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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우면 네가 천마 하든가-157화 (157/200)

제157화.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나미아미타불 (2)

청유백의 말에 노인들은 각자 다른 반응을 보였다.

누군가는 눈을 휘둥그레 뜨며 놀라기도 하고, 누군가는 표정을 굳히며 인상을 찌푸리기도 하였다.

하지만 공통된 반응은, 결코 청유백을 반기는 표정이 아니었다는 점이었다.

“…귀객께선 여기가 어디인지 알고 오셨는가?”

“알아야 하나?”

“물론이고말고. 이곳은 이 도시의 지주인 성가의 장원이요, 그 중에서도 가주와 장로들이 모이는 중요한 장소라오. 외부인이 발을 들일 만한 곳이 아닌지라…….”

노인은 말을 끌었다.

허허롭게 웃으며, 수염을 쓰다듬고는 청유백을 바라보았다.

대놓고 주변의 사람들에게 여유를 과시하는 행동이었다.

“방금의 언행은 잊어드릴 터이니, 돌아가 주셨으면 하오만.”

“잊는다? 재밌는 말을 하는군.”

청유백은 피식 웃으며 방 안으로 걸어 들어와서는 탁자의 가장 상석, 비어 있는 의자를 끌어 앉았다.

본래라면 주인이 있는 자리였겠지만, 그는 이 자리에 두 번 다시 앉을 수 없을 테니 한 번 정도는 빌려도 괜찮을 테다.

딸을 구해준 은혜도 있지 않던가.

청유백은 말을 이었다.

“계속해봐.”

그 행동에 성가의 장로들은 어이가 없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고, 결국 그들 중 하나가 나서 언성을 높였다.

“대체 당신은 뭐 하는 인간이길래 여기서 망발을…….”

“그만. 품위 있게 행동하게.”

“허나!”

“어허. 이제는 우리가 체통을 세워야 할 위치가 아니던가.”

노인은 손을 들어 언성을 높인 사내를 막아 세웠고, 몇 번 소리 내어 웃은 후에야 청유백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곳이 귀객의 사지가 될 것이라 말하고 싶지는 않소. 허나, 그대의 행동거지에 따라 어찌 될지 모르는 일이라오. 귀객께서 어디의 누구시든 말이오.”

말뜻은 단순했다.

네가 누군지 궁금하지도 않고, 이름을 묻고 싶지도 않다.

하기사, 무리도 아니었다.

성씨세가는 오로목제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그에 반항할 수 있는 세력은 많지 않다.

관부조차도 이 변방에서는 그 힘이 강하지 않으니, 설령 관부에서 나온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무시할 수 있는 권력이 있다는 것을 과신하는 것이었다.

‘그래, 권력이란 게 참 좋지.’

청유백은 코웃음 쳤다.

이해하지 못할 것은 아니었다.

일인자가 죽고, 그 공석을 논하는 자리.

대충 분위기를 보니 그 권력이 이제 자신 것이라고 주장하는 분위기인 모양인데, 그 권력에 취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리라.

‘뭐, 그래서 온 거지만.’

성시소, 그 어린아이가 사후의 더러운 처리까지 완벽하게 해낼 수는 없을 테니 말이다.

[권력의 공석은 언제나 탐내는 자가 있기 마련이지. 그 아이가 아직 그런 암투를 벌일 나이는 아니겠지만…….]

천화는 흐음, 하고 살풋 웃더니 말을 이었다.

[어차피, 내버려 두었어도 신월이라는 아이가 알아서 하지 않았겠느냐?]

‘빚은 많을수록 좋으니까.’

뭐, 말마따나 그냥 내버려 두었어도 신월이 알아서 하기는 했을 것이다.

누굴 죽이든, 협박하든 간에 그녀라면 충분히 그럴 능력이 있다.

하지만 이왕 이렇게까지 벌여진 일, 성시소 개인에게 더 빚을 지워 놓아 나쁠 것은 하나도 없다.

권력과의 유대란 그런 것이었다.

노인은 허허롭게 웃었다.

“다시 한번 묻겠소. 귀객께서는 이곳이 어디인지 알고 온 것이오?”

“몰랐지만 이젠 알겠군. 당신 말이 분명 정확한 설명인 거라면 말이야.”

“노부의 말에 거짓이 있을 까닭이 무에 있겠소.”

“그래?”

청유백은 차갑게 웃었다.

그리고, 쾅.

“……!”

모두가 보는 가운데 발을 탁자 위에 교차하여 올려, 의자를 기울여 앉았다.

실로 시건방지기 그지없는 행동이었지만, 그 뒤에 이어지는 말은 더한 것이었다.

“그러면, ‘성가’라는 부류들은 가문의 하나뿐인 여식의 목숨을 구한 은인에게 이름 하나 묻지 않는 무뢰한이요, 차 한 잔 내오지 못할 인색한 인간들이라는 소리군.”

“뭣…?”

“문 총관, 내가 이해한 게 맞나?”

청유백은 문노를 향해 고개를 돌렸고, 문노는 고개를 숙이며 사죄했다.

“송구할 따름입니다.”

“송구해야지. 당연히 그래야지. 은인 취급이 이따위인 가문이 어떻게 오래 가겠어?”

장로들은 그제야 눈치를 보며 서로의 행동을 살폈다.

문노의 반응을 봐서는, 저 말이 거짓인 것 같지는 않았으므로.

…그렇다면 방금까지처럼 아무렇게나 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귀인을 푸대접하는 것만큼, 대놓고 가문의 이름에 먹칠하는 행위가 따로 없지 않던가.

…물론, 이미 늦은 감이 없잖아 있었지만.

노인은 서둘러 표정을 바꾸며 말을 가로챘다.

“하, 하하. 귀인분이셨구료.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이곳은─”

“그래. 내가 말할 자격은 없다. 그건 인정하지. 근데, 내가 말하지 않았나? 당신들은 자격이 있느냐고?”

“그야…….”

“없지 않나? 승계권이 뒷방 늙다리인 당신한테 있지는 않을 테니까.”

“…….”

할 말은 없었다.

몹시도 무례하고 저열한 표현이었다만, 내용은 전부 정론.

성시소를 제외하고 이리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썩 떳떳하지 못한 일이라는 사실을 이 자리의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나마 궁여지책으로 성시소는 아직 어리니까 보호하는 것이다─

같은 핑계를 댈 수는 있겠다만, 그건 그야말로 그저 핑계일 뿐이다.

무릇 고대부터, 그야말로 악이라 불리던 섭정들이 단골처럼 하는 말이 ‘어리니까 보호하는 것이다’가 아니던가.

“…귀인은 어디의 누구시오?”

“이제 와서 그걸 묻나?”

청유백은 코웃음 쳤다.

하지만, 대답하지 않을 생각은 아니었다.

“창검문의 청유백이다.”

“창…검문이라 함은?”

노인이 말끝을 띄우자, 옆의 사내 중 한 명이 귓가에 속삭였다.

“서검련에 이름을 올린 문파 중 하나입니다. 북쪽에… 목류현이라는 마을이 있는데, 그곳에 터를 잡은 검문으로 알고 있습니다.”

“크흠… 알고 있네. 단지, 오랜만에 듣는 이름이었을 뿐.”

창검문.

그 또한 마교의 비밀 지부 중 한 곳이었다.

정확히는, 마교의 파견인들이 신원을 대야만 하는 상황이 왔을 때 둘러대는 용으로 만들어낸 문파였다.

지금까지는 딱히 신원을 댈 상황이 없었지만, 이런 상황이라면 이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청유백은 말을 이었다.

“아까의 말로 돌아가자면.”

그리고 품속에서 몇 번인가 접힌 종이 하나를 꺼내었다.

청유백은 그것을 펼쳐 탁자에 던져놓았고, 그 종이의 실체가 드러났다.

그것은 혈판이었다.

십수 명분 사람의 지장이 찍힌, 일종의 서약서 같은 물건이었다.

“그것은……?”

“서검련의 총의다. 우리는 가문의 적법한 후계자 이외의 그 누구도 따르지 않을 것이다.”

즉, 성시소를 말하는 것이다.

성여문이 바깥에서 사생아라도 싸지른 게 아닌 다음에야, 성가의 후계자는 성시소 외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고작 십수 명의 지장일 뿐이었지만, 서검련이라는 이름은 노인의 몸을 떨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성씨세가가 오로목제를 틀어쥐고는 있다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각 세력들의 존중에서 나오는 것.

가장 거대한 세력인 서검련과 동우회 중 한 쪽이 이리 대놓고 성시소를 밀어준다면, 말마따나 할 수 있는 일이 전혀 없었다.

“…허허, 노, 농담도 잘하시구려. 그게 대관절 무슨 말이오?”

“헛짓거리 하지 않는 게 좋을 거라는 소리지. 욕심은 관두고, 살던 대로 살라고.”

“그, 그럴 수는 없소! 시소 그 아이는 아직 어리단 말이오. 보호가 필요하오!”

“그건 당신 생각이고.”

청유백은 슬쩍 다른 장로들의 반응을 살폈다.

대체로의 당황, 조금의 분노.

하지만, 이 말에 끼어들어 의견을 피력할 수 있을 법한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뭐, 정히 그렇다면 다른 사람 동의라도 구해 보지 그러나? 가령 동우회는 어떨까 싶군. 지들이 따르던 성여답이 튀었으니, 알아서 몸 사릴 그놈들 말이지.”

서검련, 그리고 동우회.

오로목제의 무력을 양분하는 두 연합이지만, 사실상 이번 일로 동우회의 입지는 크게 축소될 것이 분명했다.

그간 성여답을 믿고 제멋대로 날뛰다가 이젠 그 믿을 뒷배가 사라져 버렸으니 말이다.

“새겨 두길 바라지. 후회하기 싫다면 말이야.”

청유백은 오늘 이후로 성씨세가와 엮일 일이 없으리라 확신했지만, 그들이 다른 마음을 먹으면 분명 후회하게 될 것이다.

자신이 아니라, 신월에 의해서.

“…….”

그리고 침묵이 찾아왔다.

할 말이 없는 자들과 말을 아끼는 자들, 그리고 더 이상 할 말이 없는 자의 시선이 한 곳에서 교차했다.

“아… 그리고, 그건 그건데.”

문득, 청유백이 입을 열었다.

잊고 있었다는 양, 장로들을 돌아보며 물었다.

“재무관이 누구지?”

“저, 접니다만.”

손을 든 것은 노인의 옆에 앉아 있던 사내였다.

아까 창검문에 대해 귓속말하던 그 남자. 하긴, 이만큼 큰 가문의 금전을 관리하려면 소문에도 밝아야 할 테다.

“집안의 귀한 딸내미 구해 줬는데, 설마 빈손으로 돌려보내진 않겠지?”

“하지만 가주님의 결재가…….”

“내가 받아 올게. 이젠 성시소가 가주 아냐?”

“그건… 그렇긴 합니다만…….”

사내는 그리 말하면서도 노인의 눈치를 슬쩍 살폈다.

아직 그것이 확정된 것은 아니었고, 도리어 오늘의 자리는 그 안건을 결정하기 위해 모인 자리였다.

아직 어린 성시소가 가주를 할 수는 없으니, 누가 그 자리에 앉아야 하겠는가 하는.

그런 자리였다.

하지만 이 흐름에서 그게 아니라고 어떻게 말할까.

결국 노인 또한 고개를 숙이며 침묵했고, 그 자리에 모두는 그 사실에 암묵적으로 동의한 셈이 되었다.

청유백은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럼 해결되었군. 안내해라.”

“어, 어디로…?”

“네 원하는 대로. 가주한테 가든, 비고로 가든.”

“으음… 알겠습니다.”

사내는 결국 주변 장로들의 눈치를 살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그의 거동을 질책하는 이는 없었다.

그를 제지하는 순간, 지금 이 자리의 덤터기를 혼자 뒤집어쓰게 될 테니 말이다.

그들 중, 혼자 책임을 지고 싶어 하는 이는 누구도 없었다.

말없이 사내를 뒤따르는 청유백에게, 천화가 어이가 없다는 듯 쏘아붙였다.

[솔직히 말해라. 네놈, 이것 때문에 왔던 게지?]

‘당연하지.’

[……그래, 네놈이 남 좋은 일을 선의로 해줄 리가 없다 싶긴 했다.]

미쳤다고 자선사업을 하냐?

언제나 자기 밥그릇은 자기가 챙겨야 하는 법이다.

* * *

결국 사내가 안내한 곳은 성씨세가의 비고였다.

자리한 위치나, 엄중한 경비 등을 보면 가짜는 아닐 테다.

재무관은 품에서 열쇠꾸러미를 꺼내어 그중 하나로 비고의 문을 열었다.

“부디 뜻대로 둘러보시길.”

그를 뒤로하고 청유백은 곧바로 비고에 발을 들였다.

그리고, 한눈에 그 전경이 눈에 들어왔다.

“…….”

마교의 보물고와도, 청가의 창고와도 다른 느낌의 광경.

분명 보물들을 보관하는 장소라는 점에서는 마교의 보물고와 같았지만, 그것을 숨기기보다는 도리어 자랑이라도 하려는 양 멋들어지게 전시되어 있었다.

황금들은 마치 벽지라도 되는 양 벽을 가득 메워 장식하고 있었고, 그 한켠에는 한눈에 보기에도 범상찮은 창이나 검 등이 진열되어 있기도 했다.

“휘유…….”

“과연, 별 탈 없이 그냥 비고로 안내해 준 이유가 있는 모양이구나.”

천화는 어느새 나와서는, 휘파람을 부는 청유백의 주변을 부유했다.

벽의 검에 손가락을 스쳐보기도 하고, 달리 특별한 것은 없나 주변을 둘러보기도 했다.

“그래, 자신이 있다는 소리겠지.”

한 도시를 먹을 만한 힘이 있는 가문이 비축한 보물.

뭘 어떻게 가져가 봤자, 별로 문제도 없다는 마음가짐일 것이다.

오로목제는 물류의 요충지고, 그곳을 관리하는 성씨세가에게 황금 따위는 얼마든지 벌어들일 수 있는 돌멩이에 불과할 테니까.

그 증거로, 그는 그저 밖에서 기다릴 뿐 안으로 들어오지도 않고 있었다.

뭘 어떻게 가져가든 훔쳐가든, 전혀 신경 쓰지 않을 수 있다는 소리일 테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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