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0화.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나미아미타불 (5)
공허한 소리가 울린다.
저벅, 저벅.
한 치 앞이나 겨우 알아볼 법한 작은 불빛을 따라 도열한 수십 명의 사람들 앞으로 한 사내가 들어섰다.
거구의 사내였다.
거진 다른 사람들 덩치의 두 배 정도는 될 법한 덩치가 한 걸음씩 내딛을 때마다 이 공간이 울리는 것 같았다.
길의 끝에는 원탁이 있었다.
그에 걸맞은 의자는 여섯 개가 비치되어 있었지만, 지금 그 의자에 앉아 있는 사람은 두 명뿐.
그리고 들어선 사내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자리를 찾아 앉았다.
이로써 앉은 사람은 셋이 되었다.
앉은 이들 중, 금색의 머리칼을 지닌 여인이 넌지시 입을 열었다.
금의 머리칼과 청색의 눈.
색목인이라 부르는 유의 여인이었다.
“…늦었어요.”
“뒤처리를 좀 하느라.”
그리고, 저 멀리서 낮게 날아 들어오는 매가 한 마리 보였다.
매는 곧장 날아와, 방금 들어선 사내의 어깨에 내려앉았다.
거칠게 날개를 휘젓는 매의 성정은 몹시도 사나워, 마치 방금까지 사냥이라도 하다 날아온 것 같았다.
여인은 그 매와 사내를 힐끗 번갈아 바라보았다.
“결국 죽인 건가요?”
“앙? 뭐, 상관 없잖냐?”
“상관이야 없지만, 의심은 사겠죠.”
“뭐 어떠냐. 어차피 곧 끝날 텐데.”
거구의 사내는 코웃음 치며 턱을 괴고 앉았다.
이 자리에 있는 것도 썩 달갑지는 않은지, 협조적이지는 않은 태도였다.
“대충 끝내자고. 이쪽도 이쪽대로 바쁘단 말씀이야.”
“조금은 집중하는 게 어떻습니까?”
“무능한 놈들 뒤져서 뒤처리하는 회의를 뭣 하러?”
사내는 자신이 불려온 이유를 알고 있었다.
며칠 전, 오로목제에서 임무를 수행하던 백련과 녹련이 마교의 종자들에게 참패를 당했기 때문이었다.
“명예로운 사마신교의 육련이라는 것들이 그딴 추태라니. 말이나 되나? 사람을 잘못 뽑은 거 아냐?”
애초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백련, 교아는 머리는 좀 굴릴 줄 알지만 그 이상으로 미친놈이라 아무런 장점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계획을 짜면 뭐 하는가?
지가 짠 계획을, 지가 스스로 사지로 나가 전부 망쳐 버리는데.
‘녹련 놈도 마찬가지지.’
낙무열은 애초에 아무런 힘없는 노인일 뿐이었다.
무의 재능도, 술(術)의 재능도 없다.
그저 녹련의 시술을 버틸 만한 영혼을 지니고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 그 자리에 앉은 인간이었다.
“난 처음부터 마음에 안 들었어.”
“이보세요, 당신…….”
“시끄럽다. 나한테 설교하고 싶으면 황련 네년도 나가서 뭐라도 들고 오든가. 네년이 할 줄 아는 건 이래라저래라 지시하는 것밖에 없냐?”
사내가 이죽거리며 씹듯이 내뱉었다.
그는 항상 전선에는 나서지 않고, 이 어두침침한 곳에만 박혀 있는 저 여자를 좋아하지 않았다.
말뿐인 계획은 언제나 허점이 있고, 문제가 있는 법이다.
‘자고로 증명을 하려면 행동으로 해야 하는 법이지.’
황련은 대꾸하지 못했다.
아니, 한숨을 내쉬는 것을 보면 구태여 분쟁의 불씨를 지피고 싶어 하지 않는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문득.
가만히 있던 세 번째 사내가 입을 열었다.
“…청련, ───.”
팔짱을 낀 채로, 그들의 이야기를 묵묵하게 듣고 있던 사내가 입을 열자, 청련이라 불린 거구의 사내는 흠칫하며 그를 돌아보았다.
그저 단순한 호명이었고, 그 이외의 무엇도 없었다.
그는 청련을 바라보지도 않았으며, 그저 팔짱을 낀 채로 고개를 숙이고 있을 뿐이었다.
헌데도, 고작 이름을 불린 것만으로 전신의 근육이 수축했다.
긴장하여, 저 무방비한 상태의 사내에게 대비하기 위하여 본능이 움직였다.
직후, 사내는 말을 이었다.
“그분의 선택을 의심하는 건가?”
“…….”
그분.
그래, …그분.
청련은 자연스럽게 살짝 가빠오려 했던 숨을 내쉬었다.
한숨을 내쉬는 형태가 되어, 그리 추하지는 않았노라고 스스로 안심했다.
‘그래, 모든 것은 그분을 위해서가 아니던가.’
이 원탁, 마지막 여섯 번째 자리.
특히나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는 저 옥좌에 앉기 위한 그분을 맞이하기 위한 과정이었다.
청련이 대답했다.
“그건 아니지…요.”
“그쯤 해두세요. 저는 별로 상관없습니다.”
황련이 끼어들어 상황을 자연스레 무마했고, 사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내는 이어 황련에게 물었다.
“백련은 또 살릴 건가?”
“글쎄요… 현명하진 않을 선택입니다. 지난번에 살렸을 땐 제 놈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했으니. 한 번 더 살려 봤자 그리 쓸모가 있지는 않을 테죠.”
사마신교의 육련.
그들은 각기 다른 방법으로 죽음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지만, 각자 그에 걸맞은 대가를 필요로 했다.
그리고 백련의 경우는 기억.
교아는 이미 몇 번의 죽음을 거쳤고, 그때마다 기억을 잃었다.
지난번 부활에서는 자신의 이름까지도 까먹었으니, 다음에는 또 무엇을 잊을지 모른다.
“언어를 잊을 수도 있고, 무술을 잊을 수도 있고… 쓸모없는 인간이 나오면, 애꿎은 제물만 낭비하는 셈이에요.”
누군가 보면 인간을 물건처럼 말하는 행태가 두렵다 말할지도 모르겠지만, 최소한 이 중에 그것에 관하여 걸고넘어질 사람은 없었다.
황련은 그 말로 이 쓸모없는 주제를 끝맺을 생각이었지만, 청련이 대꾸했다.
“살려. 몸만.”
“…그건 또 무슨 소린가요?”
“내가 좀 써먹자. 괜찮잖냐? 기억은 싹 조져놔도 되니까, 한 번만 더 살려봐라.”
기억은 망쳐도 되니까 살리라니.
황련은 백련의 시술을 한 번 발동할 때마다 죽여야 하는 제물이 몇인지는 알고 지껄이는 걸까 싶었지만, 청련이 무엇을 하고자 하는 것인지 이해했기에 굳이 대꾸하진 않았다.
대신, 한숨을 내쉬며 이죽거릴 뿐이었다.
“이번에 얻은 장난감은 벌써 질린 건가요? 꽤 귀한 도련님이라면서.”
“하하, 그건 그거고… 난 아끼는 건 마지막에 먹는 부류라고. 해줄 거야, 말 거야?”
황련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해주지 않으면 이 제멋대로인 사내는 이곳에서 나간 다음에는 무슨 난장을 피울지 모르고, 그것을 처리하는 것은 썩 즐거운 일이 아닐 터였다.
“…한 번만이에요.”
“킥, 어차피 두 번은 없어.”
그래, 말마따나 두 번은 없으리라.
영원한 죽음이 찾아오든, 그분께서 여섯 번째 자리에 앉는 날이 오든.
머지않아 그날이 찾아올 테니.
* * *
“겨우 따돌렸구만…….”
“마지막에 그건 진짜로 죽이려고 한 것 같지 않으냐?”
“진심이었을걸? 죽이면 2만 냥 이득이잖아.”
“2만 냥이면 가족도 팔 수 있는 돈이기는 하지…….”
휴!
청유백은 가까스로 신월을 따돌린 골목에서 숨을 골랐다.
어쩌면 이 근처에서 그림자에 녹아들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기는 하지만, 설마 그렇게까지 따라오지는 않았으리라.
청유백은 거리로 나가 객잔으로 돌아왔다.
마침 보내 놓았던 하인들이 사례품─을 빙자한 갈취품─을 수레에 담고 도착해 있었고, 지부장이 뛰쳐나와 그것들을 확인하고 있었다.
그런데 뭔가 기이한 것이….
“내가 뜯은 것보다 많은데?”
“그러게나 말이다.”
청유백이 가져간 것은 보따리 하나 정도였는데, 그들이 가져온 것은 수레 한 대 분량이었다.
그것에 가득 담긴 것은 모종의 궤짝이었고, 그 안에 무엇이 담겨 있는지는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성의 표시 하나는 확실한 아이로구나.”
“뭐, 준다는데 거절할 이유 없지.”
황돈의 정성 어린 발악이 무의미하게 된 것은 좀 서글프지만, 돈은 뭐 언제나 다다익선인 법이다.
청유백은 수레에서 자신이 챙겼던 보따리를 찾았고, 그것들 중 칼과 작은 궤짝만 빼 들어 객잔 안쪽으로 향했다.
가장 먼저 마주친 것은 녹지연이었다.
녹지연은 방금까지 적영의 상태를 돌보고 있었는지, 머리를 뒤로 묶고 소매를 걷어붙인 상태였다.
그녀의 체취에서 살짝 배어 나오는 약향은 그 사실에 의심의 여지를 없게 만들었다.
그녀는 청유백을 발견하고는 돌아보며 살짝 손을 흔들어 보였다.
“언제 돌아오셨어요?”
“방금.”
청유백은 가볍게 대꾸하며 품에 안았던 궤짝을 그녀에게 내밀었다.
이건 선물, 이라고 덧붙이면서 말이다.
“열어 봐도 되나요?”
“그리 대단한 건 아니야.”
사실 대단한 물건이다.
청유백도 잘 모르는 약재이기는 했지만, 천화가 그리 말했으니 틀림없으리라.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선물을 전해주며 뻗대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추한 일 중 하나일 테다.
녹지연은 곧장 그 궤짝을 열어 보았다.
“이건…….”
안에 들어 있는 것은 괴이하게 생긴 곤충이었다.
몸에 버섯이 피어나, 하얗게 새어버린 기묘한 곤충.
이르기를, 동충하초라고 부르는 모양이었다.
녹지연의 눈이 잠깐 크게 떠졌지만, 다시 원래대로 되돌아왔다.
“감사해요. 귀한 약재는 언제나 의원의 기쁨이죠.”
사실 그것보다 백만 배쯤 더 귀한 게 있었는데 날려먹었다, 라고는 말할 수 없는 청유백이었다.
‘뭐 저것도 나름 귀한 거랬으니….’
일단 만족하면 그것으로 된 것 아니겠는가.
“만족하면 그걸로 됐다.”
“만족하냐고 물으시면… 음, 그건 좀 미묘하긴 한데요…….”
“따로 원하는 것이라도?”
“…아니에요. 이거면 됐어요.”
동충하초가 귀한 것은 안다.
연구할 기회도, 문헌도 별로 없어 잘은 모르지만 누군가에게는 불로초와도 같은 천연의 영약이라 칭송받는 약재가 바로 동충하초다.
하지만, 글쎄…….
‘……그래도 날 생각해서 찾아준 거니까.’
녹지연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뭐 많은 것을 바라겠는가.
지금은 이것이면 되었다.
녹지연은 한숨을 내쉬며 그렇게 되뇌었다.
청유백은 녹지연을 지나쳤고, 그런 그에게 천화가 귓가에 속삭였다.
[등신 새끼…….]
‘왜?’
[…아무것도 아니니라.]
청유백에게는 영문을 모를 소리였지만, 천화는 계속 귓가에서 영문 모를 소리를 반복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병신이라느니 등신이라느니.
이유라도 알려 주든가 싶었다만, 결국 청유백은 백소하의 방에 도착할 때까지 이유를 알지 못했다.
그리고 청유백이 백소하의 방에 도착하자마자 본 것은, 너무나도 당당한 얼굴로 손을 내밀고 있는 백소하였다.
“뭐.”
“주십쇼.”
“뭘.”
“아래에서 뭔가 챙기는 걸 봤습니다. 저만큼 챙겼으면 당연히 제 것도 따로 있을 것 아닙니까? 네놈 칼도 두 자루 늘어난 걸 보니, 당연히 따로 챙겼을 거고요.”
“뭐, 네가 그렇게 원한다면야…….”
─턱.
청유백은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당당히 뻗어진 백소하의 손 위에 올려놓았다.
백소하는 어이없다는 듯 물었다.
“…이건 뭡니까?”
“장부.”
“무슨 장부?”
“성여문의 장부. 직접 쓴 거.”
“…….”
백소하는 인상을 찡그리면서도 일단 그것을 받아들기는 했다.
차마 이대로 책을 떨어뜨리기에는 책을 소중히 하라는 교육이 몸에 배어 있었기 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다.
백소하는 그것을 팔락이며 확인하고, 목적지나 수량 등을 다른 것들과 대조하고는 암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진품이네요. 진품인데…….”
…차마 기쁘다고 할 수가 없었다.
이거 선물이 맞기는 한가?
하지만 따지고 들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마땅히 챙겨 와야 하는 것은 맞았으니까…….
백소하는 눈물을 삼키며 새로 들어온 장부를 펼치기 시작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