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8화.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나미아미타불 (3)
“어디 한번 볼까.”
청유백은 보물고 안쪽을 한번 주욱 살폈다.
무엇 하나 값어치가 나가지 않는 것이 없는 광경이었다.
금은보화와 신병이기의 산에는 청유백이 보지 못했던 형태의 장신구나 무구들도 다양하게 있었다.
처음 보는 형태의 창이나, 전신을 뒤덮는 강철의 무구, 이국의 팔찌들과, 어찌 입는 것인지 모를 특이한 복식의 천 옷…….
분명 서역에서 난 것이겠지─라고 생각하며, 청유백은 고개를 돌렸다.
언제나 그렇듯 황금은 필요가 없다.
가져가면 황돈이 좋아할 것 같기는 한데, 어차피 어지간한 양으로는 큰 의미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뭐… 지금도 열심히 어떻게든 손해를 메꾸려고 주판을 튕기고 있지 않겠는가.
그런 노력을 하고 있을진대, 대뜸 황금을 그 눈앞에 던져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 노력을 짓밟는 행위겠지.’
황돈이 이 생각을 들으면 개소리하지 말고 보따리로 싸 들고 오라고 역정을 낼지도 모르는 일이었지만, 알게 뭔가.
딱히 알 바 아닌 일이었다.
청유백이 벽에 걸린 무기들을 보고 걷고 있는데, 청유백의 뒤편에서 옅은 빛이 반짝였다.
천화의 기척이었고, 이어서 그녀의 장난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킥킥, 유백아, 이것 보거라. 이리 입는 것 같구나. 신기하지 않더냐?”
천화는 아까 보았던 하늘하늘한 천 옷과 비슷한 옷을 입고 있었다.
다만 색상은 그녀에게 어울릴 법한 흰색과 붉은색으로 바뀐 상태였다.
…실제 옷은 여전히 그 자리에 걸려 있는 채였으니, 저 옷은 그저 형상만 본뜬 것일 테다.
어차피 영체이니까.
청유백은 차갑게 대꾸했다.
“…나이를 좀 생각하시지?”
“에이, 무얼! 본녀는 어차피 영원불멸 젊을 것이니라. 자, 어떻더냐? 뭔가 불끈불끈한 기분이 들지는 않느냐?”
“하아…….”
청유백은 한숨을 참지 못했다.
저 옷의 생김새는 상당히 천의 면적이 적어, 배꼽과 어깨 등지가 훤히 드러나는 상당히 파격적인 옷이었다만…
…입은 사람은 속은 몇 살인지도 모를 여자인 데다, 겉모습은 고작 열댓 살 소녀다.
무슨 마음이 들래야 들 수가 없는 것이다.
심지어 쓰는 단어 선택이란…….
“개소리도 심하면 병인데…….”
“어허. 어차피 외견만 젊으면 되지 않더냐. 어차피 사람 속은 다 쓰레기니라. 다 그런 것이야.”
“무슨 사회의 어두움을 알아버린 어른 같은 소리를.”
“어허, 오래 살다 보면 그런 것이야.”
오래 살았다…라.
젊은 건지 늙은 건지 하나만 해 줬으면 싶기는 하다.
청유백은 눈을 흘겨 뜨며 천화를 힐끗 째려보았다.
“젊으시다며?”
“…안 늙으면 그게 젊은 거지!”
“불로불사 같은 헛소리를 진지하게 말하는군. 그딴 게 있을 리가….”
…….
……….
……있을 법한데?
청유백은 잠깐 고민했다.
생각해 보니, 교아든 낙무열이든 그 꼴을 보면 정말로 불로불사가 완성되었다고 해도 이상할 건 없을 것 같았다.
천화가 비웃으며 대꾸했다.
“있을 리가? 계속해 보거라.”
“…그래도, 네가 그 꼴이라는 건 결국 죽었다는 것 아닌가?”
“본녀도 모르느니라. 아직 거기까지는 알 수 없는 게지! 그러니까 본녀는 젊다. 어차피 알 수 없는 것이라면, 마음대로 생각해도 좋은 것 아니냐?”
“그런가…?”
“그런 게다.”
아닌 것 같은데.
하지만 굳이 딴죽을 걸어 시간을 낭비하기는 싫었기에, 청유백은 대충 무시하고 넘어갔다.
“아무튼, 일단 갖고 나갈 것부터 고르자고.”
여기서 짜증을 내기에는 눈앞의 금은보화가 아깝지 않던가.
청유백의 시선이 가장 먼저 향한 것은, 단연 벽에 걸린 보검들이었다.
청유백은 그것들을 대충 훑어보더니, 가장 나아 보이는 것을 벽에서 끌러 내렸다.
“나쁘지는 않은데…….”
“정말 딱 나쁘지만은 않은 정도로구나.”
“아무래도 그렇지.”
이곳에 있는 무기들은 사람의 피도 몇 번 보지 못한 것들일 테다.
무기로써의 검이라기보다는, 치장으로써의 검에 더 가깝다.
그래도 물론 이런 보물고에 있는 보검이니만큼 꽤 괜찮은 수준은 되었지만, 청유백의 성에 찰 정도는 아니었다.
“그래도 일단 챙길까.”
청유백은 근처에서 검집을 찾아 그것을 챙겼고, 천화는 의아한 듯 물었다.
“으음? 그걸로 되겠느냐?”
“무슨 소리야, 당연히 안 되지.”
“그러면 왜……?”
천화의 질문에 청유백은 당연한 걸 왜 묻냐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고작 이런 검으로 만족할 리도 없고, 만족할 이유도 없다.
허나 그럼에도 이것을 챙기는 이유란, 단순했다.
청유백은 가볍게 말을 이었다.
“왜 하나만 챙겨야 하는데?”
“응…?”
“목숨값이잖아? 가주는 이제 성시소고. 그럼 달라고 하는 건 웬만하면 다 주겠지. 이 창고를 통째로 달라는 것도 아닌데.”
“그건… 공갈 아닌가?”
“스읍. 선물, 선물.”
“아, 알았다. 선물인 걸로…….”
암, 선물이고말고.
목숨을 구해줬는데, 고작 검이나 황금 정도를 아까워할 리는 없는 일이었다.
아마도.
이후, 청유백은 창고를 뒤져 그럴싸한 물건들을 찾았다.
금보다는, 그 부피에 비해 탁월한 가치가 있는 물건들을 말이다.
가령 진귀한 약초라든가.
청유백이 한쪽 서랍에서 동충하초라는 이름의 벌레를 찾았을 때에는 천화가 가볍게 탄성까지 내지를 정도였다.
아마, 녹지연에게 가져다주면 좋아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청유백이 가장 찾는 물건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영약은… 없나.”
“당연하다면 당연하긴 하지. 흔한 물건도 아니지 않느냐.”
청유백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상할 일은 아니었다.
성씨세가는 딱히 무가(武家)는 아니었으니, 영약은 누군가의 탐욕을 부를 뿐인 물건이었으리라.
청유백은 결국 마지막 서랍을 제외한 모든 서랍을 열어봤지만 이렇다 할 수확이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마지막 서랍을 안 열기도 아쉬운 법.
“마지막이군.”
별 기대도 않고 연 마지막 서랍 안에는 작은 궤짝이 들어 있었다.
손바닥만 한 크기였기에 반지라도 들어 있나 싶었던 청유백은 그것을 꺼내어 뚜껑을 열어 보았다.
하지만, 그 안에 들어 있던 것은 생각과는 전혀 다른 물건이었다.
그것은 깃털.
검은색과 녹색이 뒤섞여 특이한 빛을 내고 있는 하나의 깃털이었다.
그 크기도 꽤 큰 것이, 범상한 물건은 아닌 듯 보였다.
“이건…?”
“세상에.”
아무래도 천화는 그것이 뭔지 아는 눈치였다.
청유백은 천화에게 물었고, 천화는 가볍게 대답했다.
“짐조(鴆鳥)의 깃이니라.”
“짐조?”
“옛날에 살았던 새이니라. 그 당시에도 상당히 귀한 아이였지. 본녀도 딱 한 번밖에는 본 적이 없다.”
“아니, 잠깐만, 짐조는 나도 알기는 하는데…….”
청유백은 황당해하며 말을 끊었다.
짐조?
청유백도 그 새의 이름을 들어본 바가 있었다.
옛날, 독의 공부를 잠깐이나마 했을 때에 문헌 속에서 보았더랬다.
깃은 검고 녹색 빛이 돌며, 구릿빛 부리를 가진 새.
온몸에 독기를 머금어, 논밭 위를 날면 작물이 금세 시들어버릴 정도로 극독을 머금은 전설의 독조(毒鳥)였다.
청유백이 어이없어하는 이유는 단순했다.
짐조는 그야말로, 전설 속에나 나오는 새의 이름인 것이다.
짐조의 독인 짐독이 한때 천하에서 제일가는 독이었다는 말이 있기는 했지만, 어차피 전설 속의 새이니 하등 관심을 두지 않았더랬다.
헌데…….
“짐조의 깃이라.”
웃기지도 않는 소리였다만, 청유백은 무심코 그 깃털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그리고, 그 다음 순간.
─화르륵!
“……!!”
청유백의 손끝에서부터, 옅게 타오른 흑녹색의 불꽃이 청유백의 팔을 휘감아 올랐다.
그리고 그것은 곧 마치 본연의 자리를 찾아가듯 자연스럽게 청유백의 몸속으로 흘러들어갔다.
본디 사람을 죽이는 독이다.
손을 대는 것만으로도 영원한 잠을 선물하는, 그야말로 가장 완벽한 암살의 신물이겠으나.
청유백에게는, 가장 강력한 생명의 기운이었다.
불꽃은 순식간에 사그라들었다.
무언가를 느낄 새도, 받아들일 새도 없이, 그것은 그저 어느샌가 청유백의 몸속으로 들어와 있었다.
청유백은 곧장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낙무열과 싸운 이후부터 심장 한구석에서 가끔씩 느껴지는 고통.
앞으로 한동안은 자신을 괴롭혔을 선천진기를 사용한 고통이 말끔히 사라진 것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남은 독기는 자연히 단전으로 흘러 들어가─
수많은 세월을 머금은 그 막대한 독기가, 온전하게 청유백의 단전에 자리했다.
그 모든 것이 한순간에 지나갔다.
정신을 차려 보니, 청유백의 손에는 이미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흑녹색 깃털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청유백은 그 깃털을 다시 내려놓으며, 뻘쭘한 얼굴로 천화를 돌아보았다.
“…이거 귀한 거 아닌가?”
뭐든 주겠지, 라고 호언장담은 했다만…….
전설 속 새의 깃털이라니.
이건 좀 먹었다가는 뒤탈이 있을 법한 물건 아니던가.
천화는 공허한 웃음을 잠깐 지어 보이더니, 결국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선물인 셈 치자꾸나.”
“…….”
청유백은 일단 깃털을 다시 상자에 돌려놓고는, 아무 말 없이 서랍을 닫았다.
* * *
결국 청유백이 비고의 바깥으로 나왔을 때, 그 손에는 이것저것 뭔가가 많이 들려져 있었다.
일행의 선물로 챙긴 물건들 몇몇과, 어떻게 쓸 수 있을 법한 귀한 약재들 몇 개.
그리고 검과 도 몇 자루였다.
하인을 불러 그것들을 금성객잔에 가져다 놓으라고 명령한 뒤, 청유백의 발길은 성시소를 향했다.
천화는 멀리서 비고의 문을 잠그는 재무관을 돌아보며, 청유백에게 넌지시 말했다.
“흐음, 솔직히 적잖이 놀랄 것이라고 생각했건만, 의외로 덤덤하구나.”
“이 정도는 별로 큰 의미도 없다는 거겠지. 대가문이니까.”
청유백이 성시소에게 말해두겠다는 것도 꽤 큰 지분을 차지했겠지만, 결국에는 그리 큰 양이 아니기 때문일 테다.
저 큰 창고를 가득 채운 황금의 양을 생각하면, 분명 이 정도 양은 그리 많지 않은 것이 맞기는 할 터.
청유백은 어깨를 으쓱이고는 계속 걸음을 옮겼다.
향한 곳은,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낙무열이 있던 곳.
가주의 방이었다.
낙무열이 신월을 문 바깥으로 내던지며 박살냈던 문은 어느새 말끔히 고쳐져 있었다.
안쪽에서는 인기척이 느껴졌다.
작은 어린아이의 것 하나와, 은밀하게 감춰진 암살자의 것 하나.
하지만 죽이기 위한 것이 아닌 지키기 위한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덜그럭
청유백은 문 앞에 서서 손기척을 내었고, 곧 대답이 들려왔다.
“아, 어서 오세요.”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