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2화. 명예를 왜 여기서 찾아 (2)
‘아니, 확신은 할 수 없다.’
성여문이 마지막에 했던 그 말만큼은 어쩐지 흘려들을 수가 없었던 탓이었다.
성여문의 ‘몸’이라고?
그 말은 마치…….
전혀 다른 사람이, 몸을 차지하고 있다는 듯 들리지 않는가.
청유백은 헛숨을 들이쉬며 고개를 저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인데.’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마교의 비술에서도, 그런 연구는 본 적이 없다.
차라리 저 멀리 남만의 부두교에서나 연구할 법한 것 아니던가.
허나, 그럼에도 청유백은 두려웠다.
‘…이해할 수 없다.’
이해할 수 없기에, 그렇기에 두렵다.
만에 하나라도 그 말도 안 되는 가정이 성립한다면─
성씨세가가 성시소를 구하러 원군을 보내지 않은 이유도.
성여문이 갑자기 오로목제의 내정에서 눈을 돌린 이유도.
그것 하나로 전부 설명이 되기 때문이었다.
‘성씨세가 전체가 아니라, ‘성여문 개인’을 어떻게 한 것이라면… 그 모든 것을 납득할 수 있다.’
성씨세가로 데려온 뒤에 성시소를 해코지할 수는 없을 터였다.
주변의 이목이 쏠릴 테니까.
오로목제의 내정도, 못할 수밖에 없다. 성여문 본인이 아니니까.
그 외의 다른, 서검련과 동우회의 대립 같은 자잘한 것들 또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말도 안 되는 가정’이 성립되기만 한다면, 전부.
‘천화, 어떻게 생각하나?’
[…….]
‘천화?’
청유백은 그녀의 의견을 물었지만, 그녀는 한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러다가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힘겨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모른다. …기억나지 않는다. 머리만… 머리만 아플 뿐이니라.]
‘뭔가 이견이 있을 수도 있지 않나. 생각해 봐라.’
[모른다지 않았느냐! 머리가 아프다. 본녀는, 조금 쉬어야겠으니….]
‘…….’
그 수단도, 방법도 이해할 수 없는 것투성이다.
아니, 이제 ‘이해한다’라는 가정은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교아가 살아 있는 것을 본 순간부터 그런 가정은 전부 무의미해졌을 터.
아무리 말이 안 되더라도, 진실이 아닌 것을 전부 제하고 마지막 남은 것은 진실일 수밖에 없는 법이었다.
* * *
한편, 대략 반 시진 전.
“누, 누구냐!”
“말해 주면 아냐?!”
─빠악!
적영은 사마신교가 배후로 있을 것이라 의심되는 상회에 쳐들어가 마음껏 난도질하는 중이었다.
대부분의 무인들은 일각 전에 밖으로 나갔으며, 칼 들고 덤벼드는 놈은 싹 다 죽인다.
만약을 위해 가면을 쓰고는 있었지만, 이대로 가면 이곳의 배후는 그녀의 정체는커녕 누가 침입했었는지조차 알지 못하게 될 것이다.
이번 목적이 암살은 아니었지만.
뭐.
목격자만 없으면 암살인 법이다.
“꽤 넓은데.”
적영은 방들을 하나하나 열어 보며 우두머리의 방일 법한 곳을 찾아다녔다.
가끔씩 전투 인원이 아닌 듯한 사람들이 보였지만, 그들은 대부분 구석에 틀어박혀 몸을 떨고 있었기에 신경 쓰지 않았다.
도망치면 죽이겠지만, 방해되지 않으면 굳이 손댈 필요 없다.
문득, 귓가에서 백소하의 전음이 들려왔다.
{아, 아. 적영, 들립니까?}
{뭐야? 어디 있길래 전음을 날려?}
{상회 밖에 있습니다. 무사들은 전부 성씨세가 쪽으로 몰려갔어요. 앞으로 대략 이각 정도의 시간은 있을 겁니다. 빨리 움직이십쇼.}
{알겠어.}
{눈에 보인다고 전부 죽이지 말고요. 아무리 우리 교 사람이 아니라고는 해도──}
{알겠다고! 네가 우리 엄마냐?}
{이봐요, 이봐요, 야!}
마지막으로 들려온 신경질적인 대답 이후로는 말이 없었다.
백소하는 아파오는 골을 짓누르며 한숨을 내쉬었다.
‘신중히 움직여야 할 텐데….’
적영의 행동 원리는 명예에 기반하고, 그 명예는 지극히도 편파적이다.
모든 것은 천마신교를 위해서.
즉, 교의 사람을 위해서라면 아무리 하찮은 자라고 해도 구하기 위해 움직이고, 교의 사람이 아니라면 죽이는 데에 아무런 거리낌이 없다.
민중이라면 모르겠으나, 특히나 그 대상이 악인일 경우라면.
이유든 명분이든, 적영은 복잡한 생각 없이 모가지부터 떨어트리고 보는 편이었다.
그리고 그런 백소하의 걱정이 무색하게, 적영은 건물 한편의 커다란 방을 발견했다.
“대충 여긴 것 같은데…….”
묘하게 넓고, 묘하게 고급진 방.
아마 이 상회의 주인이 쓰는 방이라고 봐도 좋을 정도로 다른 방과는 차별화된 방이었다.
뭔지 모를 문서들이 잔뜩 쌓여 있기도 했고, 알게 모르게 알싸한 냄새의 향이 피워져 있었다.
그리고, 그 방의 중심에는.
‘아까의 그놈이잖아?’
방금 전 마당에서 픽 하고 쓰러진, 고급 옷을 걸친 사내의 시체가 있었다.
아니, 시체가 맞나?
적영은 살짝 헷갈렸다.
시체를 안치시켜 놨다 치기에는 너무도 평온하게, 마치 잠을 재우듯 눕혀 놓은 모양새였다.
“흐음.”
적영은 잠깐 고민했다.
이걸 어떻게 하지?
대충 정황도 그렇고, 생김새도 그렇고 이놈이 우두머리 같기는 하다.
‘죽은 건가?’
아니, 만약에 안 죽었으면 어떻게 하지?
흠.
흐으음.
그리고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뭐, 일단 죽여 둘까!’
어차피 마교의 적이고.
확인 사살은 언제나 전쟁의 미덕인 법이다.
적영은 도를 뽑아들고,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사내의 가슴팍에 그대로 찔러 넣었다.
…헌데.
─카앙!
“……?”
들려온 것은, 피육을 가르는 소리 대신 강철이 맞부딪치는 소리였다.
‘뭐지? 갑옷이라도 입은 건가?’
적영은 의아해하며 사내의 앞섶을 열어젖혔고.
“이건…….”
그곳에 위치한 작은 철조각을 보며, 거칠게 미간을 찌푸렸다.
기억에 있는 물건이었다.
길이는 두 뼘 정도에, 폭은 손가락 한 마디 정도의 길이.
그리고 알 수 없는 기이한 문양이 새겨진, 기다란 철판.
“…그 부채 조각이잖아.”
성시소가 서역에서 받아왔고, 청유백이 교아의 시체에서 얻었다는 바로 그 조각이었다.
왜 이런 곳에, 이런 자에게 있는지 생각할 겨를은 없었다.
적영은 그것을 향해 손을 뻗었다.
“……!!”
하지만 조각은 움직이지 않았다.
사내의 육체에 완전히 결합된 듯이, 가슴팍에 붙어 있었다.
마치 주변의 피부가 부채 조각을 감싸고 있는 모양새였다.
“이거 왜 이래…….”
이해할 수 없는 광경.
어찌 보면 기괴하기까지 느껴지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뭐, 알 바인가!
적영은 상큼하게 도를 다시금 치켜들어, 가슴팍을 그대로 도려내어 조각을 떼어내었다.
“예상 밖의 수확인데!”
진위 여부는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적영은 기척에 그리 민감한 편은 아니었지만, 이렇게 손 위에 들고 보니 확실히 뭔가 기묘한 기운이 흐르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뭔가 기묘한 철 조각.
청유백이 주문한 게 이것은 아니었지만, 공로는 역시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법이다.
적영은 피와 살 조각을 사내의 앞섶으로 닦아낸 뒤, 그것을 챙겼다.
“아, 마무리도 해야지.”
겸사겸사, 사내의 목을 뚫어 확실하게 죽여 놓는 것까지도 잊지 않았고 말이다.
“보자, 다음은…….”
적영은 고개를 돌려 방을 돌아보았다.
딱히 비밀 통로나 기관이 있을 것 같은 구조의 방은 아니었다.
책을 몇 권 들춰 보려고 해도, 시간이 그리 넉넉한 것도 아닌지라.
적영이 이득은 없이 방안을 순회하고만 있기를 약 일각, 다시금 백소하의 목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적영, 더 발견한 것 없습니까?}
{얼씨구, 한가한가 봐?}
적영은 어이없다는 듯 대꾸했다.
그 또한 할 일이 있었고, 굳이 참견할 정도로 한가하지는 않을 테다.
백소하가 대꾸했다.
{이탈 준비는 끝났으니 말입니다.}
{그럼 네가 와서 찾아보든가. 나는 더는 모르겠어.}
{뭐, 그러지요.}
* * *
“봐. 못 찾겠지? 딱히 이렇다하게 드러나는 게 없어.”
“으음…….”
방의 장부들을 뒤적이던 백소하는 침음을 삼켰다.
곤란하다.
‘시간도, 단서도 모자라다.’
이곳에서 찾아내야 했던 것은, 사마신교와 관련된 정보, 그리고 되도록이면 그 소재였다.
물자나 아이들을 어디론가 빼돌리고 있었으니, 그 끝에 진실이 있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이곳이 사마신교와 관련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정보를 알아낼 방법이 부족했다.
이 장부들을 하나하나 전부 들고 나를 수도 없는 노릇이니, 남은 시간이 지나기 전에 명료한 하나의 방법을 찾아내야만 했다.
‘청유백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그래, 그라면…….’
백소하는 머리를 굴렸다.
좀 더 좋은 방법.
효율적인 방법.
인의(人意)와 정도(正道)를 벗어났다 하더라도, 어떻게든 결과만은 이끌어내는 방법이 필요했다.
그리고 잠시의 시간이 지났다.
“…….”
“어, 뭐야. 어디 가?”
적영은 갑작스레 자리에서 일어나 다른 곳으로 향하는 백소하를 바라보았다.
이곳이 우두머리의 방임은 분명할진대, 굳이 다른 곳으로 갈 이유가 뭐가 있겠는가.
적영은 그를 쫓았고, 백소하는 이곳저곳의 방을 계속 열었다 닫았다를 반복했다.
“뭐 하는 거야?”
적영은 그 행동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었다.
문을 열고, 그 안을 조사하는 것이 아니라 잠깐 고개만 들이밀었다가 빼는 것을 반복했다.
그 방들에 잔뜩 겁먹은 사람들이 있는 경우도 있었지만, 백소하는 그들에게 잠깐의 눈길을 준 이후로는 전혀 관심 없이 다음 방을 향했다.
그리고 그렇게, 몇 개의 방을 열었을까.
백소하는 문득, 어떤 방을 열더니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야, 야. 너 제정신…….”
마치… 청유백을 닮은 종류의 웃음이었다.
적영은 조금 섬뜩함을 느끼며 백소하를 따라 방으로 들어갔다.
백소하는 방구석에서 서로를 끌어안은 채 벌벌 떨고 있는 남녀에게 다가가, 사내의 머리채를 붙잡았다.
“이봐.”
“예, 예?!”
“이곳에 지하실이나… 뭐 숨겨둔 것 같은 시설이 있나?”
“어, 없습니다요!”
“음, 그래?”
적영은 순간 그 행동이 멍청하다고 생각했다.
겁에 질린 사람에게 진실을 끌어내는 것이 쉽다고 하더라도, 저렇게 말만으로 협박하려면 어지간한 경험과 요령이 있어야 했다.
적영이 백소하의 어깨로 손을 뻗으며 그냥 돌아가서 책이나 더 찾아보자고 말하려 한 그때.
“자, 잠깐만……!”
백소하는 사내를 내팽개친 뒤, 사내가 끌어안고 있던 여인을 붙잡아 그녀의 목에 철필을 겨누었다.
그리고는, 다시 말했다.
“다시 생각해 봐. 없어?”
“저는, 저는 모릅니다! 제발, 저는 죽이셔도 좋으니 부인만은…!”
“나는 그런 걸 물어보지 않았어.”
“……!!”
푸욱.
조금씩, 백소하의 철필이 여인의 살갗을 찢고 들어가는 것이 보여 왔다.
적영의 눈빛이 경악으로 물드는 것과, 사내의 표정에 공포가 번지는 것은 거의 동시였다.
“뭐 아는 게 있을 거 아냐. 장부라든지, 비밀스런 무언가. 뭐든 상관없으니까 말해봐.”
“그들이 저를 죽일 겁니다!”
“말 안 하면 지금 죽는 거고. 당신이 아니라, 이 여자가 말이지.”
“크윽……!!”
사내는 주먹을 악쥐며 무릎을 꿇었다.
그 와중에도 백소하의 철필은 여인의 목을 뚫고 들어갔고, 여인의 고통스러운 비명이 울리기 시작할 즈음.
“알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전부, 전부 내어 드리겠습니다. 제가 아는 건 뭐든지! 그러니 제발……!”
사내는, 결국 굴복해야만 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