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3화. 상정치 못한 사태 (3)
청유백은 잠깐 당황했다.
일견 보기에도 그 사내와 자신의 거리가 결코 가깝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대충 보기에도 수백 장은 되는 거리 너머에서 사내는 똑바로 청유백을 응시하고 있었다.
“날 포착한 건가? 어떻게?”
단순히 이 방향의 다른 누군가를 호칭했다고 생각하기에는, 이 황량한 바위산에 다른 누군가가 있으리라 생각하기도 어려웠다.
“본녀가 괜히 말을 꺼냈겠느냐? 영혼의 기척이 꽤 뚜렷한 자다. 아마 상당한 실력자일 게야.”
“그리 보이는군.”
하긴 뭐 정상적으로 생각해 보면 이런 장소에 평범한 사람이 있을 리가 없기는 하다.
헌데, 그야말로 알 게 무언가.
청유백은 코웃음 치며 계속 발을 놀릴 뿐이었다.
“관여할 생각 없어.”
저자가 얼마나 뛰어난 실력자든 자신을 어떻게 포착했든 그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어차피 그냥 길 가는 행인일 뿐이고, 지금은 다른 바쁜 일들이 얼마든지 있었다.
청유백은 못 들은 체하고 계속해서 땅을 박차며 내달렸다.
“이보시오~.”
“……?”
하지만 사내의 목소리는 전혀 멀어지지 않은 채 다시 한번 들려왔다.
힐끗 그 방향을 돌아보자, 사내는 청유백과 엇비슷한 속도로 바위산을 뛰어넘으며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청유백이 더욱 빨리 달려도 목소리는 점점 가까워져 왔고, 갈수록 사내와의 거리는 좁혀들었다.
엇비슷하지 않다.
저쪽이 더 빠르다.
사내는 계속 다급하게 외쳤다.
“어딜 그리 급히 가시오! 질문 하나만 대답해 주구려!”
“…….”
반각 정도 내달렸을 무렵, 청유백은 결국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 멈춰 섰다.
‘누군진 몰라도 경공만은 정말 상당한 고수다.’
어차피 이대로 가면 따라잡힐뿐더러, 이만큼이나 진득하게 따라와서 묻고 싶은 것이 뭔지 궁금할 따름이었다.
청유백이 한 바위산 정상에 내려앉자, 잠시가 지나기도 전에 사내도 그 옆에 도착하며 힘든 숨을 골랐다.
“하하, 드디어 말이 닿았나 보오. 젊은 사람이 무슨 발이 그리 빠른지!”
사내의 말투는 조금 어눌했다.
멀리서 들었을 때에는 눈치채지 못할 정도였는데, 바로 옆에서 들으니 그것이 훨씬 명료하게 느껴졌다.
‘생김새도… 조금 기이하군. 서역인인가?’
조금 검은 피부에 특이할 정도로 뚜렷한 이목구비는 그들의 특징이었다.
청유백도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중원의 언어를 쓸 수 있는 서역인은 꽤 드물었고, 이 사내만큼 유창한 사람은 처음이었지만 말이다.
청유백은 경계를 풀지 않은 채 대꾸했다.
“…무슨 용건이신지?”
“아, 그것이 다름이 아니오라!”
사내는 품에서 구겨진 쪽지 같은 것을 꺼내어 이리저리 돌려 보더니, 올바른 방향을 찾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눈살을 찌푸리며 그것을 읽으며 물었다.
“서녕… 그래, 서녕으로 가는 길을 아시오?”
“서녕?”
“그렇소. 이 나라 변방에 있는 도시라던데.”
청유백은 잠깐 입을 다물었다.
서녕으로 가는 길?
어렵지 않다.
애초에, 자신도 약강을 거친 다음에는 서녕으로 향할 테니 당연히 길 정도는 안다.
하지만,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그 지명이 거론되는 것만으로도 민감하게 받아들여졌다.
그것도 이런 오지에서, 저만큼의 고수가 그 이름을 묻는다는 것은 썩 반가운 일은 아니었다.
그 와중에 문득 천화가 언질을 주었다.
[마기는 느껴지지 않고… 조각의 기운도 없구나. 사마신교의 관계자는 아닐 것이야.]
‘……그렇다면야.’
무리해서 도망치는 것보다는 그냥 알려주고 헤어지는 게 나을 것이다.
청유백은 고개를 들어 물었다.
“용건은 그게 다입니까?”
“어찌 염치없게 더 많은 것을 바라겠소. 방향만 짚어 주시면 내 이만 가리다.”
“그럼…….”
청유백은 대충 손을 들어 태양의 위치를 가늠하고는, 한 곳의 방향을 잡아 가리켰다.
“저쪽. 쭉 가면 큰길이 나올 텐데, 그 길만 따라 가면 거대한 성이 나올 겁니다. 그곳이 서녕입니다.”
사실 이런 설명은 길 안내에 별로 적합하지 않다.
보통 사람은 길도 안 나 있는 야산을 넘을 수 없고, 산을 돌아가는 길을 찾고 돌고 돌다 보면 결국 방향을 잃어버리기 마련이니 말이다.
‘하지만 저런 경공의 고수들 사이에서는 통용될 수 있는 방법이지.’
높고 험한 산이라고 해도 그저 거추장스러울 뿐,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저 직진만 하면 되니까.
그리고 사내도 그것으로 충분했는지, 밝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오, 감사하오! 이 넓은 천하에서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다시 만난다면 내 꼭 사례하리다.”
“다시 볼 것 같지는 않은데 말입니다.”
썩 보고 싶지도 않고.
하지만 사내는 넉살 좋게 웃었다.
“하하, 세상일을 어찌 알겠소. 우리 아가… 아니, 여동생도 좋아할 게요!”
생각해 보니 멀리서 봤을 때 사람이 두 명이었던 것 같다.
그럼 걔는 버리고 쫓아왔나?
문득 궁금해졌지만, 청유백은 이내 호기심을 내던져 버렸다.
알게 뭔가.
“그러시군요. 그럼 이만.”
“꼭 사례하겠소!!”
“아, 예.”
청유백은 건성으로 대꾸했다.
보기는 뭘 다시 봐.
약강은 서남쪽이고, 서녕은 동남쪽이다.
솔직히 사람 수준의 방향 감각만 가지고 있다면, 도저히 만날 수가 없는 거리인 것이다…….
* * *
그런데, 짜잔.
‘도저히’라는 건 없군요!
“하하, 소협! 다시 보는구려!”
“……?”
청유백과 그 사내가 다시 마주친 것은, 그날의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저녁 즈음이었다.
도대체 어떤 원리인지는 이해를 할 수도, 하고 싶지도 않았으나, 저 멀리 반대편에서 성큼성큼 다가오는 그 사내가 보였다.
품에는 아까의 그 일행으로 보였던 여인을 두 팔로 안은 채였다.
‘어쩐지 쫓아올 때는 혼자더라니.’
여인은 저 사내만큼의 고수는 아닌 모양이었다. 아니면 그냥 일반인이거나.
어쨌든, 사내는 청유백을 발견하고는 빠르게 다가와 기쁘다는 듯 웃어 보였다.
“하하, 어쩐 일이오! 사실 소협도 서녕이 목적지였던 거요?”
더 골 때리는 것은, 그 미소와 말의 속내에 한 치의 거짓도 없다는 점이었다.
‘보통 속이려 하는 거짓말이면 뭔가 심장 소리에 조금의 흔들림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이 사내는 그런 것이 전혀 없었다.
천화의 반응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사내는 보통 둘 중 하나이니라.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해서 조금의 가책도 느끼지 못하는 미친놈이거나, 혹은…….]
‘혹은?’
[그냥 빡대가리거나. 헌데 본녀가 보기에는 후자가 맞는 듯하구나.]
말이 좀 심한 것 같기는 한데, 청유백도 동의하는 바였기에 그냥 침묵했다.
“그런데 어떻게 반대편에서 오고 계시오? 서, 설마… 우리가 길을 잃을 줄 알고 맞이해주러 온 것이오?”
“…….”
아무래도 방향 감각이 사람 수준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아마 고양이나 강아지 정도?
하긴 처음부터 예상했어야 했다.
서역인이 서녕으로 향하는데, 그 부근의 바위산을 헤매고 있던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헌데 문득, 사내의 품에 안겼던 여인이 그의 옷깃을 잡아끄는 것이 보였다.
아무래도 내려달라는 행동인 듯했고, 그녀는 곧 땅을 딛더니 특이한 손짓을 하며 허리를 숙였다.
“감사, 드립니다.”
[특이한 복식에 특이한 예법이로구나. 본녀로서도 처음 보니라.]
옷은 익숙하진 않지만 중원의 복식을 따라한 듯 보였다.
하지만 얼굴 전체를 덮은 면사는 중원에서는 본 적 없는 물건이었다.
그 탓에 얼굴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청유백은 앞서 한 예상대로 분명 서역의 사람일 것이라고 확신했다.
예를 표한 그녀는 말을 이었다.
“그런데 방향, 이 방향. 맞습니까?”
그녀는 자신들이 향하던 방향이 아니라, 청유백이 향하던 방향을 가리켰다.
조금 골 때리기는 하는데, 애초부터 사내가 향하던 방향을 불신하고 있던 모양이었다.
“서녕을 향하는 거라면… 아주 반대편은 아니지요. 옳은 방향이라 하면 또 아닙니다만.”
“그럼, 이쪽은…….”
그녀는 자신들이 향하던 방향을 가리켰다.
말할 필요도 없이, 서쪽을 향했다.
서녕과는 반대편이다.
“집으로 돌아가시고 싶으시다면 그 쪽도 맞는 방향이지요.”
“…….”
그녀는 불신하는 눈빛으로 사내를 돌아보더니, 이내 인정사정없이 명치를 가격하기 시작했다.
몇 번 정도는 괜찮아 보였지만, 열댓 번 똑같은 자리에 정권이 내질러지자 사내는 몸을 움츠리며 손사래를 쳤다.
“아! 아! 시, 실수할 수도 있지 왜 그럽니까! 실수입니다! 실수!”
“───, ────.”
“아, 아니. 아무리 그래도…….”
“──! ───?!”
“아, 알겠습니다요…….”
그녀가 고함치는 언어를 청유백이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처음 듣는 언어였고, 청유백은 다양한 언어에는 썩 밝은 편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가 한 말이 저 나라의 쌍욕임은 잘 전해져 왔다.
* * *
그녀는 사내를 몇 번이고 더 쥐어 팬 후에, 청유백을 돌아보며 두 손을 공손히 모았다.
그리고는 다시 고개를 숙이며, 청유백을 향해 고개를 들어 보였다.
“부탁, 되겠습니까? 동행.”
“…….”
골 때리는 일이다.
당장의 목적지가 서녕이 아닐뿐더러, 저들과 동행한다고 자신에게 무슨 이득이 되겠는가.
청유백이 당연히 거절하려고 입을 열려는 찰나, 천화가 말을 걸어왔다.
[그리해 주자꾸나.]
‘어째서?’
[으음, 모른다. 본녀도 이렇다 할 이유를 대기는 힘들구나. 하지만, 음… 여인의 감?]
‘지랄을 지랄을…….’
[왜, 왜?! 본녀는 여자도 아니냐?!]
‘…….’
청유백은 한숨을 내쉬었다.
감.
그놈의 감.
정말로 거지 같고, 가장 어이없는 이유 중 하나가 아닌가.
하지만 그것이 천대받는 이유를, 청유백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감’이라는 놈이 거지 같은 이유는, 그것을 무시했을 때의 허탈감이 다른 무엇보다도 짜증나게 다가오기 때문이었다.
아, 그때 직감대로 행동했으면!
아, 그때 감을 믿을걸!
이딴, 하찮고 어처구니없는 후회를 하게 만드는 것이 ‘감’이라는 녀석인 탓이었다.
아무런 이유도, 증거도, 이윤도 없거늘.
그럼에도, 감이라는 놈은 그저 무시하기는 멋쩍은 면이 있는 것이었다.
‘……빌어먹을.’
청유백은 혀를 차며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자신 또래의 여인이었다.
아직 방년은 채 되지 않은, 여인이라는 말을 쓰기에는 조금은 어린 여자.
이대로 내버려 두어도 저 사내의 실력이라면 멀쩡히 살겠지만, 감이라는 놈을 따라서 나쁠 것도 없을 테다.
청유백은 말을 이었다.
“제가 향하는 곳은 약강입니다. 하지만 약강과 서녕은 관도로 이어져 있으니, 길을 따라가기만 하면 될 겁니다.”
“충분합니다. 동행의 허락, 구했다 해도 좋겠습니까?”
“…그것으로 충분하다면야.”
그래, 뭐.
저 사내의 경공을 생각하면 일정이 그리 늦어지지도 않을 것이다.
청유백이 고개를 끄덕이자 여인은 다시금 예를 표하며 허리를 숙였다.
“소협, 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제 이름, 사얀타…….”
그녀는 ‘이 표현이 맞는지 모르겠다’라고 덧붙였다.
그러고는 고개를 내저으며, 표현을 정정했다.
그녀의 얼굴 전체를 가린 면사 너머로 잠깐 그녀의 눈이 비쳐 보였다.
검붉은 색의, 사람이 아닌 듯한 흉흉한 눈.
“아니, 시타(施他), 입니다.”
마치, 천화와도 같은 눈동자였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