. 하실 건가요?”

“아니, 하루 정도만 쉬었다 갈 생각이다. 어차피 서둘러 봐야 지금부터는 별로 의미가 없어.”

여기서부터는 무리해서 쫓아가 봤자 소용없다.

아무리 빨리 달려 이곳까지 도착했다 한들, 이미 닷새가 지났다.

청명휘가 죽든, 사마신교의 육련 중 한 놈이 죽든─ 그 결판이 지어지기에는 충분한 시간인 것이다.

즉, 이미 조력은 요원해진 상황이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이 한 가지 있다면.’

승자가 어느 쪽이 되었든, 목적지는 서녕이 될 것이라는 사실.

그것 하나만큼은 확실했다.

청명휘가 이겼다면 한 번 잡은 꼬리를 놓치지 않기 위해 뱀 굴로 들어갈 것이고, 뱀이 청명휘를 물었다면 유유히 제 굴로 돌아갔을 테니.

“하지만… 그래도 일정을 서두르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

“굳이 무리해서 힘을 뺄 필요도 없지. 도리어 적과 마주했을 때 싸울 수 없는 상태라면 그거야말로 최악 아닌가.”

“으음.”

맞는 말이었다.

천화는 더 이상 왈가왈부하지 않았고, 성벽 외곽에 도착할 때 즈음 시타가 고개를 돌려 청유백을 바라보았다.

“그럼 객잔으로 안내하겠습니다. 비교적 좋은 곳, 찾아 두었는데… 혹여, 불편하시다면…….”

“아니, 좋다. 함께 가지.”

용건이 끝난 이상, 굳이 지부에 머물 이유가 없었다.

이제 얻을 정보도 없을 뿐더러, 칙칙한 비밀 방 같은 것은 이제 진절머리가 날 무렵이었다.

어차피 내일이면 떠날 것이니, 이왕 쉰다면 좀 좋은 곳에서 쉬고 싶다는… 그런 생각도, 사람이라면 자연스러운 현상일 것이다.

시타는 웃으며 대답했다.

“동행에 감사드립니다.”

* * *

시타가 안내한 객잔은 꽤 호화로운 거리에 위치한 것이었다.

과연 차림새만큼 노잣돈에도 여유가 있는 것인지, 아무런 거리낌 없이 최상급의 여관을 택한 모양이다.

그러다 청유백은 문득 떠오른 의문을 참지 않고 입에 담았다.

“한데, 호위 무사는 그렇게 버려두고 다녀도 되나?”

“호위가 아니라 저희 오라비…….”

“그럼 그런 것으로 치지. 아무튼, 그걸 물은 게 아니지 않나.”

“…워낙 돼먹지 못한 인간이라서요. 아마 지금쯤…….”

시타는 말을 끝맺지 못했다.

객잔의 한구석, 사람들이 모여든 둥그런 탁자의 한 자리에서 무언가의 노름에 집중하고 있는 사내가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끼얏호우! 그렇지!! 다 내놓으시게! 아이고, 오늘 패가 좀 붙어 주는구려!!”

“끄응…….”

당연히 후산이었다.

노름하는 사람의 필수적 요건은 표정을 감추는 것이라고들 하지만, 그건 잘 치는 사람들의 경우다.

못 치고 잃는 놈들, 이른바 호구 잡힌 놈들은 그런 것도 없이 잃은 것이 여실히 표정에 드러나기 마련이었다.

…가령, 저렇게.

“좆 됐다는 표정이로구나.”

“동의한다. 그야말로 정확한 표현이군.”

따면 말이라도 않지…….

세상에서 제일 한심한 게 노름판에서 돈 탕진하고 나오는 사람이라지 않던가.

시타는 터벅터벅 그리로 걸어가더니, 후산의 옆에 놓여 있는 돈주머니를 홱 하고 낚아챘다.

후산은 순간 도둑인 줄 알고는, 놀라며 뒤를 돌아보았지만 그곳에는 악몽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잘하는 짓이네요.”

“아, 아가씨… 아니, 동생아. 더 주무시지 않고 왜…….”

“자다 나온 것 같나요?”

시타는 맑은 웃음과 함께 손가락으로 집어든 돈주머니를 살짝 흔들어 보였다.

분명 남성의 손바닥보다도 큰 크기의, 꽤 큰 주머니였지만…

안에서 들려오는 것은, 가볍게 짤랑이는 소리뿐이었다.

“그, 여, 여비는 충분히 남아 있습니다요…….”

“훌륭하네요. 참 잘했다고, 칭찬이라도 해 드려야겠어요.”

“…….”

시타는 혀를 차며 몸을 돌렸다.

그 탁자에 모여든 사람들의 시선이 전부 그 둘을 향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이상 타박하지도 못했다.

하지만 당연히 눈치는 보였는지, 후산이 따라서 탁자에서 일어났다.

“의미 없는 일에 시간을 지체하여 죄송합니다. 어서 방으로…….”

“죄송할 것 없다. 심심한 여행길에 노름 정도야 작은 위안 아닌가.”

청유백은 시타의 사과에 대충 대꾸하며 주변을 주시했다.

‘노름판, 노름판이라.’

이상해 보이는 광경은 아니었다.

말마따나 여행길은 지루하고, 그사이의 작은 여흥을 찾는 것은 사람으로서 당연한 일이니까.

그리고 그런 여흥을 찾아 사람들이 모여드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이 객잔은, 그런 여흥거리를 찾아 사람들이 모이기에는 지나치게 고급인 감이 있었다.

‘평범한 일개 무인이 쉴 수 있는 공간은 아닐 텐데.’

하지만 이곳에 모인 이들은 분명 전부 무인이었다.

제각각의 병장기를 지니고 있는 것도 그렇고, 하나하나의 기세가 범인(凡人)이라 보기에는 어려웠다.

‘어딘가의 무사임에도 이런 곳을 여유롭게 이용할 수 있을 정도로 돈이 많고, 노름거리를 찾을 정도로 한가한 무사라…….’

그런 건 두 가지 정도였다.

‘하나는, 높으신 분을 가까이서 모시는 호위의 경우.’

하지만 제대로 정신이 박힌 호위라면 요인의 근처에 머물지, 이런 곳에서 노름이나 하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청유백은 왠지 불쌍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난 후산을 안쓰럽게 쳐다보며 머리를 굴렸다.

‘그리고 둘은, 스스로가 바로 그 ‘높으신 분’인 경우…….’

가령 예를 들자면─ 지역에서 내로라하는 무림세가의 자식, 같은 것이 있을 것이다.

아마 두 번째일 가능성이 높겠지만, 그렇다면 다른 의문이 든다.

‘부족할 것 없을 세가의 자식이 곤륜지회에는 왜?’

곤륜제전에 그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가?

저런 애매한 실력으로도 겁대가리를 잃고서 달려들 만한 가치가…….

‘흥미롭군.’

청유백은 피식 웃으며 후산의 어깨를 툭툭 쳤다.

그리고는, ‘가끔은 이런 것도 괜찮겠지’라고 중얼거리며 조금 전까지 후산이 앉아 있었던 의자를 끌어 앉았다.

“뭐여? 선수 교체?”

“그런 셈 치지.”

“뭐, 돈만 있으면 상관이야 없지.”

그 모습을 본 후산은 감동한 듯 가슴을 부여잡았다.

“아, 형제여! 내 편을 들어 주는 것이오? 내 복수를… 내 복수를 해 주는 것이구려……!!”

그런 건 아니지만, 그렇게 믿고 싶다면야 말릴 생각은 없다.

시타는 퍽 당황한 듯 보였다.

청유백은 그녀를 향해 조금 어깨를 으쓱이고는, 의자를 똑바로 끌어 앉았다.

탁자 위에는 기묘하게 생긴 직육면체 수십 개가 놓여, 각자의 방향으로 향해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각자의 돈과 기묘한 막대들이 보였다.

천화가 의외라는 듯 속삭였다.

[뭐야, 네놈 노름도 할 줄 알았더냐? 여흥이라고는 모를 줄 알았는데…….]

‘당연히 모르지.’

이것, 이름이 무엇이었더라.

마작이었나?

아무튼, 기루든 객잔이든 지나가며 몇 번 본적은 있다.

하지만 자세히 알지는 못했다.

굳이 그 연유를 묻는다면, 그야 몹시도 단순한 이유다.

청유백의 대에는 이런 노름이 존재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대충 규칙은 안다.’

[그걸로 되겠느냐? 호구 잡혀서 돈이나 탈탈 털리는 것 아니냐?]

‘무슨 소리야?’

청유백은 고개를 까딱였다.

긍정하는 의미의 ‘끄덕임’이 아니었다.

단순히 설명하자면, 그야말로 ‘저리 가’ 혹은 ‘저쪽에 가 있어’라는 느낌의 까딱임이었다.

그러니까, 즉.

[……아.]

굳이 대화가 필요하지 않은, 그런 까딱임 말이다.

* * *

정보 조직은, 대부분 크든 작든 간에 ‘사람을 만나는 장소’를 하나씩은 지니고 있다.

어떤 방식으로든 그들의 귓가에 사람들의 이야기가 스쳐가며, 그것들을 각자의 방식으로 가공하고 연마하여 ‘상품’으로서 내놓는 것이다.

그러한 ‘장소’가 무엇이냐 하면… 개방의 경우에는 광장이 될 것이고, 마교의 정보 같은 경우에는 객잔이나 기루가 될 것이다.

아무튼 요점은, 사람이 만나고 대화가 흘러드는 공간이라면 정보를 얻기도 쉽다는 것이다.

얻기 힘든 기밀만 정보라던가?

사람들의 생각이나 풍문, 길거리의 가담조차도 분명 정보의 일종일 테다…….

“그렇게 뿌려대서야, 서녕까지 갈 돈은 남아 있으시겠습니까?”

“다, 당신이 걱정할 만한 일은 없으니 패나 가져가게.”

“뭐, 그러시다면야.”

청유백은 여유롭게 작패를 가져가며 웃었다.

질래야 질 수가 없는 도박이었다.

운이 없는 건 그렇다 치더라도, 상대방의 패를 모두 알고 치는데 어떻게 잃을 수가 있겠는가.

하지만 지금은 돈을 따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다.

분위기를 적당히 맞춰 주고, 쓸 만한 이야기를 듣는 것이 목표.

청유백은 잠깐 따는 척하다가, 상황에 맞게 잃어 주며 점차 말문을 텄다.

그리고 어느덧, 이야기는 청유백이 원하는 주제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기묘하긴 하군요. 이 많은 사람이 다 뭐가 아쉬워서 서녕을 가는지. 저야 유행에 편승해서 가고는 있습니다만… 곤륜파가 황금이라도 뿌린답니까?”

“하하, 자넨 그 소문 못 들었는가? 이번 제전을 통해서 곤륜이 십수 년 만에 내제자를 뽑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다네.”

“세상에, 곤륜의 내제자 말입니까?”

“그래! 그 곤륜의 내제자라고. 무인으로서 눈이 돌아가지 않을 수가 없지!”

“호오…….”

그래?

그런 건가?

청유백은 꽤 흥미롭다는 듯 웃었다.

‘고작 그딴 것 때문에?’

확실히, 명문 무파에 내제자로 입문할 수 있는 기회는 꽤 가치가 있기는 하다.

특히나, 무가에서 태어났음에도 가문을 잇지 못하고, 분가해야만 하는 차남이나 얼자 따위에게 더욱 그러할 것이다.

갈 곳은 없지만, 지위는 여전히 누리고 싶고, 자신의 검 하나만 믿고 살기에는 자신이 없는 부류.

어떻게든 명문에 들어가기만 하면, 그 위세를 등에 업고 평생 호의호식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이들에게는, 지금의 저 ‘곤륜제전’은 둘도 없는 기회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다.

진짜배기 실력자들은 이미 완성되어, 곤륜의 무학 같은 것은 눈에도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건 청유백만의 생각이 아니었는지, 청유백의 맞은편에 앉은 다른 사내가 웃으며 대꾸했다.

“이 사람! 곤륜은 이미 개털인 것을 천하의 모두가 아는데 그게 무슨 소용인가? 뭐, 자네도 명예니 뭐니 하면서 풀때기만 먹고 살고 싶다면 말리지는 않겠네. 하하하!”

“뭔가, 그러면 자네는 다르단 말인가? 이 많은 이들이 대체 왜 그 제전에 참가한다는 건가? 상품이 뭐 절세의 미인이라도 된다던가?”

그리고 그 이야기는 더욱 격화되어, 나머지 한 사람까지도 그 주제에 끼어들게 만들었다.

“아, 그 상품에 대한 소문이라면 나도 좀 관심이 있네. 대체 정체가 뭐라던가? 이거 원 말이 하도 많아야 말이지. 누구는 미녀란다, 누구는 금이란다…….”

“그야 나도 모르지. 내가 그걸 다 알면 여기서 이러고 있겠는가? 북경 가서 돗자리나 깔지.”

“그건 맞는 말이군그랴.”

결국, 자신도 모른다는 말이었다.

그리 말한 사내에게, 작패를 가져가던 청유백은 자연스럽게 질문했다.

“그럼, 당신은 무엇 때문에 곤륜제전에 참가하려 하는 겁니까?”

(다음 편에서 계속)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