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2화. 상정치 못한 사태 (2)
“……궤멸이라고?”
내가 정확히 들은 것이 맞나?
청유백과 백소하는 누구라고 할 것 없이 당혹을 표하며 되물었다.
백소하가 사내에게 다가가 멱살을 틀어쥐며 끌어당겼다.
“전부 죽었다는 건가…?”
“그것은… 아, 아직 확인되지 않았습니다만, 모든 연락이 끊겼습니다. 중간 연락책부터 주변 지부에서 끌고 간 지원병까지, 전부 단 하룻밤 사이에 사라졌습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지원병에 연락책까지 있었다면 그 숫자는 못해도 기백이다.
그런데 그게 하룻밤 만에 다른 연락도 없이 사라질 수 있는 경우라.
쉬이 생각할 수는 없었다.
청유백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적의 숫자는?”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적도 파악하지 못했는데 궤멸이라는 표현을 쓰는가?”
“분명한 전투의 흔적이었습니다. 최소한 수백 명 단위의 죽음이 있었으리라 추정됩니다.”
“……수백 명.”
약강 인근의 지부에서 아무리 고수를 끌어모아 봤자 그만한 숫자가 되지는 못할 것이다.
오로목제만큼 대도시도 아니거니와, 약강은 온전한 마교의 영역이라고 하기 어려울 정도로 멀리 떨어진 도시다.
헌데 수백 명의 죽음을 확신할 정도의 살풍경한 광경이 펼쳐져 있었음에도, 후계자들의 죽음조차 확인할 수 없었다는 것은.
…분명, 단순한 이유이리라.
청유백은 말을 이었다.
“시체를 찾지 못했나 보군.”
언제나 그렇다.
인물의 죽음을 확정하기 위해서는, 어지간한 상황이라면 그 시체를 찾아 확인해야만 한다.
전쟁 통에 휘말려 사라진 고수가 몇 년 뒤에 멀쩡히 살아 돌아온다거나, 절벽으로 떨어진 미친놈이 기연을 얻어 돌아온다거나 하는 것은 결코 드문 일이 아니었다.
“바로 그렇습니다. 허, 헌데… 보고에 이상한 점이 있었습니다.”
“이상한 점?”
“예. 후계분들의 시신뿐만 아니라, 그곳에서 죽었을 다른 이들의 시신도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분명 피는 수백 명분의 것인데, 시체도 유골도 하나도 없었습니다.”
“후계자뿐만 아니라, 다른 무사들의 시체까지 전부 말인가?”
“예. 거기에… 적들까지 말입니다. 땅에 파묻은 것도 아닌지, 땅을 아무리 파 보아도 나오는 것 하나 없었다 합니다.”
“하, 말도 안 되는… 있을 수 없는 일인데요.”
전령의 보고에, 백소하는 코웃음 치며 대꾸했다.
“연락이 끊기고, 인근의 지부나 소집령을 받은 고수들이 그 흔적을 찾는 데에 길어봤자 반나절, 하룻밤의 시간이었을 겁니다.”
“그래, 그 이상은 걸리지 않았겠지. 그만한 피의 양이라면 눈치채지 못하는 것도 어려울 테니.”
“맞습니다. 헌데, 그만한 시체를 하룻밤 만에 무슨 수로 치운단 말입니까? 열댓 정도도 아니고 수백?”
불가능한 일입니다.
백소하는 그렇게 말을 끝맺었다.
확실히, 그리 생각하면 그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본디 사람을 죽이는 것은 쉽지만, 그 뒤를 처리하는 것은 어려운 법이다.
괜히 전쟁의 이후에 죽은 병사들의 시체를 처리하는 일에 나라가 골머리를 썩는 게 아닌 것이다.
백소하가 하고 싶은 말은 단순해 보였다.
“…정보 자체가 잘못됐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건가?”
“청가의 대공자가 이끄는 조입니다. 그리 쉽게 당했다 하면 믿을 수 없는 게 당연하지요.”
“그건 그렇지.”
청명휘. 청가의 대공자.
‘제대로 본 것은 한 번이 다이지만…….’
청유백이 보기에, 그는 분명 누군가에게 쉬이 당할 만한 실력은 아니었다.
적철진과 쌍벽을 이룬다는 말은 결국 마교의 후계들 중 가장 강하다는 소리고, 그런 그가 도망도 치지 못하고 그냥 허무하게 죽었다는 말은 믿기 힘든 일이었다.
하물며, 혼자도 아니었을 터.
“청명휘 조의 인원이 어떻게 됐었지?”
“청명휘를 포함하여 다섯… 묵가와 녹가의 장남이 속해 있습니다. 더하여, 적우각과 제 형님께서도 계실 테구요.”
“…….”
그렇게 된다면, 확실히 그냥 죽어버렸다고 믿기는 힘들게 된다.
청명휘만큼은 아니겠지만 적우각의 무력도 의심할 나위 없고, 백가의 장남─백소상이라 했던가─까지 있다면 그리 쉽게 당하지는 않았으리라.
청유백은 고개를 끄덕이며 결론을 내렸다.
“시체가 없다면 아직 죽었다고는 확신할 수 없다.”
그리고는, 전령을 향해 고개를 돌려 물었다.
“며칠 된 정보지?”
“가장 발 빠른 고수가 밤낮으로 달려 도착한 것이 방금입니다. 아마 이틀이 지나지 않았을 겁니다.”
“…이틀이라.”
약강에서 오로목제까지 천리 길이 넘는 거리일 테다.
물론 관도가 놓여 있는 길이기는 하지만, 청유백 자신도 그 길을 이틀 만에 거스를 수 있을 것이라고는 장담할 수 없었다.
어떻게든 할 수 있다고 쳐도, 도착한 다음에는 싸울 기력은 전혀 없을 것이다.
청유백은 탁자에 올려져 있던 지도 앞으로 다가가 물었다.
“사라진 위치는?”
“약강에서 조금 떨어진 마을입니다. 근처의 지부들에서 병력을 모은다는 명령들이 하달되고 있었고, 일이 벌어진 것은 그 도중입니다.”
“약강의 지부를 빼앗긴 적의 수뇌 중 한 명이 기습했다고 보는 것이 옳겠군.”
지금 있는 단서로 유추할 수 있는 것은 그게 최선이었다.
일단 그들이 죽지 않았고, 어딘가에서 살아 있다고 가정한다면… 최대한 빠르게 움직여야만 했다.
‘여러 가능성이 있다.’
청명휘 조가 적에게 쫓겨 달아나는 중이거나.
혹은 도리어… 놈을 패퇴시켜, 추살하기 위해 쫓는 중이거나.
그들의 전력을 생각하면, 오히려 후자일 가능성도 없지는 않았다.
“오히려… 놈을 쫓아 서녕으로 향했을 수도 있겠군.”
“허나 그렇다면 지부에 연락을 넣지 않았겠습니까?”
“한시가 급한 상황이고, 약강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겠지. 그렇다면 조금 더 나아가 다른 지부에서 연락을 취한다는 선택도 해볼 법하다.”
“확실히…….”
인원을 나누는 것은 때로 훌륭한 전술이 될 수도 있지만, 오히려 스스로의 목을 조르는 자충수가 될 여지 또한 다분하다.
오히려 한 번에 다 같이 움직이며 추후의 보고를 도모하는 것이 더 안전했을 터.
“그 조에 네 형이 있다고 했었나?”
“예. 백소상… 나보다 우수한 사람입니다. 무슨 일이 있었든, 살아만 있다면 형님께서 올바른 길을 인도했을 겁니다.”
“그랬겠지.”
백가의 핏줄은 믿을 만했다.
백 년 전이든 지금이든, 그것은 별로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지금 필요한 것은, 다른 무엇도 아닌 빠른 결단.
아직 그들의 죽음이 확인되지 않은 상황이라면, 모든 경우를 상정하고 움직여야만 했다.
그리고 그것을 확인하려면 어찌 되었든 약강까지 도달해야만 하리라.
그 모든 흔적이 사라지기 전에 말이다.
“좋아, 곧바로 쫓는다. 본산의 연락을 기다리다간 늦어.”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백소하가 동의했지만, 청유백은 혼자 자리에서 일어나며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예?”
“나 혼자 간다.”
* * *
청유백은 곧장 필요한 것들만 챙겨 말을 몰았다.
적영이 미쳤냐며 청유백을 뜯어말리기는 했지만, 그녀도 결국 몸 상태가 온전하지는 않았기에 큰소리를 낼 수는 없었다.
천화가 허공에 둥실 뜬 채 한숨을 내쉬었다.
“굳이 혼자 가야만 했느냐?”
“가장 효율적인 선택이다.”
“물론 그야 그렇겠지만 말이다….”
이틀은 아니더라도 사흘 내로는 약강까지 다다라야 할 텐데, 무능한 황돈과 부상을 입은 적영까지 데리고 그 길을 달릴 수는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그렇다고 녹지연을 데려가자니 남은 이들이 오는 길이 불안하고, 백소하만 데려가면 적영의 통제가 되지 않을 것이 뻔하다.
그러니, 일단은 청유백 혼자 움직여 약강의 상황을 파악하는 것이 최선의 수였다.
백소하에게는 준비가 끝나는 대로 뒤따르라고 말해 둔 이후였다.
‘아직 본교의 전서구가 돌아오지 않았으니, 어쩌면 관여하지 말고 귀환하라는 명령이 올 수도 있겠지만…….’
청유백은 굳이 그런 명령을 들을 생각은 없었다.
지금 이것은 기회다.
사마신교의 육련 중 둘을 잡았고, 나머지 하나가 눈앞에 있다.
당장 쫓는다면, 놈들 전력의 반을 잡아내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허나 뭐가 불만인지, 천화는 한숨을 내쉬며 구시렁거렸다.
“…사람은 효율만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님을 어찌 모르느냐.”
“뭐라고?”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가서 이길 자신은 있느냐? 만약 청명휘란 아이가 패한 경우라면, 승산은 있느냔 말이다.”
“물론… 있다.”
“호오, 그래?”
천화는 흥미롭다는 듯 목을 울렸다.
적철진과 청명휘의 대립을 생각하면, 청명휘는 이미 최소한 마두를 넘어서는 실력이었을 테다.
어쩌면 그것도 넘어, 마군에 다다랐을지도 모른다.
마졸, 마사, 마두, 마군, 마주….
보통은 마두를 넘은 시점에서 절정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말한다.
백소하가 끽해야 마졸 수준이고 적영이 마사 상위 정도임을 고려하면, 그 실력 차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청명휘가 마군이라면, 적영이 백 명이 있어도 놈을 잡을까 말까 한다는 소리니까.
물론, 적영이 약한 것은 아니다.
마주는 본디 육대가의 가주를 이르는 명예직이고, 실질적 전력인 마군은 지금의 마교에 열댓이 채 되지 않을 것이다.
그 어떤 누구라도, 천재 중의 천재와 비교하는 것은 잔인한 일일 테다.
“얼마나 걸릴 것 같으냐?”
“글쎄, 빠르면 사흘, 아니면 나흘.”
일단은 첫날, 청유백은 쉬지 않고 말을 몰았다.
오로목제에서 약강까지는 관도가 나 있으니, 하루 정도는 전력으로 말을 몰 수 있다.
근본적으로 평원 분지이기도 하고 말이다.
하지만 단연, 아무리 교에서 길러낸 명마라고 하더라도 생물인 이상 지치기 마련.
어느 정도 속도를 조절하며 달렸음에도, 말은 한나절이 지나자 지쳐 헥헥거리기 시작했다.
청유백은 저 멀리 보이는 마을을 눈을 찌푸려 바라보며 말에서 내렸다.
“…이쯤인가.”
저기 저 멀리 보이는 마을은 토로번(吐魯蕃)이다.
청유백은 지금껏 달려온 길로 말의 머리를 돌리고는, 말의 엉덩이를 쳐 저 멀리 달려 보냈다.
운이 좋다면 다시 지부까지 돌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
천화가 물었다.
“말은 버릴 게냐?”
“여물 먹일 시간도 없어. 어차피 이제부터는 산길이고.”
이대로 관도를 타고 쭉 달려도 약강까지 도착할 수 있지만, 이 부근의 관도는 대부분 물길을 따라 나 있기 때문에 직선거리는 아니다.
가장 빠른 길을 찾는다면, 당연히 관도에서 벗어나 산을 일직선으로 주파하는 게 가장 빠르다.
청유백은 곧장 관도를 벗어나 내달렸고, 곧 주변의 풍경은 평원에서 바위산으로 바뀌어 갔다.
나름 절경이라면 절경이라 할 법한 풍광들이 스쳐 지나갔지만, 지금 그것들을 여유롭게 관람할 시간은 없었다.
시간이 지났다.
하루, 이틀.
살풍경한 붉은색의 바위산도 끝이 보이기 시작했고, 청유백의 기억대로라면 분명 곧 다시 평원 분지가 나올 것이었다.
“사람이 없으니 거리낌 없이 내달릴 수 있어 좋구나. 이목을 끌지도 않고, 풍광에 묻어오는 산새 소리도 꽤 좋으니라.”
“달리는 내 입장도 좀 생각해 줬으면 하는데?”
“뭐, 본녀 알 바는 아니지 않더냐. 헌데…….”
청유백이 빠르게 바닥을 박차는 동안, 천화는 어딘가를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저기, 뭔가가 있구나.”
“……?”
청유백은 힐끗 눈을 돌렸다.
‘저기’라고 칭하기에는 상당히 먼 거리에, 말마따나 뭔가가 있었다.
잘 보지 않으면 점으로 보일 만한 거리이기는 했지만, 주변을 가리는 나무들이 없었기에 똑똑히 보여왔다.
그것은 사람이었다.
일견 보기에 젊은 두 명의 남녀.
대충 보기에 일행인 듯 보였지만, 마치 서로 싸우는 것 같아 보였다.
청유백은 숨을 다잡으며 대꾸했다.
“알 바 아니야. 신경 쓸 시간 없다.”
그냥 무시하고 지나치면 그뿐이었다.
저들이 딱히 곤경에 처해 있는 것도 아니고, 지나가는 여행객에게 인사를 할 여유도 없다.
더하여, 설령 산적에게 습격받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신경 쓰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보시오! 거기 가는 형씨! 길 좀 물읍시다!”
저 멀리─ 분명 기척조차 느껴지지 않을 거리에서, 사내의 목소리가 귓가에 때려져 들려왔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