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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우면 네가 천마 하든가-138화 (138/200)

제138화. 재회 (3)

신월은 사람을 피해 걸었다.

은신하며 움직인다고는 해도, 주변에 무사들이 깔려 있는 상황이다.

만에 하나라도 기척을 눈치채일 상황은 조금이라도 적은 것이 나았다.

이 약동의 옷을 입고 있는 이상 누군가를 마주쳐도 둘러댈 핑계 정도는 있는 셈이었지만─

뭐, 핑계 댈 상황조차 만들지 않는 것이 일류 아니겠는가.

‘일단 높은 곳으로.’

신월은 청유백이 내밀었던 조각의 기척을 떠올렸다.

사람과 비슷한 기척을 띠면서도, 강철의 차가운 기운을 내포한 이질적인 기척.

마치 영혼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영혼의 기척이 이렇지 않을까 생각되는 감각의 기척이었다.

그것을 쫓기 위해서는, 일단은 위치를 잡아야 했다.

먼 거리에 있는 기척을 쫓으려면 정신을 집중해야만 했고, 그것을 찾자마자 일직선으로 달려가 시야에 붙잡을 필요가 있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벽에 붙어 달리다가, 두 개의 발걸음 소리가 가까워지는 것이 들렸다.

─저벅, 저벅….

“!!”

신월은 곧장 방향을 틀어 몸을 숨겼고, 그 길로는 두 명의 무사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지나쳤다.

분명히 무언가를 찾는 듯한 움직임이었다.

자신을 발견하지는 못한 듯 보였지만, 서둘러야만 했다.

‘쯧, 삼백 금짜리 일이라지만….’

역시 성씨세가는 위험하다.

‘지금’의 성씨세가는 더욱 그렇다.

이 오로목제라는 거대한 도시의 유지가 뒤에서 조종당하는 상황.

어디서 어떤 힘이 개입해 들어올지 모르는 일이었다.

들키지 않을 것을 상정하고 움직이는 것이라고는 하지만, 만약 들켰을 경우에는…….

‘…썩 즐겁지는 않겠지.’

신월은 문득, 성시소의 생각이 들었다.

비단 돈 때문에 이 일을 받아들인 것은 아니다.

그건 그저 표면상의, 수하 앞에서 체면 구기지 않기 위한 명분이었을 뿐.

중요한 것은 성시소였다.

옛 인연이 대체 뭐라고 이렇게까지 고생해야 하느냐 싶긴 하지만, 감정을 제하고 보더라도 성시소가 중요한 것은 맞다.

그녀는 성씨세가의 외동딸.

설령 성여문을 죽인다고 하더라도, 그 자리를 이어받을 사람은 있어야만 하니까.

그렇기에 구했다.

그랬지만…….

‘오늘 아침에 확인해 보았을 때는…….’

그녀에게는 딱히 이렇다 할 구속도, 감시도 없었다.

붙어 있는 것은 어릴 적부터 항상 따라다니던 애송이 호위 하나뿐이고, 저놈이 다른 세력에 붙어먹었을 리는 하늘이 두 쪽 나도 없다.

그 말인즉, 애초부터 성시소는 도망간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는다는 소리.

그러니까─ 인질극 자체가 사기극이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빌어먹을 놈.’

감히 신월을, 산상만월을 등쳐 먹을 생각을 하다니.

이 대가는 비싸게 치러야 할 테다.

당장 밤에 전표를 받고 말았고, 의뢰를 수락한 꼴이 되었으니 이제 와서 무를 수는 없지만 말이다.

“후우.”

신월은 바람을 맞으며 주변에서 느껴오는 기척을 훑었다.

아직 낮이고, 수십 명의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것이 느껴졌다.

훈련을 하는 무인들과, 빈둥거리는 식객들을 합한다면 가히 몇백 명은 되리라.

하지만 찾는 것은 그것들이 아니다.

아주 명료하고, 이질적인 기운….

신월은 고개를 들었다.

‘하나는 청유백. 저기에 있군.’

아직 이동하고 있었다.

머지않아 성여답의 방에 도착할 것이다.

신월은, 청유백이 지닌 것 외에 두 개의 기운을 더 감지했다.

하나는 장원 안쪽에, 하나는, 청유백의 근처에 있었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근처는 아니다.

아직 근처로 향해 가는 움직임이다.

‘가서 알려야 하나?’

신월은 잠깐 고민했다.

저 기척의 움직임을 보면 청유백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은 명료했으니까.

하지만, 곧 필요 없다는 쪽으로 결론 내려졌다.

‘저 사람이 알아서 하겠지.’

어차피 지금부터 달린다고 해도, 저쪽이 먼저 도착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결국 아무 의미도 없다.

그것보다는 차라리 이쪽에 집중해서 저 기척의 정체를 밝혀내는 것이 옳았다.

그리고 뭐.

설령 마주친다고 하더라도, 청유백이 알아서 대처할 수 있을 테다.

밉상이기는 해도 실력은 진짜배기니까.

신월은 고개를 돌려, 장원 가장 안쪽에 있는 기척을 바라보았다.

‘청유백 쪽으로 움직이는 기척은 분명 살아 있는 사람이야. 하지만 이쪽은…….’

모르겠다.

움직이지도 않고, 단순한 숨결의 미동조차 없다.

저게 살아 있는 사람이 맞나?

아니면… 그냥 그 부채 조각만 덩그러니 놓여 있는 것일까?

신월의 입장에서는, 후자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만약 그렇다면, 탈취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겠는데.’

신월은 그 기척을 향해 나아갔다.

* * *

“아… 익숙한 체취야. 너무… 너무 사랑스러운 향기.”

스읍, 후우─

청유백의 뒤편에 선 사람은 깊게 숨을 들이쉬고, 또 내쉬었다.

언젠가 들어본 적 있는 목소리였다. 허나, 청유백은 쉽사리 믿을 수가 없었다.

다시금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 죽음의 향기지…….”

“…….”

청유백과 녹지연의 시선이 마주했다.

시야의 사각.

언제부터인지 배후를 잡힌 것이다.

이 목소리, 이 기척.

분명히 한 번 마주쳤던 것이었으나, 두 번 보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것이었다.

청유백은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고, 기억 속에 있던 사내가 광기에 찬 시선을 보내오고 있는 것을 시야에 담았다.

“안녕, 우리 구면이지 않니? 내가 말했잖아, 곧 다시 볼 거라고.”

“어떻게 살아 있지?”

“이런, 성격도 급해라. 내가, 내가, 내가아…. 이렇게 참고 있는데!”

교아의 말투는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내뱉을수록 격앙되어 갔다.

그 시선이 청유백에게 고정되어 있는 동안 녹지연이 손목 아래에서 비침을 빼내어 팔을 움직였지만, 그녀가 고개를 돌리는 것보다 교아가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드는 것이 먼저였다.

“잠깐, 움직이지 마렴. 너희는 피할 수 있겠지만, 저 늙은 의원이랑 성여답 저 친구는 아니지 않겠니?”

“…벽력탄! 미친 건가요?”

“어휴, 이번 몸이 꽤 괜찮긴 한데, 아무래도 좀 쫄리더라고! 그래도 걱정 마! 네년한테는 관심 없으니까.”

교아는 손사래를 치며 폭탄의 심지를 매만졌다.

저것이 터지면, 최소한 이 방은 흔적도 없이 날아갈 것이다.

건물이 무너지는 정도의 충격은 주지 못하겠으나, 자신의 몸 하나 보호하지 못하는 성여답과 의원은 확실하게 죽는다.

성여답은 식은땀을 흘리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교, 교아 님. 대체 무슨 일인 겁니까?”

“네가 알 필요 없어. 음, 마음 같아서는 그냥 죽여 버리고 싶지만, 그러면 너희가 곤란하겠지?”

교아는 성여답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은 채, 청유백과 녹지연을 바라볼 뿐이었다.

곤란하느냐고?

그래, 상당히 곤란할 테다.

지금 자신들은 싸우러 온 것이 아니었다.

명분도 없이 성씨세가와 싸운다는 것은 오로목제 전체와 싸우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하물며 지금 성여답이 죽는다면, 무엇으로 죽이느냐는 관계없이 침입자인 자신들이 의심받을 것은 뻔하지 않던가.

언제든 진실은 중요하지 않다.

필요한 것은 명분을 들이밀기 위한 재료뿐이고, 그 재료는 지금 상대방의 손아귀에 쥐여져 있었다.

청유백은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조금씩,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을 정도로만 마기를 천천히 끌어올리며 장원 바깥 어디선가 기다리고 있을 검 세 자루를 천천히 불러 모았다.

서서히, 조금씩.

아주 천천히.

그리고 동시에 입을 열었다.

“원하는 게 뭐냐?”

교아는 피식 웃었다.

폭탄의 심지에서 손을 떼지 않고 있었지만, 지금의 이 상황이 퍽 즐거운 듯 보였다.

“원하는 거? 글쎄, 널 죽이고는 싶지만… 그건 내가 직접 해야 재밌는 거겠지? 그러니까, 음, 아, 이걸 뭐라고 부르더라…….”

교아는 미간을 찌푸렸다.

기억나지 않는 단어를 찾는지 머리를 쥐어뜯었고, 잠시가 지나고 나서야 환해진 표정으로 연신 손뼉을 쳤다.

“그래, 자비! 자비야. 지금 이걸 터뜨려서 너희들을 쫓기게 만드는 것도 재밌을 것 같기는 한데, 내 취향은 아니거든?”

교아는 연신 알 수 없는 소리를 지껄였다.

녹지연의 뇌리에 박히는 인상은 단 하나의 단어뿐이었다.

‘미친 새끼.’

이해할 수가 없었다.

분명히 죽였던 놈이 사지 멀쩡하게 서 있는 꼴 하며, 분명히 같은 편일 성여답을 죽여 버리겠다는 협박 하며.

무엇 하나 납득할 수 없는 것들뿐이었다.

‘뽑은 건 은침 두 개.’

시간이 없어 독은 아직 바르지 못했지만, 급소에 찔러 들어간다면 움직임은 충분히 봉할 수 있을 것이다.

교아의 몸도, 지난번에 한 번 보았으니 고개를 돌린 지금도 정확하게 맞출 수 있으리라 자신했다.

하지만, 조금 기묘했다.

‘정말 같은 사람인가?’

교아는, 고작 한 달도 지나지 않았을 텐데도 눈에 띄게 성장한 듯 보였다.

단순히, 신장의 차이만 보아도 그러했다.

‘그때 무슨 방법을 써서 탈출했던 건가?’

몸이 무너지는 듯 보였던 것은 사실 전부 연출이었고…….

본체는 탈출했던 건가.

만약 그렇다면, 눈앞에 있는 저것이 진짜라는 확신도 할 수 없었다.

급소를 찌른 줄 알았더니 가짜고, 그대로 벽력탄이 날아들어 온다면.

‘그거야말로 외통수.’

성여답은 살아야 했다.

뒤진다고 해도, 자신들이 없는 곳에서 뒤져야 했다.

오로목제 지부가 통째로 날아가는 것은 썩 즐거운 일이 아닐 테니까.

녹지연은 이를 악물었다.

‘대체 어떻게 살아 있는 거야?’

정말로, 죽은 사람을 부활시킨 건가?

죽은 사람의 영혼을 붙잡고, 새로운 몸에 넣는, 뭐 그런 건가?

‘아냐, 말도 안 돼.’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저 성장한 몸은 대체 어떻게 된 것이란 말인가.

녹지연은 청유백을 바라보았지만, 그 또한 마땅한 답이 있어 보이는 표정은 아니었다.

그런 고민이 흘러갈 즈음, 교아의 입에서 말이 이어졌다.

“아니, 그러니까… 아, 녹련 놈이 뭐랬더라. 그냥 보내주지 말랬는데… 아……. 아, 맞다.”

“……?”

“성시소는 어디에 숨겼니?”

교아는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폭탄을 쥐고 있는 사람의 표정은 아니었다.

정말 그것을 바란다기보다는, 할 수 없어서 말하는 따분한 표정.

“찾고자 하면 찾을 수 있단다? 시간이야 좀 걸리겠지만, 여기서 너희들을 잡으면 문제될 것도 없지.”

방금까지 청유백을 보며 격앙하던 사람이라고는 믿을 수 없었다.

교아는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거래를 하자.”

“너랑 말인가?”

“응? 아니. 나는 그런 거 몰라. 말해준 대로 읊은 거야. 나 말고, 그런 거 좋아하는 놈이랑 대화하라고.”

씨발.

욕지거리가 절로 나온다.

거래?

거래라고?

받아들일 가치도 없는 말이라고 생각했다만, 청유백은 팔을 들어 녹지연을 막아섰다.

한번 말해 보라는 양, 청유백은 고개를 까딱였다.

“아이, 걱정 마. 함정 같은 거 파 봤자 재미도 없고, 당해주지도 않을 거잖아. 그렇지? 그럴 바에는 차라리 여기서 이거 터뜨리는 게 낫지.”

“…….”

“자, 따라올래, 말래? 싫으면 쟤네는 여기서 뒤지는 거고! 녹련이 존나게 짜증 내긴 하겠지만, 뭐… 내 알 바야? 하하!”

교아는 살갑게 웃었다.

찢어 죽이고픈 웃음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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