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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우면 네가 천마 하든가-130화 (130/200)

제130화. 원수는 원수로 갚는다 (5)

툭.

자신의 앞으로 던져진 주머니를 보며, 한순간 성여답은 눈을 가늘게 떴다.

땅에 떨어졌을 때의 소리는 분명 익숙한 짤랑임이었으나, 진짜로 내놓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나 내색하지 않으며 그것을 주워 들었다.

“…킥, 진작에 내놓을 것이지.”

“…….”

빌어먹을.

원각은 이를 갈았다.

저 건방지기 짝이 없는 웃음, 눈에는 탐욕밖에 들어차지 않은 저 얼굴을 당장에라도 뭉개 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안 된다.

지금껏 무엇 때문에 이곳을 지켜왔는가.

당장 이 돈도 마교의 본산에서 온 분께서 맡기신 것.

‘당장은 내어 준다.’

살을 떼어 주는 기분으로, 원각은 욕지거리를 목구멍 뒤로 삼켰다.

그래, 어차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본산에서 오신 분들 아닌가.

지금 좀 아니꼬워도, 결국은 다 해결될 터.

“썩 꺼지시오. 다시는 오지 말고.”

“그건 모를 일이지.”

성여답은 휘파람을 불며 주머니를 확인하더니, 안의 찬연하게 반짝이는 은원보 중 하나를 꺼내어 만족스럽다는 듯 비춰 보았다.

그러고는, 원각을 향해 어깨를 으쓱이더니 등을 돌렸다.

“그래, 돈은 받았으니 더 있을 이유도 없지! 자자, 험악한 인상 펴고, 무기들 집어넣으라고!”

““예!!””

성여답의 지시에 무인들이 일사불란하게 무기들을 납도하고는 그의 뒤를 쫓았다.

빌어먹을 새끼, 거지같은 새끼.

원각이 그 뒤통수에 그리 욕하던 와중, 돈주머니를 쥐여 준 목소리가 다시금 들려왔다.

{놈과 악수해라.}

‘예?’

{따지지 말고, 어서.}

아니, 그건 또 왜…….

반문하려다가, 질문 자체가 멍청한 짓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보시오, 성 단주.”

“뭐요?”

원각의 말에 떠나가던 성여답이 뒤를 돌아보았다.

은원보를 만지작거리는 꼴이, 당장에 그것을 어찌 쓸지 행복한 고민이라도 하는 듯 보였다.

원각은 지체 없이 손을 내밀었다.

“악수 한 번 하지. 다시는 보지 말자는 뜻으로.”

“하하, 그건 모를 일이라니까 그러네.”

성여답은 코웃음 쳤지만, 까짓것 못해줄 거 없다는 투로 다가왔다.

은자 이백오십 냥.

거지를 성인군자로 만들고, 개새끼를 두 발로 걷게 만들 수 있는 돈 아니던가.

그는 퍽 기분이 좋았다.

헌데─

둘이 손을 마주잡고 흔든 찰나.

“아악! 뭐, 뭐야?!”

성여답은 갑자기 발악을 하더니, 불이라도 붙은 것마냥 기겁하며 손을 떼어냈다.

뭐지?

‘본교에서 오신 분이 뭔가 수를 쓴 건가?’

하지만, 무슨 수를?

원각은 아는 바가 없었다.

독을 바른 비침이라도 날린 것일까.

‘아니, 그렇다기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는데.’

…상관없다. 무엇이면 어떠하랴.

지금 중요한 것은 그저 태연하게 상황을 넘기는 일뿐일 테다.

“……? 그냥 악수일 뿐이오.”

“이, 이런 씹… 그리 안 봤는데 이따위로 소심할 줄이야! 차라리 검을 뽑으시오, 객주!”

“허허, 무슨 말을 하시는지.”

“츳, 재수 없는 새끼가…….”

뭔지는 몰라도 어지간히 아픈지, 팔꿈치와 앞섬으로 손을 감싸며 이를 갈았다.

뒤의 무사들이 형형한 눈빛으로 이쪽을 바라보았으나, 뭐 어쩌겠는가.

악수했더니 아프다는 핑계로 다시 칼 뽑아 들게?

큭큭, 이 광경을 보는 민중들에게도 그만큼 웃긴 안줏거리는 다시 없을 테다.

그리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성여답 놈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

“……가자.”

인파를 헤치고 나아가는 그들은 꼭 하나같이 뒤를 돌아보며 시건방진 시선을 날렸다.

괜찮다. 신경 쓰는 이는 없으니까.

우리 무사들은 그 정도로 정신이 나약하지 않았다.

“자, 할 일들 하쇼. 다 해결되었으니.”

곧, 모여들었던 사람들도 곧 흩어져 거리는 다시금 정상적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객잔의 입구를 막던 무인들은 다시 안으로 돌아가 각자의 자리를 지켰고, 몇몇은 지원을 온 것이었는지 어디론가 떠났다.

원각은 자연스럽게 눈을 굴리며 자신을 도왔던 사람을 찾았지만, 역시 눈에 띄지는 않았다.

‘본교에서 보낸 인물… 당연히 날 보고 있겠지.’

이번 일도 직접 해결할 수 있었으나, 시선을 끌고 싶지 않다는 것일 터.

원각은 그가 듣고 있으리라 확신하고는, 아무도 없는 허공에 속삭였다.

‘소란이 잦아들면, 뒷문으로 오시지요. 사람을 대기시켜 두겠습니다.’

그리고 곧, 대답이 돌아왔다.

{그리하지.}

* * *

청유백 일행은 서로 자연스럽게 흩어져 길을 오가는 행인들에 뒤섞이다가, 때를 맞추어 차례차례 객잔으로 들어갔다.

각각 안내를 받아 객잔의 안쪽, 가장 깊숙한 방으로 들어왔고, 그곳에는 또 더욱 깊은 방으로 가는 통로가 이어져 있었다.

딱히 감추었다고 말하기에는 그렇고, 딱 ‘관계자 외 출입 금지’ 정도의 느낌을 풍기는 방이었다.

뭐, 일반인들이 이용하는 객잔이니, 도리어 도 이상으로 수상한 게 있으면 그게 더 기이해 보이는 법일 테다.

그들은 차례차례 방으로 안내받았고, 마지막으로 적영과 백소하까지 방으로 들어왔다.

“편히 쉬고 계십시오. 객주님을 불러오겠습니다.”

그들을 안내한 하인은 고개를 숙여 인사하곤 밖으로 나갔다.

방에 딱히 특별한 것은 없었다.

중앙의 탁자와 의자 몇 개, 그리고 여느 객잔에나 있을 법한 가구들과 장신구들…….

분명히, 마교의 지부로써 역할을 하는 장소는 이보다도 깊숙하게 있을 테다.

하지만, 지금은 이곳으로도 충분했다.

적영이 입을 열었다.

“후우… 여기는 안전한 거지?”

“일단은 그렇지.”

최소한, 지금까지의 추적은 없었다.

청유백 자신이 알아채지 못한 것이라면 하는 수 없겠다만, 최소한 그가 색적한 한에서는 그러했다.

“저, 그러면 이것 벗어도 되나요?”

“아, 물론이지! 괜찮을 거야. 알아보는 사람은…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전부 우리 편이야.”

적영은 아직도 성시소가 머리에 뒤집어쓰고 있던 장포를 걷어 주었다.

여름 날씨에 저것을 뒤집어쓰고 있는 것만으로도 고단했을 테다.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지만, 소녀는 어떠한 불평도 늘어놓지 않았다.

그리고 그렇게, 차 호위가 그녀를 걱정스레 바라보고.

백소하가 쟤 반만 닮으라고 적영을 타박하고.

황돈이 절망스러운 표정으로 남은 은과 금을 세어 보고 있을 즈음.

드르륵.

문이 열리며, 원각이 결연한 표정으로 방으로 들어왔다.

“본산의 후계들께 인사 올립니다. 소인, 본 지부의 장을 맡고 있는 원각(員覺)이라 하옵니다.”

처음에는 결코 실수 하나라도 있어서는 안 된다는 듯이 진중한 표정이었다.

다만, 방을 한 번 둘러보고 누군가와 눈을 마주친 후에는 곧 표정이 밝게 풀어졌다.

“세상에! 황 공자님, 직접 오셨습니까?”

“아아, 그래. 오랜만에 보는구만. 원 객주.”

“그간 많이 야위셨습니다. 각고하셨나 봅니다.”

“허허, 실로 그렇지. 고생도 이만저만이 아닌지라.”

야위…었나?

일행은 순간 ‘야위다’라는 뜻의 의미를 자신이 잘못 알고 있는가 고민했지만, 굳이 입으로 꺼내는 이는 없었다.

저 원각이라는 자가 사회생활을 좀 잘하겠다 싶기는 했다만…….

황돈이 말을 이었다.

“자, 거두절미하고… 연통을 이미 받았다 들었네. 우리가 온 이유는 알겠지?”

“물론입니다. 임무는 완벽히 수행되고 있습니다. 사마신교의 추적, 그리고 특정까지 추려 낸 상태입니다. 다만…….”

“다만?”

“접근이 조금 어렵습니다. 아니, 불가능하다 봐도 좋겠지요.”

“왜지? 본교가 비밀리에 후원하는 서검련은 이 오로목제의 반을 먹고 있지 않은가.”

일반 민중에게 배척받는 마교가, 빌어먹을 정파 놈들에게 악이라 단정 지어진 마교가 세를 넓히는 방법은 단순했다.

전면에 나서지 않고, 허수아비를 세워 그 실권을 잡는다.

그리고 오로목제의 경우, ‘서검련(書劍聯)’이라 불리우는 무인 집단의 형태로 그것을 이루었다.

원각이 가벼이 대답했다.

“그 말은 옳으십니다. 본교의 서검련은 상인들을 보호하며 세를 걷고, 몇몇 객잔과 기루는 아예 휘하에 두고 있지요. 허나, 요즘 세가 조금 주춤합니다. 동우회 때문이지요.”

원각의 설명이 이어졌다.

동우회(同友會).

그들은 서검련과 비슷한 성격의, 그러나 전혀 다른 형식의 단체였다.

서검련이 무인들의 집단이라 상공인들에게 임시적으로 무력을 대여해 주거나 보호를 보장해 준다고 하면, 동우회는 상공인들끼리 직접 연합하여 그들의 돈으로 그들의 무인을 고용하고 공유하는 형태였다.

실상, 하는 역할은 같았다.

다만 이 오로목제라는 장소를 둘이서 갈라 먹고 있는 형태가 되다 보니, 사이가 퍽 좋지는 않았을 뿐이었다.

헌데.

“아니, 본디 반을 서로 가져갔다고는 하나, 지금껏 그리 마찰이 없지 않았는가.”

마찰이 없는 이유?

단순했다.

서로 쳐봐야 이득 될 것도 없고, 이겨봐야 손해가 더 클 테니까.

이제 와서 싸움이라니, 이해가 안 되는 행위였다.

“그랬습니다. 그랬는데…….”

“말해 보게.”

“…성씨세가가 놈들 편을 들기 시작했습니다.”

“……!”

듣는 모두가 숨을 죽였다.

특히 성시소는, 믿을 수 없다는 것처럼 동공이 떨려오는 것이 보였다.

팽팽한 두 세력의 싸움에서, 중립을 지키던 중앙 세력이 한쪽의 편을 들면 어찌 될지는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심지어, 그것이 치안과 판결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토호의 편애라면 말이다.

[심각하구나. 헌데… 이상하기도 하다.]

‘뭐가?’

[다 좋다. 상황 심각한 것도 알겠고, 해결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알겠다. 성시소 저 아이가 우리 품에 있다는 것이 괜찮은 신호라는 것까지도 쉬이 알겠구나. 헌데…….]

문득, 천화는 청유백의 귀에 의문을 속삭였다.

‘…그렇군. 일리가 있어.’

별것 아닌 의문이었다.

허나, 확실히 가질 수 있을 법한 의문이었기에.

청유백은 곧 천화의 질문을 직접 입에 담았다.

“이봐. 원각이라 했나?”

“예. 하문하십시오.”

“그 동우회가 사마신교와 연관되어 있다고 어찌 확신하는 거지?”

목표? 좋다.

시험? 과제? 그 또한 좋다.

허나, 이것이 정말로 의미가 있는 일인지는 확실히 확인해야 할 터였다.

‘우리는 여기까지 오면서 성시소를 보호했고, 그 과정에서 이 일에 사마신교가 얽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결코 정상적인 방법은 아니었다.

…중원에서 가장 거대한 정보 단체와 암살 단체를 등쳐 먹은 결과였으니까 말이다.

의외로, 원각은 청유백을 향해 고개를 돌리더니 쉽게 대답했다.

“가장 흔적을 쫓기 쉬운 것이 뭔지 아십니까?”

…흔적이라.

청유백은 잠깐 고민했고, 그 사이 녹지연이 먼저 대답했다.

“글쎄요, 돈인가요?”

“아닙니다. 물론 돈도 나름의 흔적이 있지요. 사람을 거치고 상회를 거치고… 나쁘지는 않은 답이지만, 이번에는 아닙니다.”

그러나 오답이었다.

돈, 청유백도 순간 스쳤던 답이었기에 몸을 움찔 떨었다.

다음 대답한 것은 백소하였다.

“그러면 소문입니까?”

“비슷하지만, 아닙니다. 소문은 상황에 따라 너무도 많은 것이 바뀝니다. 명확한 실체가 없을뿐더러… 소문이라는 녀석은 너무도 무성하여, 쫓을 만한 것이 못 됩니다.”

“…그렇습니까?”

“아, 죄송합니다. 백가의 일을 무시한 것은 아닙니다. 단지, 저희 같은 무지한 이들이 쫓기에 적합한 것은 아니라는 것뿐입니다.”

원각의 보충에 백소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여전히 답은 나오지 않았고, 이 쓸데없는 문답은 별로 실용적이지 않았다.

청유백이 대꾸했다.

“허면 뭐지?”

“바로 사람입니다.”

“사람이라. 어째서지?”

청유백은 흥미롭다며 목청을 울렸다.

청유백의 주관에서, 사람은 결코 쫓기 쉬운 것이 아니었다.

도리어 쫓기 어려운 축에 속했다.

사람이라는 것이 찾기 힘들었다면 대관절 마교에 왜 도주자의 추적을 전담하는 기관이 있으며, 그 크기가 다른 정보기관과 견줄 정도로 거대하겠는가.

허나, 원각의 대답은 조금은 궤를 벗어난 것이었다.

“하나, 둘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으나… 수십수백의 사람 흔적을 쫓는 것만큼 쉬운 일이 또 없지요.”

“…궤변 아닌가?”

“그럴 수도 있습니다. 이번의 ‘사람’이라는 것이, 하루아침에 부모도 모르게 사라진 아이들이라면 더더욱이요.”

““……!!””

일행들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납치?

이 거대한 도시의 근방에서?

허, 참!

백소하가 대꾸했다.

“비효율적인 일입니다. 아니, 멍청하다 말해도 좋습니다. 일반적이라면, 그럴 이유가 없어요.”

“납치가 원래 그런 행위 아닌가.”

“그래도 더 눈에 안 띄는 곳, 더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은 얼마든지 있을 겁니다.”

납치란 그 존재 자체로 비효율적인 행위였다.

이목은 이목대로 끌뿐더러, 이송에도 크나큰 주의가 필요하고, 먹이고 재우는 동안의 반항 또한 오롯이 받아내야만 한다.

“사마신교의 계책이라고 보기에는 지나칠 정도로 비효율적이야.”

“비효율적이어도 강행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는 것일 테지요.”

“그렇다면, 이 근방에 아이들을 필요로 하는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소리인가요…….”

그것도, 아주 비효율적인 무언가가.

청유백 일행은 원각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원각은 고개를 깊게 숙이며 대답했다.

그 목소리에는, 진심으로 죄송하다는 성심이 담겨 있었다.

“…죄송합니다. 그 존재는 알아챘지만, 어디로 향하는지는 아직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허면, 우릴 부른 이유가 바로 그것이겠군.”

“예. 당신들께서 알아내 주셔야 하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사교는 아이들을 납치하여 과연 어디로 보내는지.

무엇을 위해 보내는지.

그리고, 결과적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이 모든 것들을 알 수 있는 장소가 어디엔가 있으리라.

“그러면 그 끝에…….”

원각의 말을 자르며, 청유백이 대꾸했다.

자신이 움직여야 할 결론을, 타인이 내리게 두는 것은 성미에 맞지 않았다.

“사교의 본거지가 있겠군.”

“없다 하더라도 최소한, 그 단서는 있겠지요.”

“……좋다.”

시험을 위한 오로목제, 그들이 무엇을 위해 움직여야 하는지 확정되는 순간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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