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0화. 재회 (5)
신월은 성여문의 몸에 천천히 다가갔다.
조각의 기척은 분명히 저것에게서 비롯되고 있었으니, 다른 곳을 애타게 뒤져 봐야 무의미한 일일 테다.
그리고 그것의 지척까지 이르러, 신월은 그것을 자세히 살폈다.
‘시체…인가?’
조금의 미동도 없다.
숨을 쉬지도 않으며, 하물며 심장이 뛰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헌데.
‘그런데… 아직 혈색이 돌고 있어.’
심장이 뛰지 않고.
숨도 쉬지 않는다.
그러면 이것은 시체인가?
하지만… 썩지도 않고, 이리도 멀쩡히 존재하고 있지 않은가.
‘이건 대체 뭐지?’
죽은 것은 아니다.
자는 것도 아니다.
이미 수십, 수백의 사람을 죽여온 신월이었다.
자는 사람의 목숨을 끊은 적 또한 이미 수도 없이 많이 있었다.
그렇기에, 산 자와 죽은 자의 차이는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그러나 저것은 둘 다 아니었다.
허나… 성여문이 죽었다면 분명히 대대적으로 공표가 되었을 터.
‘숨길 수도 없을 테지.’
하지만 신월은 그런 소문도, 정보도 들은 바가 없었다.
정말로, 이건 대체 뭐란 말인가.
…신월은 깊게 숨을 들이쉬며 마음을 다잡았다.
‘아냐, 어쨌든 목표는 조각의 탈취. 위치만 알아도 좋댔지만…. 이런 기회를 놓칠 수는 없지.’
성시소는 그의 품으로 손을 뻗었다.
설마 그만한 크기의 조각을 먹거나 한 것은 아닐 테니, 분명히 품에 있을 것이다.
헌데.
─번뜩.
“……?!”
일순간, 성여문의 눈동자가 번뜩이며 떠졌다.
그리고 녹색으로 빛난 성여문의 눈동자가 신월을 응시했다.
“……!!”
그것은 거의 동시였다.
그가 손을 뻗는 것과─
본능적인 위협에 신월이 뒤로 몸을 날려, 문 바깥까지 벗어난 것.
그리고, 교아가 그곳까지 다다른 순간이었다.
* * *
방에서 튕겨져 나와 자세를 고쳐 잡은 신월은 순간 청유백과 시선이 마주쳤다.
물론, 교아도 마찬가지였다.
교아는 청유백을 돌아보며 물었다.
“앙큼한 짓을 꾸미고 있었니?”
하지만 교아는 그리 말하면서도 신월을 붙잡으려 움직이지는 않았다.
방 안에서부터, 누군가의 발걸음이 이쪽을 향하고 있었으므로.
“쥐새끼가 들었을 줄이야.”
“대체 어떻게……!”
“이 기운, 이 기술… 그런가. 산상만월의 후예이신가? 썩 나쁘지 않은 몸이 되겠어.”
걸어 나온 것은 희끗희끗한 새치가 엇비치는 나이의 중년인이었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지만, 청유백은 그가 누군지 짐작할 수 있었다.
성시소와 상당히 닮은 얼굴.
엄밀히 말하면 성시소가 그를 닮은 것이겠으나─ 어쨌든, 그런 사내였으니 말이다.
신월이 그를 향해 소리쳤다.
“너는 누구냐! 성 가주를 어떻게 한 거지?!”
“섭섭하군, 본인을 앞에 두고 그런 말을 하다니.”
“어줍잖은 말장난 따위 통할 것 같은가!”
신월은 미간을 찌푸리며 단도를 꺼내 들었다.
교아는 그것을 보며 휘익, 휘파람을 불었고, 청유백은 웅성거리며 상층을 주시하는 아래의 무사들을 주시했다.
‘사람이 모여들고 있다.’
하긴, 그리 요란하게 방문을 부수고 나오지 않았던가.
잠시 후면 경비 무사들이 이곳을 에워싸도 이상하지 않을 테다.
교아는 대화를 하겠답시고 자신들을 데려왔으니 무사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모르겠다만, 일단 신월이 마주한 저 사내는 성여문이었다.
성씨세가의 장원에서 그 가주에게 칼을 들이대는 것이 과연 현명한 일일지는…….
청유백으로서는,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은 일이었다.
‘그냥 탈출할까?’
[빨리 결정해야 할 것 같구나. 무사들이 모여들고 있어. 이 장원 내에서 뿐만 아니라, 바깥에서도 집결하고 있다.]
‘……조금만 지켜보지.’
어차피 이미 늦었다.
신월은 들켰고, 자신들이 오로목제에 있다는 사실이 발각된 시점에서 썩 좋지 않은 상황이다.
‘성씨세가의 문제를 찾는다는 목적은 달성하긴 했다만.’
글쎄.
청유백은 성여문을 바라보았다.
딱히 누군가에게 협박받는 것 같은 기색도 없고, 어딘가 몸이 안 좋은 것 같지도 않다.
그냥 평범한… 그야말로 평범한 상태 아니던가.
허나 그때.
‘……녹색 눈?’
신월에게 한 발짝 다가서던 성여문의 눈이 짙은 녹색으로 한 번 빛났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그의 몸에서 심후한 내공이 끓어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빠져나갈 수 있으리라 생각하시는가?”
“크윽…!”
성여문의 손에서 뻗어 나온 녹색의 기운이 신월의 손목을 움켜쥐었다.
‘…허공섭물인가?’
가공할 정도의 내공이다.
형체를 지니고, 직접적으로 사람에게 간섭할 수 있는 위력의 기예라니.
[저게 한 사람의 힘으로 가능하단 말이더냐…?]
천화가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고, 청유백으로서도 믿기 힘든지 눈을 똑바로 뜨고 그 광경을 쳐다보았다.
저 정도의 소모를 감당하려면, 그야말로 수십 명 정도의 내공을 하나로 뭉쳐야 가능할 테다.
“이……!”
신월은 그 손길을 떨치려 기를 끌어올렸고, 슬슬 분위기가 과열되자 교아가 입을 열었다.
“이봐 녹련, 그쯤 하자고. 그렇게 하면 재미도 없잖아?”
“……?”
성여문은 밖의 상황을 보지 못하고 있었던 듯 보였다.
교아를 발견하고는,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의외라는 듯 말을 이었다.
“이런, 손님이었는가?”
“그런 셈 치자고. 재밌잖아.”
일순간, 교아와 성여문의 시선에 알 수 없는 뜻이 오갔다.
성여문은 고개를 끄덕였고, 신월의 손목을 잡아챈 기운을 풀어 주었다.
“뭐, 그렇다면야…….”
“크읏!”
신월은 한 발짝 물러나 청유백 쪽으로 움직였다.
한순간 스친 그 표정에는 조금이나마 공포가 실려 있었다.
청유백과 마주할 때에조차 없던 감정이었다.
굳이 따지자면 그것은─
[죽음이 아니라, 미지에 대한 공포……. 보다 근본적인 두려움.]
‘뭐라고?’
‘신월, 저 아이가 느끼고 있는 감정이다. 기이하구나.’
천화는 그것을 꿰뚫어보았다.
하지만 저 허공섭물이 놀랍기는 하나, 그 정도의 공포를 줄 만한 것인가?
‘아니, 그건 아닐진대.’
신월이 청유백의 옆에 다다랐을 즈음, 성여문은 허리를 꼿꼿이 펴고 그들의 앞에 섰다.
녹색으로 빛나던 눈은, 어느덧 다시 검게 변색되어 있었다.
마치, 원래부터 그랬던 것처럼.
“본새 보아하니 그쪽은 녹가의 장녀 되시겠고… 그렇군. 당신이 청유백이겠구려.”
“해박하군. 우릴 아나?”
“모를 수가 없지 않겠소. 우리는 결국 같은 뿌리에서 나온 것을. 게다가 뭐… 저 빌어먹을 교아 놈이 허구한 날 지껄여 댔거든. 당신이 지 모가지를 썰었다고 말이야.”
“…….”
“언젠가 복수하겠다고 노래를 불렀다오.”
성여문은 큭, 하고 지독한 웃음을 지었다.
그것이 한 지역을 이끄는, 명망 높은 가문의 주인이 지을 표정이라기에는 너무나도 표독한 것이었다.
또한, 그 기척조차도 말이다.
“정식으로 소개하지, 마교의 후예여. 명예로운 사마신교의 육련, 그 일원으로서… 서로 인사는 해야 예의일 터.”
성여문은 완벽한 격식과 예의를 차리며 고개를 숙였다.
각도, 순간, 말투, 예법.
예법에 무지한 무림인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인사였다.
“본인이 바로 사마신교의 녹련. 사경녹련(四境綠蓮) 낙무열, 청가의 후계께 인사드리지.”
허나, 그럼에도.
청유백은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이 인사가, ‘알고’ 하는 것이 아닌, 그저 몸이 기억한 ‘본능’에 따라 반복되는 것일 뿐이라는 사실을.
“…성여문이 아니군.”
청유백이 작게 읊조린 그 말에─
녹련, 낙무열의 입꼬리가 더욱 크게 기울었다.
* * *
“자자, 일부러 이렇게 데려온 거라고. 흔치 않은 장면이잖니? 빨리 들어, 들어!”
교아는 청유백과 성여문의 앞에 놓인 찻잔을 서로에게로 밀어주며 마실 것을 재촉했다.
소란을 듣고 몰려온 무사들은 별일 아니라고 돌려보내긴 했지만, 건물 주변으로 시시각각 몰려드는 기척을 느낄 수 있었다.
‘시간 하나는 알차게 벌었군.’
[탈출하는 게 점점 어려워지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지…….]
‘어떻게든 되겠지.’
청유백은 대충 대꾸하며 찻잔을 기울였다.
어차피 검 세 자루도 당장 이 지붕 위에 도달해 있었고, 이 차에도 독은 없다.
신월이야 알아서 살 테고, 어중이떠중이 무인들은 녹지연이 정리할 수 있으리라.
뭐, 청유백의 편안한 마음과는 달리 녹지연과 신월은 불안한 듯 자리에도 앉지 않고 있었다마는.
─홀짝.
청유백이 뜨거운 차를 목울대로 넘기고, 교아가 둘에게 웃으며 제안했다.
“너희도 앉지 그러니? 다리 안 아파?”
“불필요한 참견이네요.”
“우와, 차가워라… 아니, 때린 건 미안하다니까 아가씨? 그래도 괜찮아. 난 약한 놈한테는 관심 없으니까. 지금 도망쳐도 살려 줄게!”
“…….”
녹지연은 대답하지 않았다.
수준 낮은 도발에 굳이 대응해줄 필요 없다고 스스로 되뇌는 듯 보였다.
그리고 잠깐 침묵이 흘렀다.
청유백과 성여문.
각자의 앞에 놓인 차를 그저 홀짝이며 즐기는 듯 보였지만, 속으로는 각자 생각하는 바를 몇 번이고 시험하고 있을 테다.
최소한 청유백은 그러했고, 그 상념의 사이로 신월의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그냥 넘어가려 했는데, 성여문 을 주의해. 청유백.}
{무슨 뜻이지?}
{저거, 사람이 아니야.}
신월의 말에 청유백의 미간이 잠깐 움츠러들었다.
적들의 앞이니 표정 변화를 내비치는 것은 결코 좋지 않았기에 잠깐의 미동으로 그쳤지만, 그 말은 흘려듣기 힘든 것이었다.
{어떤 의미로?}
{말 그대로야. 움직이는 시체. 저건 절대로… 사람이라 부를 수 없어.}
{…….}
찻잔 너머로 청유백과 성여문의 시선이 마주쳤다.
그리고 순간 기울어지는 입꼬리와, 어렴풋하게 번뜩이는 녹색의 안광이 엇비쳤다.
…섬뜩하기는 하지만, 분명 눈앞에서 움직이고 있지 않은가.
청유백이 대꾸했다.
{문헌에서 전해지는 강시라고 보기에는 지능이 명료해 보이는데.}
{강시는 아니야.}
{그럼 뭐지?}
{나도 모르겠다. 하지만 확실해. 사람은 아니야. 절대로.}
{골 때리는군.}
청유백은 눈을 껌뻑이며 시선을 돌렸다.
뭣도 모르는 머저리의 의견이라면 그냥 무시했겠지만, 그녀는 신월이다.
근거가 없다고는 해도, 그녀의 감각을 무시하는 것은 썩 현명한 일이 아닐 테다.
{그럼 교아는 어떻지?}
{저건 살아 있는 사람이네. 조금… 묘하기는 하지만.}
{묘하다라.}
확실히 묘하다.
‘묘하지 않으면 거짓말이겠지.’
직접 모가지를 땄는데 말이다.
청유백은 다시 차를 들이켰다.
정보가 모자랐다.
사마신교와 관련되면, 자신조차 알 수 없는 일이 너무도 많이 엮여왔다.
‘지금으로선… 백소하가 뭔가 물어 오기를 기대하는 수밖에.’
다시 몇 번이고 액체가 목울대를 넘어가는 소리가 들려왔고, 결국 찻잔은 바닥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제야, 성여문은 눈을 빛내며 입을 열었다.
“자, 그래서… 필경, 이리 자리를 마련한 이유가 궁금할 터.”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