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9화.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나미아미타불 (4)
청유백은 거리낄 것 없이 문을 열고 들어갔다.
무엇을 하고 있을까 일말의 궁금증이 생기기는 했지만, 들어가서 확인해 보면 될 일이니 말이다.
…헌데, 안쪽에는 상상도 하지 못한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이게 대체 무슨?”
“아, 그 구석에 잠깐 계셔 주실래요? 곧 치울 테니까…….”
방 안은 거의 난장판이었다.
아니, 거의가 아니라 완벽하게 난장판 그 자체였다.
문은 저리 말끔하게 수리해 놓고 방 안쪽은 다 박살 난 상태인가 싶었지만, 의외로 가구들은 멀쩡히 제 위치에서 목숨을 부지하고 있었다.
방바닥을 가득 채우고, 아무렇게나 굴러다니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대량의 서책.
그중에서도, 쓰여진 형태를 보니 모종의 장부로 보이는 물건들이었다.
성시소는 자리에서 일어나 황급하게 탁자 앞쪽의 자리에서 책들을 밀어냈고, 사람 한 명이 겨우 앉을 수 있을 법한 공간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 작업이 끝난 후에야 청유백은 가까스로 바닥에 앉을 수 있었다.
묻지 않으려고 했는데, 이 광경을 보고 참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청유백은 한숨을 내쉬었다.
“뭘 하는 거지?”
“일단은 살펴보고 있어요.”
“그러니까, 뭘?”
청유백은 힐끗 주변을 돌아보았다.
전부 장부기는 하지만, 그다지 일관성은 없었다.
표지의 상태만 봐도 오래된 것과 최근의 것이 뒤섞여 있다는 사실을 쉬이 알 수 있었으니까.
게다가 장부라는 것은, 이 성씨세가가 근본적으로 상가(商家)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전혀 특이할 것이 없는 물건인 것이다.
‘이렇게나 많은 이유야 뭐…….’
성씨세가가 주관하는 것이 이 거대한 도시 전부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더욱 이상할 것도 없다.
“아버지는 제게도 숨기는 것 하나 없이, 평생을 떳떳하게 살아오신 분이시지만…….”
성시소는 살피고 있던 장부를 덮으며 청유백을 돌아보았다.
그 눈에 슬픔은 없었다.
무언가 있다면, 하나의 결연한 의지뿐이었다.
“아버지의 몸을 빼앗은 그자는… 그렇지 않겠죠.”
“…그건 그렇겠지.”
“괜찮아요. 마음 쓰지 마세요. 오늘이 지나기 전에 끝날 일이니까요.”
성시소는 웃고 있었지만, 억지로 짓는 미소인 것이 대놓고 티 났다.
그래, 어찌 정상일 수 있을까.
“……그래.”
청유백은 가벼이 대꾸했지만, 썩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다.
그것은 천화도 마찬가지였다.
어찌 편하게 있을 수가 있겠는가.
‘우리가 성여문을 죽인 건 아니겠다만…….’
[결국 결과는 비슷하지 않더냐.]
청유백이 성시소에게 하라고 부추긴 일은 결국, 성여문을 직접 죽이는 것과 크게 다름이 없었다.
성시소 자신의 입으로 성여문이 죽었다고 선언하라 부추겼으니까.
죽었는지, 살았는지, 자기 눈으로 보지조차 못한 아비를.
…그저 죽었노라고, 그리 믿으라고 겁박한 것과 다름이 없었다.
[가슴이 미어지겠지.]
그 가슴이 채우고 있는 것이 원수를 향한 분노인지, 가족을 잃은 슬픔인지는 모를 일이나─
그것은 결국, 그녀가 청유백의 말을 따랐기에 생겨난 감정이었다.
성여문이 죽었고.
성여문은 죽었다고 선포했다.
아비는 죽지 않았다고, 어떻게든 살릴 방법이 있을 것이라고 울부짖을 법도 하건만.
성시소는 군말 없이 그리 선포했다.
그리고, 가문을 휘어잡았다.
청유백의 말을 믿어서?
아니, 그것은 아니다.
아무리 구명의 은인이라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런 말 한마디로 부모자식의 연을 아무렇지 않게 내버릴 수 있을 만큼 단순한 인간은 아니었다.
천화는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그것은 명예를 배워온 인간이, 명예 이외의 길을 알지 못해 취할 수밖에 없었던 선택임을 알았다.
[…마음 쓰지 말라 말한들 어찌 그럴 수 있겠느냐.]
천화는 성시소의 옆에서 그녀의 얼굴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그 감각이 전해지지는 않겠지만, 이것이 자기만족일 뿐이더라도 천화는 그리 하고 싶었다.
성시소가 청유백의 말을 따른 이유는 단순했다.
그것이 ‘옳았기’ 때문이다.
성여문이 죽었으며, 살릴 방법을 찾아내려 발버둥치는 것보다는 그저 죽은 채로 있는 것이─
더 많은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일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저 그것이 옳은 일이니까.
그저 그것이 명예로운 일이니까.
그렇게 행동하는 방식밖에 배우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혈육의 안위보다 가문을 위하라 하는 말이 얼마나 차가운지, 그 말을 아는 이가 어찌 마음을 쓰지 않을 수 있겠느냐…….]
쯧.
청유백은 혀를 찼다.
어차피 전부 지나간 일.
잘못되었건, 잘 되었건 간에 과거를 돌아보는 것은 청유백이 좋아하는 일이 아니었다.
무언가를 후회하기에는 할 일이 너무나도 많다.
차라리, 지금 하고 있는 것이 잘 되고 있는지 보는 것이 더 나으리라.
“그래서, 수확은 좀 있고?”
“조금은요.”
성시소는 탁상 아래에서─이 난장판에서 그나마 좀 분류가 된 것들─서책 몇 권을 꺼내더니, 청유백의 앞으로 내밀었다.
“아버지가, 아니 그자가 직접 쓰던 수기에요. 솔직히 부활이니 환생이니 하는 내용은 썩 믿을 수가 없었지만… 청 대협께서도 그리 말씀하셨으니 사실이겠죠.”
청유백은 그것을 받아 들었다.
확실히, 내용을 보면 꾸밈없는 진짜로 보였다.
상회에서 관리하던 장부와 달리, 낙무열이 직접 쓴 것이라면 정보의 질에도 차이가 있으리라.
청유백이 그것을 진중히 살피는 모습을 보더니, 성시소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건 드릴게요. 전부요.”
“……?”
청유백은 미심쩍은 얼굴로 성시소를 돌아보았다.
이리 열심히 찾아놓고, 어째서?
이 난장판을 보면, 그녀도 아직 이것을 제대로 살피지 못했다는 사실은 쉬이 알 수 있었다.
헌데 내용을 다 알기도 전에 그냥 넘겨줘 버리면, 애초에 이것을 왜 찾았단 말인가.
청유백이 질문하기도 전에, 그녀의 답이 돌아왔다.
“복수를 해 달라거나, 그런 건 아니에요. 의미도 없고, 가치도 없다는 사실을 잘 알아요. 그리 배웠으니까요. 하지만…….”
“하지만?”
“이걸 찾으러 오신 것 같아서요.”
성시소는 그리 말하며 다른 책들도 청유백의 앞으로 밀었다.
그리 말하는 소녀의 미소는 조금의 후련함은 있을지언정, 뭔가를 후회하는 감정은 조금도 담겨 있지 않았다.
“애초에… 뭔가를 하기 위해 찾은 건 아니었어요. 그냥 당신의 말을 확신하고 싶었어요. 아버지가 아니라, 다른 누군가였다는 말에 대한 증거를…….”
…찾고 싶었죠.
성시소는 말을 그리 끝맺었다.
뭐, 그리 말한다면 받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녀를 위해 대신 복수해주고 싶은 마음은 티끌만큼도 없었지만, 결국 사마신교를 족치면 그것이 복수가 될 것이다.
청유백은 책들을 품에 넣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리되면, 구태여 더 대화할 거리도 없었다.
목적은 달성했고, 굳이 이 무거운 분위기에 동석하고 싶지도 않았다.
문득, 청유백이 뇌리에 스쳐 간 것을 입에 담았다.
“성여답은 쫓지 않아도 괜찮겠나?”
“…가문에 있어 봐야 아무런 득도 되지 않는 사람이에요. 제 발로 떠났다면 잡을 이유가 없죠.”
“뭐, 그렇다면야.”
성여답은 어차피 졸개다.
놈을 쫓는다고 대단한 것이 나오지도 않을 테고, 그녀가 쫓지 않는데 자신이 쫓아봐야 별 의미도 없을 것이다.
‘잡고 싶다면 사후 처리 의미에서 도와줄 의향은 있었다만.’
굳이 필요 없다면야, 뭐.
청유백은 허리춤의 검과 손에 든 보따리를 대충 흔들었다.
“아, 그리고 챙긴 게 좀 있는데, 괜찮지?”
“그럼요. 얼마든지요.”
“시원해서 좋군.”
“이제 가실 건가요?”
“가야지.”
성시소는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어차피 스쳐 가는 인연이었고, 두 번은 보지 않을 것임을 안다.
언제 돌아올 것이냐는 말도 무의미하리라.
“베풀어주신 은혜는…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잊어라.”
“…네?”
“그냥 잊어라. 그저 바람처럼, 한때의 꿈날 속에서 마주쳤던 인연인 것처럼 살아라. 기억하여 좋을 것 하나 없으니.”
청유백은 그렇게 고개를 돌렸다.
대답하지 않기를 바랐고, 인연은 이것으로 끝이기를 바랐다.
그리고 문고리를 쥐었을 즈음, 천장의 어둠 속에서 신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만나서 더러웠고. 다시는 보지 말자.”
“넌 언젠가 또 볼 것 같은데.”
“꺼져, 필요 없어.”
신월은 퉁명스레 대꾸했다.
뭐, 상관없는 일이다.
인연이란 것은 본디 제멋대로여서, 언제나 사람의 뜻은 코웃음 치며 넘기는 상황의 반복이니까.
그런데 문득, 청유백이 문고리를 잡는 순간 뒷목에 오한이 서렸다.
청유백은 신월이 보내오는 살기에 다시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꺼지라며?”
“맞아. 꺼지고 싶을 때 꺼지면 되는데, 그건 그거고… 계산은 끝내야지. 잔금은?”
잔금?
청유백은 잠깐 눈을 굴리다가, 생각해 보니 신월을 끌어들이기 위해 아무렇게나 지껄였었던 사실을 떠올렸다.
그래, 잔금.
생각해 보니, 일을 끝내면 두 배를 준다고 했었던가.
이대로 황돈에게 떠넘겨도 되겠지만, 호칭이 귀인이 아니라 개새끼로 바뀔지도 모른다.
‘…하지만 괜찮다!’
[괜찮다고?]
천화의 의구스러운 물음을 들으며, 청유백은 성시소에게 고개를 돌렸다.
“……성시소?”
“네?”
“금 이만 냥만 더 줄래?”
“이 개새끼가.”
청유백은 달려드는 신월을 피해 재빨리 도망쳤다.
* * *
한편, 오로목제 서쪽의 산기슭.
한 사내가 밤의 산길을 무모하게 달리고 있었다.
신강 이북의 산세는 그다지 험하지 않아 달리는 데에는 큰 문제가 없었지만, 몇 번이고 넘어지고 구르면 아무리 산세가 완만하다 하여도 상처가 늘어가는 것은 막을 수 없는 일이었다.
“허억, 허억, 허억…….”
호흡이 가빠르게 차오른다.
벌써 몇 시진이나 달렸을까.
게으르게나마 자신의 형님을 따라 수련했던 어린 날의 경험이, 아직까지도 그를 달리게 하고 있었다.
처음의 기세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지만, 성여답은 발을 멈출 수 없었다.
추격이 오면, 자신은 죽는다.
사람을 마주치는 순간 끝이다.
도망쳐야만 했다.
그곳까지만 도망치면, 어떻게든 당장의 목숨은 부지할 수 있으리라고 확신했다.
“뭔가, 뭔가 잘못됐어. 이럴 리가 없는데… 이럴 리가…….”
그렇게 달린지 얼마나 지났을까.
평원은 이미 끝났고, 산세가 점점 험해지기 시작했다.
나뭇가지 사이로 아직 채 녹지 못한 겨울의 눈송이들이 보여 왔다.
이미 멀리 도망쳤지만, 아직도 안심할 수 없었다.
제대로 추적이 붙는다면 이만 한 거리는 결코 안심할 정도가 되지 못했다.
성여답은 계속해서 달렸다.
옷은 이미 해지고, 손바닥은 전부 까져 핏물이 줄줄 흘렀으며, 손톱과 발톱은 깨어져 살을 짓뭉갰다.
그를 따르는 이는 한 명도 없었다.
성여문의, 낙무열의 죽음을 전해 들은 순간 도망쳤다.
잘린 오른손?
상관없다.
이미 하룻밤 동안 죽음과도 같은 격통을 느꼈으니, 오히려 편해진 것 같기도 했다.
“……!!”
이윽고, 성여답은 산 중턱의 작은 동굴에 도착했다.
어둡고, 오한이 흐르는 곳.
작은 불빛 하나 없어 달빛에 의지하여 그곳에 기어 들어갔다.
‘분명히, 분명히 그분께서 나를 도와주실 것이다.’
무엇을 위해 가문을 바쳤던가.
무엇을 위해 녹련 낙무열을 인도하고, 자신의 형을 산 제물로 바쳤던가.
전부 영예와 영원한 삶을 위한 것이 아니던가.
분명 그분께서 자신에게 그 모든 것을 약속하셨으니, 이곳까지 살아 오기만 한다면 모든 것을 원래대로 돌이킬 수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찰나.
─서걱.
“……?”
작은 파열음이 울렸다.
그리고 잠시 후에, 둔탁한 소리가 작은 동굴 전체에 울려 퍼졌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