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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우면 네가 천마 하든가-161화 (161/200)

제161화. 상정치 못한 사태 (1)

백소하가 또르륵 흘러내릴 것만 같은 눈물을 코로 훌쩍일 무렵, 방문이 부서질 듯이 거칠게 열어젖혀졌다.

─콰아앙!!

“야! 청유백! 나는?!”

안 부서진 게 용하다 싶은 문 뒤로 고개를 내민 것은 적영이었다.

온몸에 붕대를 칭칭 감고 있었고, 다리와 팔에는 부목이 대어져 거진 몇 달은 정양해야 할 듯 보였다.

농담으로라도 몸은 괜찮으냐고 묻는 것이 무의미할 상처로 보였지만, 정신만큼은 심히 멀쩡해 보였다.

좀 기운이 떨어져도 좋을 텐데─ 싶은 속마음을 애써 삼키며, 청유백은 고개를 돌렸다.

“몸은 좀 괜찮나?”

“얼씨구, 네가 언제부터 나를 그렇게 걱정했다고? 말 돌리지 마. 녹지연 그년한테 들었거든. 내 것도 있지?”

“…있긴 하지.”

과연 그게 저 꼬라지로 여길 쳐들어와서 받아내야만 하는 물건인지는 조금 의문이 들지만 말이야.

청유백은 한숨을 내쉬며 허리춤의 칼 한 자루를 끌렀다.

청유백의 허리춤에 새로 매달린 칼은 두 자루였고, 그중 하나는 적영을 위한 것이었다.

그녀 또한 검묘에서 가져온 애병이 있기야 하겠지만, 무릇 무인에게 좋은 병기란 아낙의 보석과도 같은 의미 아니겠는가.

백소하는 청유백이 칼을 끄르는 것을 보며 눈총 어린 시선을 보내왔다.

“…왜 다른 사람들은 선물인데 나만 일감입니까?”

“딱히 그럴싸한 게 안 보여서. 갖고 싶은 거라도 있나?”

“그야 그런 건 없습니다만…….”

솔직히 딱히 필요한 물건이 없는 것도 맞다.

달리 취미가 있는 것도 아니고, 부족함 없이 살아온지라 뭔가 갖고 싶다는 욕망도 딱히 없었다.

하지만 자신도 사람인지라, 아쉬움을 느끼는 것도 당연한 법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청유백이 가져온 것이 또 쓸모없는 것은 아니었던지라─

책사의 자존심상, 차마 ‘없느니만 못한 물건이다’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냥, 인간답게 좀 아쉬울 뿐.

백소하는 푹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이렇게 하지.”

그리고, 그를 보고 있던 청유백은 미소를 띠며 눈꼬리를 올렸다.

“적영.”

“앙?”

“이 칼은 너 갖고, 이 돈 가지고 저놈 데리고 나가서 뭐라도 먹여.”

청유백은 마침 다 끄른 도를 적영에게 던져 주었다.

날의 예리함이나 강도는 검묘에 있던 것에 미치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그 화려함은 천하의 어느 보도(寶刀) 못지않았다.

뭐, 청유백은 화려한 것을 썩 좋아하지 않았기에 그런 안목도 출중하다 자부하지는 못하긴 하지만.

그래도 천화가 그리 말했으니 틀림없을 것이다.

그리고 정확히 들어맞았는지, 적영은 눈을 반짝이며 대답했다.

“내가 가져도 되는 거야?”

“마땅한 전리품이지.”

그리고 청유백은 품에서 비단 주머니 하나를 꺼내어 적영에게 이어 던졌다.

묵직하게 울리는 금속의 소리에 적영이 그것을 열어 보자, 은전과 동전 몇 냥이 뒤섞여 있었다.

청유백은 뒤이어 마지막 주머니까지 던져 주었다.

“모자랄 일은 없겠지만, 갑질하고 싶으면 이쪽을 쓰고. 어차피 며칠 내로 떠날 거니까 이목을 끌든 말든 상관없어.”

“흐응, 통 크네.”

“내 돈 아니니까 상관없는 거지.”

마지막 주머니에 한가득 들어 있는 것은 금전이었다.

금색 주머니에 수놓아진 황(黃) 자가 심히 익숙한 것이, 아는 누군가의 물건은 아닌가 싶었지만 뭐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닐 것이다.

적영은 빵긋 웃으며 백소하의 멱살을 잡아끌었다.

“뭐 좋아! 까짓거 기분이다.”

“예? 아니, 내가 왜…….”

“닥치고 따라 나와! 나가 달라잖아. 쟤도 자신만의 시간이 필요한 것 아니겠어?”

“내 선물 얘기하고 있던 것 아니었… 아악!”

나약한 백소하는 적영의 손길을 거부하지 못했다.

청유백은 그대로 바깥으로 비틀비틀 끌려 나가는 백소하를 향해 손을 흔들었고, 흔들리는 손 사이로 비통과 애환이 뒤섞인 백소하의 눈빛이 교차했다.

말로만 저러는 거지, 아마도 행복할 것이다.

아니라고? 아니면 말고.

청유백은 백소하가 입도 대지 못한 채 남겨두고 간 차에 손을 뻗으며 미소를 지었다.

“향이 좋군.”

* * *

적영은 곧장 백소하를 끌고 거리로 나갔다.

백소하는 마지막 희망으로 녹지연에게 환자는 안정이 필요하지 않겠느냐고 물어도 봤지만, 절망적이게도 ‘괜찮다’라는 대답이 돌아왔을 뿐이었다.

쥔 멱살은 머지않아 풀렸다.

하지만 백소하는 한숨을 그치지 않았고, 그녀는 백소하를 돌아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왜 그렇게 죽상이야? 죽을래?”

“아뇨. 사양하겠습니다…….”

“그럼, 내가 마음에 안 드는 거야? 네가 나를 그렇게까지 싫어하는 줄은 몰랐는데.”

적영은 팔짱을 낀 채로 고개를 까딱였다.

나름 선의로 한 행동이었지만, 백소하 본인이 싫어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또 아니었는지, 백소하는 화들짝 놀라며 소스라치듯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아, 아뇨! 그럴 리가요. 그건 아닙니다. …아닐 겁니다.”

“맞으면 맞는 거고 아니면 아닌 거지. 아닐 것 같은 건 뭐야?”

“그냥… 당신도 썩 괜찮은 상태는 아니지 않습니까. 무리시키고 싶지 않았습니다. 내 만족과는 별개이지 않습니까.”

“걱정도 팔자다. 괜찮다니까? 녹지연도 괜찮다고 했잖아.”

“걱정하는 것도 내 일입니다.”

“시끄러워, 이 일 중독자 자식아.”

─빠악!

적영은 툭 하고 백소하의 팔을 치며 피식 웃었다.

백소하는 곧장 팔을 부여잡고 신음을 흘렸지만, 적영은 앙탈은! 하고 소리치며 반대쪽 팔도 툭 칠 뿐이었다.

“끄읍…….”

“내 몸은 내가 제일 잘 알아. 싫은 게 아니면 그냥 얌전히 따라오기나 하라고. 알겠어?”

“아, 알겠다고요…….”

이후, 적영이 백소하를 데리고 간 장소는 꽤 거대한 기루였다.

홍등가의 외곽에 위치하여 이목은 별로 끌지 못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확실히 그 위용은 고급 기루라 불릴 만한 것이었다.

하지만 기루라.

점심 먹기에는 썩 적합하지는 않은 장소가 아닌가.

백소하는 별로 여색을 즐기는 편이 아니었으며, 적영은 굳이 말할 것도 없을 것이었다.

‘설마 모르고 오지는 않았을 텐데…….’

자연스럽게 기루의 문으로 들어서는 적영을 보며 백소하는 의뭉스러운 투로 입을 열었다.

“굳이 이곳인 이유가 있습니까?”

백소하는 한순간 ‘그냥 예쁘잖아?’ 수준의 대답이 나올 수도 있으리라고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그녀를 너무 무시한 처사였던 모양이었다.

그녀의 대답은 꽤 상식적인 것이었다.

최소한, 백소하의 예상에 비해서는 다분히 상식적이었다.

“일 중독인 너를 위해서! 이왕이면 우리 지부와 연관이 있는 곳으로 골랐지. 어때?”

이게 맞나?

보통 일 중독을 걱정하면 오히려 푹 쉴 수 있는 곳으로 보내주지 않나 싶기는 한데, 이게 그녀 나름의 배려이리라 생각하며 백소하는 그녀를 따라 들어갔다.

“그런 건 언제 알아본 겁니까?”

“지부장이 황돈한테 도움을 청한 모양이라.”

“그게 너랑 무슨 상관인지…?”

“내가 누워 있는 옆방에서 허구한 날 지랄하는데 어떻게 못 들어? 못 들으면 그게 병신이지.”

“으음…….”

그리 말하면 맞는 것도 같다.

‘그래. 결과는 좀 미묘하긴 하지만, 결국 이 모든 것은 그녀의 배려로부터 비롯된 것들일 테지.’

백소하는 아직도 아픈 팔을 애써 쓰다듬으며 기루 안쪽으로 들어갔다.

잘 가꾸어진 화초와 관목들은 척 보기에도 빼어나, 손님들의 이목을 끌 것이 분명해 보였다.

‘하지만… 지부장이 황도식에게 도움을 청했다는 것은, 필경 무언가 문제가 있다는 소리.’

겉보기에는 이곳에 무언가 문제가 있을 것 같다고 생각지도 못할 외관이었다.

백소하는 일단 지켜보기로 하고 그녀를 따랐고, 곧 기루 본관 안에서 한 사내가 다가와 입을 열었다.

“무엇을 찾으러 오셨습니까?”

‘이 질문은…….’

꽤 의외였다.

가장 첫 말은 ‘지금은 장사 시간이 아닙니다’ 정도라도 나올 줄 알았는데, 곧장 백소하와 적영이 마교의 사람이라는 것을 간파한 모양이었다.

‘아니면 이미 지부에서 오기로 한 사람이 있던가.’

……뭐 그 경우라면, 젊은 남녀가 함께, 그것도 대낮에 기루를 찾는다는 상황이 평범하지는 않을 테니 쉽게 유추할 수 있었을 것이다.

백소하는 잠깐 가만히 있다가, 적영의 멍청한─에? 뭘 찾아?─ 표정을 보고 나서야 상황을 이해했다.

…지부장과 황돈의 대화는 들었지만, 암호는 듣지 못한 모양이었다.

백소하는 앞으로 나서서 대답했다.

“한겨울에 가장 아름다운 꽃을 찾으러 왔네.”

“지금은 여름입니다. 때를 잘못 찾으신 것 같습니다만.”

“저 산맥을 넘어 천산에 다다르면 아직 녹지 않은 눈도 있지 않겠나.”

짧은 문답이었다.

애초에 마교의 사람이라고 확신하지 않으면 꺼내지도 않는 질문이었으니, 구태여 표식 같은 것을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사내는 곧 고개를 숙여 그들을 맞았다.

“지부에서 오신 분들이시군요. 연락을 받았습니다. 헌데, 분명 내일쯤 오시기로 하신 게 아닌지…….”

“일정이 조금 바뀌었다. 상황을 좀 보지.”

“아,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사내는 두 사람을 기루의 위층으로 안내했다.

아직 이른 낮이라 그런지 기녀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백소하와 적영은 넓은 층의 중앙을 둘이서 독차지하게 되었다.

그 층은 수십 개의 원형 탁자가 비치되어 여럿이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형태였지만, 지금은 그들밖에 없었다.

사내가 음식을 준비하겠다 말하고 떠나간 뒤, 적영이 백소하에게 속삭였다.

“…암호는 어떻게 알았어?”

“백가의 자식은 중원 천지 모든 지부의 암호를 다 외워야 합니다.”

“지난번엔 지부 위치라며?”

“굳이 말하지 않은 겁니다. 당연히 암호도 포함이죠. 위치 알아봤자 접근을 못하면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나라면 이미 머리가 터져 죽었을지도 모르겠다.”

적영은 먼저 나온 차를 홀짝이며 대꾸했다.

그리고 이어 내쉬어지는 한숨에, 백소하는 그런 말 말라며 말을 이었다.

“사람마다 잘 하는 것이 다른 겁니다. 너는 나보다 잘 싸우지 않습니까. 오히려 나는 네가 부럽습니다.”

“부럽기는. 약해 빠졌는걸.”

적영은 지금의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사람들이 자신을 보고 강하다 하지만, 그것은 결국 적가의 자식으로서 요구받은 최소한의 자격일 뿐이다.

정말로 ‘강하다’라고 불리기에는 너무도 모자란 실력이었다.

‘오라버니 두 분, 청가의 대공자, 그리고… 빌어먹을 청유백 그 사람도.’

당장 눈앞에 놓인 벽만 해도 이렇게나 많지 않던가.

지금 자신들과 같이 사마신교를 쫓는 임무를 해결하는 중에도, 그들은 착실하게 강해지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정체되어 있는 자신과는 다르게.

백소하는 그런 적영의 마음을 눈치챘는지, 혹은 그저 표정으로 넘겨짚었을 뿐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녀가 자신에게 했던 것처럼, 다만 보다 부드럽게 팔을 한 대 툭 쳤다.

“노력하면, 언젠가는 닿을 수 있겠지요.”

“…그래, 언젠가는 말이지.”

언젠가는.

적영은 살풋 웃었다.

무인에게 있어 그것이 얼마나 잔인한 말인지 알고 한 말일까.

하지만, 지금 구태여 그 화제에 대해 이야기를 더 꺼내고 싶지는 않았다.

적영은 오로목제까지 왔던 여행길의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상 가득히 차려진 음식이 내어져 왔다.

“음, 훌륭한데! 숙수 실력이 썩 괜찮은 모양이야!”

“그러게 말입니다. 기분 전환은 확실히 되는군요.”

“킥킥, 다 내 덕이지?”

“…아마도요.”

“아마도는 무슨! 확실히지!”

음식의 맛은 꽤 괜찮았고, 적영과 백소하는 밝게 웃으며 식사를 끝냈다.

그리고 곧, 처음 그들을 안내했던 사내가 다가와 식후의 차를 내밀며 고개를 숙였다.

“식사는 입에 맞으셨는지요.”

“훌륭하더군. 음식은 문제가 없어.”

“저희 자랑거리 중 하나이니 말입니다. 마음에 드셨다니 다행이군요.”

“그래서, 가장 큰 문제가 뭐지?”

“오는 손님은 꽤 많습니다만… 지갑을 크게 여시는 분이 상당히 적습니다.”

지갑을 여는 이가 적다.

손님이 많다 한들, 방의 개수가 한정되어 있는 기루에서는 상당히 문제가 되는 일이었다.

기루는 결국 하룻밤을 파는 장사.

하룻밤에 받을 수 있는 손님의 수가 한정되어 있으니, 이른바 호구가 없다면 기대 수익은 현저히 줄어들고 마는 것이다.

“음식의 질도, 기녀들의 수준도 어느 곳에 밀리지 않는다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이기에…….”

“흐음.”

백소하는 슬쩍 자신들이 있는 층의 전경을 돌아보았다.

일견 보기에 이곳은 식당이었다.

보통 방 한 칸 한 칸으로 나누어져 있는 기루의 방들과는 다르게, 이곳의 층은 탁 트여져 보통 손님들이 식사를 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이곳은 밤에도 개방되어 있나?”

“네? 네. 대체로 그렇습니다. 본래는 밤을 지내고 오신 손님들께 아침을 대접하기 위해 만든 공간이나… 워낙 평이 좋은지라 그냥 밤에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편이 손님이 많을 테니까요.”

쯧.

백소하는 가볍게 혀를 찼다.

자신이 황돈만큼 상술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지는 않았지만, 그가 이 자리에 있더라도 같은 반응을 보였을 것이다.

‘기루는 식당이 아닌데.’

마냥 손님이 많다고 좋아할 게 아니란 말이다.

물론, 식당처럼 운영해도 살아남을 수 있는 기루는 있다.

천혜의 풍경을 즐기며, 달빛 아래에서 즐기는 한 잔 술을 파는 것만으로 수 개의 은과 금을 벌어들이는 기루도 물론 있다.

…하지만, 이곳은 그런 풍경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바깥으로 보이는 것은 성벽에 둘러싸인 거리뿐이니까.

“좀 더 공격적인 장사 방식이 필요한 때라고 보네.”

“공격적인… 방식 말씀이십니까?”

사내가 침을 꿀꺽 삼키며 대답했고, 문득 적영이 입을 열었다.

“손님을 공격해서 돈을 뺏을까?”

“……?”

“공격적이라며?”

“…….”

그걸 그리 말하면 맞기는 한데….

백소하는 한숨을 내쉬며 들고 있던 찻잔을 꽉 쥐었다.

뭐, 그의 악력으로는 찻잔을 쥔 채로 깨부수는 것은 불가능한지라 조금 팔이 부르르 떨릴 뿐이었다만.

백소하는 몇 번인가 숨을 내쉬며 마음의 평화를 되찾고는, 적영을 돌아보며 대꾸했다.

“하긴, 뭐 이런 말도 있지 않습니까. 칼로 흥한 자…….”

“아, 나도 그거 알아. ‘칼로 망하리라’. 맞지?”

“아뇨, 일단 흥하긴 흥하더라. 망하는 건 나중 일이고요.”

“…….”

“뭐 당연히 농담이지만요. 가만히 좀 계십쇼. 그게 도와주는 겁니다.”

* * *

“즐거운 시간 보내다 왔나?”

“즐거워 보입니까?”

뭐 저런 시건방진 질문이 다 있지.

백소하는 피곤할 대로 피곤해진 눈꺼풀을 짓누르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미 백소하는 자신이 왜 나가게 되었었는지조차 까맣게 잊은 이후였다.

선물이고 뭐고, 휴식이랍시고 나가서 결국 오늘도 일만 잔뜩 얻고 돌아온 꼴이었다.

청유백은 피식 웃으며 백소하를 따라 들어온 적영을 가리켰다.

“쟤는 즐거워 보이는데.”

“…….”

말마따나 그녀는 꽤 만족스러운 표정이었다.

음식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다른 무엇 때문이었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말이다.

백소하는 한숨을 내쉬며 대꾸했다.

“…그래요, 뭐 그거면 됐습니다.”

좀 바쁘긴 했지만, 내일이야말로 푹 쉬면 그만인 일이다.

당장 오늘은 행복했으니 그것이면 되지 않겠는가.

며칠 전 띄운 전서구의 답신이 돌아오기 전까지는 나름 여유가 있을 터였다…….

그리고, 잠시 후.

─화악!

그들의 방문이 다급하게 열렸다.

기척도, 인사도 없이 황급히 들어와 고개를 숙인 사내는 청유백도 백소하도 알지 못하는 사내였다.

“그, 급보입니다!! 먼저 약강(約江)지역의 제압을 끝냈던 청명휘 조가 서녕으로 향했고, 그 결과─”

그리고, 그가 이어 꺼낸 말도 전혀 상정치 못한 소식이었다.

“궤, 궤멸당했다고 합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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