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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우면 네가 천마 하든가-165화 (165/200)

제165화. 상정치 못한 사태 (5)

청유백의 뒤편, 수풀 그림자 너머에서 시타가 부스럭거리며 걸어 나왔다.

청유백을 인도한 사내는 귀신을 본 것마냥 기겁하며 시타의 앞을 막아섰다.

“부, 분명 경계 중일 터인데…! 죄송합니다. 바로 쫓아내겠습니다.”

“되었다. 아는 이다.”

“예?”

청유백은 사내의 어벙한 대답을 무시하며 그녀의 앞으로 나섰다.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았지만, 그는 꽤 놀라고 있었다.

시타가 지금 이곳까지 쫓아오는 동안 전혀 그 기척을 알아채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 신월도 천화의 눈을 완벽하게 벗어나지는 못했는데, 지금은 천화도 그녀를 발견하지 못한 듯 놀라며 눈을 껌뻑였다.

“…재주도 좋군. 전혀 눈치채지 못했어.”

“저는 약하니까요. 대충 느끼셔도 다람쥐… 정도겠지요.”

청유백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리 피곤하다고 한들 무방비하게 등 뒤를 내어 주는 것은 자신의 실책이었다.

어쩌면, 피로로 인해 자신에게 곧장 위협이 되는 것 이외에는 본능적으로 인식을 피하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청유백은 돌아가면 곧바로 한숨 붙이리라 다짐하며 시타를 바라보았다.

“네 호위는?”

“그 인간은… 조금, 글러먹은 인간인지라.”

“몰래 왔다는 소리군.”

확실히, 집중해서 다시 살펴도 그녀 이외에 다른 기척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질문은 단순했다.

“왜 쫓아왔지? 내가 누군 줄 알고?”

처음에는 경어를 써 주었다.

자신과는 연관이 없는 이였고, ‘청유백’이라는 개인이 누구인지 모르는 이였으며, 곧 끊어질 인연이었으니까.

하지만 청유백은 자신의 뒤를 몰래 밟는 인간에게 경어를 써 줄 만큼 친절한 인간이 되지 못했다.

설령 그 목적이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행위였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감, 이라고 하면… 신뢰, 없겠죠?”

“그놈의 감.”

미쳐버릴 지경이군.

청유백은 인상을 찌푸렸고, 시타는 그럴 줄 알았다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말을 이어갔다.

“대화, 들었어요. 그분과의…….”

그분?

청유백의 인상이 찡그려지다 못해 일그러질 지경이었지만, 다행히 청유백이 다른 추궁을 하기 전에 시타가 행동으로 그 의미를 증명했다.

시타는 그녀의 주변을 떠다니며 흥미로운 눈으로 관찰하고 있는 천화를 정확하게 바라보았다.

의심할 여지없이, 천화의 움직임을 따라 시선이 움직였다.

“그녀를 볼 수 있는 건가?”

“……네.”

“봐라! 착각이 아니었지 않느냐!”

“인사, 늦어서… 죄송합니다.”

시타는 조용한 대답과 함께 고개를 끄덕이더니, 멈춰선 천화에게 허리를 숙였다.

“고귀한 분을 만나뵈옵니다.”

기묘하게도, 시타의 그 말만은 조금의 끊김도 없이 자연스러웠다.

몇 번이고 연습한 말인지 발음조차도 완벽했다.

“그녀가 누구인지 아는 건가?”

“아뇨. 그건 모른답니다. 다만… 붉은 눈이란 것은 분명 고귀한 분. 저희 마을에서는 그리 가르치기에.”

“그럼 너는? 너도 붉지 않은가.”

“아, 보셨…는지요.”

시타는 부끄러운지, 혹은 감추고 싶은 것인지 얼굴을 가린 면사를 애써 내리려는 듯 만지작거리며 어쩔 줄 몰라 했다.

하지만 곧 호흡을 다잡더니 자연스레 말을 이었다.

“…하지만 저는 아니에요. 저의 이 눈은 만들어진 것입니다. 과거 나타났던 선현의 이지를 이어받기 위해, 대대로 이어지는 주술입니다.”

“눈의 색을 만들었다고?”

“붉은 눈은… 신을 볼 수 있다고, 그리 믿어집니다. 저는 태어날 때부터 볼 수 있었지만, 수많은 아이들이, 저와 같은 방법으로 시야를 잃었습니다. 붉은 눈을 얻기 위해.”

“미친놈들.”

천화는 분개하며 드물게도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당연하게도, 붉은 눈이 영적인 힘을 지닌다는 말은 미신일 뿐일 테다.

청유백은 지금껏 천하에서 저만치 멍청한 소리를 들은 기억이 달리 없었다.

설령 눈을 붉게 물들이는 시술이 있더라도 시력에 치명적일 것이 분명하며, 성공하더라도 신을 볼 수 있을 턱이 없다.

시야에 낀 어지러운 아지랑이를 귀신으로 착각하는 정도라면 가능하겠지만 말이다.

“분노하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희 교에서는 평범, 입니다. 강제가 아닙니다. 어린 소녀들, 그중에서도 자원하는 이에게만 행하는… 명예로운 책무, 입니다.”

청유백은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

종교라는 놈은 항상 그런 것이었다.

언제나 그렇다.

신앙을 위해 자신을 바치는 것이야말로 종교의 근간일 테다.

불가의 땡중 놈들이든, 도가의 말코도사 놈들이든 별반 다르지 않다.

오히려, 마교의 광인들이 힘을 얻기 위해 살육을 자행하는 것보다는 훨씬 낫지 않던가.

하지만 천화는 조금 다른지, 드물게도 분노하고 있는 듯 보였다.

“허나, 허나 어찌 어린 아이의…!”

“그 모든 것이 선인의 눈을 이어받기 위한 것. 하지만 당신께서는 영혼조차도 붉으십니다. 분명… 저희 선인과 마찬가지로, 고귀하신 분이라는 것이 아니겠는지요.”

“아이에게는 아이의 삶이 있느니라. 더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그 눈에 새겨야만 하는 의무가 있다…….”

청유백은 그녀가 과민하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먼 서역의 교단이다.

‘마교와는 별 연관도 없을 것이고, 천 년이나 전의 사람인 천화와는 더욱 관련 없겠지.’

그들은 그들만의 문화가 있는 것이고, 그들만의 종교가 있는 것이다.

“아이가 없다면 미래에 무엇을 남기겠느냐. 아이가 눈을 잃는다면, 그 삶에 그 이상 어떤 색을 칠할 수 있겠느냐…….”

“명예, 신앙, 증거. 저희는 그것만을 위해 태어났기에.”

“그럴 수는…!”

천화를 내버려 둔 채, 청유백은 한숨을 내쉬었다.

…굳이 신경 쓸 일은 아니리라.

다만 알아야 하는 것이 있다면, 더도 덜도 말고 단 한 가지 있었다.

그녀가 처음부터 말하지 않은 이유였다.

천화의 말이 끊어지고 침묵이 이어질 무렵, 청유백이 물었다.

“그럼, 왜 처음에는 아는 척하지 않았지?”

“비밀, 같아서… 일부러 티 내지 않았습니다. 신경 쓰실 테니까, 요.”

“분명 그랬겠지. 티 냈다면 대놓고 날아다니게 두지도 않았겠지만.”

“하지만 제가 대화를 듣지도 못했겠지요. 그 내용, 너무 신경 쓰여서… 쫓아와 봤습니다. 제가 고귀한 분을 도울 방법이, 분명히 있을 것 같아서요.”

“도움이라.”

청유백은 힐끗 그녀를 돌아보았다.

피곤한 탓에 시야가 찡그려졌고, 일순간 어지럼증까지 느껴졌다.

그래, 어차피 아무런 해도 되지 못하는 여자일 뿐이다.

한 번쯤 믿음을 주어도 손해 볼 것은 없을 것이다.

“좋다. 어떻게 도와줄 수 있는데?”

“저는 보통의 사람들이 볼 수 없는 것들을 볼 수 있어요. 많은 것이 시야에 들어오지요. 말로 다 할 수 없이 많지만… 가장 흔한 건, 음, 이쪽 말로 ‘귀신’이라고 하나요?”

시타는 몇 가지 단어를 반복해서 말해 본 후에야, 적합한 단어를 찾았는지 그렇게 말을 끝맺었다.

그리고는 주변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이곳에는 지금 엄청, 엄청 많은 분들의 혼이 있어요. 대략… 오십 명, 아니… 백 명…은 되는 것 같아요.”

“……거짓이 아니군?”

“은인께 거짓말할 이유가 있나요?”

믿기 힘든 일이었지만, 그녀의 말은 진실이었다.

박동도, 시선도, 천화가 보는 영혼도.

모든 것이 진실을 고하고 있었다.

‘진짜배기 신녀(神女)로군.’

청유백은 상단전을 강제로 열어젖혀 천화를 담았을 뿐이기에 그녀만을 볼 수 있었지만, 신기를 타고나 다른 이들과는 다른 시야를 지닌 사람은 분명 있다.

보통, 사내보다는 여인.

상단전의 재능을 타고나는 아이가 교단의 신녀로서 자라난다.

옛 마교에도 그런 이가 있었다.

시타의 말이 이어졌다.

“찾고 계신 분이 있으신 거죠? 살아 있었으면 하는 거…고요. 찾아볼게요. 만약 이 자리에 혼령이 남아 있지 않다면… 아직은 살아 계실 거예요.”

“최소한 이곳에서 죽지 않았다는 말은 되겠군.”

흠.

청유백은 고개를 숙여 생각에 잠겼다.

엄밀히 말하면 완전하지는 못한 방법이다.

이곳에서 죽지 않았다 뿐이지 다른 곳에서 죽었으면 말짱 꽝이고, 시타가 사람을 잘못 확인할 수도 있는 노릇이니까.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좋다. 이름은 청명휘. 생김새는…….”

청유백은 자신이 기억하는 청명휘의 인상착의를 늘어놓았다.

정돈하여 틀어 묶은 검은 머리칼과 날렵한 눈매. 전체적으로 들판의 야수 같은 인상.

솔직히, 사내자식의 얼굴을 그리 자세히 기억하고 있지는 못했기에 ‘일단 내 형이니까 나랑 비슷하게 생겼을 거다’라고 말하는 것이 설명의 거의 전부였지만 말이다.

“아, 그리고 다른 무사들과는 옷차림이 다를 테지. 미쳤다고 가문의 문장을 박고 다니지는 않겠지만.”

청유백은 이어서 적철진이나 녹지지 등, 기억나는 한 청명휘의 조원들의 생김새를 자세히 말해 주었다.

적철진의 표현이 가장 쉬웠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키가 팔 척이나 되는 인간은 별로 없으니 말이다.

“……찾아볼게요.”

시타는 고개를 끄덕였고, 곧 피로 낭자된 숲속을 걸어 다니며 무언가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그동안 청유백이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적당히 그녀를 지켜보고, 이따금씩 외곽의 보고를 전하러 들어오는 마교의 무사들을 진정시키는 것 정도였다.

그것이 이각 정도 계속되자, 청유백은 문득 의문이 들었다.

“천화, 너는 볼 수 없는 건가?”

“말했잖느냐. 본녀가 보는 것은 네가 보는 것의 연장선일 뿐이라고. 네가 보는 것을 더 깊게 알 수는 있지만, 보지 못하는 것을 알지는 못하느니라.”

“그건 좀 아쉽군.”

* * *

“……알아냈어요.”

약 반 시진이 지나고 나서야 시타는 다시 청유백의 앞에 섰다.

그녀의 안색은 상당히 창백해져,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아 보였다.

무리도 아니었다.

그녀는 한순간도 쉬지 않았고, 기백에 달하는 혼령들과 전부 대화한 듯 보였으니 말이다.

아무리 신녀라고 해도, 본디 이 세계의 것이 아닌 것과 대화하는 것은 부담이 따르기 마련이었다.

“낭보인가?”

“원하는 대답, 아니실지도 모르지만요…….”

시타는 조금 멋쩍어하며 말끝을 흐렸지만, 청유백에 요구에 고개를 들었다.

“일단 말해 봐.”

“전부 살아 계세요. 말씀하신 분들 전부, 일단 이곳에서 죽지는 않으셨어요. 그리고…….”

“그리고?”

“전투는 승리했었대요. 그리고 마지막 죽은 분의 말씀에 따르면, 상대를 쫓아서 동쪽으로 향했다고 해요.”

동쪽.

서녕이 있는 방향이었다.

“훌륭하군.”

그것만으로도 만족할 만한 수확이었다.

죽지 않았다는 것만 확신할 수 있었어도 괜찮다 했을진대, 이 정보라면 불만을 가질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시타는 썩 만족스럽지 않은 듯 보였다.

“죄송합니다. 혼령들은 생전의 기억만 지니고 있어서…. 죽은 다음, 시체가 어떻게 되었는지, 그것은 듣지 못했어요.”

“아쉽긴 하지만, 괜찮아. 놈을 잡으면 자연히 알게 될 테니까.”

“그들의 말은 이게 다예요. 혼령 백스물한 명 전부… 대화를 전했습니다…….”

그녀는 일순간 휘청거렸지만, 곧 자세를 고쳐 잡았다.

청유백은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좋아. 일단 약강으로 돌아가서 휴식을 취하지. 이 일의 보상은….”

“괜찮아요. 고귀한 분을 도울 수 있어 제가 감사한 일입니다.”

“아니, 거래는 공정해야 한다. 빚은 싫거든. 바라는 것이 있나?”

시타는 잠깐 고민하는 듯하더니, 결정한 듯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요구는 단순했다.

“그러면… 목적지가 서녕이시라면, 저희와 동행해 주시겠어요? 저희도 일정이 급하기 때문에, 빨리 달리셔도 좋으니…….”

“그러지.”

어려울 것 없는 일이었다.

오히려 청유백 쪽에서 도움을 요청하고 싶은 상황이었으니, 마다할 이유도 없었다.

사자(死者)와의 대화라는 것은, 언제 어느 때라도 도움이 될 수 있는 능력이니 말이다.

서녕에 가서도 필요할 때가 올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돌아가지.”

청유백은 시타와 다른 무사들을 앞세워 보냈다.

그러고는, 잠깐 멈춰서 그 현장을 다시금 돌아보았다.

일순간 뭔가 석연찮은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백 명이라고?’

정확히, 그녀가 말한 숫자는 백스물하나.

하지만… 와 닿지 않는 인원이었다.

‘이 혈흔이……?’

분명 보고에서도 그리 적혀 있었더랬다.

수백 명이 싸운 흔적.

못해도 이백, 혹은 삼백.

그런 현장이라 말했고, 청유백 또한 그리 보았다.

이 땅에 젖어든 피의 양은 거짓 없이 그것을 실토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죽은 이는 백스물한 명보다는 명확하게 많다.

‘그럼에도 영혼은 고작 백이라….’

전부 죽지는 않은 것인가.

죽지 않고 살아서, 피만 흘린 채로 도망간 것인가?

혹은, 그녀가 거짓말을…….

…….

‘…아니, 거짓은 아니겠지.’

청유백은 일순간 든 생각을 부정하며 고개를 내저었다.

거짓을 말할 이유도 없을뿐더러, 그녀의 말이 거짓이 아님을 분명히 확인했다.

청유백은 일단 그녀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이곳에서 더 이상 알 수 있는 사실은 없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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