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꼬우면 네가 천마 하든가-164화 (164/200)

제164화. 상정치 못한 사태 (4)

붉은 눈.

하지만 선명한 선홍색의 천화와는 다르게 조금은 검은색이 섞여 들어간 색의 동공이었다.

허나, 일순간 사람을 벗어난 듯한 분위기를 퍼뜨리는 그 자태만은 기묘하리만치 비슷했다.

‘적안이라… 얼굴을 가리는 것은 저것 때문인가?’

확신할 수는 없었다.

물론 그런 이유일 수도 있겠지만, 그저 서역에서는 평범한 문화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영체화한 천화는 눈살을 찌푸리며 자신을 시타라고 소개한 여인의 앞으로 다가가 얼굴을 살폈다.

이미 그녀의 얼굴은 면사에 가려져 있었지만, 천화에게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드문… 형태기는 하구나. 머리도, 피부도 희지 않다. 백색증을 앓는 아이는 아니야…….”

그럼에도 붉은 색의 눈을 지니고 있다는 것은, 다른 모종의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결코 흔한 것은 아니었기에 순간 청유백의 뇌리에는 ‘천화와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지만, 결국은 기억 너머로 넘겨버릴 뿐이었다.

고작 눈 색 하나만으로 지레짐작하기에는 지나친 억측이었다.

무엇보다 천화의 이목구비는 서역인도 아니며, 그녀의 말마따나 붉은 눈은 백색증으로 인해 발현된 것이다.

새하얀 피부와 붉은 눈.

때로는 그 이상으로 하얀 머리칼까지.

청유백은 문헌으로밖에 접한 바가 없었지만, 그것들이 바로 백색증의 증세였다.

결코 흔한 질병이 아니라고는 하나 분명 병의 일종이니, 붉은 눈만을 지니는 병이 없으리라고 단언할 수도 없는 노릇이 아니던가.

헌데─ 문득.

“……?!”

계속 시타를 살피던 천화는 갑자기 소스라치게 놀라며, 튀어 오르듯 청유백 쪽으로 물러섰다.

청유백은 시타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애써 눈을 돌리지 않으려 노력하며 물었다.

‘왜 그러냐?’

“방금, 본녀와 눈이 마주친 것 같은데…….”

‘착각이겠지.’

시타의 거동에는 조금의 흔들림도 없었다.

평범한 사람이 공중에 떠다니는 혼령과 눈이 마주친다면 당연히 조금이라도 반응이 있어야 할 테다.

뭐, 아무리 그래도 황돈은 그 정도가 과했지만 말이다.

시타는 그 외의 다른 반응은 전혀 보이지 않은 채로 사내를 가리켰다.

“아, 이쪽은 후산, 이에요. 저의…….”

“?”

시타는 말을 하다 말고 잠깐 손가락을 움츠리더니, 어찌 말을 꺼낼까 고민하는 듯 고개를 숙였다.

“……혈육상, 친족 손윗사람 되는 인간이에요.”

오빠란 소리였다.

저 말이 진실인지는 신뢰할 수 없겠지만, 최소한 오라비라는 단어를 입에 담기 싫어한다는 것 정도는 잘 와 닿았다.

‘뭐, 상관없는 일이지.’

진짜 남매면 어떻고, 신분을 숨긴 다른 무언가면 어떻단 말인가.

어차피 곧 헤어질 인연이다.

목적지는 약강.

앞으로 하루 이틀이면 도착할 거리였다.

“뒤처진다 해도 멈추진 않을 겁니다. 알아서 잘 쫓아오시오.”

“하하. 물론이오, 형제여!”

흔쾌히 대답하는 후산을 돌아보며, 청유백은 그가 적우각과 아주 죽이 잘 맞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살아 있다면 말이다.

* * *

청유백이 약강에 다다른 것은 다음날 정오 즈음이였다.

후산은 하루가 꼬박 넘는 강행군에도 전혀 뒤처지지 않고 청유백을 쫓아왔고, 당연히 그 품에는 시타가 안긴 채였다.

사람을 안고 하루 동안 전력 질주라니…….

그 근성에는 청유백도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나더러 하래도 못할 일인데.’

사람을 안고 달린다는 것은 그냥 무거운 물건을 안고 달리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게 신경이 많이 쓰이는 일이다.

한 번 넘어지기라도 하면 본인은 괜찮지만 품에 안은 사람은 큰 부상을 입을 테고, 그것을 피하기 위해 항상 온몸의 균형에 신경을 들여야만 한다.

후산은 그것을 행하고도 별로 지친 기색을 보이지 않았으니, 하루 더 달렸다 하더라도 뒤처지지 않았을 것이다.

후산은 저 멀리 보이는 황토색의 토성을 바라보며 청유백에게 말을 걸었다.

“오오, 저게 약강이란 도시구려!”

“일단은 그렇지. 내 목적집니다. 헌데…….”

청유백을 말끝을 흐리며 그 앞을 바라보았다.

약강으로 향하는 관도가 훤히 보였기에, 그 위를 걷는 사람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뭔가가 기묘했다.

생각보다 약강을 향하는 사람이 많았다.

‘……이 길에 사람이 많을 리가 없는데?’

약강은 그리 큰 도시가 아니다.

오로목제는 비단길 무역의 중심지인지라 상업적 발전을 이루었지만, 약강은 그 수혜를 비교적 적게 입었다.

단순한 이유였다.

약강의 옆에는 그야말로 광대한 사막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약강으로도 비단길을 이을 수는 있으나, 사람들은 대체로 분지인 오로목제로 다니고 싶어 하지, 고된 사막길을 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이 길을 이용하는 이는 그다지 없었다.

천화도 기이하다며 입을 열었다.

“확실히 그렇구나. 상단 행렬 또한 아니야. 하나하나가 무인… 그것도 상당한 실력자들이다.”

“…….”

종교적 참배를 위한 인간들인가?

아니, 아니다.

약강에서 비롯되는 길들에는, 그러한 장소들이 썩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대체…….’

청유백이 고민을 이어갈 찰나, 후산이 휘파람을 불며 입을 열었다.

“어휴, 저게 다 경쟁자들이란 말이오? 진절머리가 나는군. 뭐, 제 실력에 취하여 자만한 사람도 있겠지만… 저 숫자만 봐도 무섭구려.”

“경쟁자?”

“그렇소. …아아, 형제의 목적지는 서녕이 아니었지. 그렇다면 이해는 되는구려. 내가 봤을 때는, 저 사람들 전부 곤륜제전(崑崙第戰)에 참가하는 이들일 거요.”

그건 또 뭐야.

‘…곤륜제전?’

청유백은 허탈하게 찡그려지는 표정을 숨길 수 없었다.

말로만 들으면, 곤륜파에서 개최하는 무술 대회라도 되는 모양이다.

‘…미치도록 수상한데.’

청유백이 다른 무언가를 생각하기도 이전에, 후산의 말이 이어졌다.

“명의 서쪽에 있다는… 곤륜이라는 문파에서 제전을 개최한다 하오. 우리에게는 썩 유명한 이름은 아니지만, 우리 선조님과 스승들은 듣자마자 발작을 하더군.”

“저 행렬이 전부 그것 때문이란 겁니까?”

“내가 보기에는 그렇소. 보상도 어마어마하다고 하고…. 그래도 역시 무(武)를 익힌 사내인 이상, 자신이 최강인 것을 증명하고 싶을 것 아니오?”

“……흐음.”

곤륜파 주최. 무술 대회.

그래, 어감은 나쁘지 않다.

문제는, 어감만 나쁘지 않다.

말마따나 미치도록 수상하지 않은가.

‘마교 이상으로 몰락했을 곤륜파가 돈이 대체 어디서 나서?’

기실, 곤륜파가 무술 대회를 여는 것 자체는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다.

대문파들은 때때로 제전을 열어 본문의 실력을 과시하는 용도로 사용하기도 했고, 곤륜파 또한 크게 다르지는 않았으니까.

심지어 지금의 상황 같은 경우, ‘마교를 물리친’ 곤륜파가 대회를 열었다는 것만으로도 그 우승자의 명예가 보장되는 것과 마찬가지이니, 그 참가의 이점은 분명히 존재했다.

허나.

대체, 지금의 곤륜이 그 무술 대회로 무슨 이득을 얻을 수 있단 말인가?

‘미친 척하고 자기 과시?’

많이 봐줘서, 사실상 그것 외의 용도는 존재하지 않았다.

곤륜은 세력을 과시할 정도로 강성하지도 않고, 우승자를 자신들의 무인으로 포섭할 수 있을 정도로 부유하지도 않다.

그야말로 개최할 이유가 없는 대회인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수상쩍기 그지없는 일인데, 한술 더 떠 상황까지도 기묘하게 흘러가는군.’

오로목제와 약강에서 모은 물자들이 서녕으로 흘러들어 가고 있다는 장부의 정보들이 있지 않았던가.

우연일 수도 있겠지만, 그저 지나가는 우연으로 치부하기에는 너무나도 의심스러운 대회였다.

천화가 문득 물었다.

“하지만, 설령 그게 사마신교와 관련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게 그들에게 무슨 득이 되겠느냐?”

‘…그건 그렇지.’

그렇기에 확신할 수도 없는 것이다.

지금은 일단, 약강의 정보를 확실하게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리라.

청유백의 심각한 표정을 보고 후산은 어찌 받아들인 것인지, 기쁘게 웃으며 물었다.

“뭐요. 참가할 생각이 든 거요? 그리 된다면 함께 서녕까지 갈 수 있겠구려!”

“관심 없습니다.”

“에이, 아쉽구려. 형제의 실력이라면 능히 나와도 겨루어 볼 법할 터인데. 실로 아쉽소.”

“선호하는 음식이 미음이 아니라면 그런 말은 않는 게 좋습니다.”

“미움? 미움이 뭐요? 맛있고 귀여워 보이는 어감이군.”

“…말을 맙시다.”

청유백의 대답에 능청스레 어깨를 으쓱인 후산은 저 멀리 행인들을 바라보더니,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말 좀 그만하자니까, 듣는 체도 않고 있었다.

“어휴, 나는 적당히 해야겠소. 그대를 제외하더라도 너무 쟁쟁한 자들뿐이구먼.”

“우승이 목적 아니었습니까?”

“아, 그거야 뭐 명분이고… 사실은 높으신 분들의 사정이… 읍.”

후산의 말이 갑작스레 끊어졌다.

뒤를 돌아보니, 어느샌가 품에서 깨어나 눈을 비비고 있는 시타가 손가락으로 그의 입을 막고 있었다.

“후산, 쉿.”

“아, 아… 그렇지. 미안하오. 아무리 은인이래도 이것은 쉽게 입에 담으면 안 되는 대외비인지라.”

“이해합니다.”

애초에 처음 봤을 때부터 뭔가 비밀이 있으리라고는 생각하고 있었다.

굳이 궁금해하지 않았을 뿐이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머지않아 일행은 약강의 성문에 도착했다.

그것은 거대한 토성이었다.

황토색의 성벽과, 적색 나무로 이루어진 거대한 성문.

이곳에까지 곤륜이 모종의 수를 벌려 놓은 것인지, 기묘하리만치 검문이 대충이었다.

어쩌면, 수많은 무인들을 대처할 방법이 없어 빨리 지나가도록 조치한 것일지도 모른다.

청유백은 시타와 후산을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일단 헤어집시다. 이곳이 북문이니, 동문을 찾아 나가면 될 겁니다. 그리고 큰길을 쭉 따라 가면 서녕입니다.”

설마 이렇게까지 말해줬는데 길을 잃지는 않을 것이다.

심지어 다른 길을 걷는 사람들도 있으니, 이제는 길을 잃고 싶어도 못 잃는 지경일 테다.

시타는 고개를 숙였다.

살랑거리는 면사 너머로, 생긋 웃어 보이는 그녀의 입가가 보여 왔다.

“감사합니다, 소협. 이 은혜… 언젠가, 반드시 갚겠습니다.”

“원하시는 대로.”

* * *

“현장은 이곳이 전부인가?”

“혈흔이 반경 수십 장으로 어지럽게 흩어져 있기는 했지만, 전부 갑자기 사라진 것처럼 흔적이 끊겨 있었습니다.”

“…흐음.”

청유백이 곧장 향한 곳은 마교의 지부, 그리고 청명휘가 당했다는 장소였다.

약강에서 꽤 떨어진 장소였기 때문에, 그곳에 다다랐을 때에는 이미 노을이 지고 있을 시간이었다.

청유백을 안내한 지부의 무사가 입을 열었다.

“최대한 보전하려 노력은 해 보았습니다만, 이미 시체는 전부 사라져 있었기에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었습니다. 있는 것이라고는, 부서진 채 널브러져 있는 무기 파편 정도였던지라…….”

“곤란하군.”

청유백은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눈이 곧잘 찡그려지고, 눈앞은 어두워 계속해서 짓눌러도 피곤함이 가시지 않았다.

어쩌면, 다른 무언가의 단서가 보이지 않는 것도 당연할지도 모른다.

사흘을 통으로 식사도 잠도 거른 채로 여기까지 달려왔으니, 당연히 정상인 상태는 아닐 테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흔적이 아무것도 없군.’

[그러게나 말이다.]

정말 기묘할 정도였다.

시체도, 시체의 무기도 없는 분쟁의 현장이라니.

이 현장이 고작 몇 명 규모의 분쟁이었다면 딱히 이상할 일도 아니었겠지만, 이 땅에 스며들어 붉게 변한 흙과 나무의 겉을 보면, 결코 적지 않은 목숨이 이곳에서 스러졌음을 쉬이 알 수 있었다.

헌데 그럼에도, 이곳에는 단 한 구의 시체도, 한 자루의 검도 존재하지 않았다.

최근에 땅을 다진 흔적도 없으며, 시체를 끌고 어딘가로 옮겨간 자국도 남지 않았다.

“……백소하의 말마따나, 불가능한 현장이다.”

정말로 불가능한데.

우스운 것은, 그야말로 전령이 전달한 정보에서 단 한 걸음도 더 나아갈 수 없었다는 점이었다.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시체가 걸어서 나가지 않은 다음에야, 이런 게 가능할 리가 없는데.”

“허, 참…….”

청유백은 걸음을 돌렸다.

아무래도, 지금은 너무 피로에 찌든 것 같기도 했다.

지금은 돌아가서 휴식하고, 내일 오는 것도 꽤 괜찮은 방법으로 보였다.

…그런데, 문득.

귓가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그다지 익숙하지는 않았다.

기껏해야 하루 인연을 쌓은 여자의 목소리였으니까.

{도움을, 드려도 될까요?}

시타의 전음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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