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5화. 명예를 왜 여기서 찾아 (4)
‘그리 말하니 더 궁금해지는군.’
[먼저 말하자면, 본녀가 기억해낸 것보다 아직 모르는 것이 더 많다.]
‘그건 어떻게 아는 건데?’
[일부를 알게 되니, 그 크기의 윤곽이 잡히는 게다.]
천화는 천천히 대답했다.
스무 개에 가까울 조각 중 고작 두 조각을 맞췄을 뿐이다.
기억을 되찾았다 한들, 이것이 온전한 것인지, 정확한 것인지조차 아직 확신할 수 없다.
허나 그럼에도, 앎이라는 것은 모름보다는 한 끗이라도 더 나을 가능성이 있을 터.
일계묵련.
이선청련.
삼천백련.
사경녹련.
오온황련.
천화는 그렇게 다섯 개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청유백이 대꾸했다.
‘무엇의 이름이지?’
[무공… 아니, 의술? 모르겠느니라. 어떤 방법으로 작용하는지, 어떤 준비가 필요한지… 그런 것은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면 뭐야. 쓸모가 없지 않나.’
[단지, 그것들이 하나의 공통된 목적을 위해 만들어졌다는 것만은 알고 있느니라.]
다섯 개의 이름을 가진 그것들은, 오로지 하나의 목적만을 위해 반복되었던 시행착오들의 이름이었다.
몇 번이고 실패하고, 몇 번이고 반복하여, 그나마 의미 있는 진전을 거두었던 ‘방법’들의 이름.
그 목적은 단순했다.
단순하고 단순하여, 말이 필요 없을 정도였다.
천화가 말을 이었다.
[죽음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수많은 시도였느니.]
‘죽음?’
[그래. 죽음.]
‘불로불사 말인가?’
[…목적을 묻지 말거라. 본녀 또한 곤란하니. 그러나 구태여 대답하자면, 그 외에는 없지 않겠느냐.]
천화는 씁쓸하게 말을 이었다.
목적을 물어도, 이유를 물어도 대답해 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기억나지 않았으니까.
알 수 있는 것이 없었으니, 당연히 대답을 요구해도 곤란할 따름이다.
‘그럼, 결국 영생에 도달했나?’
[어떨 것 같으냐?]
‘당연히 실패했겠지.’
[네가 본 그것을 보고도 말이냐?]
‘…….’
청유백은 대답하지 못했다.
‘당연하다’라고 다시 한번 대꾸하기에는, 분명히 교아가 살아 돌아온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지 않았던가.
청유백은 인상을 찌푸리며 그녀의 말을 기다렸고, 천화는 살풋 웃으며 대꾸했다.
움직일 손이 있었다면, 그의 머리에 손을 올려 쓰다듬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 천화였다.
[본녀도 모르겠구나. 과거에 본녀가 몸담았던 신교가 어떤 곳이었는지, 왜 그러한 연구를 했는지….]
오히려 천화 본인이 알고 싶을 따름이었다.
스스로 과오라 평할 정도로 그것을 좋게 기억하고 있지 않음을 알면서도, 그 전체의 윤곽만을 알 수 있다는 사실은 그녀를 너무나도 괴롭게 했다.
물리적인 통증보다도, 이 극심한 무력감이 더욱 뼈저리게 다가왔다.
[…무엇 하나 알 수가 없다. 아니, 이제는 이것이 본녀의 기억인지도 모를 따름이니라.]
천 년 전의 일이다.
돌이켜 볼 방법도 없고, 스스로 떠올리지 않는다면 알 수 있는 방법도 없다.
괴롭다 하지 않으면, 그것은 분명 거짓말일 테다.
그럼에도 천화는 씁쓸하게 말을 이었다.
[그래도, 네놈은 운이 좋다.]
‘운이 좋다고?’
[본녀는 괴롭다만, 너는 눈앞의 적에 대한 정보를 얻게 되었으니.]
그 전부를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잘못되었음을 안다.
그 ‘앎’이라는 것이 진실인지 확신하지 못한다고는 하나─
그렇다 하여, 그것이 손을 놓고 방관해야 하는 이유가 되지는 못할 것이다.
청유백이 대꾸했다.
‘정확히는 모르겠다면서?’
[말하지 않았느냐. 일부를 알았으니 그 전체의 윤곽이 잡히는 것이라고.]
‘그러면…….’
[일부는, 알았다는 소리다.]
─터억.
천화가 청유백의 팔을 강제로 움직여, 맞춰진 부채 조각의 그림을 가리켰다.
뱀의 문양이 새겨진 부분이었다.
[이 뱀은 네 번째를 뜻한다.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네 번째에 드디어 죽음에 닿았느니라.]
다른 것은,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그것이 네 번째이고, 어째서 사경이라는 이름을 받았는지만 어렴풋이 떠오를 뿐이다.
사경(四境).
그리고 동시에, 사경(死境)
천화는 말을 이었다.
[그렇기에 사경(死境)의 녹련이다.]
‘숫자는 말장난인가?’
[…중의적 표현이라고 해다오.]
천화는 피식 웃으며 깊게 숨을 내쉬었다.
죽음을 피하기 위한 네 번째 방법.
하필이면, 그 순서가 좋지 않았다.
당연히 뒤의 번으로 갈수록 그 완성이 확연해졌으며, ‘영생’이라는 목적에 더 가까이 다가갔음이 명료할 테니까.
하물며 네 번째라면.
그야말로 한없이, 영생에 가까운 방법일 것이다.
[잘 들어라. 녹련은…….]
천화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그 모든 것 하나하나.
결코 흘려들을 수 없는 말이었고, 무엇 하나 믿기 힘든 말이었지만 그 말에 거짓이라고는 터럭만큼도 없었다.
헌데, 분명 두려워해야 할 말이었을진대─
청유백은, 대수롭지 않다는 양 대꾸했다.
“그래?”
[…똑바로 들은 게 맞더냐? 그리 가벼이 반응할 것이 아니잖느냐.]
“글쎄, 그럴 수도 있다만…….”
죽음으로부터 도망치는 방법이다.
그 전제부터가 이미 공포스럽다.
하지만 글쎄.
천화가 말한 딱 그대로의 상대라면…….
“해볼 만해.”
생각보다도 가능성이 있을 것 같았다.
* * *
한편.
“……아가씨.”
문노는 고개를 숙였다.
이것을 말해도 될까.
처음에는 단순한 이야기겠지만, 이야기를 끝맺을 즈음에는 결코 돌이킬 수 없는 한 걸음이 되어 있을 테다.
허나, 이미 결심한 일이었다.
결국 그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모든 일이 시작되었던, 가장 처음의 이야기부터였다.
“그들이 처음 접근한 것은… 십 년도 전의 일이었습니다.”
“십 년 전…?”
“누구도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예, 부끄러우나… 소인 또한 그러했사옵니다.”
문노는 비통해하며 바닥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쾅.
쾅!
몇 번이고.
그것이 이렇다 할 굉음이나 경천동지할 결과를 가져오지는 않았지만, 단지 한 사내의 손을 피로 물들이기에는 충분했다.
성시소는 화들짝 놀라 작은 손으로 그의 주먹을 감싸 쥐며 달랬다.
“자책하지 마세요. 십 년 전이면… 누가 그걸 기억하겠어요.”
“아닙니다. 아가씨, 제 탓입니다. 제가… 제가 무능해서 그렇습니다.”
“하지만….”
성시소는 난색을 표했다.
십 년 전의 기억?
누구도, 당장 그것을 떠올리지 못했다며 그를 탓하지는 못할 것이다.
당연하지 않은가.
자그마치 십 년 전이다.
강산이 한 번 바뀔 정도의 시간.
그것을 떠올릴 수 있는 자가 오히려 비정상적인 인간일 테다.
허나, 그럼에도 문노는 자신을 자책했다.
“차라리… 차라리 기억하지 못했더라면. 아니면… 기억해 낼 수 있었다면, 조금이라도 빨랐었다면…….”
…결국에는 그것을 기억해내 버렸으니까.
깊은 기억 속 편린의 하나였던 그것을, 결국은 끄집어내 조각을 맞추었으니까.
그렇기에 자책할 수밖에 없었다.
조금이라도 빨랐다면.
처음 자신을 ‘낙무열’이라고 소개한 사내를, 기억 속 한편에서 끄집어낼 수 있었다면.
이 모든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었기에.
문노는 슬픔 속에 말을 이었다.
“……오늘, 녹색으로 빛났던 가주의 눈을 보지 못했더라면, 소인 또한 여전히 기억하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눈이 녹색으로 빛난다니, 그게 무슨 해괴한…….”
듣고 있던 신월은 어이없다며 대꾸했다.
그리고, 당연하다는 양 대답하는 문노의 말이 이어졌다.
“예. 해괴하지요. 안광이라면 몇 무림인의 내기가 표출되는 방식일 수 있다고는 하나… 녹색은, 녹색은 아닙니다.”
녹색.
그것은 자연에서 존재할 수 없는 빛이다.
문노는 육십 평생 녹색 빛이라는 것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거니와, 하물며 길거리의 항설조차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래, 어린아이를 겁주기 위한 산의 도깨비불이 푸른색이라고 말하곤 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태양의 빛이 붉은색이고. 화로의 불이 노란색이라는 이야기 또한 있다….
그러나 녹색은 어떠한가.
문노의 식견이 짧은 것일지도 모른다.
허나 육십을 산 문노의 식견은, 결코 다른 사람에 비해 모자라다 할 정도는 아닐 터였다.
그만큼 녹색 빛이라는 것은, 사람에게 생소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다.
신월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 안광. 결코 잊을 수 없던 그 안광……. 십 년 전의 사내에게서 보았고, 반년 전에 찾아온 낙무열이라는 사내에게서 보았습니다.”
“사마신교로군.”
“그렇습니다. 그들이 무엇을 제안했는지 아십니까?”
“모르지. 십 년 전이면 나도 아직은 어릴 때야.”
“…그들은 신앙을 제안했습니다.”
신월의 단답에, 문노는 허탈하게 대답했다.
그래, 알 턱이 없다.
아니.
설령 안다고 해도, 그것을 진실로 믿고 대답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 제안은 그만큼 터무니없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 대가로 내민 것은… 영생이었습니다.”
“영생? 불로장생 말이야?”
“어떨지는 모르지요. 진시황도 그저 꿈에만 그리던 그것을 어찌 이룰 수 있을는지, 실체는 어떠할는지.”
당연히 거짓말이겠지만 말입니다.
문노는 그리 덧붙였다.
추측인 이유는, 단 한 번도 받아들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기억하지 못한 이유도 그것이었다.
항상 축객령으로 마무리 지어진 만남이었으니, 기억에 강하게 남아 있을 리가 있겠는가.
신월은 흐음, 하고 목청을 울리며 물었다.
단순한 호기심이었다.
“왜 거부했었는데? 영생, 꽤 멋진 단어잖아.”
“당연하지요. 신앙의 증거랍시고 아가씨를 요구했으니까요.”
“……!!”
“십 년 전에 그러했고… 삼 년 전에도 그러했으며, 마지막으로 반년 전에 찾아와 같은 것을 제안했습니다. 물론 그때 또한 거부했고요.”
반년 전.
성시소가 서역 여행을 떠나 있던 시기였다.
“위협을 느낀 가주께서는 가문에서 보관하던 곤륜기까지 사용하여 아가씨의 송환을 기도했으나… 그들의 요구는 협박에 가까워졌지요.”
성시소는 성씨세가에 없다. 그리고 그것이 가주를 급박하게 만들었다.
어느덧 무뎌져버린 위기감이었지만, 대상이 직접 찾아와 딸아이를 찾아내겠노라고 엄포를 놓는다면, 두려워하지 않을 아비가 어디에 있으랴.
문노의 말이 이어졌다.
“결국 그들은 딱 한 번, 주인님과의 회담을 가졌습니다. 대단할 것도 없는… 짧디짧은 시간이었지만, 주인님이 변하신 건 그 이후부터였습니다.”
광오하고, 흉폭하며, 항상 이윤만을 추구하게 변했다.
언제나 주변을 먼저 생각했던, 그 성여문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성정이었다.
그야말로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다른 말로는 설명이 불가능했다.
설득이나 매수 따위의 방법으로 사람이 그렇게 바뀔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으니까.
문노는 정확한 진실은 알지 못했지만,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다.
주인은 어떠한 종류의 사술에 당했고, 돌아올 방법은 현재로서는 전무하다는 사실을.
“그렇다면, 아버지는….”
“소인이 대답할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닌 것 같습니다.”
방법이 있을지는 모른다.
천하 어딘가에는, 분명 존재할지도 모른다.
문노는 진실을 몰랐기에, 분명 그리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녹련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더라면 그리 대답할 수 없었으리라.
성시소라는 소녀는 본인이 거짓말을 하지 않는 만큼, 타인에게서 나오는 거짓말 또한 혐오하는 부류.
거짓으로 말하는 ‘생존의 희망’ 따위는, 머지않아 간파할 것이다.
“이걸 왜 제게 말해주는 거죠?”
“네가 선택해야 하니까.”
“선택… 말인가요?”
신월은 고개를 끄덕였다.
무엇에 대한 선택이란 말인가.
성시소가 묻기 전에, 신월의 대답이 이어졌다.
“결투의 일시가 정해질 거야. 늦어도 모레, 아니면 글피. 빠르면 내일일 수도 있겠지…….”
“…….”
“싸우는 사람은 다른 둘이겠지만, 우리도 놀고 있지는 않을 거란다.”
“그러면…?”
“너를 성씨세가로 데려갈 거야. 우두머리가 없는 그곳에, 거부할 수 없는 후계자를 말이지.”
그리고, 선택이 이어질 것이다.
기이함을 알아챈 자들과, 그럼에도 가주를 따르는 자들.
그 사이에 숨어든, 사마신교의 세작들의 사이에서─
아버지를 원래대로 돌릴 수 있는 가능성을 하염없이 기다릴지.
혹은, 무정하다고 해도 눈앞의 감정에 호소하여…….
가주를 내치고 자신을 모실 것을 종용할지.
“네가 선택해야 할 거야. 다른 누구도 아닌… 시소 네가.”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