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9화. 재회 (4)
성씨세가의 가주전.
그곳은 거대한 다섯 층의 크기에 비해, 그다지 많은 경비가 배치되어 있는 장소는 아니었다.
가주인 성여문 본인이 무시할 수 없는 고수이기도 하거니와, 애당초 이 장원 내에 수많은 고수들이 산재해 있기 때문이다.
이곳까지 누군가 침범하기 전에 적발될 테니, 굳이 사생활의 영역인 이곳에 경비가 많을 이유가 없었다.
뭐, 밤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으나…….
지금은 수십 명의 사람이 계속 복도를 오가는 낮이니까 말이다.
헌데 문득, 가주전의 입구를 지키는 두 명의 무사 중 한명이 귀를 쫑긋거리며 동료를 돌아보았다.
“자네 방금 무슨 소리 못 들었나?”
“소리? 무슨 소리?”
“아니, 쥐인가…. 미안하네. 내가 잘못 들었는가 보이.”
“요즘 고생하더니 기가 허해지기라도 했는가? 하기사, 요즘 영 이상하기는 해. 가주님께서도 편치 않으신 것 같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무사들의 옆으로 하나의 신형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신월, 그녀로서도 대낮에 이리 침입하는 것은 위험 부담이 적잖았다.
‘여기까지 들어왔으면… 이 약동 옷도 별로 의미가 없겠지.’
웬 놈이냐! 라고 물었을 때, ‘길을 잃어서 그러는데 변소가 어딘가요’라고 대답하기에는 너무 깊숙이 들어왔다.
하지만 괜찮다.
어차피, 들키지 않을 테니.
“…이 안인가.”
조각의 기운은 이 방 안에서 느껴지고 있었다.
깊은 곳이다 싶었더니, 결국은 가주의 방이었다.
‘성여문과 사마신교가 모종의 거래를 한 건가? 그 대가로 사마신교의 일원이 된 것이고?’
하지만, 믿기 힘든 일이었다.
그 딸 바보인 성여문이, 성시소의 목숨을 내놓을 정도로 형편 좋은 거래가 어디에 있을까.
설령 진시황도 못 이룬 영생을 준다고 해도, 그 대가가 딸의 목숨이라면 성여문은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최소한, 신월은 그렇게 확신하고 있었다.
─드르륵.
문소리가 작게 울리고, 신월은 방 안으로 발을 내디뎠다.
꽤 과감한 행동이었지만, 이미 방 안에 사람의 기척은 없다는 것을 확인한 이후였다.
그러므로 남은 것은, 그 조각을 찾아서 빠져나가는 것뿐일 테다.
…그랬을 터였다.
“……!!”
그것을 발견한 순간, 신월은 헛숨을 들이쉬었다.
분명 사람은 없었다.
헌데, 분명 그랬을 터인데─
‘……성여문!’
방의 한가운데, 주인의 자리에 펴 있는 담요에는 성여문이 두 손을 끌어 모은 채 눕혀져 있었다.
조금의 미동도 없는 것이, 시체를 안치시켜 놓았다고 해도 믿을 수 있는 수준이었다.
허나 시체 특유의 썩은 내도, 새파란 낯빛도 없었다.
신월은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 그것을 살폈다.
‘자고 있는 건가?’
아니, 아니다.
자고 있는 것이라면, 아무리 작다고 해도 필경 숨소리만큼은 들려야만 하리라.
하지만, 저것에서는 어떤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저것은 굳이 따지자면 사람이 아니라 물건의 기척에 가까웠다.
가령… 시체와도 같은 것 말이다.
신월은 조금 더 성여문의 몸체로 다가갔다.
‘조각은 몸에 지니고 있는 건가?’
이 방의 기척은 그 조각이 발산하는 것 하나뿐이었고, 그것은 성여문의 몸체에서 비롯되고 있었다.
‘…좋아. 문제없어.’
신월은 작게, 그리고 옅게 숨을 반복해서 내쉬었다.
설령 자고 있는 것이라고 해도, 자신이 누구던가.
암살이나 도둑질이나, 결국은 거기서 거기.
한끝 차이일 뿐이리라.
그러나 그 순간.
─꿈틀.
신월이 보지 못한, 그의 손가락이 잠깐 움츠러들었다.
* * *
한편, 적영과 백소하는 계획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이 객잔에서 나온 것이라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게 빠져나가고, 외곽을 돌아 동쪽에 있는 한 상회로 향했다.
길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탓에 여러 사람들과 부딪혔지만, 죽립을 깊게 눌러쓴 그들을 알아본 이는 없는 듯 보였다.
그리고 주변에 아무도 없는 곳을 골라, 적당한 지붕에 올랐다.
적영이 어깨를 풀며 물었다.
“야, 여기 맞아?”
“저기 보이는 마당, 맞을 겁니다.”
“겁니다? 왜 확신이 없어?”
“아니, 어쩌라는 겁니까? 내가 이 동네 사는 것도 아니고. 내가 직접 조사한 것도 아닌데. 네가 약도 보고 찾으시든가요.”
“으음…….”
할 말이 궁색해진 적영은 얼굴을 붉히며 입을 다물었다.
하기사 뭐.
백소하가 한 일인데, 알아서 잘 했겠지.
요즘 너무 팬 감도 없잖아 있었다.
그도 나름 화낼 줄 아는 인간이었으니, 뭐.
‘하루 정도는 화 좀 풀라고 내버려 둘 때가 됐지.’
적영은 새초롬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다가, 백소하가 어깨를 치며 어딘가를 가리키자 고개를 돌렸다.
“왜?”
“…저기 보십쇼. 저자가 우두머리인 것 같습니다.”
백소하가 가리킨 손끝에는 상회의 마당을 거니는 사내와, 그를 따르는 무사 몇이 보였다.
멀끔하고 고급진 복식으로 보아하니, 그가 이 상회의 총수라고 보아도 무리가 없을 듯 보였다.
“그럼 내 목표는 뭐야? 다 죽여?”
“일단 좀 기다리십쇼. 여기가 정말 사마신교와 관련이 있다면… 모종의 반응이 있을 겁니다.”
“저쪽이 온전히 성공하면 아무 일 없는 거 아냐?”
“온전히 성공할 리가 없죠.”
“뭐…?”
백소하가 가볍게 대답한 말에, 적영은 인상을 찌푸리며 대꾸했다.
기분이 나쁘다기보다는, 단순히 이해하지 못한 듯 보였다.
백소하의 설명이 이어졌다.
“이번 계획이 제일 잘 들어맞는 경우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어… 그야 당연히 저쪽이 안 들키고 완벽하게 빠져나오는 거겠지. 그리고 우리는… 내가 들어가서 싹 다 죽이고 나온다?”
“……반의반만 맞습니다.”
“왜?”
“일단 네가 들어가서 싹 다 죽이고 나오는 부분에서 기각입니다. 할 수는 있습니까?”
“못할 것 같아?”
적영이 어깨를 으쓱이며 자신의 도를 들어 보였고, 백소하는 몸서리치며 헛웃음을 지었다.
하긴, 그녀는 약하지 않다.
적가의 다른 후계들이 전부 괴물이라 평가 절하되는 부분이 있다만, 고작 상단 호위 무사 따위는 수십이 붙어도 그녀를 이기지 못할 테다.
백소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죄송합니다. 정정하지요. 할 수는 있겠지만, 그건 썩 좋은 경우가 아닙니다.”
“왜? 사마신교 지부면 싹 죽이는 게 맞잖아.”
“너는 비밀스러운 처리를 못 하니까요. 숫자가 많다면 아마 도중에 들킬 겁니다. 그리고… 그 경우에는 백중백 쫓기게 되겠지요.”
“…그건 그렇지.”
‘전부 죽일 수 있다’라는 말은, 심히 한계가 명확한 말이다.
저 안에 있는 무사들을 전부 죽인다고 하더라도, 지원이 오는 무사들은 어찌 하겠는가.
그 다음 지원은?
나아가, 관군이 온다고 한다면?
그것들까지 전부 죽일 수 있을까?
백소하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을 이었다.
“뭐, 말마따나 목격자 없이 다 죽이면 되겠습니다만, 그건 무리잖습니까. 그러니까 틈을 노리는 겁니다.”
그게 됐으면 적철진이 후계자를 먹었겠는가?
적영이 했겠지.
백소하는 실없는 상상을 접어두고는, 말을 이었다.
“첫 번째로, 청유백 측이 들키지 않는다. 두 번째로, 이후 빠져나올 때 소란을 일으켜 이목을 끈다.”
“…고의적으로 불러 모으는 거구나? 일이 전부 끝난 다음에.”
“그렇죠. 도중에 들키는 것과는 다릅니다. 도주로를 확보할 수 있다는 뜻이니.”
그렇기에 백소하는 확신하고 있었다.
저쪽의 일이 어떻게 되든 간에, 중간에 들키든 나중에 소란을 끌든 간에, 이쪽의 무사들은 반드시 빠져나가게 될 것이다.
청유백은 그런 인간이다.
우연을 가장하여 계략을 꾸미는, 혀 밑에 칼을 숨긴 부류의 인간.
이번에도 ‘혹시 모르니’ 따위의 이유로 보냈지만, 결코 ‘혹시’ 같은 생각은 하지 않을 테다.
도리어, ‘반드시’에 가깝다.
“무슨 논의를 하는 걸까요.”
“글쎄, 으음… 안 들려. 더 가까이 가 볼까?”
“그건 위험합니다. 대기는 어디까지나 들키지 않는 선에서─”
“야, 야! 저거 왜 저래?!”
“……?!”
백소하는 한숨을 내쉬다가도, 화들짝 놀란 적영의 목소리에 바로 고개를 돌렸다.
적영이 가리킨 것은 예의 그 사내였다.
사내는 어디를 보는 것인지,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러다가─ 갑자기, 관절이 뒤틀리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춤… 그래, 그리 묘사하는 것이 옳으리라.
팔과 다리가 마구잡이로 꺾이며 뒤틀린 형상을 취했다만, 그것은 그리 말하는 것이 가장 적확했다.
그리고, 찰나가 지나지 않아.
─풀썩.
마치 인형이 쓰러지듯, 사내가 바닥에 쓰러졌다.
“뭐, 뭐야. 저거 왜 저래? 죽은 거야? 저래 갑자기?”
“그런… 것 같습니다. 조금의 미동도 없어요.”
사내는 약간의 경련도 없이, 마치 죽은 듯 가만히 있었다.
옆에 있던 두 명의 무사가 그의 팔을 한 쪽씩 잡고, 건물 안으로 끌고 들어갔다.
“그것보다… 대처가 묘하게 익숙하지 않습니까?”
“쟤들이 죽인 거 아냐?!”
“아닙니다. 그런 움직임은 없었지 않습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암살당한 것도 아닌 것 같은데.”
“암기도 아냐. 아무 것도 못 봤어.”
“저건 마치… 쓰러질 것을 알고 있었다는 투 아닙니까.”
그리고 백소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각 건물들에서 무인 십수 명이 달려 나왔다.
방금 사내를 건물 안으로 끌고 들어간 무인들도 마찬가지였다.
그것이 뜻하는 바는 명료할 테다.
허나 도리어, 너무나도 명확했기에 백소하는 이해할 수 없었다.
“벌써?”
벌써… 들켰다고?
아니면, 벌써 일이 끝난 건가?
지금으로서는 무엇 하나 속단할 수 없었다.
단지, 적영이 몸을 풀며 그에게 속삭일 뿐이었다.
“흠. 어쨌든 우리도 움직일 시간인 거지?”
“…그건 그렇군요. 다녀오십시오. 준비해 두겠습니다.”
* * *
“교아 님, 그 약동들은…….”
“응? 뭐가? 불만 있어?”
“아, 아닙니다. 지나가시지요.”
교아는 자유롭게 성씨세가의 안뜰을 거닐었다.
그 뒤에는 주변을 경계하는 듯한 시선의 약동 남녀 두 명이 뒤따르고 있었고 말이다.
그것을 기이하게 본 듯한 무사들이 가끔씩 말을 걸어오기는 했지만, 교아가 대충 대꾸하는 것만으로 전부 물러났다.
청유백은 너무나도 태연한 그의 뒤를 쫓으며 숨을 들이쉬었다.
‘천화, 어떻게 생각하나?’
[무얼?]
‘분명히 죽였다. 기척이 완전히 사라진 걸 확인했어…….’
허세가 아니었다.
분명 죽였다.
그렇게 먼지가 되어 사라진 것은 의도한 바가 아니었지만, 결국 죽였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다.
[분명 그랬었지.]
‘살아 있을 리가 없단 말이다.’
설마, 그 순간 무언가와 바꿔치기되어 살아 나갔단 말인가?
믿기 힘든 일이었지만, 천화가 이죽거리며 대꾸했다.
[어찌 되었든 저리 살아 있지 않으냐. 뭐, 사자 소생의 비술이라도 있는 모양이지.]
‘고작 마교에서 분리해 나간… 사마신교 따위가?’
[뭐, 저들이 말하는 ‘그분’이라는 작자가 준비한 것일 수도 있지 않더냐?]
‘…….’
아무리 그래도, 부활이라는 것은 납득하기 힘든 단어였다.
그딴 게 가능하다면, 당장 중원에 있는 도가와 불가 문파들이 들고 일어날 것이다.
영생이 가능한데, 윤회고 등선이고 나발이고 뭐가 중요하겠는가.
허나, 천화의 말이 청유백의 뇌리를 뒤흔들었다.
[네놈의 회귀는 설명이 되고?]
‘그건… 그렇군.’
[네가 아는 것이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지 말거라. 본녀가 살아 있을 적만 해도, 본교는 그 연구를 위해….]
어…….
연구를 위해.
천화는 그렇게 몇 번 중얼거렸다.
말을 잇지는 못하고, 할 말을 까먹은 듯 말을 끌었다.
듣다 못한 청유백이 대꾸했다.
‘무슨 연구?’
[……모르겠다. 뭐였지? 잊어 버리거라. 생각나면 언젠가 말해 주마.]
‘싱겁기는.’
청유백이 코웃음 치며 주제를 넘길 무렵, 교아의 발길이 멈추었다.
“아, 다 왔다!”
“여기는?”
척 보아도, 이미 성씨세가의 심부까지 들어왔다.
그 중에도 이곳은 가장 큰 본채의 오 층 꼭대기.
있을 만한 것은 충분히 유추가 되었지만, 청유백은 굳이 물어보았다.
유추와 정답은 언제나 다를 수 있으니까 말이다.
교아는 킬킬거리며 대꾸했다.
“뭐, 이쯤 왔으면 누굴 만날지 예상이 되지 않니? 여기가 바로 성씨세가의…….”
─콰광!
하지만 교아의 말은 끝맺어지지 못했다.
폭발적인 굉음과 함께, 그의 바로 뒤로 문이 박살 나며 하나의 신형이 튕겨지듯 빠져나왔다.
그 신형은 청유백과 똑같은 옷을 입고 있었다. 녹지연과도 마찬가지였다.
교아는 그녀를 흥미롭다는 듯 바라보더니, 청유백과 녹지연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가주전이란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