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5화. 계승되는 의지 (4)
오로목제의 동쪽 성문은 의문의 소란으로 분주한 상태였다.
대부분은 각자의 무기를 차고 있는 무사들로, 성씨세가의 문장을 몸에 걸치고 있었다.
대충 하는 얘기를 들어 보면 이런 말들이었다.
‘서쪽에서 가주님이 흉수들에게 당해 쓰러지셨다.’
‘사마신교라는 악독한 무리들이 가주님과 약속했던 거래를 깨고 비열하게 기습을 가했다.’
‘지금 쫓으면 잡을 수 있지 않겠는가. 당장 쫓아야만 한다….’
……등등.
하나같이 가주를 걱정하는 내용이었지만, 정작 그 자리를 떠나는 이들은 적었다.
당초에 가주가 명한 것은 ‘서쪽 성문으로 나가 평야를 수색하라’였었으니, 지금 자리를 뜬다면 오히려 적들의 농간에 놀아나는 것일 수도 있는 일이었다.
진실이 어찌 되었든 최소한, 그 무사들은 그리 생각하고 있었다.
“어서 움직여야만 하네!”
“아가씨께서 퇴각령을 내리셨다 하시는데 그게 무슨 말인가!”
“아가씨의 명령을 가주님의 명령보다 우선할 수는 없지 않나!”
“아니, 하지만…!”
실속 있는 결과는 없이 옥신각신 소란만 늘어갔다.
그 옆을 소리 없이 지나치는 청유백에게, 천화가 웃으며 언질을 주었다.
“후후, 성시소 그 아이가 일을 잘 해낸 모양이구나.”
“그런 모양이군.”
가문의 무사들을 통솔함과 동시에, 적대하는 대상을 ‘마교’에서 ‘사교’로 기묘하게 뒤틀어 놓았다.
뭐, 계획 자체는 백소하가 마련한 것이지만… 그 어린 소녀가 차질 없이 계획을 실행해 냈다는 것 자체만으로 충분히 대단한 일이리라.
저 무사들은 가주와 사마신교가 했다는 ‘약속했던 거래’가 뭔지 모른다.
알 턱이 없다.
그들이 지위 낮은 무인이라서?
아니.
당연히, 전부 날조기 때문이다.
물론 진실을 알린다면, 대의는 마교 쪽에 있는 것이 맞다.
사마신교에게 성여문이 살해당하고, 낙무열이 성여문의 행세를 한 것이 사실이니 말이다.
하지만 뭐 어떤가?
진실을 알리든, 거짓을 알리든 결과가 같다면, 굳이 진실을 알릴 필요가 무어 있을까.
사마신교의 속셈이니, 죽음의 비술이니 하는 것들을 일일이 설명할 가치는 어디에도 없다.
‘명예’라는 놈은 그저 명분이고 수단일 뿐, 의무가 되지는 않는다.
되서는 안 되고 말이다.
천화가 웃었다.
“네놈의 조언이 꽤 나쁘지 않게 작용한 결과가 아니겠느냐? 가슴을 펴도 좋다고 보느니라.”
“글쎄…….”
성시소에게 몇 마디 해 준 것은 사실이었지만, 결국 받아들이는 것은 본인의 재량.
조금은 삐걱거릴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도 잘 해낸 듯 보였다.
헌데… 그건 그거고.
청유백은 천화를 돌아보았고, 그녀의 붉은 눈동자와 시선이 마주쳤다.
천화는 청유백의 근처를 부유하며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앞에 팔을 휘적거리고 있었다.
은근슬쩍 나오는 것도 아니고, 이제는 그냥 대놓고였다.
“…내 걱정은 뭘로 들은 거냐?”
“뭐 어떻더냐. 아까부터 이리 있었는데도, 누구도 신경 쓰는 이가 없지 않으냐!”
“음…….”
사실, 그건 그렇긴 하지.
청유백은 슬쩍 시선을 돌려 주변 사람들의 반응을 살폈다.
죽립을 눌러쓴 청유백을 잠깐 바라보는 사람이 몇 있기는 했지만, 귀신을 본 것처럼 자지러지는 사람은 없었다.
“영감이 있는 인간이 생각 이상으로 흔하지 않은 것일지도.”
“아니면 어지간한 영감으로는 본녀를 볼 수 없는 것일 수도 있고 말이다! 어느 쪽이든 좋지 않느냐? 가짜라고는 하지만, 오랜만의 몸이라는 것은 실로 좋은 것이니라.”
“…그래, 뭐.”
청유백은 천화의 마음을 정확하게 이해해 줄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동정은 할 수 있었다.
그리 큰 소란을 불러오지 않는 것이 확인된 이상, 그녀 마음대로 하게 두어도 큰 문제는 생기지 않을 것이었다…….
“우와아아아아악!!”
…라고 생각했던 때는 참 행복했었던 것 같다고, 청유백은 생각했다.
* * *
“…….”
“…….”
천화는 멋쩍은 얼굴로 청유백의 뒤에 숨으며, 숨이 넘어갈 것처럼 뒷걸음질 치는 황돈의 시선을 피했다.
이미 의자는 넘어지고 탁자 위에 있던 물품들은 난장판이 되어 어질러져 있었다.
황돈은 계속 뒷걸음질 쳐 벽에까지 내몰리더니, 더 이상 갈 곳이 없다는 곳을 알자 천화를 향해 삿대질하며 입을 열었다.
“귀, 귀, 귀, 귀신……!!”
“…….”
이야… 이걸 보네.
동쪽 성문에서 이 객잔까지 올 때 마주친 사람이 거진 수백 명은 될 텐데, 그 사람들 중 누구도 천화에게 시선을 보내지 않았더랬다.
시선에 민감한 청유백인 데다가 천화 또한 주의하고 있었으니, 만에 하나라도 보고도 못 본 척한 경우는 없을 것이었다.
이 객잔을 머무는 마교의 무사들이나 투숙객들도 마찬가지였고.
그런데…….
“대, 대, 대인. 조심하십시오. 옆에 웬 미친 여자가 붙어 있소.”
“…그래?”
놀랍게도 황돈은 이쪽에 재능이 있는 모양이었다.
하기사, 신이 공평하다면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무술 병신인 저 놈에게 뭔가의 재능 정도는 내려주는 것이 마땅하기는 할 테다.
안타깝게도 나이는 처먹을 만큼 처먹어, 이제 와 그쪽으로 발을 뻗을 수는 없을 테니, 하등 쓸모도 없는 재능이겠지만 말이다.
그 쓸모없는 재능이, 천화를 보이게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천화는 그 꼴이 퍽 재밌는지, 슬쩍 놈의 앞으로 다가가 팔을 펼쳤다.
“왁.”
“우어우와아이씨부럴!”
“유백아, 유백아. 이것 보아라. 재밌는 아이로구나.”
천화는 키득거리며 몇 번 정도 더 황돈에게 손을 휘저었다.
그녀의 생김새가 그리 무서운 생김새는 아니었지만…
뭐, 황돈이니까.
청유백은 숨이 넘어갈 듯 벽을 짚고 있는 황돈에게 안쓰러운 시선을 보냈다.
“눈이 아주 광년이마냥 시뻘건 것이, 어떻게 봐도 불길한 징조요. 게다가 대인께 뭔가 말도 하고 있소. 무당을 불러 굿이라도 하는 게… 끼엑!”
─빠악!
황돈은 말을 채 끝맺지 못한 채, 정수리를 부여잡으며 바닥에 머리를 박았다.
책 모서리로 황돈을 내려찍은 백소하는 한숨을 내쉬며 한심하게 그를 내려다보았다.
“내가 이상한 거 주워 먹고 다니지 말랬잖습니까. 결국 돌아버린 겁니까?”
“어, 아, 아니… 저, 저기에…….”
“저기에 뭐요. 방금 싸움에서 돌아온 청유백이 있군요. 왜요, 뒤질 줄 알았는데 살아와서 놀랍기라도 한 겁니까?”
“아, 아니! 그게 무슨 소리요! 그럴 리가 없지 않소. 그게 아니라….”
황돈은 횡설수설하며 팔을 휘젓다가, 정말로 억울하다며 청유백을 향해 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정확히는, 그의 앞에서 부유하는 천화를 향한 것이었지만.
“저기 진짜 귀신이 있다니까!”
“아, 예. 그러시겠죠. 방해되니까 나가십쇼. 나가는 길에 녹 소저한테 가서 보약이라도 한 첩 지어 달라고 하시든가요.”
“아니, 난 멀쩡하단 말이오!”
황돈은 결국 백소하에게 등이 밀려 방 바깥으로 밀려났다.
그 후, 백소하는 거칠게 문을 닫으며 청유백을 돌아보았다.
흥미롭다는 시선으로 천화가 백소하를 바라보았지만, 백소하의 시선에는 귀신 같은 것은 보이고 있지 않았다.
백소하는 위아래로 청유백을 대충 훑고는 말을 이었다.
“애석하게도 네놈은 큰 상처는 없는 것 같군요.”
“겉으로는 그런 편이지.”
“입은 더 멀쩡한 것 같구요.”
사실, 청유백은 그리 멀쩡한 상태가 아니었다.
외적인 상해는 최대한 피해가며 싸웠으니 눈에 띄는 상처는 별로 없었지만, 억지로 선천진기를 끌어올렸기에 몸 안쪽은 말이 아니었다.
아마 한 달에서 두 달 정도는 싸움을 피해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헌데… ‘네놈은’이라.
청유백은 피식 웃으며 질문했다.
“적영은 어떻지?”
“그녀는… 큰 문제는 없지만, 당분간은 정양해야 할 겁니다. 상처가 꽤 깊었거든요. 본인은 괜찮다고 하지만 말입니다.”
“아직 제 입으로 멀쩡하다고 말할 수 있으면 나름 여유가 있는 거지.”
“후, 정말 그러면 좋겠군요.”
그 후로, 백소하가 늘어놓은 이야기는 다양한 것이었다.
성시소가 가문에서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신월은 그녀의 곁을 보살피고 있으며, 황돈은 구멍 난 재정을 메꾸려고 개고생하고 있다는 이야기 등등.
뭐, 어느 쪽이든 당사자에게 다시 들을 것 같았기에, 백소하 또한 대충 언급하는 정도에서 끝났다.
굳이 지금 찾아온 이유는 그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백소하는 품에서 서책 하나를 꺼내어, 청유백이 앉은 탁상의 앞에 내던졌다.
백소하는 자신도 놀고 있지는 않았다는 양 호기롭게 말했다.
“아무튼, 장부의 해독도 끝났습니다.”
“…장부?”
무슨 장부?
청유백은 찡그려지는 표정을 애써 감추려 하며 기억을 되짚었다.
장부?
그런 것이 있었던가?
청유백은 자신이 그런 것을 구했던 기억이 없었다.
혹시 몰라 천화에게 슬쩍 시선을 돌려 보았지만, 천화도 똑같이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해독씩이나 해야 하는 거창한 물건을 자신이 구했다면, 분명히 기억에 있기 마련일 터인데…….
‘…모르겠는데.’
청유백은 결국 팔짱을 끼고는, 말해보라는 투로 고개를 까딱였다.
차마 여기서 기억 안 난다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니던가.
백소하는 눈치 좋게 알아들으며 대답했다.
“왜 그… 적영과 내가 가서 슬쩍해왔던 것 말입니다.”
“아, 그 상단에서.”
“네, 그 상단에서.”
슬쩍이라…
하긴 살인도 목격자만 없으면 암살이라는데, 강도질도 본 사람이 없으면 슬쩍이지.
역시 어휘란 참 놀라운 것이라는 점에 조금 감탄하며, 청유백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으니 계속 말해 보라는 투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방금까지 정말로 깜빡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잊고 있었군.’
적영이 그곳에서 부채 조각을 가져왔던 탓에, 상대적으로 묻힌 감이 없잖아 있었다.
본래 그 상단을 습격한 목적이 저 ‘장부’였을 텐데도 말이다.
당장 코앞에 닥친 녹련의 대처에 너무 몰두해 있었다.
하지만 뭐, 다 지나간 일이다.
눈앞에 놓인 문제는 전부 해결했으니, 본래 계획으로 차차 돌아가면 되는 일이었다.
당초에, 오로목제의 정상화는 계획을 위한 초석일 뿐이었다.
본래 목표는 사마신교에 대한 정보의 수집.
그리고 나아가, 천화의 기억에 대한 단서 획득.
이제야 장애물을 전부 치운 셈이었다.
백소하의 말이 이어졌다.
“일단, 놈들은 사마신교의 끄나풀이 맞았습니다. 애초에 그 부분은 확신을 하고 움직인 것이었지만… 그 크기가 생각 이상으로 거대하더군요.”
“…그 말인즉?”
“그 상단에서 나온 건 고작해야 잘린 꼬리 정도의 정보였다는 말입니다. 놈들의 본거지 위치 같은, 정말로 중요한 것은 없었습니다.”
놈들은 어지간히도 기밀 엄수에 사활을 건 모양이었다.
오로목제 정도의 큰 도시에 있는 지부라고 해도 결국 점조직의 하나에 지나지 않았던 셈이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좀 아쉽게 되었다.
이럴 상황에 대비해서 후계자들을 세 곳으로 나누어 보낸 것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자신이 향한 곳에서 이렇다 할 소득이 없다는 것은 썩 달가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백소하의 말이 이어졌다.
“하지만 수확이 없지는 않았습니다. 놈들이 보낸 물자가 모이는 지역을 밝혀냈거든요.”
“듣던 중 괜찮은 말이군. 어디지?”
“조금 곤란한 동네긴 합니다만….”
“뜸 들이지 말고.”
“…청해, 서녕(西寧)입니다.”
“서녕이라면…….”
“예. 곤륜파의 영역 안입니다.”
조금 더 설명을 덧붙이자면, ‘마교를 죽일 듯이 원망하는’.
곤륜파 영역 안의 도시였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