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2화. 신월(新月) (2)
“예의가 없는 밤손님이군. 선객까지 쫓아내게 하고 말이야.”
청유백은 객잔의 지붕으로 올라 거리의 어둠을 바라보았다.
한껏 내려앉은 어스름은 이미 사람들을 전부 각자의 잠자리로 돌려보낸 뒤였다.
이 부근은 홍등가도 아니었으니, 거리의 밤은 이미 깊어 있었다.
‘다음 공격이 없다. 혼자인가?’
청유백은 주변을 살피며 정신을 집중했다.
멀지 않은 곳에서, 자신을 주시하고 있는 기척이 단 하나 있었다.
허나… 옅다.
몹시도 옅다.
청유백 자신의 내공도 이젠 일 갑자에 다다랐을진대, 그 기척을 쫓는 것이 결코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찾을 수 있었던 까닭은, 저 기척이 자신을 기다리는 듯이 멈추어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기습, 그리고 방만…….
가장 어울리지 않는 두 단어다.
보통이라면, 암기가 날아든 즉시 두 번째 타격이 이어져야 했으리라.
허나, 선수를 쳐놓고 습격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도망친다는 것은.
…….
…….
‘초대인가.’
청유백은 잠깐 숨을 골랐다.
그리고 그 동안에도, 그 기척은 여전히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목적이 자신임은 명료했다.
착각한 것도 아니고, 그저 자신을 목표로 하여 온 것임이 분명한 상대다.
허나, 어떻게 알았단 말인가?
분명 사마신교의 추적자는 없음을 확인했고, 있었다면 전부 죽였다.
단 한 명조차도 놓치지 않았을 터인데.
‘…준비가 필요하겠군.’
[생각나는 바가 있느냐?]
‘몇 가지는.’
청유백은 자신을 기다리는 기척을 잠깐 힐끗 돌아보고는 지붕에서 내려왔다.
그래. 영문도 모를 초대장을 갖고 찾아온 놈이니, 조금의 인내심 정도는 있으리라.
* * *
하나, 둘, 셋… 그리고 넷.
가지런히 놓인 천 위에, 몇 개의 암기들이 가지런히 놓여져 있었다.
당장 녹지연이 닦고 있는 백은침 넷을 제외하더라도, 여러 가지 종류의 암기들이 그녀의 주변에 산재했다.
무릇 무기의 관리라는 것은 모든 무인에게 필요한 일이었지만, 암기와 독을 사용하는 이들에게는 그 정도가 더했다.
한 번 던지면 다시 사용하지 않는 암기도 있기 마련이나, 수급하기 어려워 몇 번은 다시 쓰는 것도 있으니.
발라 놓았던 독을 제거하고, 상태를 관리하고, 다음에 사용할 수 있도록 조정하는 것은 퍽 중요한 일이었다.
“거의 끝났네.”
녹지연은 은침을 내려놓으며 깊게 숨을 내쉬었다.
내일부터는 바빠질 터였다.
공연히 모습을 드러내야 할지도 모르니, 지금처럼 평화로운 밤은 오늘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
녹지연은 암기들을 정리했다.
풀어놓은 혁대와 아대에 꽂아 넣고, 둥글게 말아 머리맡에 두었다.
‘다른 쪽은 벌써 자는 것 같고.’
내내 시달리던 백소하는 말할 것도 없고, 적영은 성시소를 재우다 함께 잠든 듯 보였다.
‘청 공자도… 자나.’
눈을 감고 옆쪽의 방을 살펴도, 이렇다 할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아마, 벌써 누워서 눈을 감은 것일 테다.
‘…나도 잘까.’
녹지연은 한숨을 내쉬었다.
기실, 그녀는 수면을 썩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다.
이불을 덮고 누우면 온몸의 감각에 집중하게 되고, 피부 밑의 벌레들이 움츠리는 듯한 감각이 신경을 내달렸으니까.
지금에야 그 모든 것에서 벗어나게 되었다만, 그 선명한 고통과 악몽이 말끔히 잊혀지는 것은 아니었다.
녹지연은 펼쳐져 있는 이부자리로 다가가 이불을 덮어썼다.
그리고, 그녀는 눈을 감았다.
‘……!’
뼈에 새겨졌던 그 감각.
피부를 타고 흐르는 감각이 다시금 살아나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곧 괜찮아졌다.
도리어 편안해졌다.
괜찮다며, 누군가가 자신의 어깨를 토닥이는 것만 같았다.
배려라고는 없고, 전혀 조심스러워하지도 않는 손길이었다만, 언젠가 느꼈던 안심되는 그것과도 같았다.
“녹지연.”
이제는 환청까지 들리는가.
그렇지 않은 것 같았는데, 무의식중에 그에게 꽤 의지하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녹지연.”
심지어 꽤 생생하다.
마치, 바로 머리맡에서 속삭이는 것만 같은… 그런 목소리다.
…….
…….
“……?”
“…….”
청유백과 눈이 마주친 녹지연은, 자연스럽게 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문은, 여전히 닫힌 채였다.
그런데 바람은 어디선가 들어오고 있었고…….
‘창문은…….’
…열려 있네.
아니, 왜 그쪽에서?
“…….”
녹지연은 뒤척였던 것이 꿈속의 일인 양 자연스럽게 일어나 앉았다.
무슨 말이 이어질까 생각하기도 전에, 청유백의 손이 그녀의 어깨에 올려졌다.
“녹지연.”
“저, 저기. 잠시만요…!”
갑자기? 이렇게 갑자기?
‘아니, 너무 갑작스러운데요…!’
녹지연이 몸에서 힘을 빼며 눈을 감을 찰나, 청유백의 말이 이어졌다.
너무도 담담하고, 냉철하게.
“네 도움이 필요하다.”
“…네?”
* * *
“크윽! 허억, 허억…….”
이번 지령은 쉬운 것이었다.
심지어, 신월의 직속에서 내려온 특별 임무.
이번 일만 잘 끝마치면, 자신도 한 지부의 장으로서 승격할 기회를 얻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분명 그러했다.
대략, 일각 전까지는 말이다.
“크윽!”
그림자는 골목과 공터를 내달리며, 자신을 쫓아오는 저것을 떨쳐내려 발버둥 쳤다.
‘말도 안 돼. 어떻게 쫓아오는 거지?’
그림자의 임무는 단순했다.
태평객잔의 몇 층, 어느 곳에 있는 무림인을 끌어내어, 어디까지 유인해라.
누군가를 암살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유인하는 것이라면 이 이상 쉬운 임무가 없었다.
‘유인’이라는 명제가 붙었다는 것은, 건들면 따라온다─라는 확신이 담보되었을 때에만 붙는 것이니 말이다.
그랬기에, 처음에는 딱 한 번 쑤시고 일부러 발견하게끔 은신에 틈을 두고 있었다.
대충 숨은 자신을 발견하고, 그가 따라오게끔 말이다.
공격하고, 따라오게끔 유도하고, 못 쫓아올 것 같으면 다시금 기척을 드러내고…….
그런 단순한 작업의 반복.
그것이 대체로의 유인 임무였다.
허나.
‘어떻게 되먹은 괴물이냐!’
저것은 어떻게 알았는지, 자신의 위치를 정확하게 간파하고 붙잡으려 내달렸다.
유인?
기척을 드러내?
미친 소리.
지금 자신은 전력을 다해 숨으려 하고 있었다.
목숨을 건 추격전 따위, 그림자의 임무가 아니지 않던가.
허나, 그럼에도.
한평생 갈고닦은 산상만월의 은신술을 전력을 다해 펼치려 해도, 저자는 귀신같이 따라붙었다.
‘아냐, 괜찮아. 거의 다 왔다.’
그림자는 고개를 흔들며 정신을 차렸다.
곧 목적지다.
저곳까지만 데려간다면, 자신의 임무는 그것으로 끝.
그곳에서 대기하고 있는 후속 부대가 나머지 일을 처리할 것이었다.
그런데…….
‘…어디 갔지?’
그놈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드디어 떼어낸 건가?
아니, 아니다. 방금까지만 해도 곧장 붙잡을 듯이 자신의 뒤를 쫓아오고 있었다.
그 찰나에, 그것의 손아귀를 벗어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이곳에 도달한 것만으로도 기적이라 생각되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때.
─콰앙!
“커억!”
“이곳인가? 한적하긴 하나, 조금 모자란 듯한데…. 차라리 성벽을 넘지 그랬나.”
누군가의 주먹이 그림자의 가슴을 강타하며, 그림자는 그대로 의식을 잃고 고꾸라졌다.
그래도 고통 때문인지, 몸은 떨고 있는 것으로 보아 살아 있는 것 같기는 했다.
…아니면 사후경직이던가.
그림자를 쓰러뜨린 사내는 서늘한 달빛 아래 모습을 드러냈다.
개울이 흐르는 공터.
낮이었다면 아낙들이 빨랫감을 한 아름 들고 나와, 두런두런 이야기꽃을 피웠을 법한 장소였다.
당연히, 밤이 깊은 지금은 사람의 발길이 끊긴 지 오래였다.
청유백은 깊게 숨을 내쉬었다.
“퍽 무례한 초대 아닌가.”
쓰러진 놈을 추궁하여 정보를 뜯어낼 수 있겠다면 금상첨화겠지만, 뭐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다.
초대장을 보낸 놈은, 이 녀석이 아닐 테니까.
“대화를 하고 싶었다면 스스로 오면 좋았을 텐데 말이야. …선물을 보낼 것이 아니라.”
청유백은 그리 말하며 어둠 속을 응시했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어둠 너머에서 조용한 대답이 들려왔다.
시리듯 차가운, 여인의 목소리였다.
“글쎄, 낯을 좀 가리거든.”
고즈넉한 암흑 속에 숨어든 그것은, 형체조차 보이지 않는 어둠에 잠겨 있었다.
분명 그곳에 존재하지만, 그 모습은 보이지가 않는다.
마치, 귀신처럼.
청유백은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놈이다.’
정체? 물어보지 않아도 안다.
이 정도의 기백,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일행을 추적하여 위치를 알아낼 수 있는 실력.
산상만월이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단연 빼어난 하나.
청유백은 씹어뱉듯 말했다.
“네가 신월인가.”
“맞아.”
저 너머에서 간드러진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어딘가 익숙한 것도 같았지만, 그런 생각도 순간.
청유백은 검자루를 고쳐 잡았다.
“내가 실수를 했나 보군. 쫓기고 있었을 줄이야…. 어디서부터였지?”
“당신이 우리를 찾아온 순간부터였지. 신월의 대리인을 자처하다니, 간을 어디 내놓고 다니나 봐?”
“글쎄, 꽤 유효했던 것 같은데.”
“큭큭, 퍽이나.”
청유백은 계속해서 대화를 끌어내며 기억을 되짚었다.
그래, 착각이 아니다.
웃음, 목소리, 그리고 분위기.
분명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인정하지. 분명 흥미로워. 내가 신원에 있지 않았다면, 너는 분명 내 대리자로서 그곳의 지부를 원대로 주무르는 것까지도 가능했을 거야.”
“어디서 들킨 건지 모르겠군.”
“말했잖아. 처음부터라니까.”
그 말과 함께, 그녀가 어둠에서부터 걸어 나왔다.
처음부터 목소리와 존재에서 느껴지던 기시감. 청유백은, 그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본적이 있는 얼굴이느냐고?
우스운 질문이다.
“…루주.”
신원에서 보았던,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과 직접 대면했던 그녀.
허나, 그 짙은 화장은 사라져 있었다.
그리고 그 가면 너머의 얼굴은, 청유백이 예상했던 것보다도 젊었다.
아니, 어리다고 말해도 좋으리라.
그러니까 즉, 그녀가 신월이라면.
[범의 면상에 대고 ‘내가 산군이요.’한 꼴이로다.]
‘…그래, 그렇군.’
처음부터, 모든 것을 알고 일부러 당해주었다는 소리다.
청유백은 대꾸했다.
“그렇군. 퍽 우스웠겠어.”
“우습다니? 오히려 당황스럽기 그지없었거든.”
“당황?”
“내 몸값은 비싸. 여기까지 공짜로, 그것도 당신을 부러 만나게까지 만들었잖아? 축하해, 내가 이만큼 감정적으로 움직인 건 태어나서 처음이거든. 자랑스러워해도 좋아.”
그녀, 신월은 능청스레 대답했다.
저것이 거짓인지 진실인지조차도 분간하기 힘들 정도로.
그러나, 그것은 진실이었다.
천화가 그리 속삭이고 있었다.
“아는 사람이 천하에 다섯 명도 남아 있지 않을 비밀을 떠벌리고 다니는데, 어찌 당황하지 않을 수 있겠어.”
일부러 당해주었느냐고?
그야 흥미가 돋을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필경 자신밖에 모를 비밀을, 생판 전혀 모르는 알 수 없는 놈이 속삭이고 있는데 말이다.
“자, 대답해봐. 너는 누구지?”
“이미 알고 있지 않나?”
“당연히 알지. 청가의 후계자.”
신월은 웃음 지으며 품에서 무언가를 빼내었다.
그리고, 보란 듯이 그것을 청유백 앞에 던져 주었다.
─떨그렁.
묵직한 소리를 내며 떨어진 그것은 청가의 옥패.
청걸명이 쥐여 주었던 그것이었다.
“이번 신월은 손버릇이 나쁘군.”
“말 돌리지 말고.”
신월은 차갑게 웃었다.
그리고는, 다시금 품에 손을 넣었다.
‘…언제 가져갔는지도 눈치채지 못했다.’
그래, 신월. 신월이란 말이지.
청유백은 침을 삼켰다.
언제 훔쳤지?
방금인가, 혹은 예전의 언제인가?
‘알 수 없다.’
단지, 그녀가 이다음 품속에서 꺼내드는 것이 결코 온화한 것이 아니라는 것만큼은 알 수 있었다.
그녀는 대답을 종용하고 있었다.
“내가 누구냐고?”
“그래. 대체 뭐하는 놈이길래… 산상만월의 가장 오래된 비밀을 알고 있는 거지? 야황께서 만드신, 가장 옛 암호를.”
“흐음.”
뭐라고 대답해 줘야 할까.
대답이 어렵지는 않다.
이리 대치하고 있고, 밤의 초대가 고깝지는 않지만 그녀가 적이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다.
적의 적은 친구다─라는 격언도 있지 않던가.
혹시 알까?
제대로 대답해 주면 저 밤의 여제가 힘을 빌려 줄지.
“납득할 수 있을 만한 대답, 아니면 거짓 없이 깨끗한 진실. 어느 쪽을 원하나?”
“당연히 진실이지.”
“그래?”
하긴 뭐.
진실은 사람의 마음에 닿는 법이라고 하지 않던가.
솔직히 청유백은 썩 공감하기 힘든 말이었다만, 옛 성현의 말을 한 번쯤은 믿어 보는 것도 괜찮으리라.
“그래서, 대답은?”
“네 증조할애비 친구.”
“미친 새끼.”
아니, 사실대로 말해줘도 불만이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