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1화. 명예를 왜 여기서 찾아 (1)
─탁.
성여문은 찻잔을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뭐, 하나는 단순한 이유요. 교아 놈의 떼쓰기 때문이지. 당신 모가지는 꼭 제 손으로 따야겠다고 지랄해서 말이야.”
덤덤하게 말하기에는 좀 미묘한 내용의 말이었지만, 말하는 쪽이든 듣는 쪽이든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뭐, 진실은 마음에 전해진다지 않던가.
‘사실 우리는 친하게 지내고 싶었어!’ 같은 개소리를 늘어놓을 바에야, 진실되게 말하는 쪽이 나을 테다.
최소한 청유백은 그리 생각하고 있었다.
“우리 애가 정신에 문제가 있는지라, 본인이 대신 사과드리는 바요.”
“받아들이지.”
옆에서 교아가 ‘아! 내가 무슨 잘못이 있다고!’ 따위의 알 수 없는 소리를 지껄이고 있었다만, 신경을 쓰는 이는 없었다.
눈살을 찌푸리는 이는 있었지만 말이다.
성여문의 말이 이어졌다.
“둘은… 가식 없이 말하자면, 하나의 제안을 하려 한다오.”
“제안?”
“그렇소. 제안! 내기라고 불러도 좋겠지. 어느 쪽이든 상관없으니.”
제안, 내기.
어느 쪽이든 예견치 못한 단어다.
청유백은 한번 말해 보라며 고개를 까딱였다.
“혹여, 서역의 풍습을 아시오?”
“남국 말인가?”
“아니오. 그것보다도 더 멀리. 인도와 북해의 빙궁을 넘어, 지도의 경계를 넘어선 이방의 땅이요.”
“…글쎄. 무지하진 않지.”
청유백은 그리 대꾸했다.
그러나, 반은 허세였다.
서역.
상인들도 인도까지의 길을 알 뿐, 그 너머의 땅으로 나아가는 자는 그리 많지 않다.
언어도, 문화도, 풍습도, 식생활도 다른 미지의 땅으로 모험을 떠나고픈 자가 얼마나 있겠는가.
‘강해지기 위한 단서를 찾기 위해 눈을 돌린 적도 있었다만…….’
결국 실패로 돌아갔었더랬다.
너무도 먼 길, 너무도 미지의 땅이었기 때문에.
이미 중원은 충분히 넓었고, 그것을 살피는 것만으로 하나의 평생은 너무도 짧게 느껴졌다.
어떨까.
허세라는 것을 알아챈 것일까, 모르는 것일까.
확실하지는 않았다.
“신기한 땅이었다오. 강철의 갑옷으로 전신을 두르고… 말을 타고 싸우는 기인들이 사는 곳이지.”
“비효율적인 짓을 하는군.”
“내 눈에도 그랬으나… 무얼, 각자의 방식이 있는 것 아니겠소.”
“해서, 요지는?”
청유백이 탁자를 툭툭 쳤다.
구태여 실없는 한담이나 나누러 온 것이 아니었으니, 시간을 조절해야 했다.
저쪽에 충분한 시간을 주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만에 하나 빠져나가지 못할 정도로 둘러싸이는 것은 피해야만 할 테니까.
성여문은 보채지 말라는 양 웃었다.
“그들의 풍습이 꽤 인상적이었다오. 그들은 상단과 상단, 영토와 영토, 개인과 개인의 싸움까지도 간단하게 해결하더이다. 그래요, 뭐라 했더라…. ‘명예로운 결투’?”
“명예? 시답잖은 것을…….”
“시답잖으면 뭐 어떻소. 암수와 혈투 탓에 좀 잊혀진 지 오래되었으나… 좀처럼 이리 모인 자리, 명예를 한번 찾아보는 것은 어떻겠소?”
“허.”
청유백은 코웃음 치며 눈앞의 사내를 바라보았다.
옆에서 계속 산만하게 고개를 까딱이는 교아와는 다르게, 이자는 분명한 사마신교의 머리 중 하나다.
실력으로 보든, 언행으로 보든 간에 그는 명료한 고수.
“그러니까.”
이 말이 머저리 같은 농담이 아니고, 거짓 하나 없이 진심으로 말한 것이라면….
그 의미는, 단순했다.
단순하다 못해, 허탈할 정도다.
“계급장 떼고, 모가지 걸고, 시원하게 한판 떠서 뒤탈 없이 끝내자?”
“이해가 빨라서 좋구려.”
정말이었는지, 성여문은 만면에 미소를 걸친 꼴이었다.
옆의 교아 놈도 좋답시고 실실거리고 있었다.
목적을 생각하기도 귀찮아지는, 순수하기 그지없는 웃음이었다.
정말로, 그냥 일대일의 승부가 즐거워서 이리 말하는 건가?
‘…아니면, 또 다른 모종의 함정인가.’
생각을 정리해야 했다.
청유백은 일단 대꾸했다.
“우리가 받아들여야 할 이유는?”
“자비를 베푼다는 말은 하지 않겠소. 시답잖은 말 한 마디로 화를 돋우고 싶지는 않으니.”
“…….”
자비.
자비라.
말마따나, ‘자비’라는 한 마디만 들어도 발작할 놈들이 떠올랐다.
이 자리에 있는 것이 이들이 아니라 적영이었다면, 그 말을 듣자마자 당장 죽여버리겠다고 발작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녀를 다른 곳으로 보낸 것은 분명 현명한 판단이었다.
뭐, 결과론적인 말이었지만.
성여문은 지금 싸우고 싶지는 않다는 양, 두 손을 위로 들며 웃어 보였다.
“다만, 그쪽도 꽤 흥미가 있는 이야기 아닐까 싶소만. 피차 전면전으로 나서면 피곤해지는 것은 마찬가지니, 우리끼리의 일로 끝내자는 거요.”
“피차…라고?”
“그렇소. 피차.”
“하, 그래. 피차… 피차 그렇지.”
킥.
청유백은 터져 나오는 실소를 참을 수가 없었다.
피차 피곤해진다?
그리고, 일대일의 결투?
‘돌려 말하기도 피곤하다는 건가.’
아니면, 이렇게 말해도 받아들일 것을 안다는 것인가.
돌려서 숨겨 말할 의지조차 없었다.
그러니까, 이런 뜻이었다.
피차 생각하는 바는 같다.
비장의 수는 있고, 붙으면 각자 자신이 이긴다고 생각할 테지.
그러니까, 깔끔하게 한판 붙고 끝내자.
‘진짜, 병신 같을 정도로 단순하군.’
함정?
함정이라면 함정이다.
이걸 제시하는 쪽도, 내가 당연히 이긴다고 생각하니까 제시하는 것이다.
청유백은 청유백대로 승리의 확신이 있고, 저쪽도 저쪽대로 승리의 확신이 있으니.
과연 누가 옳은지 한번 보자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래, 분명 피차 그런 입장이야.”
청유백은 웃었다.
어처구니없다는 실소가 반, 나쁘지 않다는 조소가 반이었다.
“받아들이시겠소?”
“그러면, 장소는 우리가 정하겠다. 무슨 공작을 할지 모르는 일이니.”
“뜻대로 하시오. 대신… 그쪽과 우리, 누가 서로 싸우게 될지는 우리가 정하겠소.”
“누가 싸우냐니?”
“설마, 본인 혼자서 싸울 생각이셨소? 사람이 이리도 많은데, 여흥을 어찌 혼자 독차지하려 하시오.”
“……허.”
이 새끼 봐라.
하긴, 틀린 말은 아니다.
녹련과 백련이랬나.
제들 딴에는 둘이 있는데, 명예 운운하면서 둘이서 하나를 상대할 수는 없을 터.
하지만, 곧이곧대로 납득할 수는 없다.
조금이라도 말을 더 끌어낼 필요가 있었다.
어떤 종류의 것이든 말이다.
“사람을 모아서 전부 같은 자리에서 싸우자는 건가? 갑자기 돌변해서, 그게 전쟁이 되지 않는다고 어떻게 확신하지?”
그렇게 되면 결투 따위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장수끼리의 일기토가 끝난다고 어디 전쟁이 끝난다던가.
사람이 모여 있다면 복수 심리는 당연히 작용하기 마련이고, 어찌 되든 큰 싸움으로 번질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허나, 성여문의 대답은 단순했다.
“그렇기에 명예 아니겠소?”
“웃기지도 않는 농담이군.”
“큭큭, 그렇긴 하지.”
정말 농이었다는 양손을 휘저은 성여문은, 어깨를 으쓱이며 말을 이었다.
“그럼 이건 어떻소? 그쪽에서 장소를 통보하시오. 이쪽은 둘이 있으니, 장소도 둘. 갈라져서 싸운다고 하면 괜찮지 않겠소.”
“시간은?”
“그 또한 그대가 원하는 대로.”
“자신 있는 모양이지?”
“그야말로 무용한 질문일 터.”
“…재밌군.”
“긍정의 의미로 받아들이겠소.”
좋다.
애당초, 서로 생각하는 바가 같고, 목표하는 바가 같다.
상대방의 모가지를 딴다.
단지 그것 하나만을 위해서 만든 합의였고, 담판이다.
명예라는 것이, 어떻게 작용할지는 솔직히 확신할 수 없지만.
‘…시간이 되었다.’
청유백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건물 아래로 무사들은 계속해서 모여들고 있었지만, 위층으로 올라오려는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이 유리한 상황, 이 포위된 지금에 굳이 이런 대화를 꺼내놓는 것 자체로, 저것이 진실이라는 것은 의심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말의 진위와는 별개로, 이 이상 늦어지면 탈출이 위험했다.
언제든지 최악의 경우는 상정해야 하는 법이다.
일어나 뒤도는 청유백을 올려다보며, 성여문이 웃으며 덧붙였다.
“아, 부탁이 있소만.”
“뭐지?”
“내 딸을 데려와 줄 수 있겠소? 결투의 결과가 어찌 되든, 이곳은 그 아이의 집이라오.”
“네게 아비라 자칭할 자격이 있나?”
“무슨 소리요. 이건 분명 그 아비의 몸이라오. 성여문의 것이지.”
“……무슨?”
청유백은 인상을 찌푸렸다.
‘…무슨 뜻이지?’
성여문이 아니라는 소리인가?
아니, 하지만 성여문의 몸이라지 않았는가.
청유백의 혼란이 일순간 표정에 드러났고, 교아는 성여문의 어깨를 치며 질책했다.
“녹련. 너무 많이 지껄였어.”
“아차, 그렇군. 뭐 어떻소. 곧 다시 보게 될 터인데.”
성여문은.
아니, 녹련 낙무열은─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작별 선물인 셈 치지.”
* * *
세 사람은 의외로 순순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
아까 같이 들어갔던 의원까지 함께인 채였고, 무사들은 어떤 의심도 없이 그들을 보내 주었다.
의원은 그의 집으로 돌아갔고, 신월은 성시소를 본다는 명목으로 함께 객잔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이런 전개로 흘러갈 줄은 몰랐는데.’
[뭐, 나쁘진 않지 않으냐?]
‘그건… 그렇지.’
기실, 좀 머저리 같은 경우였다.
이 멍청하기 짝이 없는 ‘결투’가 성립될 수 있는 이유는, 서로가 패배한다는 가정을 전혀 하지 않았기 때문이니 말이다.
두 번의 결투에서 ‘한쪽씩 이겼을 경우’에 대한 결과도 생각하지 않은 것이 그 반증이었다.
애초에, 서로가 진다고 생각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허나 문득, 객잔에 서서히 가까워져가는 골목에서 녹지연이 입을 열었다.
“청유백, 괜찮은 건가요?”
“무엇이?”
“승부 말이에요. 명예라니, 가당치도 않은… 저들이 무슨 암수를 부릴지 모르는데요. 저들의 말을 어디까지 믿으시는 거예요?”
“처음부터 끝까지.”
“네?”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거짓이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